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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 장편소설이자 이 책의 저자 샐린저를 현대 미국 문학사에 작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작품이다. 이 책은 비틀즈의 존 레넌을 살해한 범이이 범행 당시 손에 쥐고 있어 더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홀든 콜필드'라는 미국의 십대 청소년을 통해 그들의 시기에 겪게 되는 성장의 아픔을 거침없고 직설적인 언어로 그려내고 나아가 어든들의 가식적이고 허위로 가득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홀든의 독백형식으로 진행되며,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후 사흘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뉴욕한복판에서 방황하며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16살 청소년 홀든을 내세워 이야기 하고있지만 단순히 청소년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춘기와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뿐만아니라 그런시기를 보낸 후 세상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도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있다. 틀에 박혀있고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한 현대사회에 살고 이쓴ㄴ 우리들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해 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 서 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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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나에게 있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행위이다. 대부분의 소설은 ‘줄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작가는 이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렇기에 작가의 이야기를 그저 인물과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게 되면 독자들은 작가가 진정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 그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면 독자는 진정으로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소설들을 읽을 때 작가가 진정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가가 콜필드라는 독특한 인물을 내세워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이러한 사고과정을 통해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다양한 메시지에 일부나마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작품에 쓰여진 수많은 이야기 중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일지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은 주인공인 콜필드의 특이한 성격이다. 콜필드는 염세적인 말투를 쓰고 남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남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는 시험에서 항상 낙제만하고 학교라는 조직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해 몇 번이나 퇴학을 당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콜필드의 걱정거리는 학교성적이나 인간관계와 같은 평범한 고민이 아닌 ‘겨울이 되어 연못이 얼면 그곳에서 놀던 오리들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와 같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고민이다. 그리고 고민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전되기는커녕 마지막에 다니던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이후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를 전전하며 방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콜필드는 차가운 겉모습과는 다른 따뜻한 마음을 지닌 존재다. 대표적인 예로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동생을 사랑한다.(특히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특유의 염세적인 말투로 친구들을 경멸하는 척 하지만 그들을 그리워하고 관심을 쏟는 모습에서도 독자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콜필드의 따뜻한 인강성을 가장 짙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그가 사랑하는 동생을 만나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때이다. 그는 동생에게 자신이 꿈꾸는 삶의 모습을 이야기해준다 그 모습은 ‘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단지 꼬마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은 남들처럼 스스로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경쟁사회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자신처럼 순수하고 연약한 존재들을 보살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콜필드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사회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인물을 통해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 안에 스스로의 우주를 간직하고 있다.’라는 말은 이러한 사실을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루고 있는 사회는 그들의 다양성을 감싸 안을 만큼 포용적이지 못하다. 사회는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한계를 정당화 한다. 한 이데올로기는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정당화시키기도 하고 어떤 이데올로기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싫더라도 참고 견뎌야하는 ‘필요악’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거대한 힘 앞에 콜필드와 같은 나약하고 순수한 인간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콜필드의 방황을 바라보며 동시에 순수한 인간의 상처와 좌절에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그에게 연민을 느낄수록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다름’에 매정한 사회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은 현실을 비극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않는다. 오히려 결말을 통해 사회와 콜필드와의 화해를 제시한다. 그에 따라 그에 대한 연민은 사라져간다. 그는 예전에 다니던 학교선생님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빌헬름 스테켈 -
즉 선생은 콜필드의 방황은 미성숙함의 발로이며 성숙한 사람이란 시련을 참아내는 인물임을 지적한다. 자신을 피해자로만 가정했던 콜필드는 이 지적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신의 여동생을 상기한다. 그리고 콜필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사랑하는 여동생이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회전목마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비를 맞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던 결심은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돌아감’은 자신뿐만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함으로써 이루어 졌다. 이는 콜필드가 유아적인 1차적 사고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며, ‘성장’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사회와 평행선상에 서있었던 ‘미성숙한 인물’이 여러 가지 시련을 겪은 뒤 주위 사람의 도움을 통해 ‘성숙한 인간'이 되어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모급은 개인과 사회와의 긍정적인 관계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믄에 전 세계 청소년 권장도서로 자리매김했으며 문학적으로는 성장소설의 대표적 자품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몇 년 전에 읽었던 한 소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소설은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라는 책이었다. 순수했던 인간이 사회와 갈등을 빚고 방황하는 모습이 『호밀밭의 파수꾼』과 꼭 닮았다. 그러나 『인간실격』은 사회와의 화해로 끝나지 못했다. 주인공은 끝까지 삶과 타협하려 했으나 끝내 다른 이들에게서 상처만 받고 만다. 그 당시에 나는 거대하고 무자비한 사회 앞에서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해를 청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품었다. ‘셀 수도 없는 경우의 수로 인해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닌 우리가 사회가 원하는 모스에 익숙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은 마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처럼 한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그와 비슷한 상황을 다루고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보게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인간실격』을 상기하게 되었다. 이 두 소설의 상반된 결과는 자연스럽게 비교되었다. 그리고 비교를 통해 예전에 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질문에 해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 콜필드는 스스로 사회를 버린 동시에 버림받은 존재이지만, 주위의 도움과 동생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세계와 화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련이 ‘성장;의 요인이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모두 세상의 매정한 힘 앞에서 좌절할 때가 있다. 또한 사회의 힘은 거스를 수 없을 만큼 거세다. 그나 그러한 시련을 사회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기껏해야 타인의 ‘연민’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련을 버텨내면 그는 더 강해질 수 있다. 나는 작가인 셀린저가 콜필드라는 특이한 인물과 사회의 갈등을 설정하고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으로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찾아내며 다음과 같은 격언이 떠올랐다.“훌륭한 뱃사람은 잔잔한 파도에서 길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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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 장편소설이자 이 책의 저자 샐린저를 현대 미국 문학사에 작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작품이다. 이 책은 비틀즈의 존 레넌을 살해한 범이이 범행 당시 손에 쥐고 있어 더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홀든 콜필드'라는 미국의 십대 청소년을 통해 그들의 시기에 겪게 되는 성장의 아픔을 거침없고 직설적인 언어로 그려내고 나아가 어든(어른)들의 가식적이고 허위로 가득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홀든의 독백형식으로 진행되며,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후 사흘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뉴욕한복판에서 방황하며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16살 청소년 홀든을 내세워 이야기 하고있지만 단순히 청소년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춘기와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뿐만아니라 그런시기를 보낸 후 세상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도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있다. 틀에 박혀있고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한 현대사회에 살고 이쓴ㄴ(있는) 우리들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해 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 서 평 )
/*독후감을 요약한 서평에 오타가 2개 있는 것은 글 작성 후 수정,검토하지 않은 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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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나에게 있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행위이다. 대부분의 소설은 ‘줄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작가는 이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렇기에 작가의 이야기를 그저 인물과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게 되면 독자들은 작가가 진정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 그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면 독자는 진정으로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소설들을 읽을 때 작가가 진정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가가 콜필드라는 독특한 인물을 내세워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이러한 사고과정을 통해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다양한 메시지에 일부나마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작품에 쓰여진 수많은 이야기 중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일지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은 주인공인 콜필드의 특이한 성격이다. 콜필드는 염세적인 말투를 쓰고 남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남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는 시험에서 항상 낙제만하고 학교라는 조직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해 몇 번이나 퇴학을 당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콜필드의 걱정거리는 학교성적이나 인간관계와 같은 평범한 고민이 아닌 ‘겨울이 되어 연못이 얼면 그곳에서 놀던 오리들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와 같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고민이다. 그리고 고민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전되기는커녕 마지막에 다니던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이후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를 전전하며 방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콜필드는 차가운 겉모습과는 다른 따뜻한 마음을 지닌 존재다. 대표적인 예로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동생을 사랑한다.(특히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특유의 염세적인 말투로 친구들을 경멸하는 척 하지만 그들을 그리워하고 관심을 쏟는 모습에서도 독자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콜필드의 따뜻한 인강성을 가장 짙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그가 사랑하는 동생을 만나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때이다. 그는 동생에게 자신이 꿈꾸는 삶의 모습을 이야기해준다 그 모습은 ‘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단지 꼬마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은 남들처럼 스스로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경쟁사회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자신처럼 순수하고 연약한 존재들을 보살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콜필드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사회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인물을 통해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 안에 스스로의 우주를 간직하고 있다.’라는 말은 이러한 사실을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루고 있는 사회는 그들의 다양성을 감싸 안을 만큼 포용적이지 못하다. 사회는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한계를 정당화 한다. 한 이데올로기는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정당화시키기도 하고 어떤 이데올로기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싫더라도 참고 견뎌야하는 ‘필요악’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거대한 힘 앞에 콜필드와 같은 나약하고 순수한 인간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콜필드의 방황을 바라보며 동시에 순수한 인간의 상처와 좌절에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그에게 연민을 느낄수록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다름’에 매정한 사회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은 현실을 비극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않는다. 오히려 결말을 통해 사회와 콜필드와의 화해를 제시한다. 그에 따라 그에 대한 연민은 사라져간다. 그는 예전에 다니던 학교선생님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빌헬름 스테켈 -
즉 선생은 콜필드의 방황은 미성숙함의 발로이며 성숙한 사람이란 시련을 참아내는 인물임을 지적한다. 자신을 피해자로만 가정했던 콜필드는 이 지적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신의 여동생을 상기한다. 그리고 콜필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사랑하는 여동생이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회전목마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비를 맞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던 결심은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돌아감’은 자신뿐만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함으로써 이루어 졌다. 이는 콜필드가 유아적인 1차적 사고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며, ‘성장’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사회와 평행선상에 서있었던 ‘미성숙한 인물’이 여러 가지 시련을 겪은 뒤 주위 사람의 도움을 통해 ‘성숙한 인간'이 되어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모급은 개인과 사회와의 긍정적인 관계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믄에 전 세계 청소년 권장도서로 자리매김했으며 문학적으로는 성장소설의 대표적 자품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몇 년 전에 읽었던 한 소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소설은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라는 책이었다. 순수했던 인간이 사회와 갈등을 빚고 방황하는 모습이 『호밀밭의 파수꾼』과 꼭 닮았다. 그러나 『인간실격』은 사회와의 화해로 끝나지 못했다. 주인공은 끝까지 삶과 타협하려 했으나 끝내 다른 이들에게서 상처만 받고 만다. 그 당시에 나는 거대하고 무자비한 사회 앞에서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해를 청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품었다. ‘셀 수도 없는 경우의 수로 인해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닌 우리가 사회가 원하는 모스에 익숙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은 마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처럼 한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그와 비슷한 상황을 다루고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보게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인간실격』을 상기하게 되었다. 이 두 소설의 상반된 결과는 자연스럽게 비교되었다. 그리고 비교를 통해 예전에 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질문에 해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 콜필드는 스스로 사회를 버린 동시에 버림받은 존재이지만, 주위의 도움과 동생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세계와 화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련이 ‘성장;의 요인이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모두 세상의 매정한 힘 앞에서 좌절할 때가 있다. 또한 사회의 힘은 거스를 수 없을 만큼 거세다. 그나 그러한 시련을 사회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기껏해야 타인의 ‘연민’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련을 버텨내면 그는 더 강해질 수 있다. 나는 작가인 셀린저가 콜필드라는 특이한 인물과 사회의 갈등을 설정하고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으로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찾아내며 다음과 같은 격언이 떠올랐다.“훌륭한 뱃사람은 잔잔한 파도에서 길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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