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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연]
마찬가지로 내인연(內因緣)의 뜻도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는데,
역시 첫째는 인의 의미에 따라, 둘째는 연의 의미에 따라서이다.
[인의 뜻에 따른]
그렇다면 인의 의미에 따른 내인연이란 무엇일까?
이른바 무명(無明)을 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육입(六入)이 있고,
육입을 연하여 촉(觸)이 있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연하여 노(老)ㆍ사(死)ㆍ우(憂)ㆍ비(悲)ㆍ고(苦)ㆍ뇌(惱)가 있어 차례로 뻗어가며, 이러한 괴로움의 덩어리[苦陰]가 모이고 쌓여 불어난다.
이와 같이 무명이 있으므로 행이 뻗어가고 나아가 마찬가지로 생이 있으므로 노사가 뻗어간다.
만약에 무명이 없으면 행이 생겨나지 않고 만약에 생이 없으면 노사도 없다.
이와 같이 무명이 있으므로 행의 뻗어감이 있고 생이 있으므로 노사의 뻗어감이 있으나,
그 무명은 역시 “나는 행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 역시 “나는 무명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아가 생 역시 “나는 노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노사 역시 “나는 생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무명이 있으므로 행이 뻗어가며 나아가 생이 있으므로 노사의 뻗어감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일컬어 무명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명은 여섯 가지 성품[六種性]에 의지하여 남자라거나 여자라거나 하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무엇을 여섯 가지 성품이라고 하는가?
땅의 성품[地性]ㆍ물의 성품[水性]ㆍ불의 성품[火性]ㆍ바람의 성품[風性]ㆍ허공의 성품[空性]ㆍ인식의 성품[識性]이 그것이다.
땅의 성품은 단단한 모양이어서 능히 몸을 이루고 몸을 허물어지지 않도록 한다.
물의 성품은 역시 능히 지탱해 주며 능히 윤택하게 하며 능히 부드럽게 하며 능히 촉촉하게 한다.
불의 성품 역시 능히 음식을 먹고 마시고 삼키고 맛보도록 하며 능히 성숙하도록 한다.
바람의 성품 역시 능히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며 헐떡이거나 기침을 하도록 한다.
이들 4대(大)로 이루어진 것의 사이[內]에 있는 공간이 곧 공의 성품이다.
나아가 이들은 다시 명색(名色)을 이루는데, 비유하자면 마치 억새 다발에서 연유한 것과 같으니, 곧 인식의 성품이다.
따라서 땅의 성품은 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목숨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자신도 아니고, 남도 아니며 나아가 인식의 성품도 이와 같다.
하지만 이와 같이 해서 여섯 가지 성품의 조건[緣]을 갖추게 되면 중생상(衆生想)ㆍ상상(常想)ㆍ항상(恒常)ㆍ유상(有想)ㆍ오아상(吾我想)ㆍ음욕상(淫慾想)ㆍ아상(我想)이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것들이 여러 가지의 무지이니, 일컬어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이 무명이 있는 까닭에 대상에 대하여 애욕으로 애착을 일으키고 성냄을 일으키고 우치를 일으킨다.
이러한 탐ㆍ진ㆍ치는 대상에 의지하기 때문에 일어나니, 일컬어 바로 행(行)이라 하며,
일을 따라 분별하기 때문에 식(識)이라 하며,
이 식으로부터 다시 네 가지 음(陰)이 일어나니 곧 명색(名色)이다.
명색에 의지하기 때문에 모든 감각기관이 있으니 이들을 일컬어 6입(入)이라 하며,
이것의 쌓임 때문에 촉(觸)이 있으며,
촉을 느끼기 때문에 상(想)이 있으며,
상을 뒤따르기 때문에 애(愛)가 있으며,
애가 뻗어가기 때문에 취(取)가 있다.
취에 의지하기 때문에 후유(後有)가 생기고,
업유(業有)가 생기기 때문에 유(有)가 있다.
업이 인(因)이 되어 음(陰)이 있고,
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생(生)이 있으며,
음이 성숙하기 때문에 노(老)가 있고,
음이 허물어지기 때문에 사(死)가 있다.
[우ㆍ비ㆍ고ㆍ부적]
안으로 뜨겁게 타오르기 때문에 우(憂)가 있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悲)가 있고,
육신이 인식작용[識陰]과 만나기 때문에 고(苦)가 있고,
마음이 인식작용과 만나는 까닭에 부적(不適)함이 있으니,
이들을 수번뇌(隨煩惱)의 부류라고 이름한다.
그 어둡다는 뜻을 따라 무명이라 하고,
만들고 꾸민다는 뜻을 따라 행이라 하며,
인식한다는 뜻을 따라 식이라 하고,
견고하게 버틴다는 뜻을 따라 명색이라 하며,
문으로 들어간다 하여 6입이라 하고,
닿는다는 뜻을 따라 촉이라 하며,
받아들인다는 뜻을 따라 수라 하고,
애착하여 받아들인다는 뜻을 따라 취라 하며,
다시 후유(後有)을 일으킨다는 뜻을 따라 유라 하고,
일어난다는 뜻을 따라 생이라 하며,
무르익는다는 뜻을 따라 노라 하고,
허물어진다는 뜻을 따라 사라 하며,
뜨겁게 타오른다는 뜻을 따라 우라 하고,
생각한다는 뜻을 따라 비라 하며,
괴로움이 몸에 닥친다는 뜻을 따라 고라 하고,
괴로움이 마음에 닥친다는 뜻을 따라 부적함이라 하며,
수번뇌의 부류라는 뜻을 따라 고뇌라 한다.
이와 같이 실상(實相)을 따르지 않기에 곧 삿된 행을 따르는 것이고 무지이며, 그러므로 곧 무명이다.
이같은 무명으로 인하여 세 가지 행이 생겨나니, 곧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이다.
따라서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행이 있기 때문에 선식(善識)ㆍ불선식(不善識)ㆍ무기식(無記識)이 있으니, 이런 까닭에 행을 연하여 식이 있는 것이다.
식을 따라 선(善)이 있게 되면 곧 선을 따르는 명색이 생겨나고
불선 및 무기를 따르는 명색 역시 이와 같이 생겨난다.
따라서 식을 연하여 명색이 생긴다고 말한다.
명색이 뻗어나기 때문에 6문(門)은 대상에 응하여 만들어진 지식 등을 낳으니, 명색을 연하는 까닭에 6입이 된다고 말한다.
여섯 가지의 느낌이 들어오기 때문에 육촉이 생겨나니, 이 육입을 연하는 까닭에 촉이 된다고 한다.
이 촉이 생겨나기 때문에 수가 생겨나므로 촉을 연하여 수가 생겨난다고 하며, 모든 반연을 취하여 맛들이고 집착하기 때문에 수라고 부른다.
수를 연하여 애가 된다고 하니, 명색을 기뻐하고 탐착하고 호색하고 물들어 떨쳐 버리지 못한 채 거듭 깊이 탐하여 구하는 것을 일컬어 애라 한다.
애를 연하는 까닭에 취가 있고, 다시 몸ㆍ입ㆍ생각으로 지은 업으로 인하여 후유(後有)를 바라고 구하게 되니, 취를 연하여 유가 있다고 일컫는다.
업(業)에 의지하여 음(陰)이 생기니, 이것이 바로 ‘유(有)를 말미암아 생(生)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무르익고 허물어짐이 있다. 따라서 생을 연하여 노사가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12인연이 생겨나고 다시 서로를 인으로 의지하여 서로를 낳고 뻗어간다.
시작도 없이 돌고 돌아 끊어짐이 없으며, 다시 업과 식 등이 거듭 12인연을 낳기 때문에 사지(四支)가 생겨나니, 이는 인의 의미에 따른 것이다.
[무명ㆍ애ㆍ업ㆍ식]
무엇이 네 가지인가?
곧, 무명(無明)ㆍ애(愛)ㆍ업(業)ㆍ식(識)이 그것으로, 그 식은 종자(種子)로서 있으면서 명색의 인(因)이 되고, 업은 밭으로서의 인이 되며, 무명과 애는 번뇌(煩惱)로서의 인이 된다. 이 업과 번뇌가 없다면, 그 때문에 식의 종자는 자라나지 않는다.
곧 이 원인이 되는 업을 식의 종자가 밭을 삼으면, 무명 때문에 식의 종자가 뿌려지고, 애 때문에 식의 종자가 촉촉하게 젖는다.
그러나 그 무명은 “나는 식의 종자를 뿌릴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애도 역시 “나는 식의 종자를 촉촉이 적실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업도 역시 “나는 식에게 밭으로 쓰였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식의 종자도 역시 “나는 이들을 연하여 생겨났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는다.
또한 식의 종자가 업의 밭에 편안히 자리 잡고 애는 촉촉이 적셔주고 무명은 은밀히 덮어주면, 그 때문에 씨앗이 자라나서 아직 생겨나지 않은 일체의 음에 대해 명색의 싹을 낳지만, 이 명색의 싹은 저 혼자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니고 함께 만든 것도 아니며, 자재천(自在天)이 만든 것도 아니다.
또한 원인 없이 생겨난 것도 아니어서 앞에서처럼 업과 번뇌가 있기 때문에 식의 종자는 자라나고 명색의 싹을 틔운다. 이는 또한 현재의 세상으로부터 다음 세상으로 그대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니, 업의 결과를 따라 인연이 충분히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밝은 거울에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과 같다. 얼굴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얼굴을 닮은 모습이 그 안에 있으니, 이는 그러한 인연을 갖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육신은 이곳에서 멸하여도 다른 곳에서 태어나니, 이는 그 업의 인연을 충분히 따라 갖추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여기에서 3만 2천 유순(由旬)이나 떨어진 둥근 달의 모양이 허공에 나타나면, 그릇에 가득 물을 채우고 달의 모양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달은 허공에서 여기로 떨어지지도 않았고 또한 건너오지도 않지만 달의 모양은 그 안에 있으니 역시 그 인연을 갖추기 때문이다.
다시 비유하자면 불을 가져다가 오목한 그릇 안에 넣어 두면 불씨가 타면서 꺼지지도 않고 불꽃이 사라지지도 않으니, 그 인연을 따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와 같이 업과 번뇌는 식의 종자를 낳고, 이 낳아진 것은 상속하여 주체가 없는 법에서 명색의 싹을 낳는다. 인연을 갖추기 때문에 이와 같을 수 있다. 일체의 지분[支]이 이치에 따라 안주한다는 것은 이와 같다.
인의 의미에 따른 내인연은 이와 같고,
[연의 뜻에 따른]
다시 연의 의미에 따라 이것을 살펴보도록 하자.
인의 의미에 따르면 이상과 같고 연의 의미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수다라(修多羅) 안에서도 설하는 바와 같이 연은 이와 같이 일어나고, 연은 이와 같이 모이니, 연은 이러하다.
아비담(阿毘曇) 안에서도 이제 미묘하고 훌륭한 모양을 갖춰 다음과 같이 설한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이면 음욕이 있으며, 시절이 갖추어지면 만나고 상속하여 식의 종자가 여인의 뱃속에서 명색의 싹을 일으킨다.
이처럼 눈이 색을 반연하고 광명[明]과 뜻을 일으키는 연[生意緣]에 기대어 안식(眼識)이 생긴다.
이와 같이 색은 안식에게 반연하는 대상이 되고, 광명은 시선을 열고 이끌며, 허공은 장애가 없도록 한다. 뜻을 일으킴도 이와 같다.
이와 같은 연이 없으면 곧 식은 생겨나지 않는다.
만약에 눈의 감관[眼入]에 문제가 없다면 색 등의 바깥 경계는 곧 반연의 대상이 되고, 광명은 시선을 열고 이끌며, 허공은 장애가 없도록 하고, 뜻을 일으키는 연은 뜻에 의지하여 작용할 것이다.
결국 눈[眼]ㆍ색[色]ㆍ광명[明]ㆍ공[空]과 뜻을 일으키는 연[生意緣]이 이와 같이 서로 화합하기 때문에 안식이 생긴다.
그러나 이 눈은 역시 “나는 안식이 의지하는 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색 역시 “나는 안식의 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광명 역시 “나는 얼마든지 안식을 위해 광명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공 역시 “나는 안식을 위해 장애가 없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뜻을 일으키는 연 역시 “나는 얼마든지 안식에게 뜻을 일으키는 연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며,
안식 역시 “나는 이들 연에 기대어 생겨났다”고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만일 이런 연들이 있기만 한다면 곧 안식이 생겨난다.
이것은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똑같은 이치로써 널리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곧 그것들은 저마다 명확한 자리에 안주하며, 의식은 뜻ㆍ법과 뜻을 일으키는 연에 의지하여 생겨나니. 이처럼 자세히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연의 의미에 따른 내인연의 뜻을 살펴보았다.
내인연의 의미를 살펴 볼 때에는 반드시 다음의 다섯 가지를 관찰해야만 한다. 곧,
그대로이지 않고,
단절되지 않으며,
이어가지 않고,
연에 의지하기 때문에 과실은 불어나고,
서로 닮은 모습으로 자라나지만 또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임해서는 음이 멸하기 때문에 ‘그대로이지 않다’고 말한다.
곧 이 죽는 때에는 음이 멸하기 때문에 다른 음이 다시 태어나는데, 그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이 없어 마치 숙였다가 일어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단절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 닮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초심(初心)으로부터 다시 수승한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에 이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보잘것없는 업을 지었지만 거두어들이는 과보는 크기 때문에 연에 의지하여 과실이 불어난다고 한다.
지어 놓은 업과 서로 닮은 모양의 과보를 받기 때문에 닮은 모양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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