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정생왕인연경 제1권
한때 불세존(佛世尊)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는데, 교살라(憍薩羅: 코살라)국 군주인 승군대왕(勝軍大王)이 와서 부처님 처소에 이르렀다.
도착한 뒤에 머리를 세존의 발에 대어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떨어져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옛적에 지으신 보시와 복의 행]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지난 옛적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실 때에 어떻게 보시를 행하시어 모든 복의 행을 지으셨습니까?
이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과거 멀고 먼[久遠] 겁의 일은 그만두고,
내가 생각해보니 이 현겁(賢劫) 중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할 때에도 보시의 행을 닦았다.
그 일의 인연을 그대는 자세히 들어서 지극히 선하게 생각을 하여야 마땅할 것이니라.
이제 그대를 위하여 말하겠다.
[정생왕]
대왕이여, 이 겁의 초기에 사람의 수명은 햇수[歲]가 한량없었다.
이때 왕이 있었는데 이름이 포사타(布沙陀)였다. 그 왕의 이마 위에 갑자기 살덩어리가 생겨났는데 굳은살[皰] 같으면서도 부드러워서 도라면(兜羅綿)과 같고 또한 고운 모직물[㲲]과 같으며 또한 아프고 괴로운 일[痛惱]도 없었다.
그것이 성숙한 뒤에는 저절로 찢어져서 동자(童子) 하나가 태어났다.
최상의 빛과 모양으로, 단정하여 볼만 하였다. 몸은 금빛 같고 머리에는 휘돌아 감긴 무늬[旋文]가 있는데 마치 묘한 일산과 같았으며, 두 팔은 길고 이마는 넓고 편편하며 바르고, 눈썹이 다시 뻗혔으며, 코는 길고 곧으며, 몸은 위아래가 나뉘어 모두 다 갖추어졌으며 대장부의 32상호가 있어서 그 몸을 장엄하였다.
동자가 태어나자 이에 궁 안으로 들였다.
왕에게 6만 궁녀와 권속이 있었는데 이 동자를 보고서는 젖이 저절로 차서 흐르므로 각기 이런 말을 하였다.
‘제가 태자를 기르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름을 아양(我養)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제 이 태자는 이마 위에서 태어났으니 응당 이름을 정생(頂生)이라고 해야 한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에 정생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고 혹 아양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다.
그때에 정생 태자가 동자의 지위에 있는 동안에 여섯 제석(帝釋)이 멸하는 기간이 지나갔고 태자의 지위에 있는 동안 또한 여섯 제석이 멸하는 기간이 지나갔다.
태자가 언제인가 왕궁을 나가서 인민의 저자거리[肆里]를 차례로 노닐며 구경하는데, 마침내 뒷날 포사타 왕이 병으로 갑자기 눕기에 이르렀다.
시중드는 신하가 꽃ㆍ과실ㆍ뿌리ㆍ싹의 약이 되는 음식을 받들어 치료를 하였는데, 비록 다시 부지런히 힘썼으나 병환은 차도가 없었다.
그 왕이 곧 모든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그대들은 빨리 태자에게 왕의 관정(灌頂)을 주시오.’
신하와 보필하는 이들이 명을 받고 곧 심부름꾼[使人]을 보내어 태자의 처소에 나아가 태자에게 말하게 하였다.
‘부왕께서 병으로 누우셨는데 구제하고자 치료하여도 차도가 없으시니, 태자를 불러
〈이제 빨리 와서 왕의 관정을 받으라〉고 명령하셨나이다.’
심부름꾼이 가는 도중에 왕은 이미 돌아가셨다.
이때 신하와 보필하는 이들이 다시 심부름꾼[使人]을 보내어 바짝 뒤를 쫓아 나아가 태자에게 말하였다.
‘부왕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니 태자께서는 빨리 오셔서 왕의 관정을 받으시옵소서.’
그때에 정생 태자는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부왕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달려갈지라도 어떻게 미칠 것인가?’
그때에 여러 신하들이 함께 의논하여, 가까이 모시던 한 대신이 태자의 처소에 나아가서 말하였다.
‘태자이시여, 원하옵건대 빨리 여기 오셔서 왕의 관정을 받으소서.’
태자가 말하였다.
‘만일 내가 응당 바른 법으로 왕의 자리를 잇는다면 저들이 여기에 와서 나를 위해 관정을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가까이 모시던 신하가 다시 말하였다.
‘태자께서 관정을 받으시는 데 법으로 정해진 위의[法儀]가 많이 있사오니, 응당 보배 사자좌[寶師子座]와 비단으로 된 일산[繒蓋]과 보배 관[寶冠]을 시설하여야 하옵니다.
이와 같이 필요한 것들을 여기에서 어떻게 예법(禮法)을 갖출 수 있겠습니까?
또한 왕성에서 관정의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태자께서는 궁중으로 가시어 왕의 관정을 받아야 마땅하옵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내가 만일 응당 바른 법으로 왕의 자리를 잇는다면 일체 필요한 것들이 이제 응하여 스스로 이를 것이다.’
이때 정생 태자를 인도하고 도와주는 야차[導翼夜叉] 신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녜무가(禰無迦)였다.
녜무가는 곧바로 신통력을 움직여 사자좌(師子座)와 비단으로 된 일산과 보배 관의 일체 필요한 것들과 나아가 성읍(城邑)과 취락(聚落)까지 밀어다 모두 다 태자의 앞에 놓았다.
이를 살펴보는 이들이 모두 일찍이 없었던 일을 괴상히 여겼다.
그런 뒤에 신하와 보필하는 이들ㆍ백성ㆍ승력병(勝力兵)의 대중들이 묘한 비단을 지니고 관정 법에 의거하여 태자를 위하여 그 관정을 주기 원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태자께서는 응당 관정을 받으셔야 하옵니다.’
그때에 태자가 말하였다.
‘내가 이제 어찌 관정의 법을 위해 인간의 비단을 내 이마에 매겠소.
만일 내가 바른 법으로 왕의 자리를 잇는다면, 틀림없이 하늘의 묘한 비단이 있어서 이마에 매어질 것이다.’
그러자 그 뒤 저절로 하늘에서 아주 묘한 비단을 내려 관정의 일을 하여 전륜왕[輪王]의 지위를 잇게 하였다.
곧바로 7보가 있어서 수시로 출현 하였으니, 이른바 윤보(輪寶)ㆍ상보(象寶)ㆍ마보(馬寶)ㆍ마니주보(摩尼珠寶)ㆍ옥녀보(玉女寶)ㆍ주장신보(主藏神寶)와 주병신보(主兵神寶)였다.
이와 같이 7보가 모두 다 갖추어지고 수많은 아들[千子]이 빛과 모양새가 최상이며 용맹하고 두려움이 없어서 다른 군사를 굴복시킬 수 있었다.
[광엄성의 5백 선인]
그때 광엄(廣嚴)이라는 성(城)이 있었는데, 성 중을 두루 돌아가며 모두 빽빽한 나무숲이 있어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곳이었다.
그 숲 가운데 5백 선인(仙人)이 있었는데, 그곳에 살면서 5신통(神通)의 선정을 닦고 있었다.
이때 숲 사이에 많이 있던 여러 나는 새인 해오라기[鷺斯鳥] 등의 무리가 울면서 소란스럽게 해 선정 닦는 것을 번거롭게 하고 방해하였다.
그들 가운데 추면(醜面)이라는 한 선인이 성내는 마음을 내어 곧 주문[呪句]을 외우자 해오라기 떼가 모두 그 날개가 부러졌다.
이때 날개가 부러진 해오라기는 땅으로 서서히 날아가 모두 정생왕의 문에 이르렀다.
왕이 막 출행 하려다가 마침 문의 왼쪽을 보고 이에 가까이 모시는 신하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이 해오라기 떼가 모두 문가에 모였는가?’
가까이 모시는 신하가 대답하였다.
‘천자시여, 새떼가 숲에 살면서 시끄럽게 해 선정(禪定)에 든 선인을 놀라게 하자
선인이 성을 내어 주문으로 그 날개를 부러뜨렸기에 땅을 의지하여 와서 왕의 문에 모였나이다.’
왕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이 선인들은 중생에 대한 슬픔과 연민이 없는가?
이제 영을 내려 사신을 보내어 저런 선인의 무리는 속히 우리 경계를 떠나라고 해야 마땅하리다.’
신하와 보필하는 이들이 명령을 받들어, 선인의 처소에서 왕의 명령을 모두 고해 말하였다.
그때에 여러 선인의 무리가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제 이 대왕은 4대주를 거느리며, 가장 자재하신 분이니 내가 명령을 좇아 수미산가로 가서 숲 사이에 사는 것이 마땅하다.’
[인간의 갖가지 사업을 일으키다]
이때 정생왕은 점차로 생각하고 관찰하여 인간이 하기에 마땅한 갖가지 사업을 헤아려 보았다.
생각하고 관찰한 바를 따라 헤아리고 나서, 각각 인간들이 갖고 있는 여러 종류(種類)의 사업(事業)을 일으켰다.
그 왕이 출행하다가 처음으로 인간들이 농토와 마을[田里]에서 갈고 심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이에 모시고 있던 여러 신하[侍臣]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이 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신하가 왕에게 말하였다.
‘천자시여, 이 사람은 그 농토를 갈고 김을 매며 여러 종자를 심어, 자라나는 바에 따라 목숨을 사는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성왕이 되었는데 어찌 인간이 갈고 심은 것으로 영양을 채우겠는가?
스스로 천중의 종자가 있어서 생성(生成)하리라.’
저 정생왕이 잠깐 말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27가지 종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왕이 곧바로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복력(福力)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사람들이 함께 대답하였다.
‘이것은 천자의 복력과 또한 더불어 저희들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또 다시 저 왕이 점차 나아가다가 농사꾼이 고운 옷을 만드는 종자를 심는 것을 보게 되었다.
보고 나서 이에 가까이 모시던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하는 것은 무엇을 한다고 이르느냐?’
신하가 왕께 말하였다.
‘천자시여, 저 꽃나무의 종자를 심어서 열매가 맺거든 솜을 취하여 고운 옷[氈衣]을 이룰 수 있사옵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성왕이 되었는데 어찌 인간이 고운 옷 종자를 심는 것을 빌리겠는가.
스스로 천중의 묘한 고운 옷 종자가 있을 것이다.’
잠깐 말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묘한 고운 옷 종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왕이 곧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복력으로 말미암아 이른 것인가?’
사람들이 함께 대답하였다.
‘이것은 천자의 복력과 또한 더불어 저희들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또 다시 저 왕은 점차 나아가다가 또 농사꾼이 고운 옷을 만들 실을 짜는 것을 보았고,
보고 나서 이에 가까이 모시던 여러 신하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이 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신하가 왕께 말하였다.
‘천자시여, 이 사람은 솜을 취하여 실을 짜서 장차 고운 옷을 만들려고 하나이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성왕이 되었는데 어찌 인간들이 이와 같이 만드는 것을 빌리겠는가?
천중의 묘한 고운 옷감이 저절로 쓰이게 될 것이다.’
잠깐 말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묘한 옷감과 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왕이 곧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복력으로 말미암아 이른 것인가?’
사람들이 함께 대답하였다.
‘이것은 천자의 복력과 또한 더불어 저희들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또 다시 저 왕이 점차 나아가다가 또 농사꾼이 차례로 고운 옷감의 실을 짜는 것을 보았고.
보고 나서 이에 가까이 모시던 신하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이 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신하가 왕께 말하였다.
‘천자시여, 이 사람은 베틀과 북을 펼쳐놓고 고운 옷의 단을 짜고 있나이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성왕이 되었는데 어찌 인간이 만든 고운 옷을 빌려 몸에 입겠는가.
천중의 묘한 고운 옷의 꾸밈이 저절로 있을 것이다.’
잠깐 말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묘하기가 으뜸가는 고운 옷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왕이 곧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복력으로 말미암아 이른 것인가?’
사람들이 함께 말하였다.
‘이것은 천자의 복력과 또한 더불어 저희들로 말미암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