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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유범천소문경 제1권
[삿된 물음과 바른 물음]
이때 망명동자보살이 승사유대범천에게 말했다.
“범천이여,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일체를 바르게 묻는 것에 있어서 모든 보살 가운데 가장 으뜸이다’라고 하셨는데,
보살이 어떻게 묻는 것이 바르게 묻는 것입니까?”
범천이 말했다.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나[我]를 보기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하며 바른 물음이 아닙니다.
남을 보기 때문에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하며 바른 물음이 아닙니다.
분별법(分別法)으로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하고 바른 물음이 아닙니다.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나를 봄이 없이 묻고, 남을 봄이 없이 묻고, 법을 봄이 없이 묻는다면 바른 물음이라 하며 삿된 물음이 아닙니다.
다시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태어나는 연고로써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하며, 소멸하는 연고로써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하며,
이것은 처소(處所)이다, 처소가 아니다 하는 연고로써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합니다.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태어나는 것이 아닌 연고로써 묻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닌 연고로써 묻거나 이곳이다, 이곳이 아니다 하는 것이 아닌 연고로써 묻는다면 바른 물음이라 합니다.
다시 망명이여, 보살의 더러움의 연고가 되는 물음은 삿된 물음이라 하며,
깨끗함의 연고가 되는 물음은 삿된 물음이라 하며,
생사의 연고가 되는 물음은 삿된 물음이라 하며,
생사를 벗어나는 연고가 되는 물음은 삿된 물음이라 하며,
열반의 연고가 되는 물음은 삿된 물음이라 합니다.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더럽거나 깨끗함의 연고가 되지 않는 물음이거나, 생사나 생사를 벗어나는 연고가 아닌 물음이거나, 열반의 연고가 되지 않는 물음을 바른 물음이라 합니다.
왜냐하면 법위(法位) 안에서는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고 생사도 없고 열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얻는 연고가 되는 물음은 바른 물음이 아니며,
취하는 연고가 되는 물음은 바른 물음이 아니며,
증득(證得)의 연고가 되는 물음은 바른 물음이 아니며,
분별의 연고가 되는 물음은 바른 물음이 아니며,
앎의 연고가 되는 물음은 바른 물음이 아니며,
의지(依止)의 연고가 되는 물음은 바른 물음이 아니며,
닦음[修]의 연고가 되는 물음은 바른 물음이 아니며,
닦음을 보는 연고가 되는 물음은 바른 물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망명이여, 어느 곳에서든 얻음도 없고, 취하는 것도 없고, 증득함도 없고, 분별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의지함도 없고, 닦음도 없고, 닦음을 보는 연고가 없이 묻는다면 이것이 바른 물음이 됩니다.
다시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이것은 선법(善法)이고 이것은 선하지 않은 법이며,
이것은 유루법(有漏法)이고 이것은 무루법(無漏法)이며,
이것은 죄가 있는 법이고 이것은 죄가 없는 법이며,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고 이것은 무위법(無爲法)이며,
이것은 세간법(世間法)이고 이것은 출세간법(出世間法)이라고 한다면
망명이여, 이와 같은 등의 두 가지 법에 의지하여서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합니다.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두 가지를 보지 않고, 두 가지가 아닌 것도 보지 않으며, 상(相)도 무상(無相)도 없이 평등한 행으로 묻는다면 이것을 바르게 묻는 것이라 합니다.
다시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부처님을 분별하여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하며,
법을 분별하여 묻는다면 삿된 법이라 하며,
승(僧)을 분별하여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하며,
불국토(佛國土)를 분별하여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하며,
중생을 분별하여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하며,
승(乘)을 분별하여 묻는다면 삿된 물음이라 합니다.
망명이여, 만약 보살이 법에서 동일하다든가 다르다는 생각을 짓지 않고 묻는다면 바른 물음이라 합니다.
다시 망명이여, 일체의 법은 바르기도 하고 일체의 법은 삿되기도 합니다.”
망명보살이 말했다.
“범천이여, 어찌하여 일체의 법은 바르기도 하고, 어찌하여 일체의 법은 삿되기도 합니까?”
범천이 말했다.
“망명이여, 모든 법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일체의 법을 바르다고 합니다.
만약 불가사의한데도 생각하여 헤아린다면 일체의 법은 삿된 것이 됩니다.
일체의 법은 적정(寂靜)하므로 정사유(正思惟)라 합니다.
만약 이 적정을 믿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모든 법을 분별하게 되며,
만약 모든 법을 분별하게 된다면 증상만(增上慢)에 들어가게 됩니다.
만약 증상만에 들어가 분별에 따른다면 이것을 모두 삿된 물음이라 합니다.”
[모든 법을 바른 성품이라 하는 까닭]
망명보살이 말했다.
“범천이여, 어찌하여 모든 법을 바른 성품[正法]이라고 합니까?”
범천이 말했다.
“망명이여, 모든 법은 자성(自性)을 여의고, 욕심을 여의었기에 이를 바른 성품이라 합니다.”
망명보살이 말했다.
“범천이여, 중생으로서 이와 같은 법의 바른 성품을 능히 아는 이의 수가 적습니다.”
범천이 말했다.
“이 법의 바른 성품은 하나도 아니고 많지도 않습니다.
망명이여,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능히 이와 같은 모든 법의 성품을 알되, 만약 이미 알았거나, 만약 지금 알거나, 만약 미래에 알게 된다면 이 사람은 법을 과거에도 얻은 것이 없고, 현재에도 얻는 것도 없고, 미래에도 얻을 것이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말씀에 얻음도 없고 분별도 없음을 이름하여 지은 것[所作]을 이미 판상(辦相)했다고 합니다.
망명이여,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이와 같은 모든 법의 바른 성품을 듣고 부지런히 정진(精進)을 행하면 이것을 여실(如實)하게 수행한다고 하며, 그 사람은 모든 법을 희롱하지 않습니다.
만약 모든 법을 희롱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법을 얻음이 없습니다.
만약 법을 얻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세간에도 머물지 않고, 열반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생사도 얻지 않았고 열반도 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망명보살이 말했다.
“범천이여, 여래께서는 생사를 제도하시려는 까닭에 설법하신 것이 아닙니까?”
범천이 말했다.
“부처님께서 보이신 법에 생사를 제도한 것이 있습니까?”
대답했다.
“없습니다. 여래께서는 중생으로 하여금 세간(世間)을 여의지 않게 하셨으며,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도 얻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범천이 말했다.
“선남자여, 그러한 인연으로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여래께서는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를 벗어나 열반에 들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망상과 분별에서 나온 생사와 열반이라는 두 가지 상(相)을 교화하고 제도했을 뿐입니다.
이 가운데는 진실로 생사를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평등하여 진실로 사람이 생사를 왕래함이 없고, 또한 사람이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세존께서는 승사유대범천을 찬양하며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도다, 범천이여. 착하도다,
범천이여. 만약 모든 법의 바른 성품을 말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네가 말한 것처럼 해야 한다.”
이 법을 말했을 때 2천의 비구가 모든 법을 받음이 없어서 번뇌가 다하여 마음에 해탈을 얻었다.
[세간도 없고 열반도 없다]
여래께서 다시 대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범천아, 나는 생사를 얻음도 없고, 열반을 얻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여래가 비록 생사에 대해 말하지만 진실로 사람은 생사에 왕래함이 없고, 비록 열반에 대해 말하지만 진실로 사람은 열반을 얻음이 없다.
만약 이와 같은 법문(法門)에 들어감이 있다면 마땅히 알라. 이런 사람은 생사상(生死相)도 없고, 열반상도 없다.”
이때 대중 가운데 5백의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뢰었다.
“만약 세간도 없고 열반도 없다면 저희들은 공연히 범행(梵行)을 닦은 것이 됩니다.
어떤 뜻을 위해서 정도(正道)와 모든 선삼매(禪三昧)와 삼마발제(三摩跋提)를 수행하는 것입니까?”
이때 망명보살 법왕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태어난다는 견해를 일으키거나 소멸한다는 견해를 일으킨다면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생사를 지나갈 수 없으며,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결정하여 열반이라는 견해가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생사를 건널 수 없고 또한 열반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열반이라는 것은 일체의 상(相)을 소멸하고 흔들리는 생각과 일체의 아상(我想)과 일체의 발원(發願)과 일체의 희론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비구는 이미 여래의 정법(正法)에 출가하였으나 지금은 외도(外道)의 삿된 견해에 빠져서 열반의 즐거움 가운데서 결정상(決定相)을 구하는 것이, 비유하자면 참깨[麻]에서 기름이 나오고 낙(酪)에서 소(酥)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사람이 모든 법의 적멸상(寂滅相) 가운데서 열반을 구한다면 저는 이런 무리들을 증상만(增上慢)이 있는 삿된 견해의 외도라고 말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바르게 도를 행하는 자는 적멸법(寂滅法)에서 일어난다는 상[生相]도 내지 않고, 멸한다는 상[滅相]도 내지 않아 얻음도 없고 과보도 없습니다.”
이때 망명보살 법왕자가 승사유대범천에게 물었다.
“이 5백의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간다면
어떻게 모든 방편으로 그 마음을 인도하고 이 법의 문에 들어오게 하여 믿음과 이해를 얻게 함으로써 악한 사견(邪見)을 여의게 하겠습니까?”
범천이 말했다.
“선남자여, 설령 가게 하여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이 많은 모든 불국토(佛國土)에 이른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법의 문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리석은 사람이 허공을 두려워하여 허공을 버리고 달아난다 해도 이르는 곳마다 허공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 모든 비구도 역시 그러합니다.
비록 멀리 간다 해도 공상(空相)을 벗어나지 못하며, 무상(無相)의 상(相)을 벗어날 수 없고, 무원(無願)의 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허공을 찾고자 하여 동서로 달리면서
‘나는 허공을 얻고자 한다. 나는 허공을 얻고자 한다.’ 하면서
허공 가운데를 지나가도 허공을 볼 수 없듯이 이 모든 비구 역시 그와 같습니다.
열반을 구하고자 하여 열반 가운데를 가고 있어도 열반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열반이라는 말은 단지 이름[名字]만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허공이란 단지 이름만 있고 취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열반 역시 그러하여 단지 이름만 있을 뿐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때 5백의 비구가 이 말을 듣고는 모든 법을 받음이 없어서 번뇌가 다하여 마음에 해탈을 얻고 신통을 얻은 다음,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사람이 모든 법은 필경에는 적멸상(寂滅相)인 가운데서 열반을 구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범부도 아니며, 배운 바도 없고 배움이 없는 바도 아니며, 아라한(阿羅漢)도 아니며, 세간에 있지도 않고 열반에 있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흔들리는 생각과 일체의 아상(我相)과 일체의 발원(發願)과 일체의 희론을 여의었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셨다고 이름합니다.”
[번뇌의 더러움을 얻은 가운데서 작위하지 않으면서 작위한다]
장로 사리불(舍利弗)이 모든 비구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지금 진실로 사문(沙門)이라면 지은 자리(自利)를 모두 판명(辦明)했습니까?”
모든 비구들이 말했다.
“장로 사리불이여, 저희들은 지금 번뇌의 더러움을 얻은 가운데서 작위(作爲)하지 않으면서 작위합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당신들 모든 장로는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합니까?”
모든 비구들이 말했다.
“저희들은 모든 번뇌의 상(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얻은 가운데 작위하지 않으면서 작위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리불이여, 저희들의 뜻은 여기에 있으므로 ‘우리들은 이미 번뇌의 더러움을 얻은 가운데서 작위하지 않으면서 작위한다’고 이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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