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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중론의입대반야바라밀경초품법문 하권
[<중론>을 지은 뜻]
[문] 아사리(阿闍梨)1)는 어떤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중론(中論)』을 지었는가?
[답] 도리에 수순하는 것에 의지하여 대반야바라밀의 의미에 들어가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희론과 탐욕에 집착하는 것들을 여의게 하고, 이미 희론과 집착을 여의었으면 도리에 수순하는 것에 의지하여 속히 반야바라밀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이미 도리에 의지하여 속히 반야바라밀에 들어갔으면 모든 희론과 일체의 집착을 여의게 하고, 모든 희론과 집착 등을 여의었다면 속히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스승께서 이 중론을 지은 것이다.
[문] 이것은 인연도 없이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답] 이 인연이 으뜸가는 인연이다. 말하자면 중생으로 하여금 도리에 수순하는 것에 의하여 반야바라밀에 들어가게 하고, 속히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
[문]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인가?
[답] 왜 이와 같이 말하지 않았겠는가.
소멸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으며
단절되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다.
한 가지 의미도 아니고 다른 의미도 아니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게송은 수다라(修多羅)2)의 도리에 따른 것이며, 아함(阿含)에서 차례로 해석한 바와 같다. 이제 게송의 첫 번째 구절을 해석해 보면, 소멸하지도 않고 소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생하지도 않고 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모든 구절이 모두 이와 같이 말하였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문] 어찌하여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이 법은 소멸하지 않기 때문에 멸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이 법은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생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가?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법은 소멸함이 없기 때문에 멸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이 법은 생겨남이 없기 때문에 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등이다.
[답] 그러한 의미는 아함의 도리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문] 어떻게 장애가 되는가?
[답] 어떠한 법이 소멸하지 않고 어떠한 법이 생하지 않는가?
[세제와 제일의제]
[문] 그것은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다.
[답] 만약 그러하다면 두 가지 진리[二諦]3)가 있게 될 것이니, 소위 세제(世諦)와 제일의제이다. 만약 두 가지 진리가 있다면, 그대의 주장은 곧 성립될 것이다.
[문] 만약 세제와 다른 제일의제가 있다면, 나의 주장이 성립하게 될 것이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게송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여래는 설법할 때에
두 가지 진리에 의하여 설하였으니
첫째는 세제이고
둘째는 제일의제이다.
만약 이제의 두 가지가 진실하다는
이러한 도리를 알지 못하면
그는 부처님의 심원한 법에서
참다운 진리를 알지 못하리.
[답] 그대는 명쾌하게 잘 설명했는데, 나의 설명도 또한 그러하다. 이제(二諦)에 의하여 여래는 법을 설하였으며, 이제를 설함에 의하여 진여(眞如)를 설법하시되, 그것이 둘이 아님을 파괴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둘이라면, 제일의법의 진여와 다른 세제법의 진여가 있게 된다. 한 가지 법의 진여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어디에 마땅히 두 가지 법의 진여가 있어 얻을 수 있겠는가. 만약 이제(二諦)를 설한다면, 그것은 “세제와 달리 따로 제일의제가 있지 않으니 한 가지모습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특성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이와 같이 말해야 한다.
이런 의미를 스승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사람이 이 이제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그는 부처님의 심원한 법에서
진실을 알지 못하리.
[문] 이것이 어떻게 진리인가?
[답] 이와 같다면 사물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문] 이러한 이제가 어떻게 사물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답] 한 가지 모습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모습이 없고 자체도 없어 본래의 성품이 공(空)과 같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이 곧 진리이다.
게송 중에서 진리의 모습을 말한 것과 같다.
두 가지 법이 모두 없으니
희론과 희론하지 않는 것이다.
분별하지 않고 다르지 않으니
이러한 의미가 진리의 모습이다.
만약 이 게송과 같다면, 어찌하여 여래는 이제에 의하여 설하였는가? 일체 여래는 모두 의지함이 없어서, 세제에 의하지 않고 또한 다시 제일의제에 의하지 않았다. 여래의 설법은 마음에 의지함이 없으니, 어찌 많은 말을 사용하였겠는가. 다만 논의한 것만을 설하고 예전에 진리[諦]라 한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제일의제에는 소멸하거나 생겨나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없다는 것을 응당 설명할 것이다. 어찌하여 제일의제라고 이름하는가?
[문] 열반(涅槃)은 항상하여, 그 열반처(涅槃處)는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 만약 이와 같다면, 모든 외도의 주장은 다 성립될 것이다. 그러니 저 외도인들이 어찌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말하는 열반은 항상하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며, 법이 있고 물건이 있어서 그 열반 가운데 소멸과 생함이 없다.”
이것들은 모두 외도들이 열반에 대하여 분별하고, 열반에 대하여 집착하는 것이다. 이것은 항상하고 자아가 있고 수승한 것에 상응하지 않는다. 외도가 말하는 항상하고 자아가 있고 수승하다는 것에는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답] 그대가 말하는 열반이란 어떠한 것인가? 어떤 것이 열반이기에, 열반 중에서 생하지 않고 멸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문]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과 음(陰)4) 등이 다하여, 다시는 또 생함이 없는 것을 열반이라 이름한다.
[답] 이것을 다한다고 말하는 것은, 말하자면 자체가 없어 소실되어 소멸하였으므로 다한다고 말하는데, 그 소멸이 어떻게 소멸 속에서 다시 소멸하는 일이 있을 수 있으며, 혹은 자체 중에 자체가 없는 일이 있겠는가?
어찌하여 자아를 부정하는지, 그대가 하는 말은 어떤 사물에 의지하여 그것을 경계로 삼아 이런 말을 하는가?
자체를 경계로 하는가, 자체 아님을 경계로 하는가, 자체와 자체 아닌 두 가지를 경계로 하는가?
일체의 모든 법은 다 그렇지 않으니,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만약 생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생하지 않아 자체가 없는 중에는 생함이 있지 않은데, 그대는 자아를 부정하여 이 생함이 없는 중에 곧 생함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도리다운 아함의 뜻에 의하기 때문에 그대의 비난에 물러나지 못한다. 열반은 공하기 때문이며, 열반과 달리 다시 법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이 있다. ‘무엇을 제일의공(第一義空)5)이라 이름하는가’에 대하여 그 곳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일의제를 열반이라 이름하는데 그 열반이라고 말하는 열반도 또한 공한 것이다’라고. 또 경전에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열반이란 것은 고요하여 일체의 모습이 없고, 일체의 생각이 없음을 말합니다.”
또 하는 말이 있다.
“이 열반이란 것은, 소위 자체와 자체 아님이 공함을 말한다” 등 이러한 설들이 있다.
이와 같이 모든 갖가지 생각으로 추측해 보아도 제일의제(第一義諦) 자체는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생함을 부정하고 멸함을 부정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제일의제에 아주 조금이라도 자체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을 곧 나는 증명하겠다. 그대는 지금 무엇에 근거하여 이런 경우를 생각하는가? 또 경전에서 설한 바와 같이 나도 이제 말하겠다.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말한 것과 같은 법, 그러한 법은 없으며, 이와 같이 설하지 않은 법, 그러한 법도 또한 없으며 또한 얻을 수도 없다.”
[문] 이와 같이 말한 것을 어떻게 회피하겠는가?
[답] 만약 법이 조금도 없다면, 자체가 모인 사물이 없을 것이다. 혹은 말할 수 있든 말할 수 없든 일체는 모두 없다. 이와 같음을 회피라 이름하며, 그렇게 이 이제(二諦)에 포섭되는 논쟁을 버린다.
[문] 말하는 바는 누가 말한 의미로서 어떠한 잘못이 있는가?
[답]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곧 도리인 아함에 장애가 있게 된다.
[문] 어떻게 도리에 있어 아함에 장애가 되는가?
[답] 먼저 성자 수보리가 말한 바와 같다.
“어느 때, 세존께서 본래 보살마하살이었을 때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였으므로 이 법을 바르게 관찰하게 되었다. 그때 색(色)이 생하지 않음을 바르게 관찰하고, 일체지에 이르기까지 생하지 않음을 바르게 관찰하였다. 범부가 생하지 않음을 바르게 관찰하고,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생하지 않음을 바르게 관찰하였다.”
그런데도 그대는 생각하기를, ‘이렇게 누가 말하는 의미라는 것과 따로 법이 있는 듯이 보는 것은 곧 상응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그렇지만 또 사리불(舍利弗)은 혜명 수보리가 말한 의미처럼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와 같이 색이 생하지 않고, 일체지에 이르기까지 생하지 않음을 알며, 범부가 생하지 않고,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생하지 않음을 안다.”
이와 같은 것은 아함에 장애가 있기 때문에, 그 누가 말하는 뜻은 곧 상응하지 않는다.
만약 그대가 다시 말하기를, “그 누가 말하는 의미라는 것이 비록 법을 여의지는 않지만 말을 여읜다”고 한다면, 비유하면 우유방울과 물방울 같고, 형상의 몸체와 물건이나 돌을 갈아 만든 몸체와 같다. 제일의제도 또한 그러하나니, 나는 이제 누가 말하는 의미라고 하는 것을 해석하겠다. 이것은 상응하지 않는다. 이 우유 등의 자체에는 곧 자체가 있는데, 그대는 자체를 취하고 나서 우유방울 등의 법 밖에 다시 다른 법이 있음을 부정한다.
그대는 지금 어찌하여 제일의제(第一義諦)에 자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가? 만약 자체가 있다면, 이 소멸하고 생하는 것 등을 부정하여 법을 여의지 않고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대의 의미는 곧 상응하지 않는다. 어떠한 법이 있어 소멸하지 않고 생하지 않겠는가?
[문] 제일의제가 그러하다.
[답] 그것은 어떠한 법인가?
[문] 열반이다.
[답] 그것은 또 어떠한 사물인가?
[문] 번뇌와 오음(五陰)6)의 소멸을 곧 소멸이라 말하며, 또한 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상태를 나는 열반이라 말한다. 이것은 내 뜻대로 해석한 것이다.
[답] 만약 그와 같다면, 단멸하는 법도 또한 열반일 것이다.
만약 먼저 생겨난 번뇌업과 오음이 나중에 다하여 소멸하면, 다하여 소멸한 까닭에 자체가 없어서 또한 열반일 것이다. 미래의 생겨나지 않은 것도 또한 열반일 것이다. 이와 같다면 열반은 바로 단멸이다.
만약 그와 같다면, 단멸하는 법이 곧 열반이라는 뜻이 성립된다. 미래는 아직 없는 것으로서 이것은 아직 이르지 않았으니 어떻게 상응하겠는가. 이러한 의미 때문에 그대는 응당 부끄러운 줄 알고, 이렇게 취한 열반을 놓아 버려야 할 것이다.
[문] 그대가 열반이라고 하는데 열반은 어떠한 부류인가?
[답] 경전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일체의 모든 법은 애초부터 소멸이 없으니, 본래의 성품이 생하지 않아 자체가 없다.”
또 경전에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약 사문(沙門)7)이 있어 모든 법의 본래 성품이 적멸한 모습 속에서 열반의 자체를 구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외도라고 이름합니다.”
이와 같이 말하였다.
또 다시 경전 중에 게송이 있어 말하였다.
애초부터 적멸하여 생하지 않으니
본래 자성이 소멸하였음이라.
그런데도 법륜(法輪)을 굴릴 때에
세존께서 법을 열어 보인 것이다.
또 아사리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적정(寂靜)하지도 않고 얻지도 못하며
단절되지도 않고 또한 항상하지도 않으며
멸하지도 않고 또한 생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것을 열반이라 이름한다.
이와 같이 도리(道理)와 아함(阿含)을 생각해 보면, 제일의제에 어떤 사물이 있다는 것은 성립하지 못한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먼저 도리를 설하여 멸하지도 않고 멸하지 않음도 아니며, 생하지도 않고 생하지 않음도 아니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일체가 이러한 까닭에 둘이 아니라는 의미가 성립하며,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생하지 않는 것이 색으로서, 생하지 않는 것과 다르게 따로 다시 색이 없다.
색은 생하지 않는 것으로서, 색과 다르게 따로 생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하여 일체지에 이르기까지, 또한 부처님이 그렇게 다하여 소멸할 때까지 곧 색과 다르지 않다. 일체지에 이르고 또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이렇게 설한다.
만약 멸하여 다하거나 또는 색이거나 또는 다시 둘이 아니라도, 이 일체의 법은 합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일체지에 이르고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의미가 성립된다. 그런데 이러한 말은 아주 번거로워 필요없으므로 가히 버릴 것이다. 제일의제에 관한 언설은 매우 않은데, 이렇게 알고 나서는 가히 이런 말을 버리어 다시 논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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