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5월 9일? 경주 일원에 사는 입영자원들이 황성 공원에 집결해서 신원 확인후 열차를 타고 논산으로 갔다.
수용연대란 곳으로 들어가서 빡빡이가 된다음 보통 1주일 정도 대기를 하면 훈련소의 각 연대별 퇴소자가 떠난 순서대로 수용연대에서 대기 하던 사람들이 훈련소 각 연대로 들아가게 되어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군번을 받고 나서 훈련을 받을 연대로 가기를 원하였지만
마침 훈련소 26연대 중대장으로 있던 한 마을선배였던 ㅂ 중위가 며칠 더 수용연대에 대기 하고 있으면 자기 연대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수용연대에서 며칠 더 대기하는 동안 연탄공장에 가서 사역도 하고 쥐잡기 사역도 했다.
다행이 며칠 후에 건천에서 갔던 대부분의 우리들이 같은 날 26연대로 들어갔다. 같은 줄에 서 있던 우리는 몽땅 5중대 2 소대로 들어가서 함께 훈련을 받았다. 나는 5중대 2 소대였는데 구대장이 나를 부를 때마다 "당신" 이라고 했다.
이유인 즉슨
<해필이면 왜 당신 이었나?>
하고 웃으며 나를 그렇게 불렀다.
훈련소마다 고향 떠나 온 초짜 훈병들에겐 무시무시한 공포의 괴담이 난무했다.
어떤 연대는 교육장이 멀어서 식사 후에 바로 뛰어 가기에 교육장에 가면 벌써 배가 다 꺼져서 ㅇㅇ연대 밥은 먹으나 마나 이고, 어떤 연대는 훈련장이 가까워서 훈련을 쉽게 받는다고해서 ㅇㅇ 연대 훈련은 받으나 마나이고. 어떤 연대에서는 훈련병이 화장실에 빠졌다는등..
많은 인원이 훈련장에서 함께 밥을 수십 명분의 식사를 타다가 먹기에 식관과 물통등을 날라다가 배식을 받아 먹기도 하니 식기를 세척하는 것도 복잡했다. 영점 사격이 끝나고 성적이 나쁠때마다 총구를 거꾸로 들고 오리 걸음하며 부르던 망향가 소리, 고향 생각 엄마생각이 나게 하는데 눈물을 안 흘리면 비정상이지. 여름철 모내기 지원, 대민봉사팀에 뽑히면 사역도 면하고 바깥 바람을 쏘이는 행운이었다.
훈련소 기본 훈련후에 다들 전방으로 팔려 가는데 나는 또 박격포 훈련을 받게되어 논산 훈련소를 마치고 금마로 가서 후반기 교육으로 박격포 훈련을 받았다.
60미리, 81미리 박격포 포신과 포판을 메고 훈련장을 오가는 그 일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비가 오는 날 사격 훈련시에 포탄 발사시 반탄력으로 포판이 땅속으로 빠져들면서 튕겨 낸 흙탕물을 얼굴에 덮어 쓰면
눈물인지 빗물인지 흙탕물인지 모른다. 그렇게 훈련을 마치고 나는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안동에 있던 36 사단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