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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의 기술자 혹은 예술가들 「납의 예술」이라는게 있다. 아니 있었다. 한판을 10분내에 완성하는 정판자들-기억컨대 김기수, 김정남, 엄진구, 박수종, 이성학, 이학기, 이원근, 박정강, 박종구, 제규방, 유병희, 조규홍, 이진국, 김의웅, 조장준, 김선환, 양희대, 유원호, 이선우, 이출용, 원동식, 정명수, 강정구, 김윤권, 장기목, 김창규, 정진일등 27명의 선배들과 온갖 굳은일과 먹방망이를 들고 이리뛰고 저리뛰던 막내 정석모, 이종필, 서인택같은 사람들. 어려운 한자일수록 신바람을 내고 어떤 난필이라도 정확하게 뽑아내던 문선부원들.이들을 차가운 납에 체온과 향기를 불어 넣었다. 우리보다 한참위의 선배들은 편집자와 정판자가 짝이 되어 회사를 옮겨다녔다고 한다. 가장 융통성이 없는 쇠붙이들을 모아 피가 흐르게 만들었던 기술자들-그들은 확실히 귀한 사람들이었다. 우리신문이 月刊으로 발행될때 경향은 거의 날마다 1등으로 쇄출됐다. 1등은 아무나 하는 가. 모든 사람의 열정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오전 11시 20분부터 11시 50분까지의 시간. 우리모드 이 30분의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혼신을 다했던 지난날은 진정 아름다웠다. 마치 어머니가 김장을 하듯, 욕쟁이 할머니가 순대를 썰 듯, 미장이가 석회를 바르듯 그 많은 기사를 척척 갈라서 힘있게 예쁘게 자상하게 꾸며놓을때 의 쾌감 또는 행복감. 핀셋을 쥔 정판부원들은 늠름했다. 칼보다 펜이 강하고, 펜보다 핀셋이 강했다. 핀셋 아래서 숨을 죽이고 있던 記事들. 그 기사들은 정판부원의 손과 핀셋에 뽑혀야만 살아 꿈틀거렸다.
사건을 녹여 역사를 세웠다 납. 원소기호 Pb. 원자번호 82. 한국 근ㆍ현대사의 숱한 사건들이 이 납속에 녹아들어 역사로 세워졌다. 3ㆍ15, 6ㆍ25, 4ㆍ19, 10ㆍ26, 12ㆍ12, 5ㆍ17, 6ㆍ29등 격동의 세월이 이 납속에 용해되었다. 신문이 이 납속에 용해되었다. 신문이 정의를 외치면 정의가 되었다가,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이 되었다가, 사랑을 노래하면 사랑이 되었다가, 눈물을 흘리면 눈물이 되었다가, 헛소문을 퍼뜨리면 헛소문이 되었다. 쇠붙이 중에서 가장 무거운 납을 사람들은 가장 가볍게 너무 함부로 다뤘다. 납으로 역사를 만들어 갔기에 지난날은 납빛이고 납처럼 짓눌렀는가. 문민정부의 ꡐ實名制 94년까지 실시ꡑ란 경제 청사진이 1면 톱을 장식한 1992년12월30일자에 우리는 납을 묻어주었다. 훗날 컴퓨터는 또렷한 사람목소리로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납이 무엇입니까? 」 「신문이 원시적으로 제작 됐을때 활자로 쓰였던 재료 」 또 지금 기자들은 아무렇게나 이렇게 말하리라. 「납으로 신문 만들때 말이야, 그땐 몸고생보다 맘고생이 많았어, 너희들은 지금 천국에 산다 」 편집기자들은 말할 것 없고 다른 부서 모든 사람들 체내에도 납이 스며들어 있을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소량이건 다량이건, 그러나 납은 그냥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고 한다. 그걸 빼내려고 애쓰지 말자. 체내의 납을 생각하며 언론의 과거를 떠올리고 그속의 아픔을 가끔씩은 곱씹어야 할 것이다. 현재가 있기에 과거가 있지만 과거는 생각하는 사람의 것이다. 이제 몸속의 납을 만지머 버릴 것을 찿아야 한다.
슬슬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야지 걱정이 하나 있다. 컴퓨터 시대는 어떻게 살아야 촌스럽지 않은지. 어떻게 하면 컴퓨터마인드를 지니게 되는지. 컴퓨터 사고방식이란 어떤 것인지. 컴퓨터같이 살아야 하나, 컴퓨터가 돼야하나, 그무거운 납을 단시일에 물리치고 내 책상위에 무심히 놓여있는 컴퓨터, 어떤 때는 날 빤히 쳐다보고, 어떤 때는 아예 외면하면서 날 바보 취급하는 알라딘386SX(저걸 아예 사랑해 버려, 내가 먼저 외면해 버려, 관둬라 부리기 쉬운 컴퓨터가 나온 대더라) 또 컴퓨터신문마인드도 있을땐 왜 그건 도대체 어떤 것일까 좌우지간 컴퓨터속으로 들어가보자, 우선 게임부터 골프를 칠까 아니면 카 레이스를 할까, 그래 오늘은(1992년12월29일) 납을 묻은날, 초상 났으면 당연 고돌이지. 92년 납을 묻고 추억의 알라딘386SX컴퓨터로 컴퓨터신문의 시작이 되었다.
추억으로만 남겨진 92년 12월30일 납활자로 제작되는 신문의 마지막 판의 제작과정. 이제 다시 볼수 없게된 문선과 정판의 제작과정을 되새겨 본다.
92년12월29일 경향신문의 마지막 납활자 제작판을 짜고 있다. 격동의 세월이 납활자속에 녹아들었던 시절 한판을 10분내에 완성시키던 달인들도 님과 함께 떠났다.
기사를 왼손에 들고 물흐르듯 채자해내는 문선부원들.
판짜기. 한판을 10분내에 완성시키던 달인들이 있었다.
교열용 대장을 뜨기 위해 다 짜여진 판에 잉크를 묻힌다. 기사를 최종 점검하는 마지막 여유의 잉크와 종이향기가 풍겼었다.
전사를 뜨기 직전 판을 다듬는 과정. 흠을 골라내고 글자가 고르게 앉도록 두드리고 말렸다.
마지막판을 만들기위한 원색제판 부원들의 정성을 쏟는 진지한모습.
92년 납을 묻고 추억의 알라딘386SX컴퓨터로 컴퓨터신문의 서막이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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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난날의 경향을 회상케하는 좋은 글과 자료를 소개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글 올려주세요. 정우회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