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하나 둘 씩 얻어 온 토종종자들...
하나 같이 참 신기하고 그 자태가 대단하다.
토종 작목들 중 유독 조선파는 애정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다.
이유는 2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남한에서 가장 추운 철원의 겨울을 났다는 점이다.
정식하고 물을 안 주니 한 달 쯤 후 80% 만이 살아 남았다. 참고로 나는 물을 안 주지만 정식할 때 딱 한 번만 물을 준다. 물 기르는 것도 이골이 나서 정식 또는 파종을 비 오는 날 비 맞으며 하게 되더군요. 그것도 매우 기쁜 마음으로... 60m 산자락 아래 냇가에서 양쪽 손에 조리 들고 하루에 수십 번 들락날락 해 보시면 내 마음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위 사진 : 3년째 나무 베는 중... 2017년에 벤 나무들... 참고로 여기 지목은 '전'이다. 임야가 아니다. 그러니 불법이네 뭐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 여기는 민통선 내에서도 최북단이며 남방한계선이 걸쳐 지나 가는 곳. 한국전쟁 이후로 그 누구에게도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곳. 그나마 2012년에 6사단에서 철책을 걷어 내어 이 땅을 소유하고 농사 짓는 것이 증명되면 영농패스를 발급해주고 통제 시간 내에서만 들어 갈 수 있는 곳. 그러다 보니 한국전쟁 이후로 지난 70년간 방치되어 그냥 원시림이 되어 버렸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화학비료로나 농약을 치며 농사를 지었다는 얘기는 못들어 봤으니 진정으로 오염되지 않은 땅으로 추측해 본다. 거기에다 이 '전' 주위는 다 임야이고 북쪽은 아예 비무장지대이니 자연농을 하기엔 정말 하늘이 내려준 땅임에 틀림없다!)
조선파와 무관한 사진 한 장 올려본다. 물 기르는 말이 나와 상상이 아닌 실제를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사진 우측으로 20m 더 내려가면 냇가가 흐른다. 그리고 좌측 산속으로 (산처럼 보이나 실제는 산을 개간을 하여 개단식 밭이다. 내가 만든게 아니라 전쟁 이전에 삶을 영위하였던 분들께서 그리 하신 것이다) 올라가면 하수오, 산더덕, 산도라지 씨앗을 직파로 파종하였다. 그 날 물 길러 나르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으니 그 이후론 물 기르는 걸 안! 한! 다! 절대! (참, 기회가 된다면 아무도 없는 북쪽 산에서 내려오는 이 냇가의 물을 맛 보시길 권한다. 지하 150m 암반수는 명함도 못 내민다. 청정? 오대산도, 지리산도 여기에 견주게 되면 꼬랑지 내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물도 안 주는 나를 만나게 된 이 비운의 조선파들은 살겠다고 발버둥을 친다. 한 곳당 3~4주를 정식했는데 이 사진들을 보니 예쁜 꽃 한 다발씩 밭에 세운 것처럼 느껴진다. 참, 조선파, 토종외줄큰키해바라기, 아욱, 두류는 민통선 안에 밭에서 키우진 않고 장흥리에 소재한 유기농 논 바로 옆 유기농 밭을 조금 얻어 키웠다. 그래서 완전 자연농법이라 볼 수 없다. 70cm 이랑 5개 만들 폭에 길이는 70m 되는 밭의 한 쪽 끝자락 조금 얻었고 이 밭 주인께서는 지난 20년 넘게 유기농법을 하셨다. 내가 사용할 곳엔 아무것도 투입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여 무투입이지만 의미 없다. 지난 세월 계속 투입해 왔으니 말이다. 밭 주인께서 이미 트렉터로 이랑 다 만들고 비닐 멀칭 다 하신 후 내가 얻어 사용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시라... 토종종자 채종용으로 밭 3평 정도 얻는다고 수소문하여 흔쾌히 허락해 주신 분이다. 그러니 내가 무슨 낮짝으로 자연농법을 고수한답시고 비닐 멀칭 하지 마세요 등의 요구를 할 수 있으랴. 관행이 아닌 유기농법을 해온 밭인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이길리 민통선 밭에서는 들깨와 몇 가지 작물 외엔 야생동물에게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어서 애초에 그 곳에선 나머지 토종종자를 키울 생각은 아예 배제하였다.
위 사진은 환삼덩쿨을 조심스레 제거하는 모습. 처음엔 멋 모르고 덩굴의 줄기를 확 잡아 댕겼다가 파들이 칼에 베어나가듯 잘라나갔다..ㅜㅜ 환삼덩굴이 얼마나 얽히고 섥혀 있던지 아무리 조심하고 정성스레 제거 작업을 했지만 도저히 맨 손으로는 파에 상처를 안 주고 제거 할 수가 없어서 후퇴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가위를 챙겨와 덩굴의 줄기를 하나 하나씩 잘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어제 포스팅 작업을 중단하는 바람에 계획에 없던 2부가 되어 다시 같은 사진을 올린다. 위 사진을 보면 씨앗을 맺은 송이만 삐죽 올라와 있다. 멀리서 볼 땐 이 조차 안 보여 피압 당해 죽은 줄 알고 조선파는 포기한 상태. 욜란타라는 이름의 미국 작가가 나를 방문하러 왔었는데 이 때 그냥 내가 뭘 했는지 보여줄려고 들어갔다가 발견한 것이다. 정말 할 말 잃었고 많이 놀랐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작가가 찍어 놓은 사진이 있다. 바로 아래 사진...
누가 이걸 밭이라 생각하나? 99%가 들초들이 빼곡하다. 방치한 땅인줄 알게다... 그 들초들 중에서 혼삼덩쿨이 잡아삼킨 조선파들... 길가를 지나가면 정말 안 보인다. 그래서 포기하였던 것이고 기대를 안했던 것이다. 저를 모르시는 분들 중에는 그동안 뭘 했냐고 의문이 생기겠지... 부연 설명 하자면 난 한 가족의 가장이고 초딩 두 아들의 아빠이다. 어차피 지금의 농사로 전업농을 했다간 굶어 죽기 딱 좋다. 그래서 틈만 나면 일당 벌러 노가다부터 통번역, 벌목과 아보리스트 일을 하다 보니 농사에만 전녑할 수가 없다. 멋 모르고 귀농 첫 2년간 그랬다가 쪽박 차 빚도 장난 아니게 늘고 죽으라 일하는데 빌린 돈 원금과 이자 갚느라 허리 휜다. 이게 내 현실이다. 그래도 바른먹거리를 직접 생산하겠다는 것과 자급자족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못 꺾으며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한 해, 한 해 조금씩 농사량을 늘려 간다. 그러고 보니 천만 다행인 것이 그해 바 주인께서 쌀 농사로 너무 바빠 본인의 밭도 예초하지 못했다. 안 그랬으면 들초들 일부러 자라게 하는 것을 용납 안 했을텐데... ^^
내 글이 뒤죽박죽 하지만 넓은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린다.
사진은 좀 찍지만 글쓰기 능력은 잼뱅이다.
이 조선파에 내가 제일 많은 애정이 가는 이유는 이렇게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고 철베리아의 겨울을 지내고 다음 해엔 조금 살마나다 싶으니깐 이젠 환삼덩쿨에 2달간 잡혀 먹히고... 아닌가? ^^ㅋ
하여튼 내 관점에선 그리 보인다. 이 생명력이 얼마나 강인한지, 그리고 얼마나 고귀한지 다시 한번 일깨우준 녀석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자라 맺은 이 씨앗은 더 강인한 유전 인자들이 심어져 있다고 본다. 그 부모들이 견뎌온 고난의 2년동안 버티며 그 자식들에게 '야~ 너 임마 여기서 살려면 이 정도는 되야 돼~!'라며...
이 울트라 슈퍼 (?) 조선파 종자는 곧 여러분께 선 보일 예정입니다. ^^
첫댓글 수십년간 방치된 토양의 상태와 작물재배 일기가 궁금합니다.
애들에게도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길 바랍니다.
나도 28사 철책근무햄는데 지뢰 조심하이소~^^
토양의 상태를 설명 드리자면 향이 납니다. 오랜 세월 부엽토가 축적되어 그렇습니다. 농업기술센터에는 시비 검사 안 받았습니다. 저는 어차피 그런 '과학'이라는 오류 투성이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으니깐요. 민통선 안의 밭은 이랑조차 안 만들었으나 장마철 수해 걱정 안합니다. 16년, 17년 봄은 유독 가뭄이 심했었죠. 그때 철원도 노지 농사 하신 분들 다 갈아 엎고 뒤 늦게 파종하여 다시 하였을 정도니깐요. 그 때 울 작물들은 아무렇지 않게 푸릇푸릇 잘 자랐답니다. 지난 영농기 다 올릴기엔 좀 무리가 있어 제가 중요히 여기는 몇 가지만 올리도록 하고요 18년 부턴 토농회 식구들과 좀 더 활발하게 소통하고자 올해 하는 영농기는
부지런히 공유토록 노력 하겠습니다~^^ㅎ
아 28사단에서 근무하셨군요~ 여기 철원은 3,5,6 사단이 작전지역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8사단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영농일기 잘 보았습니다. ^^*
이 허접한 영농기를... 고맙습니다~^^★
대파는 쪽파가 없을 때, 양파 수확후에 자급자족에 꼭 필요한 작물입니다.
코끼리마늘(잎마늘)은 대파와 같이 백합과 식물로 대파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