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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Victoria Nam 님의 페이스북
우리가 어렵지만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을 먼저 하신 자폐스펙트럼 장애 자녀를 키운 짧은 기록을 출처를 밝히면 퍼가도 된다 하시게에 올려봅니다.
6월에 있을 국제 세미나에 토론자로 나가게 되어 원고를 준비했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사뭇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어 우선 그에게 설명을 하고 공개해도 좋겠냐고 물었다. 아마도 그 의미를 전부 이해하지 못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의 동의를 구하고 원고를 올리니, 혹시 공유를 하시거나 인용하기 원하시면 꼭 밝혀주시도록 부탁드린다. 매우 긴 글임을 미리 밝힌다.
(((((숨은 그림 찾기(아들은 문제행동으로 말한다.))))
1.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 ‘상윤 씨’는 이제 26살의 청년이 되었다.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통합교육을 받은 후 지역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발달장애성인의 전환교육 프로그램에서 4 년간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쳐 국내 최대 발달장애인 고용기업인 ‘베어 베터’에 1일 4 시간 배송을 담당하는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2. 아들과 함께 보낸 26년은 ‘문제 행동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어려움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아들이 7살 될 무렵까지의 기간은 우리 가족에게 ‘지옥에서 보낸 한철’로 기억될 만큼 고통스러웠다. 우선, 자폐성장애에 대한 인식과 정보가 거의 없어 장애가 가진 ‘감각적 다름’이나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변화를 두려워 함’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서 환경을 조성해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장애 인식이나 이해가 높아지고, 일상생활에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지금까지도 ‘문제행동’은 그 정도와 종류를 바꾸어 계속 일어나고 있어, ‘문제행동’의 개념부터 뒤집어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3.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두 가지 정도의 질문에 답하는 일이 겨우 가능해졌을 정도로 상윤 씨의 의사소통은 자신의 일방적 의사 전달 중심이었다. 아들이 언어와 몸짓으로 표현하지 못 한 일들을 자폐성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문제행동으로 여겨지는 ’행위‘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차차 그의 문제행동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목적이 ’의사전달‘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들의 ’문제행동 파악‘을 위해 집요한 관찰과 분석이 추가되었고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데, 새로운 ’습관‘이나 ’행위‘가 추가될 때마다 오감을 곤두세워 ’집중 관찰‘을 가동한다. 우리 가정의 경우, 아들의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가족이 맞춰 살 수 있게 되기까지 사건->> 당황함->> “관찰”과 연구 ->> 인식과 이해->> 조율과 적응의 수순이 반복되었다. 만약 당시에 PECS나 AAC를 이용한 보완대체의사소통을 알았다면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동료부모들 중에서 보완대체의사소통수단에 대해 잘 모르시거나 소통은 발화를 통한 언어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이 계셔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의사소통‘을 위해 다양한 수단 사용을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전문가들 역시 보완대체의사소통수단에 대해 널리 알리고 적극적으로 보급하시기를 바란다.
4. 26살, 당당한 성인이 된 아들의 모습과 천리쯤 멀리 있는 듯 여겨져 몹시 낯선 어린 아이 하나. 그와의 소통의 접점을 찾아내는 일은 26 년에 걸친 수수께끼 풀기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 ‘작업’을 ‘숨은 그림 찾기’라 부르고 싶다. 얼핏 보아서 평범한 풍경의 한 장면 곳곳에 전혀 관계없는 ‘그림’들이 숨어 있는 것처럼 아이의 행동마다 겉으로 보이는 행위의 결과와 상관관계를 전혀 알 수 없는 의도와 의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당시로는 도무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고 해결책도 찾을 수 없었던 ‘문제행동’들. 그 안에 숨은 그림들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힘들었다.
5. 삼십오 개월에 아이를 데리고 찾아간 ‘소아정신과’에서 아이가 왜 그렇게 ‘이해 못 할 이상한 짓’들을 골라서 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는 지 놀이치료사에게 질의응답 형식의 상담을 받았지만, 교과서에 나와 있는 형식적인 방법은 실제 상황에서는 적응이 거의 불가능했다. 오히려 개인상담소 선생님의 서가에서 찾아낸 ‘템플 그랜딘’ 박사의 ‘어느 자폐인 이야기’는 아들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소아정신과에서 ‘반응성 애착장애’라고 진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자폐성장애’임이 분명한 내 아이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찾기 위해 책을 뒤지고,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들을 끼워서 ‘자폐증’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일은 전체 그림을 짐작할 수 없는 난제였다. 그러나 지난 2009년 여름, ‘자폐인 사랑캠프’에서 만난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스티븐 쇼어’ 박사의 강연을 들었을 때, 상윤 씨의 유아기에 있었던 몇 가지 수수께끼가 풀리고 자폐성장애의 감각적 특성 이해에 큰 도움을 받았다. 요즘에는 자폐성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어려움이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비디오들과 책이 나와 있어, 인식 개선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자신의 의사 표현이 가능한 고기능 자폐성장애인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기회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본다.
6. 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당사자와 가족이 문제행동을 해결하는 방법을 익혀 가정이나 학교에서 적용하기에는 아직도 거쳐야 할 단계들이 많이 남아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부모와 전문가, 학교나 당사자가 속한 공동체가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소통하며 ‘관찰’을 통해 ‘문제 행동’의 의미와 패턴을 파악하고, 일관성 있게 대처하는 공동의 노력이라고 본다. 하지만 대도시의 일부 지역을 벗어나면 문제행동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으로 인도할 전문가를 만나기가 아주 힘들고 비용 또한 지나치게 높아서 부모들이 선뜻 접근하기 힘들다. 학교와 공동체 역시 부모들에게 문제행동의 책임을 떠넘기기 보다는 눈과 귀를 열어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을 해야 한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일관된 원칙으로 행동을 대할 때 해결을 향한 첫 단추를 끼게 된다고 본다. 내 경험뿐 아니라 동료부모님들로부터도 아이가 집에서 하는 행동과 학교에서 하는 행동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담당 선생님께 상담도 해보고 편지도 썼지만 귀담아 들어주시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가정과 학교에서 일관성 있게 노력하는 것이 가능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아이의 행동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7. 가정과 학교에서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행동의 경우에는 성인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들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해결책을 찾는 중이라 예를 들어 말씀드리고자 한다. 상윤 씨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수업시간에 교실을 나가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실을 고등학교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측과 협력이 되지 않아 고치기 힘들었다. 결국 거의 7~8 년 동안 지속된 ‘규칙을 지키지 않고 핑계를 대고 이탈하는 습관’은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회사와의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고 배회하는 본격적인 도전거리로 낯을 바꾸어 대두되었다. 지속되는 지각과 몇 번의 배송 후 지연 도착으로 경고장을 받게 되었을 때, 회사의 대표님과 매니저님과 함께 심도 있게 상담을 했다. 감사하게도 회사 측에서는 그동안 아들의 패턴을 매우 세심하게 관찰을 했고 가정에서 내가 관찰했던 부분과 비교해가며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회사와 가정에서 지속적인 관찰을 하지 않았다면 아들의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이고 결국 직장생활을 이어가기 힘든 국면에 처할 수도 있었으리라 본다. 지금은 아들과 상의를 하고 약속을 정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고 작업치료사 선생님과 함께 작업 프로파일을 거쳐 인지행동치료 전단계의 분석 중에 있으니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결될 것으로 본다.
8. 자폐성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개선되고 장애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있으니 자폐성장애인들을 편안히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식 개선과 장애 이해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아울러 부모나 양육자가 자폐성장애인들의 ‘감각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환경을 바꾸어주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으로도 문제가 되는 행동은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 돌이켜보면 장애의 특성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인해 아이를 더 힘들게 했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무척 크다. 비자폐인과는 다른 청각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동요를 듣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고, 빛의 변화에 유난히 민감한 자폐성장애인의 특성 상 거실보다 조도가 떨어지는 목욕탕에 들어가기가 너무 무서웠을 것이고, 소변이 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싫어서 기저귀 차기를 고집했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6 학년 무렵에 의사소통이 눈에 띄게 좋아지던 아들이 ‘컴컴한 목욕탕에 대한 두려움’과 ‘폭포처럼 커다란 변기 물 내리는 소리의 무서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시각과 청각이 비자폐인과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이가 의사표현을 제법 할 수 있게 되었을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아기 때 왜 동생을 밀었냐?‘라고 묻는 내게 아이는 ’동생이 너무 큰소리로 울어서 무서웠어요.‘라고 대답했다. 비로소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울음소리의 자극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던 상윤 씨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은 ’원인제공자를 무찌르는 것‘이 아니었을까. 만약 내가 그때 이유를 알았다면 상윤 씨의 귀를 막는다든지, 우는 여동생을 분리시킨다든지 하는 다른 방법을 택하고, 아들이 의사를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가르치려 애썼을 것이다. 이처럼 비자폐인과 다른 감각과 언어 이해 방식을 가진 자폐성장애인이다 보니 그동안 쌓였던 억울함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들이 7살 무렵까지 즐기며, 보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성적 자기자극’의 정체가 ‘性적’이 아니라 특정 감각을 즐기는 ‘자기자극행동’이라는 사실도 책과 치료사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행동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처럼 사회적 통념과 차이 나는 자폐성장애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다.
9. 몇몇 ‘자폐증 가이드북’에는 한 번 경험을 하면 그것이 ‘규칙’이 되어 다른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자폐성장애인의 집요함을 ‘유연함의 결핍’으로 해석하고, 비자폐아동들이 굳이 배우지 않고 저절로 깨우치는 수많은 말과 행동을 자폐아동들에게 아무리 가르쳐도 배우기 힘들어 하는 것을 ‘상식의 결여’로 서술해 놓았다. 그 책을 여러 번 읽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이 보이는 ‘고집’과 ‘규칙 지키기’의 의미와 결부시킬 수 있었다. 아이가 어떤 종류의 ‘문제행동’을 보이면, 원인과 결과를 세심하게 관찰해서 메모와 일기의 형태로 기록했다. 모아둔 기록을 토대로 책도 뒤져보고 의사와 치료사 선생님들에게 질문도 해가며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행동에서 보이는 문제점이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문제행동’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겉으로 보이는 ‘문제행동’의 결과만으로 아이를 오해하는 일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아이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꽤 거리가 먼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건드리고, 나를 건드리고, 주변사람들을 자극하는 아이를 참아내며 받아주다 보니 가끔씩 이성을 잃고 ‘포효’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한없는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10. 아들과 보낸 초기의 7년 이후에도 소위 ’문제행동‘은 그 낯을 바꾸어서 하나에서 또 다른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가 유년기를 거쳐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사춘기의 혼란을 거쳐 가면서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순차적으로 닥쳐온다. 항상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여 작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만 새로운 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문제를 맞닥뜨리면 언제나 놀라고 힘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습을 통해서 일단 숨부터 고른다. ’이 또한 지나가기‘를 바라며 천천히 들여다보고 숨은 의미를 찾으려 하다 보니 조금씩 무게가 덜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장애 인식이 늦고 이해가 부족하여 아들과 나를 포함한 가족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11. 자신의 상황과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천천히 들어주고 기다려주다 보니 이제 아들은 조목조목 따지기도 한다. 말로 하다 안 되면 내게 문자를 보내 항의하고, 자신이 보인 ‘문제행동’의 배경과 당위성을 피력하기도 할뿐더러 내가 그에게 가르친 방식대로 서툴지만 타협을 시도한다. 스스로 ’문제행동‘이 어떤 것인지 깨달아 알긴 해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다른 행동으로 완전히 대처하거나 표시나지 않게 조절을 할 수 있는 정도에는 다다르지 못 했고 말로 다 표현하지도 못 한다. 그 간극은 사회와 가족이 메워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상윤 씨가 미약하나마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진 대상의 반열에 오르긴 했지만 억울한 일투성이의 세상을 헤쳐 가는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벌어질 것이다. 당사자들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치고 연습시키는 일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이 보이는 행동의 표면적 충격에 놀라고 바로 반응하기보다 그것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서 기다려 주고 이해하려는 세상 사람들의 노력 또한 만만치 않게 필요하다고 본다. 자폐인의 모든 ‘문제행동’에서 ‘문제’를 떼고 ‘행동’을 보려고 들면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기 훨씬 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