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불사 세 성인을 영원히 사모하며 (내불삼성영사집 來佛三聖永思集) 2
정공법사님 서문
2. 육화경六和敬
견화동해見和同解 계화동수戒和同修 신화동주身和同住 구화무쟁口和無諍 의화동열意和同悅 이화동균利和同均
첫째, 견해로서 화합하여 똑같이 이해하시다(見和同解)
현공은 불법의 바른 앎(正知)과 바른 견해(正見)를 원만하게 갖추셨으므로, 해묵海墨법사를 비롯한 세 분의 스님들과 동백산 탑원사에서 초막집을 짓고서 함께 수행하실 때 서로 뜻이 계합하여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현공은 정종淨宗의 바른 견해(正見)를 받드셨으며, 일찍이 말씀하시길, "우리 이곳은 오로지 염불만을 닦는 곳이며,경참불사經懺佛事는 행하지 않는다. 차라리 사원이 없을지언정 도가 없어서는 안 되며, 차라리 사람이 없을지언정 법이 없어서는 안 된다.”(咱這裏是專修念佛, 不搞經懺佛事. 寧可沒有廟, 不能沒有道; 寧可沒有人, 不能沒有法.)고 하셨습니다. 현공께서는 어느 도량에 머무시거나 그때마다 늘 대중과 견화동해見和同解로서 화합하여 사이가 벌어지게 하시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주) 불사 佛事 : 불사佛事는 중생을 깨닫도록 하는 일이며, 불佛은 覺悟(깨달음)의 뜻이며, 각오覺悟(깨달음)의 대상은 일체 중생입니다. 그러므로 불사의 진정한 의미는 중생을 깨닫도록 하는 일입니다. 죽은 이를 위해 경전을 독송하며 참회하고 예배하여 복을 빌어주거나 천도해주는 경참 經懺 또한 당연히 불사입니다. 그러나 이는 불사 중의 부대附帶적인 의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간세상인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49년 동안 일체 사람을 가르치셨는데, 이것이 正法정법이며, 경참불사를 하여 귀신을 제도해주는 것은 부대적인 의식이며, 정법은 아닙니다. (정공법사의 《대방광불화엄경》제1060권 중에서 발췌)
(주) 경참불사經懺佛事 :죽은 이를 위해 경전을 독송하며 참회하고 예배하여 복을 빌어주거나 천도해주는 일.승려를 청해 경전을 독송하며 참회하여 복을 빌고 천도하도록 행하는 의식을 가리킨다.
둘째, 계로서 화합하여 함께 닦으시다(戒和同修)
현공은 계로서 대중을 독려하는 데에 뛰어나신 분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선행을 칭송하셨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잘못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揚善於公庭,規過於私室) 현공은 일찍이 선교방편으로 거사들에게 잘 알아듣도록 타이르시길, “나의 이곳은 작은 절입니다. 그래서 먹는 음식은 맛없는 쓴 것들이고, 입는 옷은 다 떨어져 기운 것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온 이상 힘든 고통을 잘 참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을 잘 참아낼 수 있어야 고통을 끝마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난 꾸짖지 않겠지만, 이곳에 온 이상 이곳의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의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俺這是小廟, 吃的是苦的, 穿的是補的. 你們來這兒要能受苦, 能受苦才能了苦. 你不來, 我不怪; 來了就要守我戒. 走到哪裏要守哪裏規矩.)고 하셨습니다.
셋째. 몸으로 화합하여 함께 머무시다(身和同住)
현공은 인품이 진실하고 온후하며 선량하시어 한평생 남과 다투는 일이 없으셨으며(與人無爭), 세상에 대해 구하는 것이 없으셨습니다(於世無求). 사람을 대하실 때의 태도는 언제나 자상하고 친절하셨기 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대중들은 현공과 가까이 지내기를 좋아하였습니다. 해묵법사를 비롯한 당대當代의 세 분 대덕들께서 초막집을 지으실 때, 비록 닦으신 법문들은 각자가 다르셨지만, 오히려 서로 화합하여 함께 지내면서 정진하고 서로 독려할 수 있으셨습니다. 이는 말법시대에 보여준 가장 중요한 본보기이며, 지금 이 시대에는 이러한 화합한 승단을 찾아보면 실제로 많지 않습니다.
넷째. 입으로 화합하여 다툼이 없으시다(口和無諍)
현공은 구업口業이 청정하신 분으로, 현공께서 일찍이 남과 다투었다거나, 혹은 어떤 사람을 비방하고 업신여기셨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남과 우열을 다투지 말아야 번뇌가 없으며, 참으면 마음이 자연히 편안하다!”(跟人不要爭高論低, 就沒煩惱, 忍者自安啊!)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다섯째. 뜻으로 화합하여 함께 기뻐하시다(意和同悅)
현공은 천성적으로 성품이 온화하므로,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또한 대중으로 하여금 조금의 번뇌도 일어나게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어느 곳을 가시든 노화상께서 그곳에 가시기만 하면 사람들에게 언제나 늘 환영을 받으셨습니다. 노화상은 항상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내 눈에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좋으며, 좋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네. 어느 것을 보아도 모두 좋다고 말하고, 어느 것을 보아도 늘 기분이 좋아야 마음이 언제나 늘 법의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으며, 마음이 청정할 수 있고, 번뇌가 없고, 화를 내며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좋지 않다는 구분이 없고, 또 이것은 맛있고 저것은 맛이 없다는 분별이 없이 일체를 모두 인연에 따르면, 마음이 안정되어 편안하다!”(在我眼裏, 一切都好, 沒有啥不好的. 見啥都說好, 見啥都高興, 心裏才能經常充滿法喜, 心裏才能清淨, 才無煩惱, 才不生氣恨人. 沒有這好那壞之分, 也沒有這好吃、那不好吃的啦, 一切都隨緣, 心裏就安心踏實啦!)고 하셨습니다.
여섯째. 이익으로 화합하여 똑같이 균등하게 하시다(利和同均)
현공은 일생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남김없이 전부 다 대중에게 공양하셨습니다. 혹 누군가 절에 와서 머물면, 절에 있는 물자를 그 사람에게 베풀어 주셨으며, 힘이 닿는 한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족시켜 주셨습니다.
3. 三學: 계학戒學 정학定學 혜학慧學
첫째, 계학戒學
현공은 평생 정계淨戒를 엄격하게 지키셨습니다. 자신을 단속할 때에는 가을의 차가운 기운처럼 냉정하셨지만, 남을 대할 때에는 오히려 봄바람처럼 부드러우셨습니다. 90 여 년의 출가생활 동안 계율을 지키시길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늘 똑같이 엄격하셨습니다.
둘째, 정학定學
현공은 평생 정과定課가 중간에 끊어지지 않도록 견지하셨습니다. 매일 새벽 3시가 되면 즉시 몸을 일으켜 부처님께 예배하고(拜佛), 요불繞佛, “아미타불”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셨습니다(念佛). 항상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전일하면 어려운 일은 아무 것도 없다.”(心專無難事)고 하셨습니다. 이는 경전에서 “마음을 한곳에 묶어두면 세간의 일이나 출세간의 일이나 성취하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制心一處,無事不辦)고 강설한 말과 마치 하나의 수레바퀴에서 나온 것처럼 완전히 일치합니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지만 부른 것이 없으며(念而無念), 부처님 명호를 부른 것이 없으나 부르는(無念而念) 이러한 경지에 염불공부가 도달하셨기 때문에, 일이 염불에 방해가 되지 않았고 또한 염불이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 수 있으셨습니다.
(주)요불繞佛 : 일반적으로 천천히 시계방향인 오른쪽으로 돌면서 염불하는 것을 말하며, 혼침昏沈(졸림. 흐리멍덩한 상태)하지 않고 도거掉擧(들뜬 마음)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셋째, 혜학慧學
현공의 불도수행(道行)의 공부는 높고 깊으셨고, 지혜는 마치 바다와 같아 “나는 무엇이든지 전부 다 안다.”(我啥都知道)고 하신 말씀에 부합되셨지만, 그러나 엄숙하고 중후하여 자신의 경계를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건으로 미루어 보면, 노화상은 분명히 미래의 일을 점치지 않아도 미리 아시는 선견지명의 능력과 무엇이든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신 지혜를 구족하셨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4. 육바라밀: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 반야바라밀
첫째, 보시바라밀을 행하시다
현공은 일생 동안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일하셨으며, 왕생하시던 그 날까지도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 종일 채소밭에서 일을 하셨으며, 이것이 바로 “내재보시內財布施”입니다. 또한 자신이 손수 직접 경작하여 수확한 농산물을 포함한 일체를 전부 다 기쁜 마음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셨으며, 이것이 바로 “외재보시外財布施”입니다. 그리고 친히 몸으로 행하시고(身行) 말씀으로 가르쳐(言敎) 사람들에게 간파看破하고 내려놓고서(放下) 성실하게 염불할 것을 독려하셨으며, 이것이 바로 “법보시法布施”입니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지극한 자비하신 마음으로 아픈 사람들을 돌보시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구제하셨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물건을 훔친 도둑에 대해서조차도 마음을 놓도록 안심시켜 그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며, 이것이 바로 “무외보시無外布施”입니다.
둘째, 지계바라밀을 행하시다
현공은 일생 동안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고 위의威儀가 구족하셨으니, 이는 바로 “섭율의계攝律儀戒”를 실천하신 것이고, 일생 동안 선을 즐기고 보시를 좋아하여 부지런히 선행을 닦으셨으니, 이는 바로 “섭선법계攝善法戒”를 실천하신 것이고, 일생 동안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중생에게 이익이 있게 하고 일체를 중생을 위해 생각하셨으니, 이는 바로 “요익중생계饒益眾生戒”를 실천하신 것입니다.
(주) 삼취정계三聚淨戒 : 대승보살의 일체 계법에 대한 총칭으로, 섭율의계, 섭선법계, 요익중생계로 나눔) 중의 하나로, 불가에서 제정한 각종 계율을
준수하는 것을 가리키며, 이러한 계율은 우리가 선을 쌓고 악을 방지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악을 끊을 수 있으며, 법신法身의 인因이 된다.
(주)섭선법계攝善法戒 : 삼취정계의 하나로, 부지런히 선법을 닦는 것을 가리키며, 보신報身의 인因이 된다.
(주)요익중생계饒益眾生戒 : 삼취정계의 하나로, 중생에게 이익이 되게 하는 계를 가리킨다.
셋째, 인욕바라밀을 행하시다
현공께서 행하신 인욕공부는 대단히 훌륭하시며, 일생 동안 한 번도 화를 내신 모습을 뵌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함정을 빠트리는 상황을 만났을 때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인내하면서 그들과 시비를 가리지 않으셨으며, 이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함이 완전히 해명된 후에는 거짓으로 헛소문을 퍼트린 사람에 대해 질책하거나 조금도 원망을 품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때리거나 욕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에도 묵묵히 그대로 받고서 편안하게 인내하면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진실로 노화상께서 “남이 나를 때리면 그가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이라 여기고,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가 내 얼굴을 닦아준 것이라 생각한다. 남과 우열을 다투지 않으면 번뇌가 없으며, 참으면 마음이 자연히 편안하다!”(他打了, 算是給我抓癢哩; 唾沫吐到臉上, 當是洗臉啦. 跟人不爭高論低, 就沒煩惱, 忍者自安啊!)고 하신 말씀과 부합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원해인耐怨害忍”입니다.
(주) 내원해인耐怨害忍 : 3인忍 중의 하나이며, 남이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해칠지라도 능히 편안한 마음으로 인내하여 상대방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또한 노화상께서는 평생 동안 고달프고 힘든 생활과 일을 참고 견디면서 고난 속에서 청정하게 수행하셨습니다. “먹는 것은 보잘 것 없는 맛없는 쓴 음식들이고, 입는 것은 다 떨어져 기운 옷들”(吃的是苦的,穿的是補的)이었으며, 낮에는 노동을 하여 머리가 빙빙 돌고 눈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몸이 몹시 지치고 피곤했지만, 밤에는 여전히 밤새토록 염불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수고인安受苦忍”입니다.
제법諸法은 마치 허깨비와 같음을 분명하게 알아, 불성의 진실을 믿고(信) 이해하여(解), 마음에 망령된 움직임이 없고 편안하게 인가忍可하셨습니다. 이는 노화상께서 진실로 “성실하게 염불하라. 부처가 되는 것은 큰일이며, 다른 것들은 어느 것이나 모두 다 거짓인 것이다.”(老實念佛, 成佛是大事, 其他啥都是假的.)고 하신 말씀과 부합됩니다. 이것이 바로 “체찰법인諦察法忍”입니다.
(주) 안수고인安受苦忍 : 3인忍 중의 하나이며, 질병, 화재, 수재,전쟁 등 자연적으로 발생한 고통을 참고 받아들이고 태연자약하게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주) 諦察法忍 : 3인忍 중의 하나이며, 제법의 생멸하지 않는 참된 이치를 자세히 관찰하여 마음에 망령된 움직임이 없으며, 무생無生의 이치에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말한다.
넷째. 정진바라밀을 행하시다
현공은 보리심을 내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진을 쉬지 않으셨습니다. “염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때에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셨고, 부처님께 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때에는 밤중에 남들 모르게 조용히 절하셨습니다.”(不許念佛時, 即於內心默默念; 不許拜佛時, 即於夜間悄悄拜.) 한가할 때나 바쁠 때나 “아미타불” 부처님의 명호가 끊어지지 않으셨으며, 이것이 바로 “피갑정진披甲精進”입니다. 일생 동안 부지런히 선법善法을 닦아 불도佛道에 계합하셨고, 한 번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하여 잠시도 떠나지 않으셨으며, 이것이 바로 “섭선정진攝善精進”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중생에게 두루 이익이 있게 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으며, 이것이 바로 “이락정진利樂精進”입니다.
(주) 피갑정진披甲精進 : 보살이 발심하여 곤고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비유하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이 갑옷을 걸치면 자연히 믿는 것이 있어 두려움이 없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주) 섭선정진攝善精進 : 선법을 부지런히 행하여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주)이락정진 利樂精進 : 일체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선정바라밀을 행하시다
현공의 염불공부는 깊으며, 일찌감치 오래 전에 이미 삼매의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현공께서 말씀하시길, “부처님 명호를 한 번 두 번 부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지 말라. 일심불란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염불하지 않았으면 염불했다고 할 수 없다.”(不要以爲念一句兩句就行了, 不念到一心不亂不算念佛.)고 하셨습니다. 현공은 마음속으로 항상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 중간에 끊어짐이 없으셨으며, 지혜와 신통이 개현開顯한 경지에 이르셨지만 역시 침묵하고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염불삼매는 “위없는 가장 높은 경지의 깊고 미묘한 선”(無上深妙禪)이며, 또는 “보왕삼매寶王三昧”라 칭하기도 합니다.
(주)보왕삼매 寶王三昧 : 불삼매를 보왕이라 말한 것은 마치 마니보주와 같이 일체 모든 삼매의 보배를 두루 내리고, 마치 전륜왕과 같이 일체 모든 삼매의 왕을 두루 통솔하기 때문이다.
(주) 일심불란 一心不亂 : 생각 생각이 부처님의 명호를 꽉 붙잡아 흩어지지 않으며, 다른 마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 반야바라밀을 행하시다
현공께서는 한 마디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로 명심견성明心見性의 경지에 이르러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이체理體인 “실상반야實相般若”를 깊이 깨달으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절을 할 때에는 자성이 나오도록 절해야 하고, 청정한 마음이 나오도록 절해야 한다.”(拜佛要拜出自性, 拜出清淨心啊!)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공은 언제나 늘 염불하셨는데, 이것은 바로 언제나 늘 실상實相을 관조觀照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가 되는 것이 큰일이며, 그 밖의 것은 어느 것도 모두 다 거짓인 것이다.”(成佛是大事, 其他啥都是假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관조반야觀照般若”입니다. 현공은 선교방편으로 세간의 모든 법(현상)을 분별하셨고, “무엇이든지 모두 다 아셨지만”(什麼都知道), 그러나 또한 침묵하고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자신이 아는 것을 조금 드러내 보이시어 중생을 이롭게 하고 구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방편반야方便般若”입니다.
2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