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겨울철이면 우리 집 안방 아랫목에는 늘 이불이 깔려 있었다. 어머니는 그 이불 밑에 발을 묻고 바느질을 하거나 성경책을 읽고 계셨다. 밖에서 놀다가 얼어서 동태처럼 뻣뻣한 몸으로 방안에 들어서면 어머니는 얼른 내 손과 발을 이불 속으로 끌어당겼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시퍼렇던 볼때기가 발그레해진다.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부엌에서 불을 지펴 밥을 지으신다. 이때 아궁이 속의 불꽃이 방고래 구들돌을 데워 안방 아랫목은 따끈했으나 윗목은 냉기가 돌아서 앉으면 궁둥이가 시렸다. 집안에 큰 행사가 있어서 아궁이에 나무를 많이 넣고 오랜 시간 불을 때면 아랫목은 절절 끓었지만, 윗목은 미지근한 게 앉아있는 사람의 덕을 보려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서 아궁이가 보일러로 바뀌었다. 연탄보일러 속의 온수는 파이프를 타고 방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방바닥을 골고루 덥혔다. 자연스럽게 아랫목과 윗목의 구분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랫목엔 이불을 깔아 두어 방 안에 들어서면 따뜻한 이불 밑으로 파고들어가게 만들었다. 세월이 바뀌어 등유나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보일러가 자리를 잡았어도 마찬가지이다.
정년퇴직을 하면서 봉사활동에 참여해 문해(文解) 교육시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수강생들은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한 비문해자(非文解者)들로 나와 비슷한 60대이거나 다소 위인 70대의 노인들이었다. 6·25 전쟁을 전후하여 태어나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분들은 나와 동년배들이기에 더욱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다. 그 때만해도 넉넉지 못한 집에서는 딸들은 가르치질 않았고, 공장에 취직시키거나 농사일을 거들다가 성장하면 이내 출가시키곤 했다. 그래서 교육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생활하다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글자를 배울 틈이 없이 노년을 맞게 되었단다. 모두들 자기 자녀들은 남들처럼 학교에 보낼 수 있었으나 정작 자신이 글자를 깨우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놓치고 만 사람들이다.
문해교실 찾아오는 어른들은 평생 한글을 해독하지 못한 채 남모르게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던 분들이다. 그래서인지 향학열이 여느 교실과는 달랐다. 무더운 여름철과 한겨울 추운 때에 두 주간씩 주어지는 방학도 길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고는 무척 놀랐다. 이분들은 글자를 깨달아 가면서 손주들에게 더듬더듬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단다. 자신의 이름으로 처음 개설한 저금통장을 받아들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자기 이름 석 자를 확인한 뒤에 받은 벅찬 감동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고도 말했다. 시내버스를 탈 때면 예전과 달리 승강장에서 눈으로 노선을 확인하고 스스로 버스에 오르면서 매사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단다. 또 길을 가면서 건물에 매달린 간판을 소리 내어 읽을 때에 청맹과니를 벗어난 것을 깨닫고는 커다란 희열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엔 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낮 시간에 봉사하기가 어려워 장애인 야간학교로 옮겨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야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려운 가정형편과 장애로 인해서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고 성장하는 동안에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한 채 장성한 젊은이들이다. 그들도 가슴 한 쪽에 납덩어리 같은 무거운 고통을 안고 살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다.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고 밤늦은 시간에 교실에 앉아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생각과 달리 눈빛이 별처럼 빛났다. 지친 몸을 이끌고 힘들게 공부하지만 항상 밝은 모습과 진지한 태도에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장애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거동이 불편한 짝에게 책을 가져다주고, 휠체어에 탄 학생이 이동할 때에는 앞장서서 밀어주는 모습이 친형제나 자매처럼 훈훈해 보였다. 쉬는 시간이면 서로 장난도 치며 끌어안고 다독이는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함께 공부하는 학우의 손발이 되어주기도 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교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는 이들의 우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세기 전에 우리나라는 최빈국 가운데 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소득이 삼만 달러에 가까워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나라로 성장했다. 국제무대에서도 발언권을 인정받으며,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로2018년에는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다. 보일러를 돌려서 윗목의 냉기가 사라지듯이 이제는 사각지대에 놓인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골고루 따뜻한 소식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그린에세이 제18호 2016년 11,12월호 수록)
첫댓글 감동적입니다. 사각지대의 이웃들에게도 골고루 따뜻한 소식이 이어지길 함께 기대합니다.^^
어느 자리에서 '수필 세 편을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영진 선생님께서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십니다.
영진 선생님과 대화 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만나뵙게 되면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실수를 해도 허허실실 웃어줄 분으로 생각됩니다. 깊은 내공으로 무장하시어 세상에 빛과 소금과 같은 분이십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아랫목 같은 분이시군요. 수필예술에도 온기가 철철 넘치게 해주시네요. 사랑을 실천하시는, 박영진 선생님과 같은 분이 계셔서 이 사회가 건강함을 유지하는가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