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살롱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터전을 닦은 천재적인 음악가 홍난파(본명 홍영후)는 1898년 경기도 화성군에서 4월10일에 태어나서 1941년 8월30일 서울에서 마흔네 살의 짧은 삶을 마감하였다. 「고향의 봄」이라는 동요는 제2의 애국가가 될 만큼 널리 사랑받는 노래이고, 「울밑에 선 봉선화야」로 시작되는 가곡은 항일과 민족의 꿈을 그리는 노래로써 오랫동안 우리 가슴을 울려주는 노래이다. 작곡가, 음악평론가, 문필가이자 음악운동가인 홍난파는 43년의 짧은 생애에도 그가 남긴 자취는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어왔다. 특히 만년에는 음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시대에 부응한 그의 행적은 가히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서양음악의 형식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그의 작품세계는 가히 근대음악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부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심지어 북한에서 조차 그의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던 것이 우리나라에 진보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그의 살기 위한 방안으로 일제하 두 곡의 노래를 작곡했다는 것으로 친일음악가 1호로서 그에게 딱지를 붙이었다. 그의 죽음도 결국은 항일운동가로 감옥살이하던 뒤끝으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건만, 정권의 통치수단의 하나로써 홍난파를 두 번 죽인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은 많은 연구결과로 그 혐의가 벗겨졌지만 아직도 처절한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있다. 그런 가운데 그가 젊은 시절 세 차례에 걸쳐 일본에서 공부했던 사실을 알고 그의 노래 「봉선화」에 매료되어 한 일본의 여류 지성이 「울 밑에서 선 봉선화야」라는 홍난파 평전을 펴냈다. 그의 이름은 엔도 키미코(喜美子). 성악가이며 음악교육학자, 대학교수를 역임하고, 유치원 원장, 고령자 복지를 생각하는 모임을 주도하는 사회봉사자이기도 하다. 1988년 한국과 일본의 음악교과서 편찬과정을 연구하면서부터 한국음악문화 발전과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일본 NHK 방송에서 흘러나온 ‘봉선화’를 듣고 감동받아 홍난파 평전을 집필하기를 결심해 13년에 걸쳐 연구 끝에 2001년 일본어로 출간하였다. 홍난파 평전이 외국어로 출판된 제1호이다. 그 당시 엔도 키미코 여사는 이 사실을 한국 언론에 알리고 홍난파에게 붙여진 낡은 딱지를 떼 보려고 했지만 그 당시 한국 언론은 입을 닫았다. 엔도 여사는 그동안 한국을 40여 차례나 다녀갔다. 이 책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는 많은 지료들, 특히 세 번째 일본을 유학했던 구니다치 음악학교가 열린 국제주의적 교육을 시켜 난판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되었다. 그 저서를 통해 난파가 항일 애국음악가였던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지난 4월 10일 단국대학교 난파음악관에서 단국대학교 70주년과 난파탄신 120년을 기해서 이 저서의 한국어 번역판이 송귀연 교수의 매끄러운 번역으로 이루어졌다. 단국대학교 장충식 이사장은 기념음악회에 특별출연 난파의 노래도 불렀고, 이 저서는 단국대학교에서 출간했다. 저자인 엔도 여사도 아흔의 노구에도 감동어린 노래를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