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세계는 북경올림픽에 눈과 귀가 쏠려있다. 우리나라도 선전하는 선수들의 메달소식에 모처럼 기쁨과 환희 속에 한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고있다. 새 대통령 취임 이래 미국쇠고기 수입 반대로 촛불 시위는 계속되고 국회의원 뽑은지 넉달이 되도록 이견 때문에 원내구성도 하지 못하다가 어제 겨우 합의를 본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원유가 상승으로 끝이 보이지 않게 오르는 각종물가 오름세와 졸업 후 취직이 되지 않아 취업 준비로 도서관이 생활권으로 되어버린 자녀, 결혼이 늦어지는 자녀를 보며 한숨만 쌓여가는 부모들의 어두운 마음에 희망의 촛불은 언제쯤 밝혀질 것인가!
멀리 전남 담양에서 전화가 왔다. 친구 영애가 페암이라는 병을 진단 받고 마음이 늘 편치 않아 매일 기도를 잊지않고 있던내게 영애의 전화는 반갑고 고마웠다. 담양의 맑은 공기 속에서 적당한 등산으로 폐활량을 강화시키고 마음 편안히 남편과 휴식하며 지내는 영애 전화 목소리는 아프기전과 다름없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통원하면서 항암치료 할때 마음 같아서는 자주 들여다 보고 싶었지만 본인이 오지말라고 하니 막무가네로 갈수도 없고 하여 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직접 전화해서 놀러오라고 하니 고맙고 반가워서 가까이 있는 정화친구와 시간을 내어 팔월 십오일 황용숙 친구가 있는 전남 나주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우리는 일찍부터 서둘러 목포행 기차에 올랐다. 일상의 바쁜 속에서 이렇게 기차를 타고 한적하게 친구와 여행을 꿈꿔보기도 했지만 그것을 실행하기는 쉽지가 않았었다. 힘들게 투병하며 지내는 친구에게 밝은 미소 하나만 날려주고 와도 힘이 될까 싶어 서둘렀지만 정작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동행하는 친구와 이야기 하며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즐기는 나를 보며 목적이 바뀐 것 같아 괜스레 영애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전남 나주 시에서 삼십년 전에 교회를 개척해서 지금도 하나님의 종으로 열심히 쓰임 받고 있을 용숙친구 부부와 영애를 만날 생각에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나주 역에 내렸다. 기차 시간에 맞춰 용숙 부부와 영애식구가 나주 역에 나와 우리를 맞아주었다. 영애의 얼굴이 먼저 들어왔다. 그간 힘들게 병과 싸운 흔적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얼굴색은 맑고 예전보다 힘이 있어 보이고 목소리도 건강하게 느껴져서 안심이 되고 감사했다. 착한 인상을 갖은 남편과 예쁜 딸이 함께 했다. 뒤로 해맑게 웃고 있는 낮 설지 않은 얼굴 용숙과 진만 목사님이 눈에 들어왔다. 용숙과 진만목사님은 부부의 연을 하나님이 맺어 주신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외모가 닮아 있었다. 아들들을 보면 더욱 확연 했다. 엄마를 보면 엄아만 닮은 것 같고 목사님을 보면 아빠를 꼭 빼닮은 것 같은 잘 생긴 아들 쌍둥이를 낳고 큰 아들을 후배 목회자로 키우며 지역목회 성공을 이루고 있었다. 낮선 지역에서 오늘에 있기까지 고난과 연단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인내했을 30년이 참으로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부부의 의연한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점심으로 지역 향토 음식인 나주 곰탕을 먹었는데 담백하고 구수한 국물에 밥을넣고 위에 고기를 올리고 파송송 넣은 뚝배기 곰탕은 국물이 기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담백함이 어릴 적 읍내 장날 엄마가 사주어서 먹었던 국말이 밥이 생각나게 했다. 용숙의 집으로 옮겨 아담한 교회 와 잇대어 있는 사택에서 과일을 먹으며 좀 쉬었다가 전남지역 구경에 나섰다. 첫 번째 영암 월출산을 만났는데 탄성이 절로 나왔다. 칼처럼 솟은 바위 봉우리와 기암괴석, 깍아지른듯한 절벽, 히끗히끗 하게 드러나는 바위산 허리를 휘감고 도는 구름은 마치 작은 금강산 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달리는 차속에서 하춘화의 영암 아리랑 노래가 생각이 나서 우리는 몇 소절 흥얼거렸다. 소금강 월출산을 잠시 보기에는 아쉬웠지만 시선을 놓아주었다. 보성녹차 밭으로 들어서니 주차장은 삼일연휴를 즐기는 인파로 주차할 곳이 여의치 않다. 차를 입구 한적한 곳에 세우고 가파른 산비탈에 굽이굽이 펼쳐지는 녹색 비단처럼 카펫을 깔아놓은 듯 녹차 밭이 아름답다. 녹차 밭을 배경으로 진만 목사님이 풍경과 어우러지게 오십대가 되었어도 어린 소녀처럼 들뜬 우리의 모습을 예쁘게 담아 주었다. 보성이 차를 경작하는데 천혜의 기후 조건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난 차 맛을 잘 모르지만 차로 마시는 것 뿐 아니라 차를 이용한 식품도 많이 개발되어 우리의 식생활에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차를 돌려 나오는 길에 율포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얼마전 칠십대 노인이 놀러온 여학생 두 명을 성폭행한 후에 바다에 빠뜨려 죽게한 사건이 그곳이라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또 한번 놀랐다. 부질없는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머리 속에 놀랐던 그때의 뉴스 영상이 떠오른다. 강진을 지나면서 다산 정약용이 천주교에 물들었다는 이유만으로 18년 유배 생활 중 강진에서 10여년을 보내면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등 다량의 실학서적을 저술하면서 유배 중에도 백성의 민생을 걱정하며 살았던 선비의 애국심이 느껴지는 남도 강진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장흥에 들어서자 진만 목사님이 청매원에 들러 건강 차를 먹여 주신다며 매실농원으로 데려갔다. 병풍처럼 둘러친 산 전체가 매실 수로 가득했다. 비온 뒤여서 나무와 풀에서 나는 허브향이 한층 강렬했다. 비온 뒤 음이온이 많이 방출 된다고 해서 우리는 가슴을 펴고 크게 호흡했다. 다원으로 들어서니 인테리어가 잘 된 실내가 고급스럽다. 원장님의 미모에 같은 여자임에도 시선이 자꾸 그녀의 얼굴에서 맴돈다. 매실 칵테일을 마시고 영애 남편이 매실 액기스 한 병씩 안긴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농원을 뒤로 하고 이른 저녁을 장흥에서 한정식으로 맛있게 먹고 나주 용숙 집으로 돌아오니 어둑한 7시가 되었다. 영애가 아쉬웠던지 담양에 숙소로 가서 못 다한 이야기도 하며 머물다 가기를 권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용숙이 금산 친정에 볼일이 있어 함께 대전으로 건너와 대전에서 헤어졌다. 늦은 시간 이었지만 그리고 하루를 바쁘게 다녔지만 기분 좋은 사람들과 맑은 공기 마시며 소리 내어 많이 웃어서인지 피로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영애가 많이 회복되어서 고맙고 남편이 그림자처럼 곁에서 기도와 사랑으로 손과 발이 되어 주는 모습을 보고 그래도 영애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숙 친구, 진만 목사님 전라도 반을 돌며 명소를 구경시켜주시고 후한 대접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40년을 광야에서 동행하시고 여호수아에게 그 대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심 같이 에벤에셀 하나님이 목회 30년을 함께하신 축복이 아들에게도 이어지시길 기원합니다.
첫댓글 보람된 여행이 되었겠네요.. 나주 곰탕이 그리도 맛나든가요?... 맛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