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투쟁의 암굴왕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한 시간이 1년 같았습니다.” 만델라 씨가 독방에서 보낸 생활을 회고한 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저항 시인 무차리 씨도 내게 6개월의 암흑 같은 체험을 말해 준 적이 있다.
“이 세상에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면, 남아프리카의 감옥이 바로 지옥이겠지요.”
만델라 씨는 복역기간이 1만일로 무려 27년 반이라는 불굴의 옥중 투쟁을 벌였다.
그것은 굳이 말하자면 우리를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모든 ‘인간’의 존엄을 건 투쟁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과연 얼마만큼의 세계가 인지하고 있을까?
1990년 여름, 만델라 씨에게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있었다. 일본 방문을 앞두고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도쿄사무소를 통해 그 의향이 전해졌다.
내가 쓴 수필집 영문판 <유리창 속 아이들> 중 일부가 남아프리카의 <HIT>라는 잡지에 소개된 것을 옥중에서 읽고 주목하셨다고 한다. 때는 1985년, 내가 만나 뵙기 5년이나 전이었다. 그것은 ‘청년에 대한 희망’을 쓴 수필이었다.
1990년 10월31일, 세이쿄(聖敎)신문사 앞뜰에서 청년 대표 500명이 이 인권 투사를 맞이했다.
나는 그를 기다리는 동안 청년들에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가? 권력의 악과 투쟁한 사람이야말로 위대합니다. 그 대표가 만델라 씨입니다.”
젊은 사람은 화려한 조명에 넋을 빼앗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살아갈 청년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었다.
“차별받는 사람들 편에 서지 않으면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국적도 아니고 처지도 아니고 ‘인간으로서 위대한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비로소 존경받는 나라가 된다.”
실은 그 전날, 만델라 씨는 국회에서 특별 연설을 하셨다.
세계가 ‘인류의 죄’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체제를 비난하며 남아공 정부에 경제 제재를 계속해서 가하고 있을 때 일본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무역 거래를 지속해 빈축을 사고 있었다. ‘경제는 흑자를 보는 나라일지라도 인권에서는 큰 적자를 보는 나라’라고까지 비난받았다.
‘명예로운 백인(白人)’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처지에 안주하며 억압 체제를 지지한 일본은 ‘가해자’였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연설은 그러나 비난이 아니라 담담한 외침이었다. 기품 있는 굵직한 목소리로 차별 때문에 생활이 파괴된 사람들과 미래를 빼앗기고 있는 어린이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하셨다.
“긍지에 가득 찬 이 용감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지원을 부탁하도록 해야만 하는가?” 나는 일본이 한심스러웠다.
정부가 초대했으므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사전에 명확히 해 둘 수도 있었다.
인간 존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위인을 초대해 돈 얘기를 꺼내게 해 놓고는 결국 한낱 민간단체에는 지원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버리다니!
“이 나라는 인간을 어디까지 짓밟는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 무도한 처사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살이 내리쬐는 날씨에 도착한 만델라 씨는 의외일 정도로 온화한 풍모를 지닌 신사였다.
깊은 강은 조용히 흐른다. 시종 생글거리는 그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얼굴에서 나는 강철 같은 의지의 상징을 보았다.
건강에 유의해야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꼭 만나 뵙고 싶다”며 오신 사정도 알고 있었다. 학생들이 그의 고향 말로 노래했다.
“만델라여, 자유는 당신의 손안에 있어요. 우리에게 자유의 길을 가리켜 주세요. 이 아프리카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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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좌) 대통령을 움직이는 것은 백인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인종을 뛰어넘어 누구나 평등하게 희망으로 눈망울 반짝이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그의 바람이다.
‘청년들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고 싶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그는 청년들의 환영을 특별히 기뻐하셨다고 한다.
“이번 일본 방문에서 남는 추억이라면 바로 그날입니다. 그 빛나는 눈과 발랄한 표정의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훌륭하게 자랐습니다.”
그는 나리타공항에서 다음 방문 국 말레이시아로 떠나기 전, 배웅 나온 일본 주재 아프리카 각국 대사관 대표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청년들의 빛나는 눈동자야말로 내가 남아프리카에서 실현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의 비원, 그의 고뇌가 내 가슴에 묵직하게 와 닿았다.
나는 회견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하고 약속했다.
인권전시회와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사진전, 인권 강좌를 통한 사회교육, 남아프리카 초등학교를 위한 지원, 그리고 소카(創價)대학교에 유학생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나는 회견을 단지 그 자리만의 말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키 큰 나무 한 그루만으로는 정글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만델라라는 뛰어난 인재가 한 사람 있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성장하지 않으면 만델라 씨가 추진하는 ‘일’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는 제안을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만델라 씨를 움직이는 것은 백인에 대한 증오가 아니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흑인이 백인을 대신하려는 게 아니라, 누구나 평등하게 희망으로 눈망울을 반짝이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애를 바쳐 달성하고 싶은 이상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죽음도 각오한 이상입니다.”
지금의 우리에게 그것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각오할 수 있는 이상이 있을까?
1만 일에 걸친 지옥조차도 견뎌낼 수 있는 이상이 있을까?
나는 청년들에게 언제나 말한다.
“아프리카 사람에게서 배우세요. 아시아 사람에게서 배우세요.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합니다.”
인간을 상하 관계로 보기 쉬운 일본적인 의식은 근대화의 역사가 왜곡되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을 왠지 깔보는 악폐를 만든 것 같다.
“일본에는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 있다”며 폐쇄적인 차별 심을 고발한 캄보디아 소년도 있었다.
나는 남아프리카 사람들의 봉기를 묘사한 <만델라>(밀리엄 트라디 저)에 나오는 말을 떠올린다.
“만일 타인을 자신보다 아래에 두려고 한다면, 자신도 스스로 내려가 버린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권도 평범한 듯하지만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기본이다.
인권 투사의 일본 방문으로 세계라는 거울에 일본인의 얼굴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