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4개월 된 손주를 위해 이번에 니엔후이즈 교구를 구입하며, 이곳에 처음 가입하게 된 유준이 할배 김일석 인사 올립니다. 손주는 광주에 살고 할배 할매는 부산에 사니, 매일 톡으로 보내오는 아기 사진을 보며 느끼는 결핍과 그리움이 만만찮네요...^^ 보육원을 하던 청년기에 우연히 몬테소리를 만난 후, 몬테소리교육에 일생을 거의 바친^^ 60대 중반의 순 국산 할배입니다. 이곳 카페에 가입한 차에, 몬테소리교육의 진면목을 구체화한 사례들과 사진을 부모님들께 소개도 할 겸해서 제 인생 이야기도 조금씩 풀어놓도록 하겠습니다.
내용이 좀 길어도 꾹 참고 찬찬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4개월인 손주 유준이, 보내온 사진을 매일 백 번도 넘게 보지만,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지 못하니 늘 그립다.
유준이 엄마가 태어날 때쯤, 저희 부부는 부산의 사상공단 입구 허름한 건물 철공소 2층에서 두 학급의 보육원(유아원)을 시작했습니다. 보육원은 지금의 어린이집 이전의 유아원 시스템을 말합니다. 당시 사상공단의 국제상사와 같은 크고작은 공장에 다니는 가난한 여성노동자의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철공소 2층의 그 소란하고 먼지 날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교실에 하얀 교구장을 사 넣고 처음 몬테소리 교구를 만났습니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놀라움이고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게 하는 기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룡 차트와 실물 모형을 일치시키는 작업에 집중했던 3세 남아.
우리 부부에게는 80년대의 가난한 공단 노동자의 자녀를 돌보는 일은 하늘을 떠받치는 일처럼 무거웠습니다. 우리 부부가 만난 몬테소리교육은 그런 사회적 의미와 무게에 끼얹어진 휘발유 같은 느낌이었는데, 마치 뭐랄까요, 불이 붙으면 즉시 온몸이 재가 되고 말 것 같은, 우리의 정신세계를 기저에서부터 휘젓는 '해방의 교육'이었습니다. 동시에 몬테소리는 우리가 배웠던 수많은 위인의 삶 중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자유의 교육자'였습니다.
들꽃 몬테소리 어린이집
전 사회복지와 발달심리를 공부했고 아내는 유아교육을 공부했는데, 둘 다 깊이 몬테소리교육에 스며들었습니다. 모계로부터의 유전성 질환으로 결혼 후 건강이 매우 안 좋아진 아내는 AMS 일반과정을 마치고 멈추었지만, 전 되려 더 치열하게 공부하며 많은 여성 교사들 틈바구니에서 피아노 선율에 맞춰 동요도 부르고 무용도 배우며 인턴과정까지 마쳤고, 관련 학문인 상담심리와 가족학까지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의 동기와 성취는 몬테소리로부터 시작하고 맺는다는 걸 한참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꼭지원기둥, 색원기둥, 빨강막대, 수막대를 이용해 건축하는 어드밴스 과정
제가 공부하며 느낀 감동의 전모는 나중에 '몬테소리 프락시스(이론과 실천)'란 이름의, 2165항목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와 몇 권의 몬테소리 원서(영어. 독어판) 번역 출판으로 세상에 몬테소리교육을 내놓았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공부하면 할수록 세상을 보고 느끼는 시선의 근본을 달라지게 하는 건 몬테소리교육이었습니다.
프락시스의 언어영역은 우리 말과 글을 몬테소리의 방법론으로 익힐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존의 집단 교육과 가부장적 전통에 빠져있던 가정과 교육시설에서 아이들의 다양한 일탈(Deviation / 수줍음, 폭력, 산만함, 거짓말, 우울, 언어적 결핍, 관계장애, 불면, 성적인 행동, 수집욕 등) 행동이 정밀하게 고안된 다양한 교구 작업과 민감기(Sensible Period)의 집중을 통해 모든 문제행동이 정상화(Normalization)되고, 아이는 이전보다 더 자유로워지며, 더 집중하게 되고, 더 감각적이며 더 과학적으로 변합니다.
이러한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 세상이 움직이는 본질을 보게 되었고, 그 본질에 닿아있는 교육이 바로 몬테소리교육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가 말했던 바로 그 '놀라운 신세계'의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세강보드와 비즈를 이용한 십진법의 수량개념, 오래된 사진을 찍은 거라 좀...^^
아들이 태어나면서 당시 부산의 대표적인 부촌이었던 광안리 바닷가에 어린이집을 열었는데, 니엔후이즈가 생산하는 전체 교구와 백 여종의 일상생활 교구, 방과 후 6세~12세 초등과정까지 수업이 가능하도록 사회문화 영역의 교구까지 풀 세팅한 깔끔한 시설이었는데, 주말마다 몬테소리교육을 연수하러 오신 각지의 교사들로부터 자리에 앉기만 하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곳이라고 칭찬해주실 만큼 구석구석 애쓰지 않은 곳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몬테소리 프락시스의 자연과학, 사회과학 영역은 인간의 역사와 동물학, 식물학으로 꾸몄습니다.
그러나 지역의 치과의사 자녀 몇 명과 당시엔 상류층이라 할 수 있을 부유한 가정의 몇 아이만 오고, 몬테소리교육을 대중화하는 데엔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내 기쁨과 성취에 겨워 너무 빠르게 시작했던 게 패착이었다 생각합니다만, 당시 기사와 조리사, 교사들 월급 주는 일이 지금까지도 가끔 악몽을 꿉니다. 아, 들어온 돈은 별로 없는데, 총알 같이 쳐들어오던 월급날의 공포, 다달이 겪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정말 괴로웠습니다...ㅠㅠ
직접 설계하고 공장에 주문 제작해 썼던 양면 매트꽂이
어린이집 운영에 실패한 후, 전체 시설을 제게 몬테소리교육을 수년간 배웠던 목사님께 넘기고, 목사님이 설립자였던 신학교에서 1년 과정으로 대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참 재미났습니다. 당시 제 이름으로 출판한 교재와 책이 남양몬테소리 교구사를 통해 전국에 보급되면서, 이름이 좀 알려져 울산의 한 대학에서도 강의하게 되었고, 당시 20학급이나 되는 큰 규모의 유치원에서 꼬박 6년, 6~12세 과정까지 맡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동시에 다달이 부모교육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세상에 냈던 몬테소리 관련 출판물은 거의 그 시기에 다 썼으며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땐 정말 집중력의 화신처럼 몬테소리교육에 매달렸습니다.
직접 설계해 만들어 썼던 다양한 작업대 중 작은 1인용 작업대, 교구장과의 일체감과 안정감이 설계의 원칙이었다.
점점 '몬테소리교육'을 제대로 알리고 보급하는 일에 소명을 느꼈고, 돈 버는 일에도 신명이 나 당시 한국프뢰벨에서 수입했던 니엔후이즈 교구 세트와 은물, 한글프로그램을 전국의 원장님들께 엄청나게 보급했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몬테소리교육을 잘 아는 전문가의 전문 교구라고 금세 전국 각지로 소문이 났습니다. 특히 가톨릭의 성당 부설 유치원과 어린이집 수녀님들은 저의 큰 단골이자 친구 같은 분들이었습니다. 아침에 "스테파노 씨~ 오늘 경기도 좀 와줘요!"라는 전화를 받으면 얼마나 즐거웠는지, 부산에서 이른아침에 출발해 그 먼 길을 달려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아, 나이가 드니 그때의 수녀님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유준이 엄마 두 돌 때의 손수건 접기, 체계적인 일상생활교육과 감각교육은 두 돌에 시작하는 게 가장 좋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손주를 본 기쁨에 더해 초보 할배가 되어 세계 최고의 교구 '니엔후이즈'를 만난 흥분을 주체하질 못하겠습니다. 제 손주에게, 많은 아이들과 작업하며 온갖 제시카드와 부교재를 만들며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사용했던 니엔후이즈 교구를 이젠 선물처럼 줄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합니다.
옛날엔 니엔후이즈가 전체를 사기도 어려웠던 교구이고, 분실과 파손 염려 탓에 교실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기도 부담스러웠던 아주 귀한 교구였고, 세상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비싼 교구였거든요. 어떤 원장님은 유치원 복도에 유리상자에 넣어 전시만 해두었지, 아이들이 직접 쓰지 못하게 자물쇠로 잠그기도 했던 교구였습니다. 요즘엔 그런 박력 넘치는 원장님은 안 계시겠지만 말여요...^^
사랑하는 손주 유준이는 현재 4개월, 몬테소리교육을 통해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성장하길...♡
전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구사일생으로 재활에 성공한, 별명이 '몬테소리 할매'인 아내와 함께 그럭저럭 온갖 식물을 돌보며,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집엔 크고 작은 화분이 300개가 넘는답니다. 절 아는 사람들은 절더러 '식물의 요정'이니 '식물중독'이라느니 '뚱땡이 엘프'라느니 놀려대기도 하는데, 제 눈엔 식물을 제대로 키울 줄 모르는 그 사람들 다 한 곳에 모아 세월아 네월아 노래하며 몬테소리 교육사상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몬테소리의 식물학은 섬세한 관찰을 요구하며 생명이 움트는 소리를 듣게 하거든요...^^
영역별 몬테소리 강의록에는 딸아이가 모델이다. 감각교구의 바리에이션은 꾸준하게 연습해야 한다.
참, 제가 몬테소리교육을 열심히 할 때 영유아 시기를 몬테소리 교실에서 살다시피 했던 막둥이 이야기인데요. 군 제대하고 복학해 지금 대학 4학년인데, 잠시 막둥이를 빙자해(^^) 몬테소리교육이 인간의 성장에 어떻게 작용하며 어떻게 생애의 에너지가 되는지 좀 얘기할게요.
막둥이는 그야말로 몬테소리의 손자라 할 만큼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막둥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 갑자기 엄마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서 꼬박 7년을 있었답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누나인 딸아이가 저랑 교대하며 병원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전 돈 버느라 병원과 일터를 오가며 참 바쁘게 살았습니다.
감각교구의 크기와 대비하는 제곱(평방), 세제곱(입방)의 수학교구
막둥이는 학교수업 마치고 밤 10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밤늦게 혼자 집으로 돌아와, 혼자 문단속하며 혼자 라면 끓여먹으며, 혼자 학교와 집을 시계부랄처럼 오갔습니다. 매사 사려깊고 합리적이며 매우 집중력이 강한 아이인데, 혼자 학교 다니면서도, 성장기 내내 여느 아이들처럼 게임이나 자극적인 인스턴트 문화에 빠지지 않고, 초중등 전체 기간을 가족 부재 상태임에도 줄곧 학생회장을 지냈고, 대학에서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지금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답니다. 저희 부부는 몬테소리교육의 힘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인수분해의 원리를 색과 크기로 정확하고 감각적으로 익히게 하는 2항, 3항식 교구.
교구회사 브로그에 아들 자랑까지 늘어놓아 죄송해요^^ 아무튼, 중요한 영유아기에 잠깐 맛만 보고 생색만 내는 교육은 사람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기 힘들며,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잠깐 수업 받고 꽤 수업료를 낸다던데, 지하에 잠들어계신 몬테소리 선생님께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신다면, 펑펑 우시거나 영혼이 졸도하실 겁니다...@"@;;
세계의 어장과 난류와 한류의 흐름도(6세~12세 과정)
몬테소리교육은 마치 '사는 일'처럼, 준비된 환경에서 다양한 노작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작업과 집중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에 체화(Incarnation)되는 힘이, 한 인간의 일생에 걸쳐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한다는 얘길 젊은 엄마들께 꼭 전하고 싶네요.
110년 전, 로마의 어두운 산로렌쪼 뒷골목에서 지치지 않고 부모교육을 이어간 몬테소리의 의지는, 아이의 변화가 결국 가정과 사회를 바꾸는 힘의 근본임을 '새 세상을 향한 교육'(Education for a new world)에서 말합니다. 몬테소리교육은 부모가 교육철학을 배우고, 부모를 통해 환경을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걸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직접 그리고 만든 사회문화 교재, 왼쪽은 경기도, 오른쪽은 강원도, 자연과 생태를 익히는 6~12세 과정이다.
아, 끝으로 니엔후이즈 교구는 몬테소리 여사 생전에 교구 제작 메쏘드를 관리한 라이선스 교구이며, 그녀의 아들 마리오와 손자에 이르기까지 이어가고 있는 세계 유일의 공인 교구입니다. 혹 인터넷 상에서 제 이야기를 우연히 발견하고 읽으시는 엄마들께 이 글이 조금이라도 몬테소리교육 인식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비처럼 꾸준히 날고, 물처럼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며, 인간 본성이 꽃피는 자유를 아이들이 만끽할 수 있도록, 고요히 아이들의 성장을 지키고 바라보는 일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이상, 부산에서 드리는 유준이 할배 통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