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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월 10일 금요일 맑음
새벽 5시 45분에 배낭매고 집을 나섰다. 차를 몰고 김해 공항으로 간다. 오전 7시 경 공항에 도착했다. 항공좌석을 받고서 카메라 전지를 사고 7시 30분에 비행기를 탔다. 잠간 숨을 쉰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에 도착했다. 서둘러 국제선 제 2청사로 공항순환 버스를 타고 간다. 처음 해 보는 여행사 상품 여행이다. 제 2 청사 외환은행 앞에서 한화관광 표지판이 보인다. 8시에 미팅인데 8시 5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제일 늦게 왔다. 모두 가이드로부터 주의 사항을 듣고 비행기 표를 손에 쥐고 흩어지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후에 여권을 보여주고 비행기 표를 손에 쥐었다. 겨울 잠바를 라커에 맡기고 비행기를 타기위해 출국수속을 밟았다. 시장 같이 사람들이 붐빈다. 줄 끝을 한참 찾아서 끝에 섰다. 별 무리 없이 10시 5분발 마카오 행 대한항공에 올라탔다. 그리 크지 않은 비행기다. 몇 잔의 음료수와 기내식을 먹었다. 소고기를 선택하고 아내는 생선이다. 비행시간이 약간 지겨웠으나 멀리 날아 갈 때를 생각하면 짧은 구간이다. 먹은 기내식이 소화가 잘 안되어 가스가 차서 배가 빵빵해진 것 같다.
마카오 공항에 도착했다. 창밖으로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하는 모습이 보인다. 공항 활주로가 바다 위에 만들어져 있다. 처음 보는 활주로다. 땅이 좁은 곳이라 생각되었다. 김해 공항 보다도 작아 보인다. 시설도 간단하고 한적하며 낙후된 모습이다. 도착 시간이 우리 시계로 2시 25분이었다. 현지 시게는 1시 25분을 가리키고 있다. 공항 주변은 우리와는 다르게 초록색으로 나무들이 무성하다. 우리나라 초여름 날씨와 비슷했다. 공항 밖으로 나와 잠시 기다리니 현지 가이드가 25인승의 낡은 버스와 함께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타서 먼저 공항을 벗어났다. 굴곡 있는 다리를 지나며 멀리 보이는 도 하나의 다리를 보았다. 바다인 듯 넓은 강을 건너간다. 물 색깔이 흐려서 바다 같지는 않다.
중국 내륙에서 흘러오는 흙탕물 강이다. 마카오(MACAU)라는 말은 한문으로는 없고 오문(澳門)이라는 한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옛날에 중국에서도 중심이 아니라 오지였음을 글자를 통해서 알 것 같다. 도착한 때가 점심때라 먼저 식사를 하는 것으로 마카오 일정이 시작되었다. 호텔 프레지던트에서 차는 멈췄다. 태극기가 걸려있는 것이 한국인이 많이 머무는 것 같다. 1층 로비 옆에 있는 중국식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음식은 중국식이 아니라 서양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했다. 샌드위치, 튀김 야채, 과일 등을 갖고 와서 배를 채웠다. 식사를 한 후 잠시 호텔 밖으로 나오니 우리나라 중소 도시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고층빌딩이 많이 보인다. 이름 모를 꽃들이 주변에 피어있다.
안내해 주는 아주머니의 안내에 따라 차에 올라 달리기 시작했다. 중국과 마카오의 국경선 지역에 서서히 접어들면서 옛날 국경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창기 오른쪽에는 바다인지 강인지가 있는데 철조망이 중국 쪽을 향해 쳐져있다. 중국에서 마카오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쳐 놓았다. 옛날에는 이곳을 넘어오다가 죽음을 당한 시체들을 볼 수 있었단다. 물이 빠질 땐 바닥이 드러나고 물이 들어와도 수심이 얕아 잠수로 많은 중국인들이 공산치하를 벗어나기 위해 생명을 건 모험을 시도하던 곳이란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 모습은 없고 자유롭게 검문소를 통해 왕래하고 있단다. 등소평이 개방정책을 펼쳐 왕래하기 시작했단다. 이로 중국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단다. 화교들이 국경을 통해 중국에 들어가 고향 방문을 하고 친지를 만나본 후에 돌아오곤 한단다.
검문소에 차를 주차하고 구경하기 위해 모두 내렸다. 차량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고 독립문 같이 생긴 석조문 위에는 포르투갈 기가 펄럭이고 있다. 건너편에는 중국의 오성기가 휘날리고 있어 여기가 국경이고 다른 체제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최윤희 신상옥 부부가 북한에 납치된 것도 이 문을 통해서였단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양손에 선물을 들고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값 싼 채소나 휴지 등을 들고 나오고 있다. 어찌 보면 국경 같지도 않다. 마카오보다 중국이 물가가 싸기에 1차 생산물은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단다. 미카오는 경작할 땅이 거의 없어 농산물의 생산이 없단다. 모두 수입하고 있단다. 과일 채소 등이 다 비싸다. 화교들의 알뜰한 살림살이를 볼 수 있었다.
포르투갈 국기가 펄럭이지만 포르투갈 사람 같이 생긴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중국사람 만 보여 중국에 온 느낌이다. 호텔에도, 거리에도, 유명한 곳이건 한가한 곳이건 복잡한 다운타운에도 동양계 사람들만 보인다. 실제 화교가 95%이고 3%가 포르투갈 인이고 2% 정도는 기타 외국인이란다. 여기에 살고 있는 한국인과 북한인 사이에 처음에는 대립이 심했단다. 북한의 간첩 교육을 국내에서 시킨 후 외국에 처음 파견하는 곳이 마카오였단다. 마카오 주민들도 처음에는 북한과 친했는데, 관광객이 개방되면서 바뀌었단다. 돈 많은 남한 사람들이 관광으로 많이 찾아와 이들의 수입을 올려주게 되니 남한 쪽으로 많이 친해졌단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간첩 활동이 점점 폭로되고, 김현희 비행기 납치 사건 등 국제적으로 시끄러운 사건이 몇 번 있은 후에는 완전히 남한 쪽으로 친분관계가 기울게 되었단다.
지금은 남북한 사람이 잘 지내게 되고, 학교에서도 남북한 학생들이 동족의식으로 화교들 사이에서 서로 힘이 되어주고 있단다. 학부형들도 점차 인사를 나누며 지내게 되었단다. 시험을 치르는 현장에서 남북한 학생끼리 자기들만 아는 한국말로 답을 알려주는 일도 있다고 해서 우리는 다 같이 환하게 웃었다. 하루 속히 국내에도 통일이 되던지, 하나로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집안 싸움하는 비생산적인 대립관계가 빨리 종결 되었으면 좋겠다.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다시 조립하니 작동은 되는데 후레쉬가 깨지고 말았다. 찍히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어 그냥 찍어보기로 했다.
시내로 들어서니 고층 아파트가 좁고 높게 서있다. 색은 퇴색되었고 창마다 빨래가 국기 같이 널려있다. 화려했던 옛날의 번창함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왕년에 방직산업이 번창하였던 곳이란다. 우리 어린 시절에 흘러간 유행가 가사에도 마카오 신사라는 가사가 있었다. 지금도 청바지의 세계시장의 70%를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단다. 직접 판매는 하지 않고 모두 수출을 하고 있단다. 공장이 모두 대형 고층 건물에 있단다. 색 바랜 건물들이 모두 초라해 보여 빈민가 모습이다. 경제의 번영이 모두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넘어가고 말았단다. 도박과 관광 등의 수입으로 옛날의 부흥을 다시 찾으려 애를 쓰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경제가 퇴색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란다. 하나는 지리적 조건으로 바다의 수심이 얕아서 대형 선박이 들어오지 못한단다. 옛날 돛단배들은 들어왔는데 지금 배들은 정박하기 어려워 수심이 깊은 홍콩으로 거점을 옮겨 갔단다. 또 하나의 원인은 포르투갈사람들의 차별정책 때문이란다. 화교들은 교육도 시키지 않고 순종만 강요당하는 정책 속에 있었단다. 시설 투자가 없이 알맹이만 빼가는 정책으로 낙후된 전기 시설, 건물, 도로, 항만으로 경쟁을 이길 수 없었단다. 전기 시설이 엉망이라 합선으로 불이 나고 전기선이 여기 저기 엉망으로 이어져 사고가 많았음에도 중국 반환을 핑계로 투자가 없었단다. 공항도 없이 지내다가 이제야 겨우 공항을 만들었단다. 영국이 지배하는 홍콩과는 대조적이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상이 서 있는 관음당에 차가 머물렀다. 도시 복판에 차량으로 엉켜있다. 좁은 도로에 질서라고는 없는 엉망인 도로다. 차량기리 엉켜있고, 하늘에는 전기선으로 혼란스럽고, 건물기리도 엉켜있다. 거리의 사람들조차 엉켜 있는 듯 복잡하다. 옛날과 현대가 엉켜 구분이 없다. 가이드의 설명이 유난히 길다. 설명 없이 보면 그냥 평범한 사찰인데 감춰진 이야기들을 잘도 꿰어서 부지런히 설명을 한다. 진한 향내와 검게 그을어 천장, 폭죽소리가 총소리 같이 들려온다. 들어가 정문 앞에 선다. 입구의 지붕위에 있는 화려한 색의 조각들이 보인다. 중앙에 여의주가 있고 양 옆에 용의 모습이 있다. 중앙 물고기 형상 끝에 봉황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남방 불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마카오 인구의 70%가 이곳에 와서 복을 빌곤 한단다. 들어갈 대는 좁아서 작아 보이던 절 내부가 들어갈수록 복잡해지고 넓어진다. 출생부터 성장하고 살다가 늙어 가면서 내세를 준비하는, 온 생애의 순간순간들이 연관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느껴진다. 중국인 특유의 내세와 현세를 함께 살아가는 의식을 볼 수 있는 절이다. 미신적이고 유아적으로 보이나 이내들의 정신적 기둥임을 알 수 있다. 천장에는 15일 동안 탄다는 만수향이 연기를 내며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꼬마들조차 불상 앞에 무릎을 꿇고 손 모으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어릴 때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배운다. 자그마한 회양목이 200년이 되었단다. 앞에서 보면 목숨 수자이고 뒤에서 보면 복 복자로 보인다고 해서 이 분재의 이름이 복록수라고 불린다. 모두 이 나무 같이 복 받고 오래 살고 싶다는 염원으로 웃으며 나무 뒤에서 사진을 찍는다. 행복해 보인다.
이곳 마카오도 중국이라 특히 행운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재물을 상징하는 노란 색, 건강과 젊음을 나타내는 초록색이 주류를 이루는 색상이다. 원색을 좋아하면 야만인이라는 말이 맞는 것도 같지만 이들을 보니 순수한 심성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졸음을 쫓기 위해 눈꺼풀을 오려냈다는 달마대사의 눈 모양이 인상적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국인의 국민성을 대표하는 그림인 것 같다. 왼쪽으로 가도 나를 보고 있고, 오른쪽으로 가도 나를 보고 있는 듯한 흐리멍덩한 눈 모습이 재미있다. 태권도와 같이 직선적인 국민성이 우리 모습이라면 쿵푸와 같이 곡선 적이고 장기적인 알 수 없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중국 인 것 같다. 국보급이라는 그림을 뒤로하고 사찰을 나오니 책에 있는 관음당과는 다른 곳이었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도 없고, 1844년 중국과 미국이 통상우호조약을 체결할 때 사용했다는 원형 테이블도 보이지 않음을 가이드와 헤어진 후 홍콩에 와서야 알았다. 먼저 공부를 한 후에 마카오에 들렸다면 가이드에게 질문을 했을 텐데, 아쉬웠다. 공부한 만큼 보인다는 어느 여행객의 말이 또 한 번 머리에 떠오른다.
다음 목적지인 성 바오로 교회 유적지를 향해 버스는 출발했다. 가는 거리는 좁고 빌딩은 높고, 색깔은 우중충하다. 포르투갈 사람의 자녀들만 교육을 받는다는 중고등학교를 지난다. 녹색으로 칠한 포장된 운동장에 몇몇 학생들이 공을 차고 있다. 닭장을 크게 만든 것 같은 학교의 모습이다. 마카오는 통치 방법이 중국인은 체육교육을 시키지 않고, 교육도 시키지 않았단다. 포르투갈 사람만이 체육교육과 일반교육을 시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배하려 했단다. 정말 중국인 학교도 간간이 보이는데 운동장이 없는 건물의 학교다. 지배받는 민족만이 불쌍함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좁은 도로 옆에 허름한 5~6층 자리 호텔 앞을 지난다. 이 호텔이 북한 공작원들의 아지트였다 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버마의 아웅산 사건, 최은희 신상옥 부부의 납치 사건, 김현희 칼기 폭파 사건 등 전 세계 매스컴을 시끄럽게 했던 일들이 터질 때 마다 이곳이 지목되었다고 한다. 최근 위조지폐 사건이 터지고 나서 완전히 들통나 버렸단다. 궁지에 몰려 막다른 골목에 있는 북한 체제를 보는 듯하다. 잘못된 체제 속에서 빈곤과 고립에 있는 같은 민족의 아픔이 느껴져 입맛이 씁쓸했다.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과 고집이 얼마나 많은 아픔을 가져오는지 백번 생각해도 부족함이 없구나.
성 바오로 성당 유적이다. 좁은 골목을 돌아 화강암으로 깔아 중앙선까지 표시된 오래된 길에 접어드니 역사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구 시가지에서 밟아 보았던 도로와 흡사했다. 지금은 앞면 밖에 없는 성당의 규모와 위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내 거의 중앙부 언덕에 세워진 교회 유적으로 17세기 초에 이탈리아 인 예수회 수도사가 설계한 것으로 당시는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단다. 1835년의 태풍 때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는 건물 정면의 벽과 계단의 일부와 기초만 남아있다. 정면 조각과 40개의 기둥도 모두 의미가 있었다. 삼위일체, 예수님, 탄생에서 십자가 죽음까지 묘사되어 있다.
건축 당시 사탄으로 지목된 일제의 침략을 용으로 새겨 놓았으며, 해골밖에 없는 식민지의 실상 등 성경과 당시 염원 및 사회상을 정면 조각으로 잘 새겨 놓았다 마카오의 상징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여러 장의 사진 속에 사람과 성당을 집어넣기 위해 애를 쓰는 여러 여행자의 촬영 모습이 많이 보인다. 성당 주변은 사찰과 학교, 고층 빌딩, 몬테 성채, 낡은 집들이 어지럽게 보인다. 보이는 사람들도 관광객, 상인, 학생들, 어른들 등 다양하다. 어깨에 메고 가는 우리의 메밀묵 장사 모습도 있다. 현재와 과거가 섞여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차에 오르니 중국인의 건강과 관련해 비취얘기를 꺼낸다. 중국인은 대부분 비취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면서 우리를 비취와 보석을 파는 보석상 앞에 내려준다. 상점 안으로 데리고 간다. 쇼핑시간이다. 밖에는 경비도 서있다. 일 층에서 이 층으로 오르는 층계 앞에는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요구르트를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한국어로 어서 오라고 한다. 이 층에 들러 여러 모양의 비취를 구경한다. 초록색 비취가 주류를 이룬다. 구경을 하고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리스보아 카지노 호텔(Lisboa Casino Hotel, 葡京飯店)로 갔다. 도박이 공식화된 나라다. 마카오 그랑프리(차 경주), 개 경주, 경마 등 동양의 카지노 도시로 알려진 마카오의 중심이 이 호텔이다. 이 호텔 주인은 스텐리 호 인데, 대형 카지노를 일곱 개 갖고 있는 부자영감이다. 마카오 세금의 60%를 내고 있단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도박을 하러 온다. 재미있는 것은 공항이나 항구에 대기하는 차량은 검은색 택시가 많단다. 검은색은 재수 없는 색으로 이 택시를 타고 와서 도박을 하면 돈을 다 잃게 된단다. 또 돌아갈 때는 노란 택시를 타고 가는데 이는 노란색은 행운이라 다시 돈을 많이 벌어서 도 오라는 뜻이란다.
검은색 택시는 많이 만들고 노란색 택시는 적단다. 도박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주말이면 엄청나게 몰려와서 숙소가 모자라고 교통이 혼잡하단다. 호텔을 구경하러 들어가기 전 주의 사항을 들었다. 일행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할 것, 사진 촬영은 못하니까 차에 놓고 갈 것 등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공항의 출입 검사 같이 무기소지 검사와 소지품 검사를 건장한 남자들이 한다. 코인 환전하는 곳에서 모두들 웅성거렸다. 다양한 기구들 앞에서 모두 정신없이 몰두하고 있었다. 요행을 바라고, 머리를 쓰고, 눈을 돌리는 소리가 엄청나게 들리는 것 같다.
긴장감마저 도는 곳이다. 엄청난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남자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 아가씨들도 많다. 홍콩달러로 100불 정도만 도박을 해 보라는 가이드 말이 있었다. 별로 내키지 않아 그냥 구경만 했다. 카드, 주사위, 당기는 곳 등 다양했다. 이리저리 다니다가 일행을 놓쳤다. 혼자 헤매고 있으려니 늘씬한 아가씨가 접근해 온다. 진한 화장을 한 아가시가 뭐라고 하며 잡아끌었다. 모른 체 뿌리치고 바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겨우 일행을 찾아 가이드가 안내하는 보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간다. 좁은 복도를 지나 우회전, 좌회전, 올라갔다. 내려갔다. 몇 번 반복한 후 원형라운지에 도착하여 인원 점검을 한다. 몇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20 여분을 기다리며 전시된 보물들을 구경한다. 중국의 송. 명. 청대의 귀중한 보물들과 조각품, 그림들이 인간의 솜씨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날아가는 청동 오리의 모습을 수놓은 동양자수의 모방할 수 없는 색상, 나무뿌리로 조각해 놓은 인물상들, 도자기를 비롯한 너무 귀한 물건들이 많이 있으니 도리어 천하고 흔해 보이는 것 같다.
호텔 카지노를 나오니 벌써 날이 저물었다. 건물과 거리에는 네온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녁을 알리는 식욕이 뱃속에서 소리를 냈다. 잠시 걸어간다. 점심을 먹던 호텔의 뒷문이 나왔다. 2층에 한식당이 있었다. 한식으로 식사를 했다. 멀리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와서 한식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이 좀 불만이다. 현지 음식을 먹어보면 좋으련만, 아쉽다. 똑같은 돈을 주고 식사를 하려면 그 나라 음식이 입에 맞던지, 안 맞던지 먹어보는 것이 여행의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그러나 돼지고기찌게는 일품이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의 한식은 비싸서 평상시에는 먹어보지 못하고 이럴 때만 한 번 먹어본단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랐다. 호텔 방을 배정 받았다. 20층 정도 되는 깔끔하고 고급스런 호텔이다. 방에 들어왔다. 커튼을 여니 멀리 언덕 위에 등대가 보이고 아래 지상에서는 조명등 아래 몇몇 학생들이 공을 차고 있다. 약간 쌀쌀해서 히터를 켜니 작동된다. 방이 더워지질 않는다. 카운터에 물으니 난방이 되지 않는단다. 몇 개의 담요를 더 얻어왔다.
야경을 구경하려고 지도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냥 잠자리에 들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내일이면 떠나서 다시 언제 밟아볼지 모르는 먼 땅이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살펴보고 싶었다. 호텔 로비에서 시내 지도를 하나 얻어 무조건 밖으로 나왔다. 좀 더 불빛이 밝은 곳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걸었다. 중학교로 보이는 학교 건물이 보인다. 정문에 있는 수위에게 양해를 구하고 학교 구경을 한다. 강당에서 연극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교사들의 엄숙함은 없고 자유롭고 자발적인 활동이 눈에 보인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몇 몇 학생들의 모습이 무척 진지해 보인다, 시멘트 바닥에 철 그물 울타리 운동장에는 공을 차는 몇 몇 학생들이 있다. 조명등 아래서도 잘 찬다.
가로등 아래에서 우리의 행선지를 정했다. 중심가로 가기로 했다. 4차선 위에 세워진 조각품을 보았다. 도로가에 있는 잘 가꾸어진 공원을 지난다. 황금빛 네온사인이 건물 전체를 장식한다. 아름답게, 휘황찬란하게 반짝이고 있다. 우리는 눈이 더욱 커졌다. 손바닥 모양의 중국 은행은 불이 모두 꺼져있다. 대현 조명등 아래의 광장이 나온다. 물과 조각품이 어울리는 분수대가 있다. 폭포를 인공으로 만든 곳에서 하루의 피로를 잠시 잊으며 크게 웃었다. 2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유럽풍의 군인 클럽 건물이 조명아래 고급스럽게 위치해 있다. 번화가에서 이상한 열대 과일들을 믹서 한 주스를 사서 마셨다. 楊桃汁 10元이라는 작은 글씨가 보인다. 맛이 상큼하고 시원했다.
시내 복판에 높이 빛나고 있는 등대를 향해 걷기로 했다. 고등학생 3명의 안내로 등대 밑에 가지 도착했다. 사람들이 없다. 등대 이름은 동망향 등대라고 한다. 조그맣게 한문으로 씌어있다. 이곳 마카오가 항구임을 알 수 있다. 지그재그로 올라 전상 벤치에 앉았다. 다리가 아프다. 신발이 불편했다. 아픔과 피곤도 잠시 잊게 만드는 시내 야경이 정말 멋지다. 어디서 보나 리스보아 호텔의 모습은 금방 알 수 있다. 등대 밑을 빙 돌아서 간다. 입구는 없었다. 숙소를 찾아보니 우리 눈 아래 가깝게 보였다. 길을 따라 내려오니 삼거리가 나온다. 지도를 놓고 살펴본다. 아내가 강력하게 주장을 한다. 자신 있게 말을 해서 아내의 말을 따라 걸어갔다. 길을 잘못 들었다. 산을 빙 돌아도 절벽이 있어 내려가는 길이 없었다. 찻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정반대로 간다. 자꾸만 호텔과 멀어지는 길 밖에 없다. 한참을 내려와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모르면 묻는 게 최고다. 숙소는 약간 춥다. 뜨거운 물에 사워하고 얻어온 담요를 더 덮고 골아 떨어졌다.
첫댓글 이쁜 부부 그런데 20년전 이군요 ^^
전에 적어 두었던 여행기를 사진을 찾아 올렸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