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낭송에 대하여>
시인 김택근
우선 시 낭송문학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눈으로는 읽고, 귀로는 듣고, 입으로는 낭송을 하고, 마음으로는 감상을 하는 것이다.
이 낭송을 보다 더 잘 하기 위해서는 3가지의 필수 조건이 있는데
첫째:
詩를 사랑해야 한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예) 한 여자(남자)를 사랑하다 보면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그의 품성을 알게 되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읽을 수가 있듯이 시를 사랑하다 보면 그 시의 속성을 알게 된다.
둘째:
시를 많이 읽고 외워라.
많이 읽을수록 그 시를 이해하게 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낭송을 보다 잘하기 위해서는 외워야 한다.
외우지 못하면:
1. 감정을 실을수가 없고
2. 감정과 운율이 없으면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가 없다.
3. 때론 원고를 볼 수 없는 곳일수도 있다.
4. 정신을 원고 보는데 빼앗기게 된다.
5. 자칫 잘못하면 낭독이 될 수도 있다.
암송을 하면
1. 시선이 청중을 향하므로 청중과 하나가 된다.
2. 분위기가 부드럽도 자유롭다.
3. 감정을 몸짓으로, 또는 눈짓으로, 웃음으로, 청중을 즐겁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암송은 낭송문학에 있어서 참으로 꼭, 실천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시를 자연히 읽게되고, 또 암송을 하게 된다.
사실 원고를 보고 낭송을 하게 되면 장소에 따라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수 도 있거니와 글씨를 빠뜨리고 낭송을 하거나, 틀리게 낭송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설령 틀리지 않고 바르게 낭송을 한다 하더라도 원고를 보는데 정신을 빠뜨리게 됨으로 표현하고 하는 의도를 제대로 살리기가 어렵게 된다.
지난 강의에서 말했듯이 시 낭송은 소리의 예술이다. 가슴속에 담겨있는 감정들을 [문자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시이고, 그 문자 언어를 [음성언어]로 바꾸어 놓는 것이 낭송이라고 말을 했는데 문학은 예술의 아주 중요한 일부이고 시는 곧 "문학의 꽃"이요 시 낭송은 "아름다운 영혼의 꽃"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시는 그 자체로도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문자언어가 음성언어로 변할 때시는 더욱 빛나게 되고 향기롭게 되는 것이다. 마치 시를 보석에 비유하자면 詩는 원석이고 낭송은 세공하는 것과 같다.
세공을 아름답게 해야만 보석이 빛나듯이 낭송을 잘 해야만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며 함께 즐거움을 공유할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
소리로 연출하라.
연애인들은 몸으로 연기를 하지만 낭송은 소리로 연출을 한다.
시에 있어서 리듬은 곧 생명이다. 시의 해석은 곧 그 리듬의 해석이 된다.
시인이 작곡가라면 시낭송은 성악가로 비유하기도 한다.
시인이 작곡한 시를 성악가가 어떻게 노래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시의 감동은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낮게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낭송하는 사람의 생각과 받아들이는 청중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낭송하는 사람이 감정을 섞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시의 의미는 달라지게 되는데 시 낭송은 눈으로 읽기 보다는 암송을 하여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지고 청중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낭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시낭송은 하나의 예술분야로 차츰 대중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노래를 한다고 모두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낭송을 한다고 모두 낭송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 시에대한 남다른 애정과, 시에대한 이해와,타고난 음성, 열성적인 연출력 등을 고루 갖추어야만 되는 것이다.
첫째:
좋은 시를 골라라.
먼저 문학성이 뛰어나고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쉽지않다.
요즘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들은 그 문학성은 깊으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깊어 이해하기가 어렵다.
좋은시와 아름다운 시는 다르므로 낭송하기에 적합한가를 따져봐야 한다.
둘째:
시를 바르게 해석하라.
낭송자는 시와 청중사이에 매개체가 되는 전달자이므로 그 시에 대한 올바르고, 완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가령 오늘 배우는 김남조의 <후조>를 골랐다고 하면 이 작품이 쓰인 시대의 배경과 그 시인의 대표작들과의 상관 관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완전한 그 시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감동의 전달이 부족할 것이다.
셋째:
청중과 하나가 되어라.
속으로 중얼거리는 시로써는 대중을 사로잡지 못한다.
하늘에 높이 뜬 달이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 당기듯이
낭송자는 청중을 이끌고 시의 용광로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함께 시 속에서 뒹굴고, 함께 들끓고, 함께 뼈와살을 녹여 하나의 악기가 되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한 두편의 시가 아니라 몇 십편 몇 백편의 시를 내것으로 만들고 때론 분위기와 청중에 따라 거기에 어울릴 수 있는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가 주는 감동은 언어에 의해서 창조된 예술이다.
시는 머리로 아는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시 낭송 또한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 한다.
---- 낭송의 예, 김남조의 '후조(侯鳥)' -----
당신은 나의 누구라 말하리.
나를 누구라고 당신은 말하리
마주 불러 볼 정다운 이름도 없이
잠시 만난 우리 오랜 이별 앞에 섰다.
갓 추수를 해들인 허허로운 밭이랑에
노을을 등진 긴 그림자 모양
외로이 당신을 생각해 온 이 한 철
삶의 백가지 가난을 견딘다해도
못내 이것만은 두려워 했음이라
눈 먼 듯 보고지운 마음
신의 보태심 없는 그리움의
罰이여
이 타는듯한 갈망
당신을 나의 누구라 말하리.
나를 누구라고 당신은 말하리
우리 다 같이 늙어진 어느 훗날에
그 전날 잠시 창문에서 울던
어여쁘디 어여쁜 후조라고나 할까.
옛날에 그 옛날에
이러한 사람이 있었더니라.
애뜯는 한 마음이 있었더니라.
이렇게 죄없는 얘기거리라도 될까
우리들 이제 오랜 이별 앞에 섰다.
이 시를 서정시의 표본이게 하는점은 바로 한없는 부드러움과 조화가
엮어내는 깊은 여운에 있다.
비록 떠나는 사람이지만 추호의 미움도 적대감도 없이 담담하게
보내는 양이 마냥 고와 그 고운 눈물의 향기가 아련히 전해오는
듯 하다.
가슴 아프고 절망적인 이별을 앞에 두고 화자는 님과의 재회를
애타게 갈망하거나 눈 앞의 이별을 애써 부인하거나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의 당위성을 억지로 내세우지도 않는데,
바로 이점이 이 시를 비탄이나 갈등에 빠지지않고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을 발하게한다.
님과의 이별이란 아픈 응어리마저도 포근히 보듬어 안음으로써 마침내
잘 익은 술처럼 고운 빛깔과 향내 나는 시가 되는 것이다.
(퍼왔씀)
김택근 시인은 1955년 정읍에서 출생햇으며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을 지냈고 우리와 이름이 같은 시마을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남양주시에 거주하며 시산문학회를 이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낭송의 귀재로 불리기도한다.
첫댓글 하나 하나 읽고 가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