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54,000여 미군 전사자들
☆ 前 TBC-T씨의 글"
‘밴프리트 장군과 클라크 장군’
아~잊으랴.....!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어머 니의 눈물이 이 편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합 니다. 어머니 저는 지원
해서 전투 비행훈련 을 받았습니다. B-26 폭격기를 조종할 것입 니다. 저는 조종사이기 때문에 機首에는 폭 격수,
옆에는 항법사, 後尾에는 기관총 사수 와 함께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지금 한국에서 싸우 고 계십니다. 드디어 저도
미력한 힘이나마 아버님께 힘을 보탤 시기가 도래한 것 같습 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미국이 위급한 상황에서 조국을 수 호하기 위하여 소집된 나의 승무원들을 위 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 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 고, 애인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저의 의무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들 짐 올림" 이 편지는 워커 장군의 후임 이었던 릿지웨이 장군이 맥아더 장군이 해 임됨에 따라 UN군 총사령관
으로 영전한 뒤 그 후임으로 부임한 밴프리트 미 8군 사령관 의 아들 지미 밴프리트 2세 공군 중위가 이 제 막 해
외근무를 마쳤음으로 한국전에 참 여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해서 아버지가 사령관으로 있는 한국전
에 참여하 면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리고 그 것이 마지막 편지였다.
1952년 4월 2일. 이 훌륭한 군인은 압록강 남쪽의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 가 새벽 세시 김포 비행단
의 레이더와 교신 한 후 표적을 향해서 날아가더니 레이더에 서 사라진 뒤 소식이 끊겼다.
즉시 수색작전이 시작된 것은 물론이다. 4 월 4일 아침 10시 30분. 8군 사령관 밴프리 트는 미 제5공군 사령관 에
베레스트 장군으 로부터 지미 밴프리트 2세 중위가 폭격 비행 중 실종되었고 지금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고 한다. “지미 밴프리트 2세 중위에 대한 수색작업을 즉
시 중단하라.
적지에서의 수색작전은 너무 무모하다.”라 고 아버지가 아들의 구출작전을 무모하다고 중지시킨 것이다. 이것은
인접 한국군 부대 장으로서 회의에 참석했던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증언이다.
며칠 뒤 부활절을 맞아 그는 전선에서 실종 된 미군 가족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저는 모든 부모님들이 모두 저와 같은 심정 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 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을 위해 서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말
한 벗이 곧 한국이 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밴프리트 미 8군 사령관은 한국을 벗이라고 생각했고, 그 벗을 위해 자기 자식을 희생시 킨 것이었다. 이런 강직
하기 짝이 없는 군인 앞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놀라운 부탁을 하였다.
1952년 12월, 대통령 당선자인 노르만디 의 영웅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한국 전 선을 살피기 위해 방한하여
8군사령부를 찾 은 것이었다. 8군과 한국군의 고위 장군들과 참모들이 모두 참석하고 전 세계의 기자들 이 지켜
보는 가운데 밴프리트 사령관이 전 선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끝내자 조용히 듣고 있던 차기 미국 대통령 드와이
트 아이 젠하워 당선자가 느닷없는 질문을 하였다.
“장군, 내 아들 존 아이젠하워 소령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얼마 안 있어 대통령에 취임할 당선자가 전투사령
관에 대한 첫 질 문 치고는 너무나 대통령답지 않은 사적인 질문이기도 했지만, 상대가 아들을 잃고도 꿈쩍하지
않은 밴프리트였기에 모두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 는 상황이었다. “아이젠하워 소령은
전방의 미 제3사단 정보처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라고 밴프리트 장군이 사무적으로 짤막하 게 대답하자 아이
젠하워는 그야말로 참석자 모두가 놀라 나자빠질 사적인 부탁을 했다.
“사령관, 내 아들을 후방부대로 배치시켜 주시오.” 참석자들이 모두 서로 두리번거리 면서 웅성거리고 밴프리트
사령관도 언짢은 표정으로 아이젠하워를 응시하면서 의아해 하자 당선자가 조용히 말했다.
“내 아들이 전투 중에 전사한다면 슬프지 만 나는 그것을 가문의 영예로 받아들일 것 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존 아
이젠하워 소령 이 포로가 된다면 적군은 분명히 미국 대통 령의 아들을 가지고 미국과 흥정을 하려 들 것입니다.
나는 결단코 그런 흥정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령관이 잘 알다 시피 미국 국민은 대통령의 아들이
적군의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는 것을 용납하지 않 고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외치며 나와 미국에게 적군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태를 원치 않습 니다. 그래서 나는 사령관이 즉시 내 아들
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주실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장면인 가! 순식간에 두리번 거
리면서 의아해 하던 분위기가 반전되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표정이 되고 곧이어 “즉각 조치하겠습 니다.
각하!”라는 밴프리트 장군의 우렁찬 목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고 이 자리에 참 석했던 미 2사단 72탱크 대대
의 대대장 T.R . Fehrenbach 중령이 전역 후 쓴 'This kin d of war(한국 전쟁)' 이라는 책에서 생생하 게 증언
하고 있다. (페렌바하는 전역 후 유 명한 역사 저술가와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마지막 UN군 사령관인 마크 클라크 대장의 아들 클라크 대위도 금화지구의 저격능선에 서 중대장으로 싸우다가
세 번에 걸친 부상 으로 전역을 했으나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 망했다. 한국전에 참가한 미군 장성의 아들 들은 모
두 142명, 그 중 35명이 전사하였다 . 한국전에서의 미군 전사자는 모두 54,000 여명, 부상자는 10만 명이 넘었
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하여 사령관이 전사 하고 사단장이 포로가 되며 자기 자식들마 저 참전시켜 전사를 당하게
하는 장군들과, 남의 나라 전쟁에 54,000여 명의 전사자를 내고도 꿈쩍않는 국민을 둔 위대한 미국, 끔 찍히도 자
식들을 사랑하여 거대한 재산을 물려주려고 온갖 부정을 일삼던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과, 어떻게든 자식들을
군대 에 안 보내려고 갖은 수를 다 쓰는 벼슬깨나 하고 돈깨나 있다는 고위층 사람들, 무슨 수 를 써서라도 병역을
면제받으려고 온갖 꾀 를 다 쓰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인기를 누리고, 두 명의 소녀가 미군 작전 훈 련 중
에 사고로 죽었다고 미국 물러가라며 몇달 동안 촛불시위로 온 나라를 소란케 하 는 국민을 가진 한국.. 6.25 전쟁
기간 북한 검열상, 노동상. 검찰총장과 노동부장관에 해당하는 직위로 김일성정권의 전쟁지도부 역할을 수행한
김원봉이란 자를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군의 뿌리'이자 애국으로 연 결시키는 대통령을 가진 나라 과연 어느
나 라 아버지가 훌륭한 아버지이고 어느 국민 이 더 훌륭한 국민인가?
어느 나라 국민이 더 애국하는 국민인가?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를 미워하고 반대해 야 하며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에게 감사해 야 하는가? 은혜란 무엇이
고 신의와 도리가 무엇이며 애국이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입은 은혜를 갚고 신의와 도리 를 지키며 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애국 하고 있는가?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동포여!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 6. 25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과 연 몇명이나 될까? 대통령이나 장관들은 부 를 수 있을까? 60만 우리
국군은 부를 줄 아 는가?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이 못 부르는 것 은 너무도 당연하다. 부모도 선생님도 군대도 대
통령도 다 잊어버렸는데 누가 가르쳤 겠는가? 그러니 지금 우리 젊은 것들이 헷 갈려 은인과 원수를 분간 못하는
것이다.
이래서 한국 전쟁을 잊어버린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애국하는 길이 무엇 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