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 하는 장사
가슴으로 하는 장사
/ 송 민 경
차가운 새벽 공기를 밀치며 서둘러 목포행 KTX에 몸을 실었다. 미처 못 챙긴 아침 때문인지 어제 마신 폭탄 주 때문인지 간간히 위에서 용트림을 한다. 어쩌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정읍 땅에 발을 디뎠다.
출장길은 늘 마음이 분주하다. 바삐 다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났다. 배 고플 때도 됐으니 맛난 음식 맛보게 해주겠다고 뱃속을 달래면서 생면부지 마을에서 두리번거리며 식당을 찾았다. 반갑게 눈에 들어온 것은 한정식 집. 마치 고향집을 찾은 듯한 벅찬 마음으로 세련되지 않은 미닫이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몇 명이세요?”
주인 인 듯한 남자가 표정 없는 얼굴로 인원 수부터 확인했다.
“저 혼자인데요.”
“1인분은 안파는 데요”
순간 ‘헉!’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바야흐로 혼밥시대 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서 메뉴에 가정식 백반이라 쓰여 있는데 그것도 안 되냐고 되물었다. 게다가 아침도 안 먹고 왔더니 배가 고파서 찾아왔다는 후렴을 이어갔지만 남자는 매몰차게 못 박듯이 말했다.
“우린 1인분은 안팝니다.”
영혼 없이 들리는 레코드 판 같은 말소리만 냉랭히 내 귀에 꽂혔다. 굶주린 배를 안고 서훈함을 털어 놓고 안지도 못하고 서둘러 그곳을 나왔다. 퇴짜 맞은 묘한 기분을 안고 배를 채워 줄 식당을 찾았지만 마땅한 음식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한 끼 안 챙긴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라는 심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다음 갈 곳을 향해 돌아 서는데 ‘자연이래 쌍화탕’이라고 쓰인 찻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 하얀 플랜카드 사이에 ‘누룽지 드립니다’ 라고 쓰인 글씨가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찻집에서 누룽지를 준다니 신기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끓인 누룽지를 먹으면 뒤틀리는 속이 가라앉지 않을까 싶어서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그야말로 전에 들린 식당과는 영 딴판이다. 허리 숙여 인사하며 정중히 맞이하는 크지 않은 남자가 눈 앞에 서 있었다.
“저 죄송하지만 제가 속이 많이 아파서 그런데 누룽지 좀 먹을 수 있을까요?”
찻집에서 누룽지를 찾는 황당한 손님 앞에서 그는 전혀 당황함 없이 미소 가득한 얼굴로 대했다.
“그러세요. 손님. 저희가 끓여 드릴게요. 그런데 누룽지 값은 안 받습니다.”
“아니 왜요? 그러면 제가 넘 죄송하죠.”
“원래 우리는 찻집인데 누룽지는 대화하시며 집어 드시라고 서비스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끓여 드릴 태니 그냥 편히 드시고 쉬었다 가세요.”
와~ 이럴 수가 너무도 큰 감동이 밀려왔다. 손님도 별로 없는데 있는 메뉴도 혼자라고 안파는 이기적인 전 식당 주인과 달리 없는 메뉴도 손님 마음을 헤아려 끓여 주겠다는 찻집 주인을 만나니 상처 받았던 마음에 꽃이 피는 느낌이다. 똑 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다르다니.
잠시 기다리며 주변을 보니 찻집이라기보다 갤러리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벽에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꽃 그림이 숨 쉬듯 걸려있었고 홀 가운데는 옛날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둥근 난로가 따뜻한 열기로 주변을 온기로 데워주고 있었다. 학창시절 난로 위에 도시락을 수북이 얹어 놓아 덥히던 추억이 떠올라 마음은 한결 더 따뜻해져갔다. 몇 배 강한 열을 내 뿜는 전기 히터보다 석탄 난로나 나무 난로가 가끔 그리운 것은 조금은 불편하지만 우리의 정과 추억을 끌어 당겨 주는 느낌 때문이리라. 지난날을 더듬으며 열 손가락을 펴 난로의 온기를 온몸으로 받으니 안방 만큼이나 편안해졌다.
20분쯤 후 주인은 누룽지를 푹 끓여 쟁반에 정갈히 받쳐 직접 들고 나왔다.
“손님 죄송해요 여긴 찻집이라 냄새 때문에 김치가 없어서 김 가루를 가져왔어요. 괜찮으시겠어요?”
“황송하죠. 없는 메뉴 부탁한 것도 넘 죄송한데요”
다 먹어 갈쯤 다시 한 그릇을 더 드시라며 갖다 놓았다. 찻집이라 그릇이 작아 조금밖에 못 담았다는 말을 덧붙이며. 감사하게 너무도 잘 먹었다. 누룽지 때문인지 따뜻한 사랑 때문인지 편안해 진 위를 느끼며 누룽지 값을 꼭 드리고 싶다고 하자 그러면 배가 불러서 차를 마실 수 없으니 차를 싸주겠단다. 작은 쇼핑백에 3팩을 담은 쌍화차가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뭐가 이리 많냐고 하자 차 두봉지에 꾸미 한 봉지 넣었으니 집에 가서 잘 데워 꾸미 얻어 마시라며 친절히 안내까지 해주었다. 너무 고마웟다. 만원짜리 지폐를 건네주었더니 돈을 다 받으면 자신의 순수한 뜻이 희석된다며 굿이 찻값만 받겠다며 거스름 돈을 돌려주었다. 이익만을 쫏는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사업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업원이 컵을 깨뜨렸을 때 컵을 아까워 종업원을 꾸지람하면 장사꾼이고 어디 다친데 없니 하고 물으면 사업가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머문 자리를 소중히 생각하며 하루 스치는 인연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할 인연이라 생각하고, 오늘 대하는 사람이 남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라 생각한다면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따뜻해지리라. 나는 스치는 누군가에게 이런 진한 감동과 사랑을 나누어 준 적이 있던가?…….예기치 못한 곳에서 받은 작은 감동은 하루 종일 나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줬다. 소중한 큰 깨달음을 듬뿍 안고 행복한 마음으로 그곳을 나왔다. 밖에는 함박눈이 탐스럽게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일주일 후 다시 정읍으로 출장을 간 나는 서둘러 일을 마친 후 일부로 친구를 그 찻집으로 불렀다. 다시 가보고 싶었다. 이웃동네 사는 친구는 이미 그 찻집의 맛과 친절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오는 찻상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차가 나오기 전에 기다리며 까먹으라고 맛난 땅콩이 한 소꿉 나오더니 잠시 후 큰 찻상에 직접 달인 찐한 쌍화차에 떡볶이 꽂이구이가 4개 나오고 맛난 하우스 귤 2개에 구수한 누룽지 한 접시 그리고 볶은 알 땅콩이 접시 한가득 담겨 나오는 게 아닌가? 마치 오랜만에 친정에 온 딸을 위해 감춰두었던 맛있는 음식을 한소꾸럼 내오시는 엄마의 사랑 같이 따뜻 함과 진한 감동이 몰려왔다.
요즘 장사가 안 된다고 모두 난리다. 그런데 이곳은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인데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절대 비싸다 느끼지 않게 하는 찻상과 주인의 정성, 그리고 따뜻한 마음과 사랑때문이리라. 돈이 먼저가 아니고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정읍의 ‘자연이래 쌍화탕’집과 그 찻집을 운영하는 젊은 남자 사장님! 다시 가고 싶고 다시 만나고 싶은 아름다운 착한 가게 좋은 주인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새 올해도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2017년에는 나도 그 찻집 사람들처럼 스치는 인연일지라도 훈훈한 향기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또 하나의 진리가 줄을 긋는다. 어떤 이는 머리로 장사를 하지만 또 어떤 이는 가슴으로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장사를 하게 된다면 당연히 후자의 길을 따르리라.
첫댓글 미스코리아님! 화이팅!
역시~글은 내성적 성향의 사람이 잘 써요~부러워요~나도 좋은 작품을 위해 조용함을 유지해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