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나들이
언제 : 2020.8.11. 09시 ~ 18시 어디로 : 경주. 황성공원 ㅡ 첨성대 ㅡ 대릉원 ㅡ 경주향교 ㅡ 월정교 누가 : 물레방아 / 하기 어떻게 :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 기차를 타고 갔다.
무엇을 보았나 : 동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경주에 갔다. 황성공원에 맥문동 밭에서 놀다가 오찬을 하고 대릉원/첨성대/경주향교/월정교를 돌아보고 경주역에서 기차를 탔고 동대구역에 내렸다.
경주역에 내려 내가 타고 온 기차를 울산/부산 쪽으로 보내며 뒷모습을 오랫동안 응시하며 담았다.
경주 황성 공원 맥문동 밭
모두가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아름답다.
부산에서 왔을 법한 진사님이 대동한 모델인가 본데, 나도 슬쩍 사진에 담아 버렸다. -진사님曰 <왈> 여러 곳에 막 돌리지는 말아 달란다.
오늘 점심은 경주에서 제일 이름이 나있는 음식점에서 맛나게 했다.
[ 동부 사적지대 (사적 제161호) ] 신라의 여러 사적이 모여있는 곳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의 단위로 정한 것이다. 동서는 동궁과 월지부터 교동까지, 남북은 계림 북쪽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가 있는 곳까지가 동부 사적지대에 해당된다. 월성, 동궁과 월지, 첨성대, 계림 등이 각각 하나의 사적으로 지정 되었는데, 이들 유적 사이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지하 유적과 유물이 계속 출토되고 있다. 따라서 신라 도성의 중심지역을 보존하기 위해서 사적지를 연결하여 확대 지정한 것이다. 동부 사적지대인, 대릉원/ 첨성대/ 경주향교/ 월정교를 걸으며 사진을 담았다.
계림은 경주 김 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시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원래는 시림(始林)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鷄林)이라 하였다. 탈해왕 4년(60년)에 시림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하다고 하여 그곳에 가보니 금으로 된 조그마한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 울고 있었다고 한다. 왕은 즉시 시림으로 가서 궤짝을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그 아이에게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은 김 씨라 하였다. 이곳에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김알지 탄생에 대한 비(碑)가 남아있다.
길에는 관광객들이 저마다 어우러져 오고 가는 인파로 북적이고, 첨성대 앞에는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면서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첨성대를 빼놓고 계림을 말할 순 없다. 첨성대 주변 동부 사적지대는 공원이다. 드넓은 평야 곳곳에 꽃단지가 조성돼 있어 경주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첨성대] ㅡ 국보 제31호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고,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에 사다리를 놓고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별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측 결과에 다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워 보면 정치와도 깊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을 늦게라도 알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행복할 수 있다고 늘 앞장서 주는 물레방아 兄이 듬직하다.
고분의 뒤에 붙이는 명칭이 '릉'이면 주인이 알려진 왕릉이다. 내물왕릉/미추왕릉 같은 경우라 하겠다. '총'은 왕릉급 수준이나 주인을 알지 못하는 고분이다. 황남대총 같은 경우다. 이들은 서로 구분돼 불린다.
[내물왕 릉 ] ㅡ사적 제188호 내물왕은 김 씨로는 두 번째 왕위에 올랐으며 이후 김 씨 성에 의하여 독점적 왕위 계승이 이루어졌다. 왕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여러 차례 왜국의 침입을 물리치는 등 외교와 국방에 힘썼으며, 고대 국가의 체제를 확립했다. 내물왕릉의 형태는 흙을 올려 만든 원형봉토분으로서 봉분 밑둘레에 자연석이 드문드문 돌아가며 보이고 있어 둘레돌을 돌렸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내물왕릉 근처에는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경주향교와 밤에 보면 더욱 아름다운 첨성대등 다양한 문화제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볍게 산책하며 둘러보기 좋다. 아이들과 함께 간다면 신라 천년의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출처 : 시선 뉴스
계림(사적 19호) 입구에는 내물왕릉(사적 188호)으로 추정되는 능이 있다. 내물왕릉도 경주 삼릉처럼 철갑을 두른 호위무사들의 엄호를 받고 있다. 한겨울 찾은 삼릉의 소나무가 메말라 거칠고 역동적이었다면 한여름 이곳의 60여 그루 소나무는 폭염의 기세에도 불구하고 물기를 한껏 머금고 생기가 흘러넘치는 모습이다. 정원과도 같았던 계림에서, 언덕이나 구릉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유일하게 경사가 있는 곳이다.
내물왕릉 사이로 첨성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경주 향교] 경주 향교는 신라 신문왕 2년 (서기682)에 국학을 세운 후 오늘날까지 1340여 년간 유학을 진작하고 인재를 육성하여 지방 교육의 중심지로 이아왔다. 대성전은 지난 2011년 12월 7일 보물 제1727호로 지정받아 관리되고 있다.
계림과 붙은 경주향교와 경주 교동 최 씨 고택도 지나치면 안 되는 명소다.
향교 내(內)에 있는 우물
향교 내부에 있는 국궁 장 ( 활쏘기 사열대와 표적 위치가 보인다.) 국궁은 선사시대는 수렵용으로 사용하였으며 씨족이나 부족 사회에서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전쟁무기로 활용하였다.
경주향교 바로 옆 남천을 가로지르는 월정교의 화려함도 꼭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 야간 달빛과 어우러지는 풍광은 월정교를 경주 최고 야경 출사지로 만들었다. 월정교는 통일신라 시대 760년(경덕왕 19년)에 축조된 목조 다리로, 그동안 소실돼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10년 동안 복원해 올해 초 일반에 개방했다
계림과 붙은 경주 교동 최 씨(경주 최부자집) 고택도 지나치면 안 되는 명소다.
우리는 기차표를 예매, 집으로 가는 기차를 미리 알아두고는 시간에 맞춰 경주로 사진여행을 다녀왔다.
대구 국제공항에 착륙하려는 비행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졸았던 잠에서 깨어나 기차 창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담았다.
다시, 그리운 친구와 재회할 것 같은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동대구역 내에 붙었는 PR액자.)
내가 사는 이곳. Coloful DAEGU 라 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칼라풀하지 않은 것도 많이 있다. 2020. 8.11. 촬영 / 8.28. 편집 : 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