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0월 첫째주 토요일 새벽 4시 반에 Bruce와 그의 아버지 Don을 만나기 위해 몇일 전 첫 서리가 와서 차가워진 아침 공기를 가르며 highway #50을 따라 약속한 장소인 Bolton시로 올라갔다.
이번 사냥트립을 가기 위해 이른 봄부터 집사람의 승낙을 얻어내고 2주간 을 비워야하는 일터에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제일 어려운 조건들이 해결되어 8월부터 실질적 준비 작업에 들어갔고 우여곡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뒤로하고 마침내 800여 마일의 사냥길에 오르게 되였다. 지금 70~80 만불하는 집값이 그때에는 5~6만불 했으니까 1인당 1.200불씩 드는 비용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였다.
2주동안 먹을 양식, 실탄, 휘발류 등 공동으로 들어가는 비용이외에도 각자가 챙겨야하는 특별장비등 집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는 해결이 않되는 문제 가끔씩 심한 핀잔을 받아도 참아야 하는 인격수양을 엄청나게 강요당했던 기간이기도 했다.
가을 사냥은 북쪽으로부터 위도에 따라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규정이 까다로웠고 사냥기간도 짧아졌다. 인디언들의 생업이 왕성한 먼 북쪽은 일년 내내 허가가 되였지만, 스포츠사냥은 10월 2번째 주에서 3주동안 허가가 되여 있었다. 기러기, 사슴, 꿩 등 작은 Game License 와 곰, 무스·moose를 잡을 수 있는 Big Game License 중 하나를 선택 할 수 있고 총을 휴대하는 것은 자유이나 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면허가 있어야 하는 자동차 면허제도와 같은 것이였다. 산림청이 배부하는 지침서를 잘 읽고 안전수칙과 총을 다루는 기술 지식을 습득해서 전체 150 선다형 시험문제중 4개 이상 틀리면 사정없이 탈락시켰다. 또 총을 분해 재결합하는 실기, 총을 들고 총구를 사람에게서 멀리 하고 장애물을 넘는 실기등 매우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했다. 생명을 다루워야하는 위험 때문에 엄격하게 치루워졌다. 34개월의 군생활 동안 총기를 다루며 익숙해져 있었는데 총을쏴도 된다는 면허를 받아들고 아이러니함을 느끼며 남의 나라법이 익숙하지 않는 이질감을 통감했다. 자국의 국민에게 열어 놓은 사냥기간이 일주일 일찍 시작되며 두 번째 주부터 미국등 외국인에게 문을 열어 놓았다. 자국민에게 자긍심을 주려는 정치적 제스쳐이지만 나와 남을 갈라놓으려는 깊은 차별의식이 두껍게 깔려있는 정치제도의 표상이다. 또 한 정부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상대정부도 똑같은 대우로 맞서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웃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양쪽 국민들의 행복지수에 영향이 크다. 일주일 동안 총소리로 사냥구역을 가득 메우고 난 후 외국인들이 성공해서 사냥감을 싣고 국경을 넘어갈 수 있는 숫자가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우리의 일행중 마지막으로 북쪽에 사는 Ken의 집으로 가는 도중 길을 잃고 조금 방황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언덕위에 올라 앉아있는 그의 집에 도착했다. 붉은 황토가 섞인 마당이 반은 집인 4각형의 비교적 큰집이였다. 성처럼 들어가는 입구에 문이 있고 온통 벽으로 둘러쳐진 독일 사람이 아니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 수도원 같은 집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커먼 긴 머리가 급하게 쏟아져 내려 손님의 오른쪽 머리 위로 덮칠 것 같아 웃음과 공포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켄이 잡은 모든 moose 중에서 가장 컷던 1600 파운드 이상 무게가 나갔다고 했다. 집안에서 4각형의 정원이 그 크기로 훤하게 뚫린 하늘이 막 붉어져 오는 햇살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고 크게 자란 관상목, 시들어 버린 꽃나무들이 여름 한철의 영광스럽던 시절을 연상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이런 집구조는 처음이였으며 Ken은 40대 후반 아니면 50대 초로 보였고 건설회사의 Foremam 으로 일하고 있었다.
Bruce 와 Don은 Norway에서 온 이민자였고 Don은 60세를 넘기지 않았나 싶었고 Gas Station 경영한다고 했다. Ken과 Don은 그당시 20여 년동안 moose 사냥을 함께 다녔던 절친한 관계였다. Bruce는 내 친구 가게에 캐슈 땅콩등 다른 넛트 종류를 공급해주는 회사의 배달원겸 지배인 자리를 겸하고 있던, 나보다 4살 정도 젊게 차이간 나는 29세 정도였다. 그의 부인 Lynn Schumacher 라고 온타리오 주에서 유명한 화가며 소나무의 껍질이 기왓장만하게 튀어나올것 같은 자연의 생생한 풍경들을 입체적으로 나타낸, 대상(大償)을 받은 그림들이 수없이 걸려 있는 새로 지은 교외의 연립주택에서 천방지축인 두 어린 딸을 기르며 살고 있었다. 고르지 않은 이를 입속 가득히 보여주며 손님을 즐겁게 해줄려는 큰 행동이 방문객을 감동시켰다. 그러면서 한번은 뜻밖의 시아버지 Don의 방문을 받자 “저 미련한 영감쟁이 또 왔구먼”하고 반기지 않는 말투와 집에도 들여 놓지 않고 쫒아보내는 행동으로 나를 경악과 혼란으로 무안하게 만들었던 기억도 지워지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예의범절에 익숙한 문화만 알고있던 그 당시 이러고도 정치와 경제가 잘 지탱되는 서구 문명이 이상했으며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4 Wheel Drive 장치가 되어 있는 1톤 밴 트럭에 모든 것을 다시 점검하고 100%의 확신이 서자 약 34시간의 긴 장정에 올랐다. 새벽 선잠을 깨고 흥분했던 탓인지 써드베리(Sudberry)까지 가는 4시간 동안 뒷 좌석에 쭈그리고 앉아 흔들리는 자동차의 리듬에 맞추어 고개를 쉴 사이 없이 떨구면서 수차례 시달렸다. 전세계 아연의 30% 이상을 공급하는 INCO MINING CO.가 있는 곳이다. 싸늘한 햇살 사막처럼 풀 한 포기 볼 수 없는 외계의 별속에서만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되는 난폭하게 패이고 쌓아놓은 흙더미만 오랫동안 눈안에 가득하게 들어왔다. 많은 외계인 영화는 이곳에서 촬영된다고하니 그 범위나 규모가 세계적인 모양이다. 이곳에서 품어내는 굴뚝을 통과한 연기와 수증기속의 산성 때문에 이곳 수십 마일 내의 호수속에 미생물이 없어짐으로 큰 고기도 모두 없어졌단다. 수목은 견디지 못하고 서있는 채로 말라버린다. 독일의 자랑이였던 산림이 똑같은 운명으로 그들의 자존심을 크게 흔들어 놓았던것과 같은 결과였다. 거기서부터 방향이 ThunderBay 쪽으로 거의 서쪽을 향해 달리는 길이 되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누군가 벌써 검은 곰 한 마리를 잡아서 자동차의 랙에 묶어 놓았는데 늘어진 혓바닥에 피가 맺혀있는데도 초점이 없는 눈이 나를 응시하는 것 같아 죽음의 섬짓함이 강하게 전해왔다. 그 음식점은 여러 모양으로 장비를 갖춘 사냥꾼으로 흥분과 기대감, 폭소로 가득차 있었다.
ThunderBay를 서쪽으로 한참지나는 Spanish Lake와 Snake Lake 싸인을 지나 겨우 표시된 길로 방향을 틀자마자 오르막 길을 올라가면서 4 Wheel Drive에 기어를 고정 하자 자동차의 중압감을 느꼈다. 얼마를 힘들게 올라가자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되였다. Ken과 Don에게는 낯이 익은 길이여서 노련한 운전 솜씨를 보여 주었지만 2차선의 좁은 길에 저 밑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쫒아오는 좁은 강물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상상도 해보며 몸의 작은 털까지 움찔거리는 아찔함도 잊을 수 없다. 맘모스가 휘젖고 다닌 후 방치 되였음직한 태고의 냄새가 가득한 자연 그대로의 풍경 좋은 벌판이 기울어지는 햇살에 졸고 있었다. 이상스럽게 큰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 속에 푸른 비늘을 번쩍이며 비상할 준비를 차리는 용이 금방 이라도 뛰어 나올 것 같은 기괴함이 몸속의 세포를 자극시켰다. 햇볕이 높은 나뭇잎에 닿을 무렵 길옆에 큰 글씨로 “이곳을 지나 앞으로 100마일 까지는 Gas를 구입할 수 없으니 만반의 준비를 하시오” 라는 경고문이 사라지자 제법 형태를 갖춘 집과 거기에 딸린 Gas Station이 나왔다. 우리는 5개론 짜리 스페어 통에다 10개나 채워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 먼거리 이웃도 없이 아이들의 교육, 쇼핑은 어떻게 하며 사는지 앞으로 옆으로 뒤를 유심히 봐도 흔한 얼굴에 그 흔한 싸이즈의 백인이 없다. 넘어가는 노을에 차거운 외로움에 익숙한 그들을 뒤로하고 밤새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Ken과 Don이 번갈아가며 운전했고 조그마한 체구의 동양인에게는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들이 쉴새없이 이어가는 대화에 때로는 끼어들고 때로는 무관심을 보이며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별들의 잔치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저렇게 많은 별이 있었는지 왜 전엔 몰랐는지 모두가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처럼 느껴졌고 또 그런 불가사의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이젠 흥분과 기대감도 터덜거리는 차속의 무거운 공기속에 엄습해오는 비몽사몽(非夢似夢)의 달콤한 잠속에 잠겨버렸다.
밤새도록 쭈그리고 앉아 있던 자세가 익숙해졌는지 허리를 펴기도 거북스러웠다. 정오쯤 되였는가 보다.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방금 들어온 길이 골목처럼 느껴지는 곳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챙겨 Ken과 Don이 상의하는 동안 Bruce와 나는 작은 Ice Box를 내려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꺼내 요기할 준비를 했다. 이동용 테이블을 펴서 정성을 한 껏 들인 식사를 하고 주위를 살펴 보았다. 미국의 Edy Furniture 회사에 20년 동안 벌목을 할 수 있도록 임대를 한 지역이여서 목재를 실어 나르기 위한 길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그 길을 이용해서 그 임대지역에 인접한 Rice Lake라는 거대한 호수로 찾아 갈려는 모양이였다. 점심을 마친 후 굳어진 사지를 맛사지해서 편 후 다시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캐나다 정부는 그 당시 대영제국의 북쪽 관할볍령인 British Northern Acts 로 다스려지는 영연방이였고 영국여왕이 소유한 정부 땅의 모든 지역에 접근 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을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목적지인 그 호수까지 도로가 놓여 있었다. 단 보수를 안한 탓으로 홍수와 눈 등으로 망가져서 물에 잠겨 있는 부분이 많았고 자동차로 호수에서 3마일 전까지 밖에는 갈 수가 없었다.
Ken과 Don은 그 해 Sports Show에서 구입한 Buggy라고 부르는 프라스틱 화이버로 만든 소의 구유 모형처럼 깊게 파진 몸체 밑에 오토바이 엔진을 사용한 한쪽에 3개의 작은 타이어를 6개를 장착 화성에 도착한 우주선 모형 같았고 평지에서 장정 2사람과 1,500파운드의 짐을 운반할 수 있고, 밑이 막혀있기 때문에 물속에서도 운행이 가능해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들어가고 있는 길은 몇 년동안 방치되어 있어 잡초와 물 웅덩이로 엉망이란 말이 어울리는 상태였다. 나무를 베어 깊은 골은 돌과 함께 메워 Buggy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5,000 파운드의 짐을 옮기기 위해 수차례 왕복운행을 하는 동안 나와 Bruce는 호수가의 가장 적합한 곳을 찾아 텐트를 세우고 부역용으로 쓰기 위해 옆의 나무와 나무사이를 엮어 하늘을 가리는 채알을 쳐 놓았다. Bruce는 이 여행중 식사 책임을 맡았고 막 터질 것같이 불안한 큰 배를 마음껏 흔들어대며 웃었다. 잘 먹어야 된다면서 스테이크, 소세지, 베이콘, Lamb Chop 등 그의 배를 더 튀어 나오게 할 음식만 쇼핑해서 몇개의 얼음 박스에 챙겨왔다. 자타가 자랑할 만큼 음식 솜씨는 어느 주방장 못지 않았다. 마음대로 저렇게 뛰어나온 배 아직 30도 안되었는데 자기배가 큰 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저 천진난만한 너털웃음 옆에만 있어도 즐거웠다. 멀리 호수끝에 보이는 섬위와 우리 앞에 공룡의 등처럼 누워있는 섬. 우렁찬 나무들이 우리의 행동을 점검하는 동안 나무끝부분에 매달려 살랑이며 부른 바람에 반사되는 백양나무 잎새가 눈부신 빛을 사방으로 뿌리며 절정에 오른 가을 색깔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낮에 지나온 그 계곡 사이를 비켜가는 길에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가을의 장엄하고 웅장한 색깔의 전시장. 막 모퉁이를 지나 나올때 숨박꼭질에서 뛰어나온 우람하고 넓은 산에 아직도 초록을 포기하지 않는 색깔속에 노랑과 빨강의 엷고 뜨거운 강함이 배합되는 거대한 스크린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전해져 오는 감격스러운 가을의 마력에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채색된 새깔도 그랬지만 그 지형의 특이함이 하늘의 손이 아니고는 흉내도 낼 수 없는 모든 것이 확대되어 신비하고 감명스러움을 맛보게 했다. 생명을 낳고 길렀던 대지. 마지막으로 토해내는 진하게 슬픈 색깔 속으로 어쩌다 찾아온 시간의 유랑자. 뚫어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푸른 하늘의 의미를 해야리고 있었는지 밤 9시를 넘겨 Ken과 Don은 마지막으로 떠난 짐나르기에서 돌아오지 않앗는데 Don이 와서 Bruce를 데리고 짐속에서 무엇을 찾아들고 가버렸다. 무리하게 짐을 운반하는 통에 액슬(Axle)이 부러져 버려 수리를 해야 되였다. 텐트 밖에 켜 놓은 뿌연 램프불에 식은 땀이 범벅이되어 그들이 돌아온 것은 자정이 훨신 넘어서였다. 기계를 항상 다루고 기계문명의 손자들인 이들은 다른 곳에서 같은 굵기의 샤프트를 잘라 내어 Buggy를 고쳐 돌아왔다. 그들의 끈기, 임시응변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만일 그런일이 나에게 일어 났다면 하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잘 돌아가는 기계도 내손이 닿으면 서버리는데 내가 그들과 틀리다는 이질감이 더크게 느껴졌다.
넷이서 조르르 누워 램프를 텐트 포스트에 걸어 놓으니 매우 편안한 온도가 되면서 껴입은 내복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물론 탄약이 장전된 총을 각자 머리맡에 세워놓아 불시에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코고는 소리가 벌써 2~3중창으로 들렸다. 바람을 넣다 뺐다 하는 풀무같은 존재들이 지구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참견하고 망가뜨리는 괴물들인지 태초로부터 보호받는 지역에 들어와서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잠을 자는지 현재 내가 있다는 사실이 불가사의처럼 느끼며 달콤한 수마에 정신을 잃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준비해온 소금으로 양치질을 하고 비누도 없이 찬 호수물에 세수를 했다. 숲속에 들어와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치약과 비누, 쉐이빙 로션, 담배 등 인간이 매일하는 행동을 절대로 삼가야했다. 수 마일에 걸쳐 사는 모든 짐승들이 이 냄새를 맡고 비상상태로 인간들의 행동을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만든다. 이 사냥트립에서 콧수염을 기르는 동기가 되었다.
Bruce의 푸짐한 식사로 산속인지 도시인지 착각이 드는 다음날 아침이 시작되었다. Bruce와 내가 한 팀이 되였고 Ken과 Don이 다른 팀이되어 이 호수로 흘러 들어오는 강줄기를 따라 각팀이 카누에 작은 모터를 갖추고 Taylor라는 강을 따라 올라갔다. 실제 사냥이 시작되기 하루 전에 도착해서 지역 정찰 및 어디에 무스가 있는지 혹시 강 주변에 누워 있는 놈을 쉽게 잡을 수 있는 기회도 엿보고 다음날의 계획에 많은 도움을 주는 트립이였다.
강폭은 4~5m, 어느 때는 더 좁아 우리의 카누가 뻗혀 나온 나뭇가지를 비켜 지나가는데 애를 먹는 곳도 있었다. 한시간쯤 올라 왔을 때 작은 Cascade (작은폭포)가 나타나서 카누를 앞뒤로 끌고 당기고 밀면서 올라와 약 1마일을 더 올라 왔을 때 길이 나타났고 그 길위에 moose가 쏟아 놓은 똥이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인간이 머물던 곳이라는 흔적이 보였고 오래된 냄비등 간단한 취사 도구를 여기저기 숨겨 놓은 것으로 미루어 인디언들이 여름을 지내고 갔구나하는 추측이 들었다. 그 옆에는 나무 그늘에 파란 하늘을 담뿍 담은 웅덩이가 괴괴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Bruce는 사진기 셔터를 열심히 터트려 부인의 그림소재 채집에 열을 올리는 동안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한 여름의 피서지로 정말 적합한 곳이구나 감탄이 나왔다. 먼 조상들의 생활 모습을 그려보는동안 해가 한참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였다. 내려오는 길은 흐르는 물살에 맡기기도하고 모터의 힘을 빌어 비교적 편한 여행이 되었다. 올라가는 길은 노만 젓고 올라갔기 때문에 무척 힘이 들었다. 그날 저녁 온몸에서 열이 나고 그동안 나태했던 근육들이 열에 시달리며 초떡이 되었다. 훈련소의 추억은 너무 쉬워보였던 고달픔이였다. 그런데도 희망찬 미소들이 텐트 밖으로 넘쳐 흘렀다.
두 번째날 밤 12시부터 사냥이 사작되는 날이다.
소금을 뿌린 듯 쏘는 눈을 비비며 새벽 4시에 일어나 카누 두대로 나눠타고 낮에 정해 놓은 장소로 노를 저어 북쪽으로 올라갔다. 해가 뜨기 전에 각자가 맡아야 할 지형을 확인한 후 500~600 meter의 거리에 위치한 섬으로 모두 올라갔다. 새벽 4시 45분 바위를 더듬으며 꽤 높은 위치로 올라가서 물건너 시커먼 숲을 향해 암내가 물씬 풍기는 “음매”소리를 육성으로 또는 L자형으로 구불어진 긴 혼(Horm)을 불면서 이 섬에 숫컷이 그리워 몸살을 앓고 있다는 메시지로 별들이 하얗게 하늘을 도배한 차거운 가을 새벽을 뒤흔들어 놓았다. 거의 한 시간동안이나 4~5분 간격을 두어가며 불던 고각을 멈추고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갔다.
섬을 향해 들어올 수 있는 길 어떤 포지션에서 쏠 것인가 완벽하게 짜여진 시나리오를 이제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기며 뛰는 가슴을 점검해 보아야 했다. 나에게는 가장 후진 곳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추측되는 곳을 커버 하도록 배려가 된 물이 찰랑찰랑 부딪치는 적은 바위 위로 정해져 있었다. 뼈속이 땡기는 졸음, 냉기, 전혀 익숙치 않은 불안감, 기대감. 그때의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갑갑하다. 그 바위 위에 웅크린 한줌의 고기덩이 그 물속에 빠지면 3분도 못 넘길 허약한 인간 지성과 감성으로 그 정지된 시간의 고요속에 어떤 죽음을 예견하고 기다리며 살기에 불을 태우고 있었다. 쉴 사이 없이 줄을 긋고 도망가는 별똥. 낮게 내려 앉은 까만 하늘. 전혀 빈자리를 용서치않는 식어가는 별 빛속에 이 드라마는 일어난 것인가. 별 빛위에 땅속에서 올라오는 먼동이 겹칠 무렵 망원경으로 호수물을 멈추게한 나무들의 정열에 맞춰보니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무스(moose)의 큰 뿔이 전방의 섬을 응시하며 날이 밝아지기를 초조히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거짓으로 꾸민 고각의 “음매”소리를 듣고 저 큰 짐승들이 어둠을 헤치고 물에 잠긴 수목까지 나와 암놈을 찾아나선 시커먼 위용. 그들은 한시간 후에 벌어질 죽음의 드라마를 깨달았다 해도 지금처럼 위풍당당하게 서있을 놈들이였다. 사랑은 목숨보다 값어치가 있고 세상을 다주어도 아깝지 않은가보다. 매일 이곳에 나와 풀을 뜯고 자란 저들은 이곳의 지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으며 앞 섬에서 부르짖는 뼈가 녹을듯한 교태의 울부짖음. 먼동이 환해질 때까지 참아내기에 한계를 느끼는 모양이다. 결국 섬에 올라가면 함께가는 경쟁자들과 사투를 벌려야 하는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큰 콧김을 내뿜으며 특이한 몸짓으로 상대방에게 경고를 주는 모양이였다.
7시 50분 태양이 분홍색을 더해 주위를 물들이고 있을 때 투우장을 뛰어다니는 용맹스러운 자태를 숲에서 밀어내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두 마리의 moose. 40여 메타의 간격을 두고 한발 두발 조심스럽게 시간을 재면서 호수로 들어왔다. 그들은 멈춤이 없이 선두의 놈이 얼굴만 보이며 가라 앉을 때 해는 급한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 4사람을 극도로 긴장시키는 순간의 끝에 붕하는 모터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였다. moose들이 저렇게 조심성을 보이고 멈칫거리는 이유를 알게 된것이다. 두 사람이 탄 작은 배가 초속력으로 달려들었다. 뜻밖의 사건으로 누구도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선두에 섰던 moose가 큰 몸을 잽싸게 둘려 나온 길로 도망쳤다. 그 순간 4개의 총구에서 불을 뿜으며 도망가는 동물에 총알을 보냈다. 정중을 시켰는지 본인 이외는 알 수 없었다. 그 때 카누에서 Ken이 몸을 일으키며 섬과 moose 사이에 끼어든 그 배 위에다 사정없이 두발을 갈겼다. 두 사람은 여행사에서 주선한 사냥 팩케지를 수 천불씩 지불하고 비행기로 전날 이지역에 들어온 사람들이였다. 아침 일찍서부터 누비고 혹시 눈먼 moose를 만날까 해서 우리가 몇시간을 달래 겨우 물속으로 유도한 것을 멀리서 망원경으로 발견하자 전속력으로 쫒아온 것이다. 우리의 존재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런 변이 생겼지만 1년 동안 준비와 지역 선택등 꼼꼼하게 세운 결과로 성공을 눈앞에 둔 고진감래의 찬란한 실상이 부서지는 순간이였다. 미안하다는 소리를 약을 쓰듯 내뱉고 오던 속력보다 더 빨리 그 자리를 떴다, 그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실탄의 소름끼치게 차거운 금속성. 지금도 소름이 돋혀있는 채로 기억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moose가 총에 혹시 맞았을까 핏자국이라도 발견하려고 근방을 살피느라 다음 한시간을 허비하고 일단 캠프로 돌아왔다. 짐승을 꼭 잡고 말겠다는 야무진 포부나 결심이 없었던 나는 이 모든 해프닝이 마냥 즐거웠지만 한숨을 깊게 내쉬는 Ken과 저 노인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초상난 집마냥 모든 것이 내려 앉은 무거운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둘이는 텐트에 마주앉아 하루종일 이야기 하면서 시간을 읽고 있는 듯 했고 또 다른 기회가 오기를 꾸미는 모양이였다.
나는 실탄이 성냥 끝만한 총알을 쏘는 구경 22. 카메라를 울러메고 들어오던 처음 길로 나가 보았다. 들어올 때 길옆에 무수히 날아 오르던 패트리지를 잡기위해서다. 비둘기의 한배 반 정도의 크기로 꼬리를 부챗살처럼 펴고 푸른기가 돋는 잿색깔의 새인데 놀라움을 표시할 때 몇 초동안 머리를 세워 주위를 관찰하는 동안 머리를 정조준 해서 잡기 쉬웠다. 훈련소에서 1등 사수 노릇도 했으니 패트리지 한테는 그것이 불행의 원인이 되었다.
얇은 모시주머니에 손가락을 넣어 가죽을 베껴 안에서 밖으로 뒤집는 모션을 쓰면 머리, 내장, 털이 한뭉치로 변할 때 떼어 내어, 몸통만 남으면 긴 철사에 꽂아 허리에 차면 되었다. 그것도 싫증이 나서 가지고온 오리 모형의 Decoy를 호수에 몇 개 띄워 놓고 총포상에서 구입한 오리소리를 내는 교각으로 흰구름이 휘젓고 지나가는 파란 하늘에다 연방 숨이 차도록 불어댔다. 반시간이 지날 무렵 바람 소리를 휙휙 내며 한 떼의 청동오리가 머리위로 지나갔다. 잠시후에는 Canadian Geese들이 떼를 지어 날아 왔다. 두어 바퀴돌고 나서 “야 무서워할 것 없어 내려 앉자구” 하는 소리처럼 왁자지껄하며 띄어 놓은 Decoy 옆으로 내려앉았다. 노련한 사냥꾼이 아닌 조심성 없는 동작으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두어 놈이 경보용 소리를 지르자 몇 놈이 푸다닥 공중으로 솟아 오를 때 훈련에 훈련을 쌓은 일심동체의 비상이 이루워질 때 놓칠세라 가장 틈이 없는 무리를 향해 실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쏘아 댔다. 몇 마리인지 철벅거리며 수면으로 떨어지자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치명상을 입지 않은 놈은 힘이 붙어있을 때까지 도망갔고 겨우 두 마리만 건져 낼 수 있었다. 가는 철사에 패트리지와 큰 오리 두 마리를 바지 양 옆에 차고 의기 양양하게 캠프로 돌아왔더니 모두 반기면서 시름에서 깨어나 전처럼 활기에 차있었고 Bruce는 호수에서 20여 파운드의 파이크 두 마리를 잡아 부엌 나무에 걸어놓아 북어처럼 말라가고 있는 가운데 식사준비에 열중이였다.
저녁을 먹은 후 둥그렇게 앉아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잡담하는 재미도 흥겨웠고 낮에 잡아온 새를 주머니 칼로 살을 도려내어 가는 나뭇가지에 꼬여 불에 구워먹는 재미도 일품이였다. 기러기는 질기게 붙은 기름진 껍질을 떼어 내면 장밋빛 빨간 살이 들어나며 패트리지 보다 구운 맛이 더 나았다.
Ken이 자기 냉장 복스 속에서 굵은 쏘세지를 들고 나와 모두에게 한 조각씩 떼어주었는데 작년에 잡은 moose로 손수 만들었다는데 맛이 매우 좋았다. 매년 행사처럼 moose 고기 쏘세지를 만들어 즐기는 이야기로 한참을 떠들며 보냈다. 깜깜한 숲속에서 캥캥거리는 짐승소리가 나서 주위를 돌러 보면 불빛에 반짝이는 짐승들의 눈이 하늘의 별처럼 수놓아져 있고 우리가 모닥불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나무 숲속에서 우리를 관찰하며 무슨 얘기인지 열중하고 있는 듯 했다. 1930~50년사이 갑자기 불어난 사슴과 moose의 증가로 늑대의 인구도 따라서 크게 불어났다. 그후 정부는 이들이 가축에 피해를 입히기 시작하자 많은 덧과 독약, 사냥꾼을 고용. 이들의 숫자를 줄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 그 후손들은 우리에게 접근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우리의 부엌에서 흘러 나오는 냄새로 군침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저들의 반짝이는 눈초리가 무섭지 않다. 내가 만일 혼자 이 짓을 하고 있었다면 저들은 내 몸에 붙어 있는 두려움을 냄새 맡고 숲속에서 나와 내 주위를 어슬렁 거릴게다. 서로 맞추며 기회가 잡히면 순식간에 덮쳐올테지만 지금 우리 네사람의 두려움을 모르고 희희낙락거림을 보이지 않는 금으로 저들을 못 넘어 오게 하는 위력으로 사방을 제앞하고 있었다. 인간이 들고운 음식 냄새는 저들을 황홀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은 구름 끼고 바람이 세게불었다.
Ken과 Don이 한 팀이 되어 아침식사 후 어디론가 가버렸고 나와 Bruce는 바람이 몹시 부는 북쪽으로 바로 이틀전 올라갔던 섬으로 가서 그를 떨궈 놓고 나는 전날의 위치로 와서 망원경, 사진기, 총을 배에서 꺼내들고 같은 바위로 올라갔다. 앞의 섬에서 Bruce가 부는 교각에서 흘러 나오는 달콤하고 멜랑꼴리한 암 moose의 외로운 소리가 세차게 부는 바람을 따라 멀리서 또는 가깝게 들려왔다. 낙엽은 뿌려진 종이조각처럼 어지럽게 공간을 메우며 흩어져 갔다. 오후 2시가 되자 Bruce는 자기를 데리러 오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바람이 너무 세기 때문에 카누를 띄울 수가 없었다. 그의 큰 몸집은 음식이 그리워오는 모양이였다. 그립다 못해 이제는 몸이 오그라 드는 공복을 견디기 어렵게 되자 나한테 곰살곱게 굴던 그가 소리를 지르며 발광하는 모습이 물 건너로 보였다. 이 강풍에 갈 수 없으니 기다리라고 만류했으나 이제 총을 쏘겠다고 위협해왔다. 주위에 혹시 돌이라도 있을가하고 둘러봤지만 내 힘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물속 깊이 가라앉은 것 말고는 하나도 없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심하고 카누를 젖고 앞으로 나갈려해도 제자리도 지킬 수가 없았다. 엔진을 걸어서 몸의 무게를 될 수록 배 안쪽에 두고 방향키를 한손으로 뻗혀 방향을 컨트롤 할려니 배가 빙그르 돌아 버렸다. 어찌 어찌해서 40~50 메타쯤 왔을 때 급하게 오던 바람이 들린 배의 앞부분을 품안에 안고 곧장 들어올리며 뒤집어 놓았다. 처음 몇 초 동안은 실감이 나지 않고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면서 이런 일도 일어 날 수 있구나 생각하면서 두꺼운 잠바와 속으로 꽉꽉 끼어 입은 옷 때문에 몇분간 부력이 생겨서 달아나는 카누를 한손으로 붇들고 부자연스러운 수영을 했다. 바람은 세차게 높은 파도를 몰고 오며 뒤에서 미는 작용을 했지만 내 몸은 전혀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없었다. 몇 분후에 옷에 남아 있던 공기가 빠지면서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순간 이거 죽는구나 이제 '고 원재훈'이 되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천둥소리처럼 밀려왔다. 어릴적부터 산과 물에서 자란 덕분으로 물귀신처럼 자신이 있었던 수영실력은 있었으나 육지가 까마득히 멀리 보이니 무서움이 덮쳐왔다. 순간적으로 무거운 등산화. 비싸게 준 잠바. 허리에 찬 탐나는 칼 등 하나씩 벗어버릴까 생각하는 순간 만일 살아난다면 이 모든 것이 또 필요하지 않겠는가 옥신각신 갈피를 못잡다가 입은 대로 있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제 카누는 저 갈대로 가버리고 생명을 앞에 걸어 놓고 투지와 의지로 자연과의 대결을 벌리는 내 일생에서 가장 장엄한 몇 분이 전개되였다. 무거워진 옷자락 무거운 등산화로 마음대로 발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수영 실력이 전혀 속수 무책이였고 20~30 메타 육지와의 거리에서 Black-out이 되는 짧은 몇 초 동안 검은 장막이 눈에 펼쳐졌다. 아마도 차거운 물에 Hypothermia(低체온증)의 상태에 들어간 모양이였다. 내 이름을 목청이 터지게 불러 보며 여기서 포기 할 수 없다고 나 자신을 다그쳤다. 마지막 손에 닿을까 말까 하는 바위를 잡으려 해도 전혀 잡혀지지가 않았다. 정신은 맑았으나 손에 힘이 빠져 무엇을 움켜 잡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떠있는 몸을 밑으로 다리를 내려다보니 무언가 닿는 느낌이 왔다. 간신히 정말 이 경우에 정말 적합한 말. 사력을 다해 바위로 올라오는데 물을 잔뜩 마신 옷들의 무게로 몸이 지탱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아래턱이 윗 턱을 짤랑짤랑 치기 시작했다. 손으로 움켜쥐었다 놓으면 계속되었다. 순간적으로 옷을 벗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납덩이 처럼 느껴지는 무거운 옷을 하나씩 벗어서 팬츠까지 물을 짜내는 동안 짤랑거리는 턱을 아무리 멈추려해도 소용이 없었다. 쥐어짜던 옷을 놓고 두손으로 바쳐 잠시 붙들고 있어 보기로 하고 한 손을 머리에 얹고 다른 손으로 턱을 감싸다 놓는 즉시 짤랑거렸다. 몸의 구조에서 제일 많이 쓰는 턱이 이렇게 말을 안듣고 제멋대로 자제 할 수 없다는 실망감으로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이 짜증스러웠다.
대충 물을 짜낸 싸늘한 차거움이 뼈속까지 전해오는 옷을 다시 꼬여 입고 무거운 등산화를 다시 신고 끈을 매는데 이번엔 손이 말을 안들었다. 좁은 간격으로 장치가 되어있는 조여매는 단추에 끈을 집어 넣으려 해도 헛손질이 계속되었다. 어렸을 때 분기가 탱천하면 “으앙”소리내어 울고 싶은 총동을 참기란 쉽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텐트가 있으리라고 대충 짐작되는 곳으로 호수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정신도 돌아오고 주위가 선명하게 돌아 왔고 살아서 집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생겼다. 반시간이 넘게 내려가니까 멀리 Tent가 보였고 우선 짐보따리 속에서 타이레놀을 찾아 몇알을 입속으로 털어넣고 새옷으로 갈아 입고 아직도 깔려있는 채로 있는 닭털 침낭속으로 들어가서 우렁이처럼 몸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런 정황에서 잠이 온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였는지 깨어보니 모두 내 얼굴을 들여다 보며 살아있다는 것에 안심하면서 나의 미숙함 때문에 미안해 하는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Bruse는 배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3방의 공포를 쏴서 긴급사태의 신호를 보내어 pick-up되었다. 잡혀야 할 moose는 멀리 도망가버리고 생전 처음 낮설을 대륙의 밀림 지역으로 침범해 들어온 동양인의 목숨을 노리는 가는 눈을 번뜩이며 결정적인 순간의 공격을 기다리는 인디안들의 무서운 감시처럼 순진한 척 하는 자연의 속마음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비단결처럼 꼭꼭 짜여진 엄격한 자연의 법칙은 순간의 방심도 용서하지 않고 목숨을 요구하는 무서움에 전율할 것 같았다. 위로의 따뜻함, 위로의 힘, 위로의 아늑함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는지 처음으로 체험했던 날이기도 했다. 질타하거나 잘못과 미숙함을 경멸하는 징계하기 보다 작은 위로의 말이 생명을 살리고 용기와 힘을 주어 제 구실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중요함을 깨달은 날이기도 했다.
저녁식사 후 모닥불에 다시 둘러 앉아 낮의 일을 모두 잊고 잡담과 익살로 쏟아지는 별똥의 잔치 속에 커다란 기구를 타고 낮게 떠있는 우주속을 여행하는 기쁨으로 깊어지는 밤의 마력에 취해 버렸다. 맞은편 섬 위를 뒤덮는 큰 나무들의 실루엣이 하늘 가장자리를 보여주는 곳에 갑자기 짙은 파란 써치라이트를 비추며 옆에서 보면 씨거모양의 물체가 작은 소음도 없이 미끄러져 지나 갔다. 너무나 많은 비행 물체에 익숙한 도시인들이긴 했지만 이 시간 이런 곳에 이런 물체가 날라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정말 우연한 일은 아닐 듯 싶었고 누군가 “U.F.O 이구나 저들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거다”하고 말하니까 모두 순간적으로 그렇게 믿는 모양이였다. 하! 나도 U.F.O를 보고 말았구나 그 흥분을 가로채가는 어떤 두려움이 겹쳐있다. 이 우주 이 지구는 공유하는거다.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체가 거기 존재하는 공기를 마시며 공생하듯이 우주, 이 천체는 능력있는 생명체들이 함께 소유하는 것이구나. 우리의 능력이 커질 때 우리도 그들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지구의 자전으로 별자리의 이동을 느끼며 넓은 우주를 떠다니는 부력을 느낄 것 같은 명쾌한 밤이였다. 더욱이 먼 우주속에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어떤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상대가 존재한다면 우리 영혼 깊숙이 깔려 없어지지 않는 태고의 외로움을 일시에 날려 버릴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날은 이곳에 들어온지 6일째되는 날이였다. 전날의 사고로 인해 Bruce와 나는 텐트에 남아 빈둥거리며 각자의 생각대로 분주해 볼려고 노력했다. 나는 우리가 들어온 길로 다시 나가 다시 패트리지를 잡기 위해 햇볕이 아직도 포근하게 퍼붓는 오후를 만끽하면서 얼마쯤가니 청바지를 곱게 대려입은 젊은 부부가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들어오는 모습과 마주쳤다. 34시간의 여행끝에 지구의 끝쯤으로 여겼던 이런 곳에서 도시의 아파트에서 방금 내려온 빳빳하게 다려입은 청바지로 밝고 싱싱한 젊은이 모습. 어제밤에 보았던 U.F.O처럼 이질감이 물씬 전해왔다. 지난 몇 년간 이 젊은이들은 이곳이 하도 아름다워 이때쯤 찾아 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다시 높은 하늘에 닿을 듯한 몇 개씩 아직도 떨어지지 않고 있어 햇볓을 튕겨내는 잎사귀와 꽃뱀의 마술적인 색깔을 배합시켜 놓은 찬란한 단풍을 눈을 좁히고 음미 했다. 갑자기 머리위로 감미로운 전율을 보내오는 날개에서 일으키는 바람 소리에 깜짝놀라 바라보니 아주 까만 바탕에 목에 빨간 피를 두르고 노란 부리를 갖고 있는 새 한 마리가 30~40 meter 전방의 나무 줄거리에 사뿐이 내려 앉았다. 그리고 매우 민첩하고 경계심이 강한 몸짓에 고개만 조금이라도 돌리면 날라 갈 것같은 두려움을 주었다. 갖고 있던 카메라를 감히 눈높이로 올리지 못하고 얼어붙어 이 새의 거동을 뚫어져라 지켜보기 몇초. 나의 존재를 의식하고 나무 숲속으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강원도에서 한 때 서식했다는 크낙새가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고 강한 의문을 지금도 하고있다.
첫날 너무 많은 패트리지를 잡았는지 그날은 겨우 5마리를 잡아 Tent로 돌아오니 Bruce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Ken과 Don이 기여코 moose를 잡은 모양이라며 그들이 쏜 3방의 총성이 보내져 왔다고 했다. 우리는 카누를 북쪽으로 물을 가르며 몇일전의 바로 그 무대로 올라가 보니 두 사람은 우리의 도착을 열심히 기다리고 있었다. Ken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몸전체는 물속에서 자라나는 작은 나무와 풀속 사이에 시커먼 석탄 무덤처럼 누워서 넓은 뿔이 가는 나뭇가지와 구분되였다. 처음 가까이서 보는 이 거대한 1400 ~ 1500 파운드의 짐승. 높게 떠가는 구름을 올려다 보며 떠나간 영혼이 구름과 파란 하늘사이에 마지막 춤사위를 보여주는 것을 뻣뻣해진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먼곳에 눈을 고정시키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동안의 꿈과 같던 생명. 그 생명이 물어다 주는 살과 뼈가 자라서 자기도 모를 몸의 무게가 더해갔다. 그 살고 뼈를 먹겠다고 멀리서 들어온 또 다른 생명체에게 자기를 통째로 내어준채로 물속에 그냥 누워만 있었다.
Ken과 Don이 미리 준비해 놓은 긴 나무 두개를 이용해서 두개의 카누를 간격을 두고 묶어놓은 다음 세사람은 목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입고 물에 들어가고 제일 몸무게가 가벼운 내가 카누로 올라 갔다. 그들은 들고, 나는 장대로 배를 지랫목 삼아 눌러 물위로 그 짐승을 떠올리려고 용에 용을 썻으나 조금 들리다 말고 도로 물에 잠겼다. Don은 참다못해 나를 내려오라고 하더니 올라가서 팔에 어깨에 힘을 주고 누르니까 그 놈의 짐승, 승강기가 올라오듯 사쁜하게 들리는게 아닌가. 나는 까무라칠 뻔했다. 나는 장대에 배를 깔고 온몸으로 허공에 발을 구르며 눌러도 꿈쩍않던 놈이 이렇게 살아서 벌떡 일어나듯이 올라왔으니 참으로 신기했다. 저 늙어 허리까지 조금 굽은 노인네가 어디서 그런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었는지 지금도 생각만 하면 털이 으시시 일어난다. 이제 30이 막 넘어 힘을 주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제나 이제나 착각속에 살고 있는 갑다. 뻣뻣한 다리를 옆으로 누워 바깥쪽으로 향하게 카누에 뉘어 놓고 또 한쪽의 카누에는 네 사람이 서로 허리를 붙들고 서서 조그만 모터를 가동시켜 호수를 내려올 때 이마가 써늘해 오는 행복감이랄까 승리감같은 만족감으로 바람이 멎어 면경같은 호수위로 올때 그 기분대로 몇일이고 떠있고 싶었다. 아직 해기러기가 많이 남아 있어 단풍이 물들인 호수속에 꿈결같은 흐느낌이 몇날 몇일을 추적해서 마침내 먹이감을 마을로 드고 들어올 때 기뻐 행복해 하는 감정의 흐느낌 같은 것이 우리를 감쌓다. 캠프 앞에 와서 카누가 접근 할 수 있는데까지와서 moose를 내려 놓고 준비해온 도르레를 이용. 밀고 당길 때 겨우 10여 메타를 가서 밧줄이 연기를 푸석튀기며 끊어졌다. 넷이서 힘과 궁리를 모두 짜내어 마침내 머리에 뿔관을 쓰고 네 다리를 앞으로 끝까지 펴고 나무에 등을 대고 앉아 있는 모습까지 손을 보았다. 살아 있을 때는 한번도 이런 포즈를 상상도 못 해본 것을 죽어서 희한한 묘기를 보여주었다. 힘을 만회한 우리는 시간을 아끼면서 우선 목을 따서 배를 가르는데 이번 여행에 죽다가 살아난 영웅인 나한테 첫 칼을 꽂으라는 영광을 주었다. 사냥터의 불문율, 첫 발을 쏘아 마춘 사람에게 잘리운 목이 죽어진다. 이번에도 첫 발을 명중시킨 Ken에게 목이 주어질게다.
헌팅 스토어에서 산 약간 끝이 휘어진 값진 칼, 물에 빠져서 역사 이후로 영원히 사장될 뻔 했던 칼을 힘차게 뽑아 짧은 키를 발돋움해서 목털을 움켜잡고 힘껏 칼을 찔렀는데 튕길 듯이 칼끝을 반항하는 느낌을 받고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Bruce는 나의것보다 큰 것을 내주며 다시 한번 해보기를 권했다. 역시 좋은 칼이였나보다. 흠집을 내서 목 밑으로 내려 가르는데 땀 한방울이 이마에 열리기 시작하면서 팔의 힘이 빠지는 듯 했다. Ken이 거들면서 목줄기를 끊어버리자 모든 기관이 한꺼번에 밑으로 주저 앉아버리고 메스꺼운 냄새가 급하게 주변을 메꿨다. 동굴처럼 비어 있는 뱃속 밑으로 한 무더기가 된 내장속에 팔뚝만한 성기가 그 많은 것중에서도 큰 윤곽을 드러냈는데 매년 이 때쯤에 그 구실을 유감없이 발휘했어야 했는데 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나무 사이 높게 회를 묶어서 고기를 네 등분으로 매달아 놓아 피가 빠지게 하고 밤에 짐승들이 와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배려 였다. 모든 것을 끝 마치고 저녁을 먹은 후 모닥불에 둘러 앉았을 때는 흰눈이 살짝 내려 앉은 것 같이 하늘을 뒤덮은 별무리가 은하수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소곤대는 밤이였다.
몇일 전에 맞보던 낭패, 분노와 좌절감은 사라지고 뿌듯한 만족감과 성취감이 모닥불 주변을 메웠다. 오늘 오후 바람이 제법 말을 달리는 듯 질주하는 것을 등으로 맞으며 넓은 늪지대에 몇 그루 우뚝선 것 중에 하나를 골라 앉아서 지난 20여년을 함께 경험했던 사냥이야기로 도란도란 끝없는 추억에 젖어 있었다. 오후 2시 조금지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중단시키는 큰 얼굴이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등 뒤에서 깊은 숨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매일 일과처럼 이 늪으로 나와 물풀과 물속에서 자라는 나무 잎사귀를 먹으러 나왔다가 이상한 소리에 큰 호기심이 발동해서 또한 자기구역내에 무엇이 침입해 들어왔을까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을 이 moose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다. 긴 콧마루의 큰 얼굴을 나뭇가지 사이로 디미는 순간 양편이 함께 놀라고 당황하는 몇초의 순간은 뒤로 돌아서서 줄행랑을 치는 moose의 뒷편에 8방의 총알을 쏟아 부어 마침내 놈을 물속에 드러눕게 만들었다.moose라는 짐승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가 걸어온 길로 돌아가거나 도망하는 철두철미 확인된 길에서만 사는 우매한 고집으로 무장한 현명한 동물이다. 그의 현명함을 입증할려다 목숨을 잃은 것이다. 옆에 있는 숲속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면 충분히 목숨을 안 내놓아도 되었을 텐데 자기가 걸어 온 먼 늪지 끝으로 도망가다가 그만 잡히고 말았다. 고집 그것은 방어와 방패 노릇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위험한 폭탄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진리와 목숨, 고집과 목숨, 실과 바늘 같은 두개의 관계사이에서 생명은 수도 없는 역사와 이야기를 도출해 낸다. 맹수가 먹이를 잡는 순간 세상을 뒤덮는 긴장과 공포 후에 연기처럼 걷히듯이 평온과 안정이 수면처럼 되돌아 왔다. 우리 앞에 moose가 다시 나타난다 해도 인제 아무도 총을 갖으로 일어서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온 목적은 완전히 달성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우리는 긴장했던 몇일간의 스트레스를 풀며 낚시도 던져보고 카누를 타고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내년의 계획을 위하여 아침을 보냈다. 시간이 멀리 흘러버린 지금 그곳으로 다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곱게 단풍으로 치장한 호수주변의 숲과 숲으로 덮인 섬, 높이 나무 끝으로 가리워진 하늘 조각을 쉴사이 없이 흘러가는 구름. 잠시도 쉬지 않는 바람속에 뭇 새들이 사방으로 날으고 날라오고 높은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 잎사귀. 면경같은 호수. 때로는 바람에 등을 돌린 작고 큰 물결. 인간은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였다. 문명과 도시를 내몰린 인간이 없는 지구의 평온한 이곳 정말 낙원이였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한 후퇴작전이 큰 길로 나왔을 때 8시 반을 가리켰고 길어진 가을 밤은 깜깜했다. 도로 주변에는 수백명이 나와 Tent를 맞대고 길을 따라 한쪽으로 쳐놓고 큰 축제를 벌리고 있었다. 이때쯤 매년 모든 추수가 끝나고 흰 눈이 대지를 억압하기 전 마지막 가을 잔치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두어 차례 트럭을 세워 트레일러에 수북히 쌓인 moose고기를 자랑하며 함께 맥주를 얻어마시고 부러운 눈초리를 마음껏 즐겼다. 대낮처럼 밝혀놓은 어쩌다 차 한대가 지나가는 빈 하이웨이 주변에 술기운에 타오르는 구성진 노래가 미친 듯이 튕겨대는 기타소리에 군데 군데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인간들의 율동을 제압하고 있었다. 불빛에 반짝이는 금발머리 여인들이 손벽을 치며 깔깔 대며 박장대소하는 모습. 그 호숫가에서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인간들의 소음속에 나도 모르게 행복과 기쁨이 진하게 덮쳐왔다. 먼 옛날 커다란 보름달 밑에 고인돌을 세우고 춤을 추던 유전인자.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이런 축제를 벌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가 보다. 죽음의 손아귀에 잡혔다가 도망쳐나온 내 영혼. 인간의 축제에 제물로 바쳐지지 않고 살아돌아가는 보호 받은 승리자의 뿌듯한 기분으로 남으로 달리는 밴 트럭의 리듬에 눈을 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몸을 맡겼다.
▲ p.s : 미국으로 1994년에 내려와 플로리다, 다시 뉴저지로 옮겨 다니다가 slide로 간직했던 모든 자료가 Slide Machine과 함께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이 slide를 보았던 몇 십명의 기억속에 난 남아있다. 아쉬움과 이 글을 뒷받침해 줄 자료가 없음을 매우 죄송함을 금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