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신문 자연건강인 - 사난다의 명상칼럼 연재글>
요즈음은 마음 챙김이라든지 마음 치유라는 단어가 많이 퍼져 있는데, 명상과 치유의 첫 번째 출발점은 몸이다. 마음은 그다음이다. 먼저 몸에 귀를 기울인 뒤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다음이 감정이다. 대개는 순서가 잘못되었기에 명상에 깊이 들어가거나 그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데도 모두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내가 하는 액티브 명상에서 보면 몸과 마음 감정은 분리될 수 없는 전체이다.
달리 말하면 몸은 눈에 보이는 마음, 마음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몸이다. 우울증을 깊게 앓아 본 사람은 마음에서 오는 질병이 얼마나 몸을 약하게 하는지 경험했을 것이다. 오랜 몸의 질병을 앓게 되면 자신의 마음도 심약해 지고 마음 역시 건강하게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돌보아주는 가족들까지도 고통을 함께 겪게 된다. 이것은 몸과 마음이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고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몸을 살펴주고 사랑하고 몸과 친구가 될 때 마음도 더욱 건강하고 단단해진다.
그런데 살아 있음, 이것은 움직임을 동반한다. 생명 에너지란 움직인다는 뜻이고 멈춘다는 것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는 것과도 같다.
우울증을 심하게 겪는 한 친구가 움직임이 둔해지고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당연히 몸에 지방이 붙고 순환기 계통 호흡기 등이 약해지고 면역체계가 약화되어 당뇨약과 혈압 약을 복용하게 되었다고 하며 찾아왔다. 우울증을 고치려고 신경계 계통의 약을 먹고 다소간의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우선 낮에 햇볕을 쬐면서 걷기를 권했다. 걷는 동안은 그저 발바닥에 닿는 바스락 거리는 낙엽의 소리라든지, 보여 지는 가을 풍경을 느끼고, 발바닥이 땅을 누르는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계속 지켜보며 매일 걷기를 권했다. 힘이 들더라도 충분히 걸으라고 강조하고 사념이 올라올 때마다 다시 땅에 닿는 자신의 발을 느끼고, 보는 것과 순간순간 들려오는 소리를 알아차리는 것으로 돌아오라고 안내하였다.
마음의 상처로 혹은 우울감과 불안증으로 괴로운 날들을 보내다가도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산책을 하고 햇볕을 쬐고 싱그러운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들을 발견한다면 그 역시 무거운 마음의 짐들을 벗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먼저 몸을 지켜본 다음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런 것이 잘 되어간다면 그 다음엔 자신의 감정 세계를 지켜본다. 감정의 세계란 양면적이고 뿌리가 깊은 것이기에 몸과 마음보다 다루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쉬운 것을 먼저하고 어려운 것을 그 다음에 해 나가야 실패나 좌절이 없다.
불편한 증상을 없애려는 것보다는 먼저 자신이 하는 지금 순간의 일에 집중하고 즐기는 것, 불필요한 불안 등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약간의 명상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불안이 엄습하고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덜컥 겁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잠시만 눈을 감고 그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 지켜 볼 수 있다면 이내 사라지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명상을 해 본 경험이 있다면, 눈을 감고 내면으로 향해 가기도 전에 너무 많은 생각들, 불편함들, 눈을 감기 이전까지는 전혀 떠오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기억들이 여전히 내면에 가득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어린 시절 헤어졌던 친구, 억울했던 일들, 과거의 선생님들, 한 장의 사진이나, 상황들... 시장거리가 될 수도 있고, 오래 전 살았었던 집안의 풍경이나 돌아가신 가족들의 살아생전의 모습들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때때로 하나씩 둘씩 떠오르다가 그저 빠른 영사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선택하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이 화면처럼 돌아가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치솟는 슬픔과 눈물도 만나게 될 것이고, 알 수도 없는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들도 만날 수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끊임없이 올라오는 영화 같은 그림들이 올라왔는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이 보여지고 그것을 보고 있는 나가 있다는 것만 알 뿐 직접 소통을 할 수 없으니 막막한 느낌이 들어 상당히 힘들었었다. 마치 성장기에 어딘가 뚝 떨어지는 느낌의 꿈을 꾸는 가위눌림과 같이.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아련한 눈빛만 나타나, 지나간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 구석구석 박혀져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화해도 없이 그저 어물적 헤어진 친구부터 초등학교 5학년 때 얼굴에 사마귀만큼 큰 점이 있었던 선생님, 단짝으로 지냈던 앞자리 친구의 얼굴, 어느 한 시절 좋다고 마음 졸이며 설레이던 까까머리 첫사랑일지 몇 번째 짝사랑일지 모르는 오빠의 얼굴, 학창시절에 스친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여러 타인들, 먼저 돌아가신 가족들과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사람, 그저 그들의 눈빛만이 또렷이 보인다. 순간 이렇게 많은 이별이 있었구나. 하나의 알아차림이 올라온다.
그리고 암으로 투병하던 외삼촌의 앙상한 얼굴과 희고 맑은 눈빛. 발을 주물러 드리고 손목에 있던 목주를 손목에 걸어 드렸었는데 온전히 애도하지 못한 순간들까지...
젊은 시절 그의 호방함과 하얗게 치아를 드러내며 웃던 얼굴이 떠올라 나는 터져 오르는 봇물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다시 나의 죽음이 떠오른다. 슬픈 눈으로 딸아이가 나를 보고 있다. 그 눈을 보는 내가 있고 가슴이 아픈 슬픔이 올라온다. 그리고 삶이, 살아가는 것이, 참 별것도 없구나 싶은 한 마음이 올라온다.
그런 마음을 바라보게 될 때 슬픔으로 치닫는 마음이 사라지고 새로운 알아 차림들을 만난다. 죽음 앞에서도 그저 지금처럼 바라보기가 될 수 있다면 의식적으로 나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제 멋대로 춤추는 마음을 그저 바라보고 흐르도록 물꼬를 터 줄 수 있다면. 운명이 있다면, 운명에 맞는 인연 줄에 살면서 받아들이고, 무엇이 옳고, 그름에 대한 따짐이 없이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싶다.
명상 중에 어느 때는 순간순간 축복을 느끼고, 어느 때는 여지없이 겪어야 하는 다사다난함들과 번뇌와 그에 따르는 망상들로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는 짧거나 길거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침묵을 만나고 그 침묵이 그저 이어지길 바라는 한 마음이 일어나고 그런 마음을 지켜본다.
온전히 살지 못한 삶들이 무의식에 던져져서 켜켜이 쌓아진 것들은 어느 때라도 웅크리고 있다가 삶속으로 반영되어 나온다. 그것이 ‘나’라고 하는 세계를 만들어 낸다. 두려움의 경험들이 생기 있는 삶을 저편에 숨어 있도록 만든다. 깊은 무의식에 웅크리고 있는 어두운 삶의 한켜한켜 쌓여진 마음의 쓰레기들을 의식화해서 보고 내려 놓는 일. 명상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무의식의 깊은 골짜기를 지날 수 있을까?
몸과 마음, 감정의 세계를 정화하는 명상들은 있는 그대로와의 직면을 통해 정화되어 본래 자기의 면목, 당신 자신의 본래 아름다움과 순수를 만나게 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참된 앎을 통해 정말 원하는 것. 정말 필요로 하는 것. 정말 행복한 것 등 나를 나답게 살게 하면서 타인들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볼 수 있는 자각을 갖도록 도와준다. 먼저 몸과 친해지고 몸부터 시작하라. 명상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몸을 보살피는 아주 근본적인 치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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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 힘" 자연건강인 view (healthmedi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