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맹의 막내사위(4째)인 권만형의 재실과 그의 후손들의 무덤이 있는 관곡지입니다
강희맹은 명나라에 다녀오며 남경에서 연꽃씨를 가져와 사위인 권만형에게 심게 했지요
우리나라 연꽃의 시배지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관곡지는 가로 23m 세로 18.5m의 작은 못입니다
관곡지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 되여 있으나 개인 소유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관곡지입니다.관곡지는1463년(세조9)에 조성된 후에 한동안 관리부실로 황폐해 졌었으나
1844년(헌종10)에 안산군수로 부임한 권만형의 후손 권용정이 정비하고 6명의 연지기를 두어
관리한 덕에 후세까지 이여져 올수 있었습니다. 4년간 안산군수를 했던 권용정은 선정을 베풀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세불망비(1848)는 지금도 물왕저수지 인근에 있습니다
관곡지 뒤로 권씨 문중의 묘들이 보이네요.
관곡지 옆 시흥시에서 조성한 연꽃단지입니다.
때가 이른지 여긴 아직 황량합니다.
길 건너 산기슭엔 진달래 꽃이 피여 있는데 말이죠.
이곳에 있는 진주강씨 문중 산입니다.
아파트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있는 곳 입니다.
맨 우측 아래에 있는 강희안 선생의 묘입니다. 문인이며 화가였습니다. 강희맹 선생의 형입니다.
강희안 선생의 묘는 파주 장단면 민통선내에 있던것을 1987년 5월에 이곳으로 이장 했습니다.
재실과 새로 만든 신도비입니다.
묘역 가운데에 있는 강희맹 선생의 신도비입니다. 비각 속에 있습니다.
강희맹 선생의(1424~1483)의 묘 전경입니다. 전면과 측면에 계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강희맹선생의 묘 아래에 있는 후손 묘의 동자석입니다. 모양이 특이하네요. 두손이 보입니다.
강진창(姜晉昌)이란 분의 묘입니다.
부인 안씨와 합장한 강희맹 선생의 묘입니다.
강희맹 선생의 묘 앞의 동자석도 특별합니다 두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있습니다.
강희맹 선생의 묘표입니다.
강희맹 선생의 묘에서 올려다 보며 우측에 있는 묘역입니다. 제일위의 묘가 강선경의 묘입니다.
강희맹선생의 묘 위에는 고손자인 강극성의 묘가 있습니다. 강선경은 이분의 아들입니다.
강극성의 묘 후경입니다. 앞에 들어선 아파트가 시야를 가리네요.
왼쪽 묘역으로 건너갑니다.
이 동자석은 두손을 옷 속으로 넣어 잡고 있는 모양이네요.
강희맹 선생의 아들 강구손의 묘입니다. 강구손 선생은 우의정까지 지냈습니다.
강씨 문중 산의 묘엔 문인석이 아닌 동자석들을 세웠습니다.
동자석의 앞과 뒤의 모습입니다.
강씨 문중산 끝 떨어진 곳에 또다른 무덤이 있어 가보니 김성동 선생의 무덤이였습니다.
부평도호부 부사를 지낸 김성동도 강희맹의 사위입니다. 사후에 강씨 문중산을 준것 같네요
김성동은 김질의 아들입니다. 세조에게 단종 복위를 장인인 정창손과 함께 밀고한 그 김질요
김성동 선생의 묘 앞 문인석입니다. 새로 만들어 세운 문인석이 눈에 거슬립니다.
강구손 선생의 묘에서 본 재실입니다.
강구손 선생의 묘를 후손이 돌보고 있습니다.
강선경 선생의 묘 앞 동자석은 새로 만든듯 깨끗하네요.
강선경 선생의 묘비입니다. 새로 만들었습니다.
강선경의 묘에서 본 묘역입니다. 강선경은 강극성의 아들이고 강극성은 강희맹의 고손입니다
강구손은 강희맹의 아들이고 김성동은 강희맹의 사위입니다. 강희맹은 2남4녀를 두었습니다.
강희맹의 이모부는 세종대왕입니다. 심온의 두딸중 첫째딸은 세종에게 시집갔고 둘째딸은
강희맹의 부친인 강석덕에게 시집 왔습니다. 이숙번의 딸도 강순덕에게 시집 왔습니다.
강순덕은 강석덕의 동생으로 강희맹은 두살때 강순덕의 양자가 됐습니다.
넓은 묘역에서 단 한송이의 꽃을 올린 할미꽃을 만났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던 할미꽃이여서 참 반가웠습니다.
강희맹의 묘가 보이는 곳 입니다.
새로 세운 신도비입니다. 좌로부터 강희안,강희맹,강구손 순입니다.
사당입니다.
찾아가는길: 소사역 앞에서 63번버스
부천역 건너편에서 61번 버스 타고 관곡지(동아아파트)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