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월 9일, 목요일. 맑음.(말레이시아)
호텔 뒤에 있는 회교사원의 종소리와 경전 낭독 소리에 새벽이 열린다. 오늘은 투어 사무실에 맡겨 페낭 섬 투어를 하려고 했다. 우리 능력으로 찾아다니는 것도 더 좋을 것 같았다. 1일 투어비가 두당 27M$(8,100원)였다. 비용보다도 우리가 버스타고 물어가며 찾아보는 것도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가벼운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 아침 식사를 선택하는데 어려웠다. 힌두사원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종을 계속해서 쳐댄다. 이제 막 문을 연 인도인들이 경영하는 식당에 들어가 밥에 카레, 생선을 시켜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즐긴다기보다는 대우는 형편이다. 버스정류장에서 101번을 타고 종점 가까이의 시장(Item Village)까지 가서 내린다. 페낭 힐에 오르는 트램이 있는 곳까지 8번 버스를 갈아탄다. 페낭의 명물이라는 트램을 타러 간다. 사람이 붐비지는 않았다. 나이 많은 외국인 서너 명과 하얀 차도르를 쓴 젊은 아가시들이 전부다. 트램 이용료는 성인이 두당 4M$(1,200원). 트램에 올라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오전 9시 15분인데도 벌써 공기가 덥다. 낡은 선풍기인지 환풍기인지 모르는 것이 천장에서 돌아간다. 서서히 움직여 오르기 시작한다. 키 큰 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다. 경사도 제법 급하다. 5분 정도를 오른다. 위에서 내려오는 트램과 비켜가는 원형 기차 길이 되어있어 서로 비켜간다.
중간쯤 오르니 중간 역이 있어 내려서 옆에 대기해 있는 트램으로 갈아탄다. 또 내려오는 트램과 마주치자 비켜서 올라간다. 튼튼한 쇠줄이 트램을 끌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조절한다. 종착역 앞에 터널이 있다. 1922년이라고 설치한 연도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드디어 도착이다. 높이 692m이고 정상은 기온이 18도라고 책에 적혀 있지만 걷기에는 약간 덥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조지타운이 보인다. 말레이 육지와 페낭 섬을 연결하는 긴 다리도 눈에 들어온다. 내리 쬐는 태양 빛과 매연 비슷한 안개가 산 아래 멋진 광경을 흐리게 만들어 잔뜩 기대한 우리를 실망시켰다. 가이드 책에는 ‘넓은 머린 블루의 바다와 반도의 색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여기에 와야 비로소 동양의 진주를 실감한다.’라고 멋지게 표현해 놓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 같다. 산에는 산책로가 있고 길 따라 힌두 사원이 나타난다. 금색으로 지붕을 칠한 모스크도 만난다. 지금 사용하는 전철 전에 사용했던 나무로 만든 케이블카가 전시되어있다. 부레옥잠이 항아리 가득 피어있는 것이 보기 좋다. 각종 꽃들이 잘 가꾸어져 걷는 이가 심심치 않게 한다. 너무 덥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비상식량을 꺼내 먹었다. 여행 전에 같이 가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외국 음식을 잘 먹지 못할 때, 오지를 지나며 먹을 것이 없을 때, 여행하다가 먹을 대를 놓칠 대 등등, 대비해서 준비했다. 소시지, 초코볼, 과자, 육포 등을 봉지에 나누어서 준비한 것이다. 역시 먹을 때가 제일 신나는 것 같다. 다시 트램을 타고 내려왔다. 걷는 것 보다 타는 것이 역시 재미있다. 다시 버스 8번을 타고 극락사 앞에서 내렸다. 페낭 힐 기슭에 있으며 에어 이탐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말레이시아 최대의 불교사원으로 1890년에 건립했다. 아주 넓은 경내에 높이 30m의 7층 파고다가 있다. 절에 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서 야자수를 하나씩 먹고 올라갔다. 오르는 길은 시장 골목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늘지고 심심하지 않다. 옷가게와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똥 모양이 인상적이다. 어디에 쓰는지 궁금하다. 양 옆 가게를 보며 계속 올라간다. 거북이를 기르는 조그만 연못을 만난다. 연못 위로 다리가 있다. 사람들이 거북이 식량인 듯한 풀을 던져준다. 연못에 비해 거북이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징그럽게 많다. 연못을 돌아나오니 절 안이다. 원색 칠을 한 절은 재정상태가 좋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기둥은 청색, 주황색 칠한 구운 기와로 반짝인다. 절 안은 금빛과 붉은색, 노란색 청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다. 거대한 돌기둥은 용, 코끼리 모양이 멋지게 새겨져 있다.
입장료를 받는다. 1만개의 불상이 있다는 파고다로 갔다. 이 고장에서는 백만 불타의 안녕을 비는 파고라고 해서 인기가 높단다. 불상은 얄팍하게도 타일에 그려서 벽에 붙인 것이었다. 층마다 다른 모양이지만 성의 없이 타일로 붙인 것이 왠지 엉성하다. 층계를 오를수록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멋지고 시원했다. 천천히 왔던 길을 거꾸로해서 극락사를 나왔다. 시장을 빠져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코므타 빌딩아래 내렸다. 점심대가 되어 코므타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을 찾았다. 뷔페식이다. 밥에 감자, 두부, 생선 야채를 가져와서 먹었다. 상희는 유난히 파인애플을 많이 사 먹었다.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와서 202번을 타고 침석가불 사원으로 향했다. 오후 태양 볕은 정말 뜨겁다. 운전사에게 Sleeping Budha라고 얘기하고 내릴 곳을 알려달라고 했다. 조용한 주택가인데 한 무리의 관광객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우리도 내렸다. 길을 건너서 절 내에 들어섰다. 길이가 32m를 자랑하는 석가상이 금박으로 멋지게 장식되어 누워있다. 처음 이절은 태국인들을 위해 세워졌단다. 이제는 중국인들이 더 좋아하는 절이 되었단다. 와불 앞에는 조그만 불상이 금박으로 붙여져 있다. 사람들이 아픔 부위에 금박을 붙이면 병이 낫는다 해서 불상에 잔뜩 금박을 붙여놓았다.
와불 뒤에는 12개의 불상이 있다. 12간지 불상이다. 자기 디에 해당하는 불상 앞에서 돈을 넣고 빌면 복 받는다는 생각으로 신도들이 모인다. 와불 상 밑에는 죽은 신도들의 유골함이 가지런히 전시되어있는 납골당이다. 침석가불 사원을 나와서 길 건너편에 절에 가니 엄청 큰 불상이 여성의 미소를 띠고 내려다보고 있다. 주변의 나무 조각 장식물이 볼만하다. 절에서 나와 식물원을 가려고 큰 길 가에 섰다. 지나가는 30대 젊은이가 친절하게 길을 가리켜 준다. 버스가 있는데 통행량이 적어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이곳 말로는 Botanical Garden이 케분 붕가(Kebun Bunga)란다. 약 28만 ㎢라는 광대한 원내에는 몇 백 종류나 되는 열대 식물이 자라고 있다. 걷는 길도 잘 정비되어있다. 저녁에는 저녁 바람을 쏘이러 온 커플들과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온단다. 처음 눈에 들어온 나무는 케논 볼 트리라는 나무다. 잎은 없는데 예쁜 꽃이 피고, 덩굴 가지에 공 모양의 열매가 매달려 있는 것이 신기하다. 곳곳에 원숭이가 많이 보인다. 잔디 위에 나무 가지에 원숭이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본다. 먹이를 주면 500M$의 벌금이라는 표시가 곳곳에 있다. 파란 하늘과 초록 잔디에 우거진 숲, 뜨거운 태양이 가득하다. 아내는 신발을 벗고 양산을 쓰고 걸어간다. 넓적한 연꽃을 비롯한 수생식물도 잘 모아져 있다.
선인장 종류도 보인다. 흥미롭다기 보다는 덥다. 원숭이에게 가가이 가지 말라. 새기를 가지고 있는 원숭이는 더욱 위험하다. 찬우에게 주의를 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커다란 고목나무 그늘이 있는 잔디밭에 누워서 잠시 쉰다. 한 바퀴 돌아 정문을 나서니 막 버스가 도착했다. 조그만 아이스크림 점포에서 하나씩 입에 물으니 너무 행복하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왔다. 샤워를 하고 누워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찬주 아빠와 성원이와 함께 훼리 사무실로 갔다. 내일 인도네시아 매단으로 가는 배표를 예매한다. 여권을 제시하고 두당 96M$(30,000원)을 지불했다. 저녁식사는 중국집에 가서 볶음밥과 볶음 국수를 주문해서 먹었다. 우리 입에 맞는다. 밤에는 모두 나와서 콘웰 요새가 있는 시청 앞 광장으로 갔다. 조염아래 잔디밭에는 축구를 하는 팀이 여럿 보인다. 날씨도 선선하고 좋다. 바닷가 방파제 계단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엉덩이가 낮 동안 뜨겁게 달궈진 계단이라 따듯하다.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찬양을 한다. 아주 먼 옛날~,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아무 부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했다.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간이다. 즐거운 얘기로 모두 기분 좋다. 찬주 아빠의 펭귄 춤은 우리의 배꼽을 들썩거리게 했다. 밤바다는 조그만 파도소리로 밤을 깊게 한다.
포장마차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붐빈다. 과일 마차에서 과일을 사 먹었다. 워터 체스넛(물밤), 워터 애플(water apple)은 처음 먹어본다. 잭 프루트(jack fruit), 스타 프루트(star fruit), 구아바(guava) 등 종류대로 먹었다. 바닷가 포장마차에서는 오징어 요리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특이한 것은 회교국가라 술 먹고 흔들거리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시청 앞으로 가니 연 날리는 모습이 특이하다. 두 줄을 팽팽히 연과 연결하여 바다 바람을 이용해 가오리 모양을 한 연을 날린다. 소리도 크고 속도도 빠르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 셔틀이 덜어졌다. 오후 7시에 끊기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기다렸다. 걸어서 피곤한 다리를 끌고 숙소를 향해 걸었다. 다리는 아팠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숙소 안에 빨래줄에는 빨래가 즐비하다. 간간히 바퀴벌레가 있다. 그래도 우리 식구는 행복하다. 모두 침대에 엎드려 일기를 쓴다. 힘들고 다리가 아프다는 유진이 소감과 인도식사는 사절이고 중국식사는 환영이라는 상희의 소감. 이렇게 도 하루가 저물었다. 감사기도를 아내가 하고 세 번째 밤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