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다니엘 호오도온
보르헤스[아르헨티나]
나다니엘 호오도온(Nathaniel Hawthorn, 1804~1864) 미국 작가, 대표작인 『주홍글씨』.
나는 하나의 은유의 이야기를 가지고 미국문화의 역사를 시작할 것이다, 좀더 말하자면, 이러한 은유의 몇 가지의 본보기들을 가지고.... 나는 누가 그것을 발명하였는지 모른다. 은유가 스스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마 하나의 오류일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와 그리고 또 다른 이미지 사이의 밀접한 연결은 형성하는 진실들은 항상 존재하여 왔다; 우리들이 발명할 수 있는 것이 것들이 거짓이고 발명할 가치가 없다고 해도... 내가 말하는 이것은 연극과 관련된 꿈들과 비슷한 것이다. 17세기에 께베도는 죽음이라는 꿈을 토대로 하여 은유를 공식화했다, 반면 공고라는 소네트란 다양한 상상력 속에서 은유를 공식화하였다, 거기서 우리는 아래의 것을 읽을수 있다.
El sueno,autor de representaciones
en su teatro sobre el viento armado
sombras suele vestir de bulto bello
18세기에 Addison은 더 정확성을 가지고 그것을 말할 것이다. Addison은 글쓰기를 “ 영혼은 , 꿈을 꾸는 동안, 연극이고, 작자이고 관객이다. ” 오래전에 , 페르시아인 우마르 키얌은 세계의 역사는 신의 영원성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신, 범신론자들의 다신이 계획하고 재현하고, 바라보는 표상이라고 글을 쓴바가 있다. 훨씬 뒤에 스위스인 Jung은 매혹적이고 의심할바 없이 정확한 책들에서, 꿈의 발명에 문학의 발명을, 즉 꿈에 문학을 공급시켜줄 것이라고 했다. 문학이 하나의 꿈이라면, 인도되고 심사숙고된 꿈이라면,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고라의 운문들이 미국문학의 역사에 비문의 역할을 한다는 것과 그리고 우리들이 호오도온, 꿈쟁이라는 숙제를 자기고 시작한다는 것은 좋다. 그때의 얼마전에 또 다른 미국의 작가들이 있다. -Fenimore Cooper, Eduardo Guierrez보다 무한적으로 열등한 Eduardo Guierrez의 행운; Washington irving, 명랑한 스페인화된 사람들인들에 대한 날실을 가지런히 하는 사람- 그러나, 우리들은 위험하지 않게, 그것들을 잊어 버릴 수 있다.
호오도온은 1804에 Salem항구에서 태어났다. Salem은 이미 그때, 미국에서 두가지의 이상한 모습의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가난하고 오래되었지만 하나의 도시였고, 타락한 도시였다. 건전한 성경적 이름의 이 오래되고 타락한 시에서, 호오도온은 1836년까지 살았다; 그는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즉 죄절한 사람, 병자들, 광자들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비극적 사랑을 가진채 그 도시를 좋아했다.
특별히, Salem으로부터 절대로 그가 멀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40년 후에, 런던에서든지 , 또는 로마에서든지 그는 Salem이라는 그의 청교도적인 시골마을에서 계속 있었다. 그 예로, 19세기 중반에 조각가들이 누드 조각을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이다.
그의 아버지는 다다니엘 호오도온 대위는 수리남의 Indias Orientales에서 황열병으로 1808년 죽었다. 그의 조상중의 하나인 존 호오도온은 1692년 마녀재판 소송의 판사였고, 그 소송으로 19명의 여자들과, 그녀들 중 노예 Tituba는 교수형을 당했다. 이러한 희한한 소송과정에서(오늘날 광신적 행위는 또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호오도온 법정은 혹독하게 진지하게 의심 없이 처리하였다. 나다니엘은 “마녀들의 순교속에서 판결이 아주 현명하게 되어서 이 불운한 여자들의 피가 그에게 하나의 얼룩을 남긴 것을 생각하는 것이 합법적이다. 오늘날 먼지가 아니라면, Charter가의 무덤 속의 그녀들의 오래된 뼈들에서 지속될 만큼 심오한 얼룩이다.” 라고 글을 썼다. 이러한 화화적인 일면 후에 호오도온은 다음과 같이 덧 붙였다.
“나의 조상들이 후회했는지 신께 참회했는지 나는 모른다. 지금 나는 그들로 인해서 참회를 하고 우리 족속들에게 떨어 졌어야할 저주가 지금 오늘로부터 용서되기를 빌고 있다.” 호오도온 대위가 죽었을 때, 그의 미망인은 그녀의 2층 그녀의 침실에 틀어 박히게 되었다. 자매들, Louisa, Elisabeth,의 침실도 있었다. 마지막 층에는 나다니엘의 침실이 있었다. 이사람들은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았다. 거의 말도 안했다. 그들에게 복도의 쟁반에 음식이 놓여지곤 하였다. 나다니엘은 환상적 이야기들을 쓰면서 날들을 보내곤 하였다. 황혼의 1시 무렵에 그는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가곤 하였다. 이러한 삶의 은밀한 규정은 12년간 지속 되었다. 1837년에는 Longfellow가 그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들어 안에 있어 왔다. 그것을 한다는 사소한 목적이 없이 이것들이 나에게 일어날것이었다는 하찮은 놀라움도 없이 ... 나는 감옥에 갇힌 사람으로 바뀌었다. 하나의 감옥에서 갇혀 버렸다. 지금 나는 열쇠를 가지고 주지 않는다. 아무리 문이 열려있었다고 할지라도 거의 나는 나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호오도온은 키가 크고, 아름답고, 날씬하고, moreno 였다. 그는 바다 사나이의 흔들거리는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유년기문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호오도온은 6년간 “Piligrim's Progress"을 읽었다. 그의 돈을 가지고 처음 구입한 첫 번째 책은 ” The Foreign Queen"이었다. 두 개의 알레고리인... 또한 그들의 전기 작가들이 그것을 말하지 아니할지라도 아마 호오도온 1세와 같은 윌튼 호오도온 은 1630년에 하나의 검과 같이 영국에서 성경을 가지고 왔다. 나는 알레고리 단어를 읽었다.; 이 단어는 매우 중요하고, 파렴치하거나 경솔하다. 알레고리라는 이 단어는 호오도온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호오도온이 우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에드가 알란 포우로부터 비난을 받고 이러한 행위와 이러한 방식이 변호 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을 현명한 것이다. 두 가지의 일들이 우리에게 직면되어 있다. 첫째는 이러한 우의적 양식이 실제로 불법적인지 아닌지 탐구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호오도온이 이러한 것을 법하였는지 아닌지 조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알레고리에 대한 최고의 반론은 Croce의 반론이다. 최고의 변론은 Chesterton의 변론이다. Croce는 알레고리를 피곤하게 하는 수사학, 즉 쓸데없이 반복하는 장난이라고 비난했다. 그 수사학은 Virgilio와 Beatriz에 의해 인도된 단테를 우리들에서 보여주고 후에 우리들에게 단테는 영혼이거나, 비르질리우 철학이거나 이성이거나 자연의 빛이거나 비아트리스 이론이거난 또는 신의 영광일것이라고 설명하여주거나 우리를 이해시켜준다. Croce에 의하면, Croce의 주장(모범 예는 그로부터가 아니다.), 단테는 처음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성과 신앙은 영혼을 구원한다.“ 또는 ” 철학과 이론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한다.“ 다음에, 그가 철학과 이성을 생각한곳에서 그는 비르질이우스를 놓았고, 이론과 신앙을 생각하는 곳에서 그는 베아트리스를 놓았다. 그것은 일종의 가면 씌여진 것이다. 알레고리는 이러한 오만 불손한 해석에 의하면, 다른것들에 비해 훨씬 광범위하고, 훨씬 더디고 훨씬 불편한 수수께끼로 왔을수도 있다. 그것은 야만적 또는 유치한 양식, 즉 미학의 산란함일 것이다. Croce는 1907년에 이러한 반론을 형성하였다. 1904년에는 Chesterton은 전자가 알았어야 하였지만 이미 반론을 하였다. 문학세계는 참으로 상호연락 불가하고 넓기도 하다.
Chesteron과 관련된 페이지는 19세기의 영국의 유명한 화가이면서 호오도온 처럼 알레고리즘으로 인해 비난을 받은 화가 Watts에 대한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Chesterton은 Watts가 알레고리즘을 실행한 것을 인정하였지만, 이러한 양식이 비난을 받아야한다는 것은 부인하였다. 실재(realidad)은 끝나지 않는 부로 만들어졌고, 사람들의 언어는 이러한 현기증날 것 같은 다량의 것을 고갈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사람은 영혼속에 가을의 셀바(selva)의 색깔들보다 더욱 더 어지럽히고 더욱더 셀수 없고 더욱더 많은 익명의 염색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모든 종합과 변환속에서 이러한 염색(위장)들은 신음소리와 고함소리에 대한 중재적인 메카니즘에 의한 정밀함을 가지고 보여질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주식중개인의 하위업자로부터 실제적으로 기억에 대한 미스테리들과 열망에 대한 번민을 의미하는 소음들이 뛰쳐나온다. 후에 Chesterton은 어떤식으로 다다를수 없는 현실에 해당되는 다양한 언어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많은 이러한 것들 사이에 알리고리와 우화의 그것이 있다. 다른 의미로는 베아트리스는 신앙의 상징물이아니고, 신앙이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골치 아프고 제멋 대로인 비슷한말이다; 사실은 세상에는 하나의 것(한 특유의 감성, 밀접한 과정, 유사한 상황의 연속물)이 있다.
그것은 두가지의 상징물에 의해 표시할 수 있다. 하나는 상당히 빈궁한 fe라는 소리이고 다른 것은 베아트리스 하늘에서 내려와서 단테를 구원하기 위해 지옥에 그들의 자취를 남긴 영광스러운 베아트리스 이다. 나는 Chesterton의 이론이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나는 하나의 알레고리가 하나의 도식, 즉 추상화라는 차가운 게임화 할 수 있을만큼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지들을 통해서 생각하는 작가들(Shakespeare, 또는 Victor Hugo, 또는 Donne)과 추상화를 통해서 생각하는 작가들(Benda, Bertrand Russell)이 있다.
priori 에게는 어떤 것들이 또 다른 어떤 것들 만큼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추상적이고, 추론하기 좋아하고, 또한 상상력을 좋아하고,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Croce가 고발하였던 언급하였던 것이 발생한다. 우리는 워즈워드가 말한 바와 같이 논리적인 과정이 작가에 의해서 독자의 이해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미화되고 위장되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고통의 악명높은 예들 든다면, Ortega y Gasset의 예가 있다. 그의 좋은 생각은 힘겨운 외부의 은유에 의해 방해를 받은 채 있었다. 많은 경우에 그것은 호오도온의 예이다.
그러나, 양 작가들 모두 서로 대립한다. Ortega는 좋던 나쁘던 추론을 할 수 있지만, 상상은 하지 못한다. 호오도온은 지속적이고 흥미로운, 하지만 받아들일수 없는 상상의 소유자이다. 우리들이 그 생각에 대해 그런식으로 말해야 한다. 나는 그가 멍청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가 여성들이 하는 것처럼, 변증법적이 아닌 직관을 통해, 상상을 통해 생각을 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미학적 오류가 그것에 해를 입혔다. 즉, 각각의 상상으로 하나의 우화를 만든다는 청교도의 바램은 그것을 그들에게 도덕을 첨가하고 가끔 그것을 거짓화하고 그것을 해체시키는 것을 유도하였다. 메모 노트는 보존이 되어있고, 거기에서 축약으로 주장들이 나타나있다.
그것들 중의 하나인 1836년의 글은 다음과 같다.
“하나의 어떤 뱀은 사람의 위장에서 받아들여지고 그에 의해서 그것은 섭취 된다. 15세부터 35세까지 혐오스럽게 그것에 대해 질려있었다” 그것과 적합하다, 하지만 호오도온에게는 첨가부언하는 것을 의무로 여겨진다; 그것은 질투 또는 사악한 열정의 상징물일 수 있다. 이번에 1838년의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이상한 미스테리의 그리고 지독한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 한사람의 행복을 파괴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사람이 비밀의 적들에게 죄들 부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발견해야 한다는 것, 결국은 그가 유일한 죄인이고 원인이다는 것. 도덕적, 행복은 우리들 자신내에 도덕적 상태로 있다.”는 것이다.
같은 해의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잠을 이루지지 못 한 채 있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잘 생각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만, 꿈들은 그를 요동시키고, 꿈속에서 이 친구는 숙명의 적처럼 행동한다. 마지막에는 꿈꾸어진 특질이 진실인 것이 밝혀진다. 꿈들이 옳다. 해몽은 진실에 대한 본능적인 지각일 수가 있다. 정당화나 도덕을 찾지 않고 또 다른 깊은 바탕을 지니지 않는 듯한 저 순수한 환상들이 숨겨진 두려움 보다 좋다. 1838년의 이것 “ 군중 가운데에서 목적과 삶이 다른 사람의 힘에 놓여 있는 어떤 사람을 상상하는 것, 마치 두 가지가 하나의 사막에 놓여있는 듯이”. 이것은 , 즉 이전의 동요함이고, 호오도온이 5년후에 그것을 기록했다;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도덕적으로는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명령한다. 명령 받는자는 하나의 행동을 실행한다. 명령하는 사람은 죽고 다른 사람은 그들 날들의 마지막까지 그러한 행위를 지속한다.( 호오도온이 어떤 방식으로 이러한 주장을 글로 썼는지 난 모른다.: 나는 호오도온이 실행된 행위가 진부하거나 또는 가볍게 무서운 또는 환상적 어쩌면 천한 것 이라는 것을 호오도온이 알려주었어야 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이것, 이것의 주제는 또한 노예제도, 다른 사람에 복종하는 것이다. 즉 ”부유한 사람은 한 불쌍한 커플에게 그의 유언으로 집을 남긴다. 이것은 이런 식으로 변형된다; 한 우울한 종은 유언이 그들을 추방하라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을 직면한다. 이것은 그들을 괴롭힌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집을 남겨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는 것이 발견된다. 나는 충분히 궁금증을 일으키는 두 개의 스케치를 언급할 것이다. 그것의 주제(Pirandello 또는 Andre Gide에 의해 무시되지 않은)는 우연일치성 또는 미학적 계획과 상식적 계획에 대한 고백이다. 나는 여기서 첫 번째의 것을 내포하고 있다. “두 사람은 거리에서 하나의 사건발생과 주요 인물들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사건발생은 이미 일어나고 있고, 그들은 모두 배우들이다.” 두 번째의 것은 더 복잡하다.
“사람이 이야기를 쓰고, 이것이 그들의 의도에 대항하여 발전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등장인물들이 그가 원하였던 대로하지 않는 것; 그에 의해 예상되지 않은 행위들이 일어나는 것, 그리고, 그가 헛되게도 벗어나려고 하는 재앙에 가까이 오는 것. 이러한 이야기는 그자신의 목적지를 예상할 수도 있고, 등장 인물들 중의 하나는 그 자신이다. 이러한 게임 즉 상상세계와 실제세계(독해의 과정에서 우리들이 사실인척 가장하는 세계의)의 일시적 합류는 근대적이다 또는 우리가 보기에 근대적이다. 그것의 기원, 그것의 오래된 기원은 일리아드라는 그 장소에 위치할 것이다. 일리아드에는 트로이의 엘레나는 직물을 짜고 그 직물을 짜는 것은 전투이고 트로이 전쟁 그 자체의 불행이다. 이러한 면은 Virgilio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어야 했다. 후에 "아이아네스 모험이야기“속에서 트로이 전쟁의 용사 아이아네스는 카르타고 항구로 올라가고 이 전쟁의 장면인 어떤 신전의 대리석에 새겨진 조각을 본고 많은 이미지들 사이에서 또한 그 자신만의 이미지를 본다.
호오도온은 이러한 실제와 상상의 것의 이러한 접촉을 선호하였다. 그 접촉들은 예술의 반영과 복제이다. 또한 내가 지적한 스케치 속에서 그는 어떤 한사람은 또 다른 어떤 사람이고,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이라는 범신론적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복제들과 범신론보다 더 심각한 어떤 것은 즉 소설가가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을 위한 더 심각한 어떤 것은 스케치들 속에서 알려지는 것이다. 호오도온의 자극, 즉 호오도온의 패거리의 관점이 일반적으로 배경,(배경, 인물이 아님)이라는 것이 알려진다. 호오도온은 우선 아마 비자발적으로 하나의 배경을 상상하였고, 후에 살과 뼈를 가진 인물을 찾곤 하였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소설가도 그런식으로 나오지 않는 다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있다; ” 나는 Schomberg는 실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그의 소설 ‘Victory"에서 가장 기억될만한 인물중의 하나인 Joseph Conard가 글을 썼다. 이것은 거짓이 없이 어떠한 종류의 등장인물의 어떠한 종류의 소설가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돈 끼호테의 모험들은 매우 잘 생각되어 지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느리고 대조가 되는 대화들(추론, 나는 작가가 그것을 명칭했다고 생각한다.)이 거짓말 같은 것들에 대한 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Cervantes가 Don Quijote를 잘 알지 못한다고 의심할 여지는 없다. Cervantes는 Don Quijote를 믿었다. 소설가의 믿음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은 모든 무지와 거짓을 구한다. 우리들 생각에 작가가 우리들의 좋은 믿음을 놀라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등장인물을 정의하기 위해서, 그것을 생각하였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믿을 수 없는 또는 추잡한 행위를 내포하였는지.... 우리가 햄릿 왕자를 믿는다면, 무엇이 덴마크의 가상 법정의 막연한 죄들과 유치한 스캔들을 내포하였는지... 바꾸어 말하면, 호오도온이 배경 또는 일련의 배경을 생각에 품고 다음에 그의 계획이 요구하는 인물들을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방식은 존경스러울 만한 이야기들을 생산하거나 인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속에서 , 그의 용감한 이유로 인해서, 함정은 배우들보다 더 잘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존경스러운 소설이 아니다. 거기서 일반적인 형태(만약 있다면)가 단지 마지막에 보이고 거기서 단지 하나의 나쁘게 만들어진 인물이 그를 동반하는 인물을 비실제적으로 오염시킬 수 있다. 이전의 이러한 이유로 인해, 미리 호오도온의 단편들은 호오도온의 소설보다 가치가 있다는 것이 언급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그렇다는 것을 이해한다. 주홍글씨를 구성하는 24개의 장들은 좋고 세련된 산문으로 편집된 채, 기억될만한 장면들이 풍부하다. 그러나 그것들 중의 어떤 것들도 Twice-told tales에 있는 Wakefield라는 단일 이야기만큼 나를 감동시킨 것이 없다. 호오도온은 신문에서 아무런 동기도 없이 아내를 버리고 그의 집 가까이 에서 묶고 있는 한 영국인의 경우를 읽었거나 문학의 목적으로 인해 읽었던 척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숨겨진 20년이 흘렀다.
이러한 기나긴 기간 동안 그의 집앞에서 매일 매일을 보내었거나 또는 귀퉁이에서 집을 바라보았다. 여러 번 그의 부인을 멀리서 보았다. 그를 죽은 것으로 간주하였을 때, 그의 부인에게 과부라는 것이 주어진지 오랜 세월이 지난후, 하루는 그 남자가 그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치 몇시간 동안 집을 떠난 것처럼.(죽는 그날까지 그는 남편의 한 전형이었다). 호오도온은 흥분된채 그 희한한 경우를 읽었고, 이해하려고 상상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주제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그 단편 "Wakefield"는 이러한 추방에 대한 추측의 이야기 이다. 수수께끼에 대한 해석들은 영속적일 수도 있다. : 호오도온의 해석을 보자.
호오도온은 Wakefield를 평범하고 소심하게 허영적이고, 이기주의자이고 유치한 미스테리를 하는 경향이있고, 쓸데없는 비밀을 간직하는 남자로써 상상한다. 즉 상상력이 풍부하면서 정신적인 위대한 업적의 우유부단한 남자이지만, 길고 게으르고 미완성이고 흐릿한 명상의 능력을 지녔다. 즉 그냥 늘 그런 남편, 게으름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그런 사람이다.
Wakefield는 9월의 어느 날 오후에 부인에게 작별을 하였다. 그가 말하기를-우리들은 19세기초기에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그는 부지런해질것이고 늦는다면 며칠 내에 돌아올 거라고 했다. 남편이 해롭지는 않은 미스테리에 심취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부인은 남편에게 여행의 사유를 묻지 않는다. Wakefield는 부츠를 신고, 마차를 타고 코트를 입고 우산과 여행가방을 지니고 있다. Wakefield(그는 나에게는 존경스럽지 않다)는 아직 무엇이 일어날것이라는 것을 불행히도 알지 못한다. 그는 떠난다, 문을 대문을 닫는다. 그리고, 문을 반쯤 연다, 그리고, 잠시 웃는다. 몇 년 후에 부인은 이 마지막 웃음을 상기시킬 것이다.
그는 얼굴에 얼어붙은 웃음을 지닌 채, 상자를 상상하거나, 간사하고 침착하게 웃으면서 모순과 영광에 대해서 상상할 것이다. 모두들 그가 죽었다고 믿고 그녀는 이러한 웃음을 기억하여 아마도 그녀가 과부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Wakefield는 몇 번의 방황의 막바지에 준비된 거주지에 도착한다. 그는 굴뚝의 옆에서 있으면서, 웃는다: 그는 그의 집에 돌아오고 있다. 그의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는 행복하고, 이미 거기에 있다는 의심은 그에게 믿을수 없는 것 같다. 그는 그들이 그것을 관찰하였다는 것과 그들이 공표하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 거의 후회하면서,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 넓은 황량한 침대에서 그는 그의 팔을 펼치고 큰 목소리로 반복하여 말한다. “나는 다를 밤에는 혼자서 잠을 자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날에, 그는 더 평상시보다 더 일찍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당혹스럽게 되묻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에게 그것을 정의하는 것을 질문한다. 그는 결국 그의 목적이 일주일의 과부생활이 Wakefield의 모범적인 여성 내에 야기시킬 인상을 알리는 것을 발견한다. 궁금함은 그를 거리로 인도하였다. 그는 중얼거린다.
“나는 먼 집에서부터 스파이노릇을 할 것이다.” 그는 길을 거닐고, 마음이 산란해진다; 즉시 그는 습관이 그를 그의 문으로 배신하여 가지고 왔다는 것과 그가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는 겁에 질린 채 돌아온다. 그들이 그것을 안 보게 될 것인가; 그들이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 것인가? 골목 귀퉁에서 그는 돌면서 그의 집을 보고 있다; 집은 그에게는 멀게 보인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다른 사람이다. 왜냐하면 단지 하룻밤이 그 안에서 변형을 이룩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가 그것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의 영혼 속에는 20년의 망명을 정죄 할 도덕적 변화가 활동되었다. 실제로 그는 기나긴 모험을 시작하였다. 그는 붉은 색 가발을 빌린다. 그는 습관을 바꾼다. 어떤 시기의 막바지에는 그는 새로운 일상 반복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의 부재가 Wakefield 부인에게 큰 고통을 주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의심으로 괴로워한다.
그는 좋은 놀라움이 그에게 주어질 때까지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어느 날 약제가가 집에 들어간다. 또 어떤 날은 의사가 들어간다. Wakefield는 괴로워한다. 그는 그의 갑작스런 재등장은 더욱더 나쁘게 할 것이라는 것에 두려워한다. 사로잡힌 채, 그는 시간이 마구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전에 생각하기를; 난 수일후에 돌아갈 것이다. 지금은 수주 이내에, 이렇게 10년이 지났다. 오랜 세월동안 그는 그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왔다. 그의 심장이 할 수 있는 우유부단한 모든 기호를 가지고 Wakefield는 그의 부인을 계속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잊어가고 있다. 어느 일요일아침에 런던의 군중들 사이에서 그들 둘이 길에서 만나게 된다. Wakefield는 야위었다; 그는 자신을 감추듯, 도망치는 비스듬이 거닌다. 그의 아래 이마는 주름이 잡혔다. 과거에 평범하였던 그의 시행하여온 이상스런 작업으로 인해, 그의 모습이 지금은 이상스럽다.
그의 작은 눈에 바라 보여지는 것은 몰래 보여지기거나 잃어버려진다. 그의 부인은 살이 쪘다. 그녀는 손에 예배를 위한 책들을 지니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녀는 기쁘고 체념한 듯한 과부의 전형이다. 그녀는 슬픔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아마도 행복으로 슬픔을 바꾸지 않을 것 같았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눈을 둘은 서로 서로 바라본다. 군중은 그들은 갈라 놓는다. 군중은 그들을 잃어벼린다. Wakefield는 그의 숙소로 도망친다. 열쇠를 두 번돌려서 문을 닫는다. 침대로 몸을 던지고 흐느껴울기 시작한다. 잠시동안 그는 그의 삶의 비참한 단순함을 본다.
“Wakefield야!! Wakefield야!! 너는 미쳤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아마 글ㄹㄹ것이다. 런던의 중심부에서 그는 세상과 분리 되어왔다. 죽지 않은채, 그는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위치와 그의 특권들을 포기하였다. 정신적으로 그는 그의 집에 있는 그의 부인 옆에 계속 있었다. 그는 그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아니 절대로 모른다. 그는 “곧 돌아갈거야”라고 반복해서 말했고, 그는 그의 같은 말이 20년간 계속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20년의 고독이라는 것은 하나의 간주곡처럼, 하나의 삽입문 처럼 보였다. 어떤 오후에 다른 오후와 같은 오후에 과거의 오후와는 동 떨어진 오후에, Wakefield는 자신의 집을 본다. 유리를 통하여 그는 1층에 불이 켜져있음을 본다. 평평하게 만들어진 천장에서 불꽃은 Wakefield 부인의 그림자를 그로테스크하게 만들어낸다. 그는 열쇠를 부수어버린다. 그는 차가운 돌풍을 느낀다. 그가 그의 집, 보금자리를 가질 때, 그는 젖는다는 것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그는 무겁게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연다. 그의 얼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기괴하고 의문스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Wakefield는 결국 집에 돌아온다. 호오도온은 우리들에게 그의 최종적인 목적지를 언급하지 않지만, 우리들로 하여금 이미 그가 특정한 상태 즉 죽음속에 있었다는 것을 가정하게 한다.
난 마지막 말들을 그대로 인용한다. “ 우리의 미스테리한 세계에서 보여지는 무질서함 속에서, 각각의 사람은 잠시 길을 벗어난 사람이 그의 위치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처절한 위험을 겪을 만큼 절묘한 혹독함을 지닌 체제- 그 자신 속의 체제, 모든 사람들에 전체인 체제-에 익숙해진다. 그런 사람은 Wakefield 같은 "el Paria del Universo가 되는 위험을 겪는다. 이러한 간결하고 불길한 비유속에 -18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우리들은 Herman Melville,의 세계, Kafka의 세계속에 수수께끼적인 처벌의, 해독되지 않는 처벌의 세계속에 있다. Kafka의 세계는 유다이즘이고 호오도온의 세계관은 구약성서의 분노와 징벌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여 질 것이다. 그런 관측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의 사장적 깊이는 윤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Wakefield의 무시무시한 이야기와 Kafka의 많은 이야기들 사이에는 일반적인 윤리학 만이 아니라 수사학이 있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의 그의 상실에 대한 중요성과 대비가 되고, Furia들에게 비록 가치는 없지만 가져다 주는 주인공의 심오한 진부함이 있다. 판독이 어려운 본질이 있지만, 그것에 대비해 악몽은 선명해진다. 호오도온은 다른 시점들에서 낭만적인 과거를 드러낸다. 이속에서 그는 런던의 부르조아로 제한되고, 부르조아 군중들은 그를 하나의 영웅을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으로 대접한다.
여기서, 호오도온의 어떠한 피해도 없이, 나는 하나의 의견을 삽입하고자 한다. 배경, 호오도온의 단편속에서 인식하는,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 기이한, 20세기 초에 활동한 Kafka의 단편과 비슷한 성향의 그 기이한 배경은 우리로 하여금 Kafka의 성향이 Kafka에 의해 만들어지고 결정되었다는 것을 잊도록 하여주지는 않는다. Wakefield는 Franz Kafka에 선행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하고 Wakefield의 독자들은 이것을 정제한다. 빚은 서로가 진 것이다. 위대한 작가는 그의 선구자들을 만들어낸다. 그는 그들을 창조하고 어떻게든 그들을 정당화한다. Shakespeare가 없는 Marlowe로부터 무엇이 나올것인가???
해설가이며 평론가인 Malcom Cowley는 Wakefield에서 나다니엘 호오도온의 요상한 은거의 알레고리를 본다. 쇼펜하워는 의지적인 행동이 없고, 생각이 없고, 병이 없다는 유명한 글을 썼다. 이러한 의견에 진실이 있다면, 나다니엘 호오도온이 세상과 떨어지기 위해서,사람들의 사회로부터 여러해 동안 떨어진 것을 그리기에 충분하다. 그것의 마지막은 아마 다양함 Wakefield의 유별난 역사일 것이다. Kafka가 만일 이러한 글을 썼었다면, Wakefield는 절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이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호오돈온은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그의 돌아옴은 그의 긴 부재보다 덜 통탄 할만하고 덜 혹독한 것이다. 스승다워질려고 하였는데, 윤리학의 집념적 고수에 상처를 입혀서 그렇지 않은 호오도온의 비유가 Earth's Holocaust 라고 명칭이 붙은 것이다. “el Holocaust de la Tierra"
이 알레고리적 허구속에서 호오도온은 사람들이 쓸모없는 축척물들에 싫증이 나고, 과거를 파괴하고자 하는 그 한 순간을 예견한다. 저녁 무렵, 이러한 목적을 위해 미국 서부의 광활한 지역 중 하나에 사람들이 모인다. 세계의 모든 경계선으로부터 사람들이 서부 평원으로 도착한다. 중앙에 그들은 그들이 모든 혈통, 학위, 메달, 질서, 판결, 칼, 왕관, 왕위, 관, 왕위,천막, 왕좌,술, 커피 봉지,차 상자, 담배,연애편지,대포,검,깃발,전투북,고문기구,단두대,교수대,귀금솟,돈,귀족 명칭, 법, 책, 관, 제복, 현재 널려있고, 세상을 지치게 하는 성스러운 비문들을 가지고 길러내는 제일 높은 모닥불을 만든다.
Hawthorne은 그 큰 화재를 놀랍고 뭔가 소란스럽게까지 본다.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한 사람이 그에게 기뻐하거나 슬퍼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거대한 불더미들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사물 안에서 소멸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관객-악마-은 대학살의 집행관이 모든 죄의 근원인 인간의 마음 즉, 본질적인 것을 버리는 것을 잊어버리고, 단지 약간의 형태만을 파괴시켰을 뿐이라는 것에 주시한다. Hawthorne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마음, 마음이란 외부의 고통과 범죄가 단지 몇몇의 상징이라는 원죄가 존재하는 작지만 끝이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그 영역의 내부를 정화시키면 외부로 표출되어 지금은 거의 우리의 현실과도 같은 악의 많은 형태들이 마치 환영처럼 달아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그 불완전한 도구로 지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얻지 못한다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을 가려내어 바로 잡는 우리의 모든 작업은 아주 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꿈은 아주 비현실적이어서 내가 아주 정확하게 묘사한 모닥불이 우리가 실제의 일과 손을 그을리는 불, 혹은 인광과 비유를 부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Hawthorne은 여기서 인간들이 타고난 죄에 대한 기독교 교리, 특히 칼뱅의 교리에 의해서 끌려가는데, 그것은 모든 사물의 허무한 파괴에 대한 그의 비유는 단지 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인식한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만약 세상이 ‘누군가’의 꿈이라면, 만약 지금 우리를 꿈꾸고 있고, 세계의 역사를 꿈꾸는 ‘누군가’가 있다면, 관념론학파의 교리, 종교와 예술의 말살, 도서관 전체의 화재 같은 것들은 꿈의 요소들의 파괴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번 그것을 꿈꿨던 정신은 그것을 다시 꿈꾼다. 꿈꾸고 있는 동안의 정신은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마치 환상적으로도 보이는 이 사실에 대한 확신은 Schopenhauer가 그의 저서 <parerga und="und" paralipomena="Paralipomena" 여록과="여록과" 보유="보유">에서 역사를 유리 조각들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형태가 바뀌는 만화경에 비교하게 했고, 배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역할과 가면을 바꾸는 영원하고 혼란스러운 희비극에 비교하게 했다. 세계가 우리 영혼의 산물이고, 세계의 역사는 한 사람 각각의 안에 있다는 바로 그 직관은 Emerson에게 <history>라는 제목의 시집을 쓰게 했다.
과거를 철폐하는 환상에 관련하는 것에 있어서 나는 이것이 기원 전 3세기 불행하게도 중국에서 시도되었다는 것을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Herbert Allen Giles는 : “수상 Li Su는 역사는 새로운 군주와 함께 시작될 것이라고 제의했고, 그가 초기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고대의 헛된 소망들을 타파하기 위하여 몰수를 명하고, 농업, 약학, 천문학을 가르치는 책들을 제외한 모든 책들을 불태웠다. 책들을 숨긴 사람들은 뜨거운 칼날로 낙인찍혔고, 만리장성의 건설에서 강제로 동원되었다. 많은 귀중한 작품들이 사라졌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들이 공자의 교리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글에 나타나있지 않고 알려지
지 않은 사람들의 가치와 희생 덕분인 것이다. 너무 많은 문인들이 황제의 규범을 범하여 사형되었기 때문에, 겨울에는 공동묘지에 그들의 머리가 마치 자라는 듯했다고 한다.”
17세기 중반쯤 되었을 때, 영국에서는 청교도들 즉, Hawthorne의 선조들 사이에서 이 같은 의도가 다시 나타났다. “Cronwell에 의해 소집된 대중 의회 중의 하나에서 -Samuel Jonhnson이 말하길- Torre de Londres의 문서실들을 불태울 것이고, 모든 과거사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고, 생활의 모든 제도들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아주 진지하게 제안했다.” 말하자면, 과거를 지워버리는 의도는 이미 과거에서도 일어났었고 -역사적으로- 과거는 철폐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과거는 파괴할 수 없다. 언젠가는 모든 일들이 돌아오고 돌아온 것 중의 하나가 과거를 지워버리는 계획인 것이다.
Stevenson처럼 청교도의 후손인 Hawthorne은 작가의 노력은 경박스럽거나 혹은 가장 나쁘게는 죄가 있는 것이라고까지 느끼는 것을 절대 그만두지 않았다. <주홍글씨>의 서문에서 그는 소설을 쓰고 있는 그를 바라보는 그들의 조상들의 유령을 상상한다. 이 구절은 기묘하다. “그는 무엇을 하고있나?” 한 늙은 유령이 다른 유령들에게 말한다. “이야기책을 쓰고 있군! 무엇이 이 역할이 되어, 어떤 식으로 신에게 영광을 돌리며, 어떤 방법으로 인간들을 그 세월과 세대에 있어 유용하게 할 것인가? 왜 그 지친 사람을 선택하였고, 그것이 그에게는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일 것인가?” 이 구절은 신뢰의 운명이 내포되어 있고 본질적인 불안감들에 해당하기 때문에 흥미롭다. 또한 윤리학과 미학, 가능하다면 신학과 미학의 오랜 분쟁에 해당한다. 그 첫 번째 증거들 중의 하나가 성서에서 명시되어 있는데,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금한다. 다른 증거는 플라톤의 것인데, <rep blica="BLICA" 공화국="공화국">의 열 번째 권에서 이 방법에 대해 고찰한다.
“신이 탁자의 원형(원래의 이념)을 창조한다. ; 목수, 하나의 상.” 다른 하나는 Mahoma의 증거인데, 그는 살아있는 사물의 모든 형상이 최후 심판의 날에 신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공표했다. 천사들은 형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예술가들에게 명령할 것이다. ; 이것은 실패할 것이고, 그것을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에 지옥으로 던질 것이다. 몇몇 이슬람 학자들은 하나의 그림자를 반사할 수 있는 형상들이 금지되기를 바란다. Plotino에 의하면 한 몸 안에 거주한다는 것은 거의 수치스러운 것이었고, 조각가들에게 그 형상을 영속시키는 상을 만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친구가 한 번은 그에게 초상화를 그리도록 해달라고 간청했었다. Plotino가 그에게 말하기를 ; “나는 자연이 나를 가두어 놓은 이 혼령을 끌어야 하기에도 충분히 피곤하다. 게다가 이 형상의 형상을 영속시킬 것을 허락할 것인가?”
Nathaniel Hawthorne은 우리가 알고있는 방법의 그 어려움(착각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을 무너뜨렸다. ; 그는 도덕관과 신화를 만들었다.
양심의 기능이 예술의 역할을 하도록 했고 노력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하나의 예를 들기 위해 소설 <la casa="casa" de="de" los="los" siete="siete" tejados="tejados" 일곱="일곱" 석공의="석공의" 집="집">는 그는 영원한 세대에 의해 범해진 부정이 계승된 징벌의 운명과 같이 뒤이은 세대에 연장되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Andrew Lang은 이 소설과 Emilio Zola의 소설들, 혹은 Emilio Zola 소설의 이론을 대조시켜왔다. ; 나는 그 여러 가지 이름들의 언급이 순간적인 감탄을 제외하고는 어떤 이익이 될 수 있는 지 모르겠다. Hawthorne이 추구하는 것이나 혹은 허용하는 것, 즉 도덕적 목적은 무익한 것이 아니고, 그의 작품을 무익하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보다는 읽기 위해 부여받은 삶의 선상에 있어서 나는 문학적 이론들과 목표가 자극제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반복해서 증명해왔는데, 마지막 작업은 곧잘 그 문학적 이론들과 목표를 무시하고 또 반박하기까지 한다. 만약 작가에게 있어서 아무 목적도 없이 하찮게 느껴지거나 틀릴 수도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작품은 회복할 수도 없는 작용을 할 수 있다. 작가는 부조리한 편견으로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 작품이 순수하고, 순수한 시각에 부합한다면 어리석은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1916년 즈음 영국과 프랑스 소설가들은 모든 독일인들은 악마라고 믿었다. ; 그들의 소설에서는 물론이고 아주 이상한 사람들로 그들을 표현했다. Hawthorne의 소설에서 본래 환영은 항상 사실적이었다. ; 거짓된 것, 어쩌다가 거짓된 것은 그 환영을 표현하기 위해 마지막 단락에 덧붙인 교훈들, 혹은 그가 상상해내고, 만들었던 인물들이다. 주홍글씨의 인물들은 -특히 여주인공 Hester Prynne은- 그의 다른 이야기들의 인물들보다 더욱 독립적이며 자치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줄곧 소설 대부분 인물들과 비슷하고, Hawthorne의 순수한 계획이 아니라 가볍게 위장된다. 이 객관성 ; 이 상대적이고 편파적인 객관성은 아마도 Henry James와 Luduig Leuisohn처럼 아주 날카로운 두 작가들의 이론일 것이다. 그들은 주홍 글씨가 Hawthorne의 걸작이고, 그의 결정적인 증거라 판단한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대가들을 구별하려한다. 누구는 객관성을 갈망하고, 누구는 객관성에 굶주리고 목이 말라 Joseph Conral 혹은 Tolstoi에게서 객관성을 찾을 것이다.
누군가는 Nathaniel Hawthorne의 독특한 맛을 찾는데, 그것은 그의 어려운 소설 내에서보다는 어떤 옆 페이지 혹은 사소하고 감상적인 이야기 안에서 발견될 것이다. 나는 어떻게 내 의견의 차이점에 대해 해명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 3권의 미국 소설과 <el de="de" fauno="Fauno" m="m" rmol="rmol">에서 나는 단지 창작의 자발적이고 활발한 활동이 아닌, 독자를 감동시키기 위해 전문적인 솜씨로 계획된 상황들의 한 연결을 보았을 뿐이다. 그 창작은 (반복하지만) 배우들의 이야기와 심리가 함께 꾸며진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구상과 여담들을 만들어왔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만 한다.
Johnson은 어떠한 작가들에게도 그 동시대인들에게 무언가를 빚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본다. Hawthorne은 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무시했다. 어쩌면 옳은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어쩌면 우리 동시대 사람들은 -항상- 우리와 지나치게 닮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은 그것을 고전 속에서 더욱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전기 작가에 따르면 Hawthorne은 De Quincey, Keats, Víctor Hugo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읽지 않았다. - Groussac은 미국인이 기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 그는 Hawthorne에게 있어 “Haffmann의 두드러진 영향”을 고발했는데, 그것은 ; 두 작가 모두 공평하게 서로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것 같다는 견해이다. Hawthorne의 상상력은 낭만적이다. ; 다소 지나침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쓰는 방법은 18세기, 훌륭한 18세기 희미한 말기에 속한다.
난 Hawthorne이 그의 긴 고독감을 없애기 위해 썼던 일기의 여러 단편들을 읽었다. ; 비록 간단하게나마 나는 2편을 언급했다. ; 지금 나는 여러분들이 Hawthorne 자신의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 <marble faun="Faun">의 한 페이지를 인용하려한다. 라틴 역사가들에 따르면, 주제는 Foro의 중앙에 열린 우물 혹은 심연인데, 무장을 하고 말을 탄 한 로마인이 신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그 끝없는 깊은 곳으로 몸을 던진다. Hawthorne의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그것을 진정시키자 -Kenyon이 말했다. -이 곳은 정확하게 동굴이 균열된 곳인데, 이 동굴로 한 영웅(마르쿠스 쿠르티우스)이 그의 훌륭한 말과 함께 몸을 던졌다. 상상해 보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깊고, 거대하고 어두운 균열과 그 밑쪽에서 바라보고 있는 괴물 같은 부랑아들과 무시무시하게 생긴 얼굴들과 그 가장자리를 엿보고 있던 시민들을 공포로 가득 차게 한 곳을. 의심할 여지없이 그 곳에는 예언적인 환영들(Roma의 모든 비운적 미래에 대한 공포) 갈리야, 반달족, 프랑스 군사들의 그림자들이 있었다. 그렇게 빨리 그것이 닫다니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인가! 나는 한 번만 엿보면 어떤 일이건 알 수 있다. Miriam이 말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어둠과 낙담의 순간, 말하자면 그의 깊은 통찰력의 순간에서는 그것을 슬쩍 본다고 믿는다.”
“그 틈은 -그의 친구가 말했다.- 단지 우리들 아래 어느 곳에든 있는 어두움의 구덩이의 입구였다. 인간 기쁨의 가장 확고부동한 실체는 헛된 우리의 세계를 지탱하는 틈 위에 덮여있는 얇은 층이다. 그것을 틈을 열기 위해 지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 발로 지탱하기에도 충분하다. 아주 조심스럽게 밟아야한다. 결국 필연적으로 우리는 심연으로 빠져버린다. Curtius가 깊은 곳으로 몸을 던지기 위해 앞서 나갔을 때, 그것은 그의 영웅스런 행위의 어리석은 과시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았듯이 그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로마 내부는 안쪽으로 무너졌던 것이다. Césares의 성은 무너지는 돌들의 소음과 함께 붕괴되었다. 모든 사원들이 안쪽으로 쓰러졌고, 후에는 수많은 수천 개의 동상들이 떨어졌다. 모든 군대와 개선들이 군악을 연주하며 가장자리로 달려들면서 그 동굴로 틈 속으로 행진했다...”
여기까지가 Hawthorne의 글이다. 이성의 관점으로 보면 (예술을 대립되지 않는 순수한 이성의) 내가 언급한 단락은 옹호될 수가 없다. 광장의 중간에서 균열되었던 틈은 너무도 많은 것들이다. 한 단락의 흐름에서 그것은 라틴 역사가들이 말했던 틈새이고, “괴물 같은 부랑아들과 무시무시하게 생긴 얼굴들이 있는” 지옥의 입구이며, 인간 삶의 본질적인 공포, 그리고 석상과 군대를 전멸시켜버린 시간이고, 그리고 또한 모든 시간들을 포함하는 영원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많은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상징 즉, 복합적인 상징이다. 이러한 가치들의 다양성은 논리적인 이해력과 이성에 거스를 수도 있으나, 모호한 영역에서 하나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 단순하고 비밀스런 대수학을 갖고있는 꿈에는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Hawthorne의 세계는 꿈의 세계이다. 그는 “꿈의 실제 과정은 꿈 자체의 모든 모순들, 기발함, 그리고 목표가 없는 것 같아야한다.” 고 꿈을 쓰려고 계획했고, 오늘날까지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같은 일기에서 그는 그 특이한 시도를 써두었다. -“현대” 우리의 모든 문학은 쓸데없이 실행하려 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Lewis Carroll이 실행해온 것이다. -그는 실제의 작은 외모들의 평범한 수천 개의 인상들을 기록했는데(닭의 움직임, 벽에 비친 나뭇가지의 그림자); 그것은 6권에 달하며, 그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양은 그의 모든 전기 작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치 유쾌하고 쓸모 없는 편지들 같다. -Henry James가 당혹스럽게 쓴다.- 우체국에서 편지들을 열어보았는데 그 결과 아무 위험한 것들이 없었던 그런 두려움을 품고있을 바로 그런 사람에게 쓰여진 편지들 같다.” 나는 나를 위해 Nathaniel Hawthorne이 해가 감에 따라 그가 실재했었다는 바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부터, 비현실성의 느낌으로부터, 줄곧 그것을 방문하는 환영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그 사소한 것들을 기록했다고 알고있다.
1840년 어느 날 그는 “여기 나는 내가 늘상 앉아 있었던 내 일상의 방에 있다... 여기서 나는 많은 단편들과 후에 내가 태워버린 많은 책들과 의심할 여지없이 그 불태워질 운명을 가
질 만한 책들을 썼다. 이 언급은 이 안에 나에게 나타났었던 수천 개의 환영들로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불릴 수 있는데, 그 환영들 중의 몇몇은 지금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때로는 나는 내가 냉각되거나 마비될 정도의 생명만을 갖은 채 이미 무덤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지금 나는 왜 내가 그 고독한 방에서 몇 년 동안 같혀있었는지, 그리고 왜 보이지 않는 철창들을 부수지 못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만약 세상으로 달아났었더라면, 나는 지금 힘들고 거칠어졌을 것이고, 현세의 먼지로 덮였을 것이며, 무감각한 가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림자일 뿐...
“ 내가 방금 써놓은 줄에서 Hawthorne은 ”수천 개의 환영들“ 을 언급한다. 그 숫자는 아마 과장된 것이 아닐 것이다. ; Hawthorne의 완전한 작품의 12권은 백 개도 넘는 단편 소설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가 그의 일기에 그려졌던 아주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이다.
-그가 끝낸 이야기들 중 하나가 있는데 -Mr. Higginbotham's Catastrophe <la muerte="muerte" repetida="repetida" 잦은="잦은" 죽음="죽음">- Poe가 창작할 탐정 장르를 예시한다. Miss Margaret Fuller는 Brook Farm의 유토피아적 공동체 속에서 그를 보았고, 후에 ; “저 대서양으로부터 우리는 몇 방울을 얻었을 뿐이다.” 라고 쓴다. 그리고, 역시 그의 친구였던 Emerson은 Hawthorne은 결코 그의 모든 한도조차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Hawthorne은 1842년, 다시 말하면 38세에 결혼했다. ; 그의 삶은 그 날까지 거의 순수하게 상상적이고 정신적이었다. 그는 Boston의 세관에서 일했고, 미국 영사로 리버플에 갔다. 플로렌스, 로마, 런던에 살았지만 그의 현실은 항상 황혼의 희미한 세상 혹은 환상적인 상상의 달이었다.
이 과정의 처음에 나는 문학적 발견을 꿈의 발견과 비교, 즉 문학과 꿈을 비교한 심리학자 Jung의 학설에 관하여 언급했었다. 이 학설은 서반아어를 사용하는 환상이 아니라 사전과 수사학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학에는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반대로 북미 문학에 알맞은 것이다. 이것은 (영국이나 독일 문학처럼) 모사하는 것보다 창작하는 능력이 더 있고, 관찰하는 데보다는 창조하는 데 더 능력이 있다. 이런 면으로부터 특이한 존경이 나오는데, 이는 미국인들이 사실주의적 작품들을 선호하고 그들을 지원하도록 동요시킨다. 예를 들면, Maeppassant은 Hugo보다 더욱 중요하다. 그 이유는 북미 작가들은 Hugo가 되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폭력 없이 Maupassant이 될 자질은 없다. 천재적인 여러 작가들을 배출하고 영국과 프랑스에 영향을 준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 아르헨티나 문학은 너무도 지방적인 것이 될 듯한 위험을 달리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 (우리 아르헨티나 문학은) 사실주의 몇몇 사건들을 만들었다. - Echevería, Ascasubi, Hernández와 잊혀진 Eduardo Gutiérrez의 몇몇 존경할만한 잔인성 - 북미인들은 오늘날까지 능가하지 못한다. (어쩌면 동등하지도 않다.) Faulkner는 우리 가우쵸들보다 덜 잔인하지도 않다고 반대할 것이다.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환상적인 방식이다. 지구,, 현실이 아닌 지옥 같은 방식이다. 꿈의 방식, 즉 Hawthorne에 의해 시작된 방식인 것이다.
그는 1864년 5월 28일 New Hampshire 산에서 죽었다. 그의 죽음은 고요했고, 꿈에서 일어났기에 신비스러웠다. 그가 꿈을 꾸며 죽었다고 상상하는 우리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꿈꾸었던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끝없는 연결의 마지막-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완성하거나 혹은 지웠는지.... 어느 날 어쩌면 나는 그것을 쓸 것이고, 이 불완전하고 넉넉한 여담적인 독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단편을 교환하는 것을 시도할 것이
다. Van Wyck Brook은 The Flowering of New England에서, D.H. Lawrence는 Studies in Classic American Literature에서, Ludwig Lewisohn는 The Story of American Literature에서 Hawthorne의 작품을 분석하고 다룬다. 많은 전기작가들이 있다. 나는 Henry James가 1879년에 Morley의 English Men of Letters 시리즈를 위해 글을 썼다고 언급했다. 그 외의 많은 작가들은 고인 Hawthorne의 꿈꾸는 것에 대한 작업을 계승했다. 마지막 시간에 만약 여러분들의 관대하게 그것을 허용한다면, Poe의 고통과 영광, 그리고 그 안에서 꿈이 악몽으로 고조된 것을 연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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