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사 |
서울 구파발에서 문산 쪽으로 통일로를 달리다가 의정부로 가는 39번 국도로 우회전, 약 4㎞를 달리면 서서울C.C와 올림픽C.C를 가리키는 팻말이 나온다. 팻말을 보고 좌회전해 들어가면 벽제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315번 지방도)을 택해 들어가면 영조가 다니기 쉽게 "더 파 낮추라" 해서 "더 파기 고개"였다가 뒤에 "됫박처럼 가팔라" 됫박고개가 됐다는 "됫박고개"가 나타난다. 그 길은 구불구불하고 아기자기한데다 잘 다듬어진 하얀색 포장길이라 비교적 깨끗하고, 하늘로 솟구쳤다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 치듯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자주 반복돼 스릴있다. 하지만 좁고 차량 흐름이 많은 것에 비해 신호등 시설은 미흡한 편이라 초보자라면 각별한 안전운전이 요구된다. |
고찰 보광사(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는 그런 됫박고개 너머 오른편에 있다. 고령산(해발 621.8m) 서쪽능선, 우거진 숲 속에 숨은 듯 안겨 있어 큰길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아늑하고 조용하다. 포크레인 삽 모양을 한 특이한 형태의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대면 절까지는 걸어 5~10분 거리. 가을이라면 알아주는 단풍명소 다운 풍광을 자랑할 만한 길이다. 시멘트로 포장이 된 그 길은 종무소 즈음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으며 보광사 경내로 이어진다. 신라 진성왕 8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후, 고려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의 중수를 거쳤다는 이 절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가 영조 6년(1730년)에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광사에선 역사 깊은 사찰 다운 고풍스러움과 왕실의 원찰(숙빈 최씨의 묘 소녕원의 원찰)다운 위엄이 함께 느껴진다. |
또 한강 이북지역의 6대 사찰 중 하나로 꼽혔다는 창건 당시에 비해 절의 규모는 많이 작아졌지만 대웅전과 만세루, 원통전, 어실각, 후원 등이 오밀조밀하게 꾸며져 있어 언뜻 보기에도 꽤 운치있다. 특히 조선 말엽에 국운이 기우는 것을 염려해 지었다는 만세루에서 내려 다보는 보광사의 숲은 지극히 멋스러워 시심(詩心)을 절로 일으킨다. 깨끗하게 정돈된 절 마당 한가운데로 접어들면 퇴색한 단청이 고스란히 남아 정감이 가는 대웅보전이 나타난다. 높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서향으로 앉은 대웅보전은 다포계 양식의 겹처마 팔작집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에 기품이 장중한 건물이다. 주춧돌에 맞춰 자연스럽게 깍아 세운 배흘림 기둥이 멋스럽고, 영조의 친필로 알려진 편액이 기교없이 단아하고 강건하다. |
하지만 오늘날 실천불교의 요람이 된 보광사 대웅전 최고의 볼거리는 외벽 벽화다. 대부분의 사찰이 대웅전 외벽을 흙벽으로 만드는데 비해 이곳 벽화는 목판으로 만들어졌으며, 다른 사찰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소재의 그림이 민화풍의 3면 벽화로 그려져 있다. 특히 북쪽 벽에 있는 코끼리를 몰고 가는 동자그림은 동자에 비해 코끼리가 크게 그려졌고 상아가 6개인 것이 특이하다. 또 나무로 만든 본존불이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 기울인 자태도 재미있고, 화려한 연지가 펼쳐져 있는 벽화도 꽤나 멋스럽다. |
대웅전 맞은편 종루에 걸린 목어와 "숭정칠년 명동종"(경기유형문화재 제158호)도 흔히 볼 수 없는 명품이다. 1634년에 만들어진 숭정칠연 명동종은 쌍용 모양의 종루와 포탄 모양의 종신이 연결된 특이한 형태로, 크기는 작지만 매우 화려하면서도 다부진 느낌을 준다. 범종 위에 매달아 놓은 목어도 아주 독특한 형태라 국내 목어 연구의 대표적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몸통은 아직 물고기 모양이지만 눈썹과 둥근 눈, 툭 튀어나온 코, 여의주를 문 입, 그 리고 머리에는 사슴의 뿔까지 있어 영락없는 용의 형상이다. 이밖에 대웅보전 안에 있는 "영상회상 후불탱화"와 16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응진전",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어실각" 등도 보광사의 중요한 전각들이다. 어실각 앞에 있는 영조가 심었다는 향나무도 독특한 느낌을 주는 볼거리로 빼놓을 수 없다. |
대웅전 뜰을 나와 왼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석불 입상을 만나게 된다. 12.5m나 되는 이 석불은 "호국대불"로 불리는데, 부처님 진신사리와 보석불경 등을 봉안했다. 웅장한 규모가 보는 이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돌을 깎아 만든 정교한 솜씨가 돋보인다. 석불입상을 본 후에는 비구니들이 수도를 하는 영묘암과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오른편 양지바른 언덕에 있는 "연우지석"으로 가 보자. "연우지석"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새긴 비석으로, 이미 가버린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구구절절하다. 친구와 함께라면 이곳에서 친구와의 우정을 확인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겠다. |
보광사 내에는 도솔천이란 전통찻집이 있어 잠시 쉬었다 가기에도 좋다. 종무소 옆에 있는 목조건물로 원래는 신도들의 휴게실로 이용되던 곳이지만 방문객들에게도 개방한다. 이곳에서 고령산 계곡을 바라보며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매우 운치있다. 또 영묘암으로 가는 길 왼쪽 편에 있는 보광사 약수도 물맛이 좋기로 유명해 꼭 한 잔 마셔보길 권한다. * 입장료: 무료 * 주차료: 기본 2천원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보광사로 가는 길은 소문난 드라이브 코스여서 직접 차를 몰고 가는 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운치있다. 구파발 삼거리에서 문산으로 난 1번 국도(통일로)를 따라 달리다 대자 사거리에서 의정부 방면 39 번 국도로 우회전한 후 나타나는 고양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 벽제 삼거리에서 우회전한 후, 약 7km를 달리면 바로 "됫박고개" 너머에 있는 신라 고찰 보광사에 닿게 된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불광동 터미널(지하철 3호선 6번 출구)에서 보광사를 거치는 33번 광탄행 버스가 오전 6시부터 45여 분 간격으로 밤 10시 25분까지 운행된다. 불광동 터미널에서 보광사까지는 45여 분이 소요되며, 됫박고개를 넘어 바로 내리면 된다. 불광동 터미널에서 보광사까지 버스요금은 1,410원. |
Comment | |
서울에서 가장 손쉽게 갈 수 있는 당일치기 드라이브 코스로 가을철 단풍이 곱기로 유명하다. 수해로 인해 계곡이 많이 망가졌지만 보광사 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도 권할 만하다. |
보적사 |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자리한 보적사는 향토유적 제8호로써 삼국시대 독산성 축성 후 성안에 전승을 기리기 위해 창건했다. 수차례의 전란으로 중건하다 선조 정조 때 용주사 건립시 재건 후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법당인 약사전에는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오산역까지 직행버스를 이용, 약 50분 정도 소요된다. 오산역앞에서 지곶동까지 창운여객 마을버스를 이용해 약 25분 정도가 소요된다. |
봉선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운악산 기슭에 자리한 봉선사(奉先寺)는 조계종 제 25교구의 본사로, 969년(고려 광종 20) 법인(法印)국사 탄문(坦文)이 창건하여 운악사라 불리다가 조선 예종 1년(1469년)에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 윤(尹)씨가 세조를 추모하여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라고 개칭했다. |
당시 봉선사의 현판은 예종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지며, 이 해에 현재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는 범종도 주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이듬해인 1593년 주지 낭혜(朗慧)에 의해 중창되었다가, 다시 인조 14년(1636년)에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10여 차례 중건을 거듭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또 한번 완전히 소실된 후, 1956년부터 보수를 시작해 범종각, 운하당(雲霞堂) 등을 세웠다. |
문화재로는 범종(보물 제397호), 삼성각, 운하당, 벽경 등이 있으며, 봉선사 입구에 운허 스님과 친분이 있던 춘원 이광수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운허 스님은 상해에서 흥사단에 가입, 독립운동을 펼치던 분인데, 봉선사에는 운허 스님의 불교 대중화 의지가 담긴 "큰법당"이라는 한글로 큼지막하게 쓰여진 현판이 붙어있다 |
가수 조용필의 결혼식 장소로도 유명한 봉선사에서는 봉선사 대종이라고도 불리는 범종도 눈여겨볼 만하다. 신라나 고려의 범종 양식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범종양식을 개척한데다 그 빛깔이 오묘하고, 횡대 안에 조선시대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파도문을 사실적으로 새겨 놓아 그 역사적인 가치가 인정된다. 또 큰법당 뒤에 있는 삼성각과 개건당 건물도 눈에 띄고, 일반 절과는 달리 들어가는 문이 어느 이름있는 양반집 대문 같은 점도 매우 이채롭다. |
한편 봉선사는 광릉, 혹은 광릉수목원(국립수목원)에서부터 걸어가는 것이 좋다. 수백 년 전 광릉이 조성될 당시, 능으로 가는 우마차 길을 알리기 위해 오대산에서 가져와 심은 나무들의 2, 3대 후손이라는 전나무들이 양쪽으로 빽빽이 시립해 있는데, 그 느낌이 매우 좋다. 특히 새벽녘 안개 스민 때나 비 오는 날 소중한 사람과 걷는 느낌이 매우 좋은데, 인도가 따로 확보되어 있지 않은데다 차도가 좁고, 달리는 차들이 적지 않아 트레킹에 주의해야 한다. 입 장 료: 없음 주 차 료: 없음 문 의: 봉선사 종무소 031-527-1951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서울에서 광릉수목원 가는 길은 서울에서 의정부로 간 뒤 43번 국도를 타고 가다 314번 지방도(축석령에서 우회전)를 이용(32km)하는 방법과, 서울 태릉∼구리시∼퇴계원을 거쳐 47번 국도로 가는(34km) 방법이 있다. 이 중 서울∼구리시∼퇴계원∼광릉수목원에 이르는 길이 가장 많이 이용되는데, 서울에서 망우동을 지나 구리시 교문 사거리에 이르면 퇴계원 방향으로 좌회전한 다음, 길을 따라 5.6km 가면 퇴계원 사거리. 계속해서 47번 국도를 타고 12.3km 직진하면 광릉 삼거리다. 좌회전해 314번 지방도를 타면 봉선사와 광릉을 거쳐 수목원으로 이어지는 광릉 숲길이 펼쳐지는데, 길을 따라 3.4km 들어가면 오른쪽에 광릉이 있고, 다시 0.7km 가면 왼쪽에 수목원이 있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서울 청량리역 또는 경동시장에서 광릉내행 버스(707번, 7번, 50여 분 소요)를 이용한 다음, 광릉내 종점에서 수시로 운영되는 의정부행 21번 버스를 타면 된다. 광릉내에서 수목원까지는 10여 분이 걸리는데, 광릉내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봉선사에서 내려, 수목원까지 걸어가는 게 좋다. 또 수목원은 전철을 타고 의정부역까지 간 다음, 구 버스터미널인 21번 버스 종점에서 15~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광릉내행 버스를 이용해도 되는데, 의정부서 수목원까지는 30여 분이 소요된다. 이 때 관람순서는 도보로 수목원~광릉~봉선사. |
Comment | |
광릉수목원(광릉)과 봉선사를 잇는 314번 전나무숲길은 연인들의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자주 이용된다. 그 울창함이나 장대함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 때문인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데, 광릉수목원과 연계해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
불암사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불암산에 자리한 불암사는 신라 현덕왕 16년(824년)에서 헌강왕 8년(882년) 사이에 지증국사가 창건했다. 조선 세조 때 한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원찰을 정할 때 동불암, 서진관, 남삼막, 북승가 등 네 곳을 호국안민의 기도 도량으로 정하였는데, 불암사를 그 첫째로 삼았다 하여 더욱 유명한 곳이다. 또한 불암사에는 석씨원류외 31종 총 591매의 경판이 대웅전 좌측에 있는 동축당 다락 위에 가장되어 있는데,양단에 나무를 끼어서 판목이 균제를 지니게 하였고 재목은 자장목을 사용하였다 한다.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태능 선수촌에서 삼육대학교 쪽으로 들어가면 불암동이 나온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서울역이나 청량리에서 45번 시내버스나 745번 좌석버스를 이용, 불암동에서 하차한다. |
수종사 |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위치한 수종사는 운길산 중턱에 자리하였으며 동방사찰 제일의 전망이라 일컬어질 만큼 시원한 전경이 압권인 사찰이다.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1939년 경내의 석조부도를 중수하면서 조선초기 유물이 대거 발견됨에 따라 유물이 조성된 같은 시기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1890년(고종27) 풍계 혜일 스님이 고종에게서 8천 냥을 하사받아 폐허가 된 절을 중건하고, 이듬해 4천냥과 금백홍사를 시주받아 사존불을 개금했는데, 이 때 방광(放光)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
이곳 수종사에는 세조에 얽힌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세조가 만년에 지병인 나병으로 오대산까지 갔다가 수로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도중, 이곳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날 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를 따라 발길을 옮겨보니 지금의 수종사 자리에 있는 토굴에서 18나한상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바위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세조는 나한을 모신 절을 짓고 수종사라 이름했다 한다. 지금의 수종사는 6.25전쟁으로 인해 많이 변모한 모습이지만, 위풍당당한 풍치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현재는 1974년부터 중건된 것으로 대웅보전과 나한전·약사전, 산신각·경학원과 요사가 있으며, "석조부도"와 "삼층석탑", 그리고 세조의 명으로 중창할 때 세운 "팔각오층석탑"(경기도유형문화재 제22호)이 남아있다. |
수종사로 가려면 먼저 진중리 마을 안쪽에 있는 입간판(수종사까지 2km 지점을 알리는 이정표)바로 앞 빈터에 차를 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는 수고를 들이는 것이 좋다. 진중리 마을에서 수종사까지 2km남짓 되는 이 길은 그냥 술렁술렁 차로 가기에는 아까운 길이기 때문이다. 단숨에 올라가기에는 힘에 부친다 싶을 정도의 경사에 이리저리 구부러져 웬만큼 걸었는데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이 그리 쉬운 길은 아니지만 타박타박 오르다 중간 중간 내려다보며 올려다보는 경관도 전망대의 풍치만 못하지 않다. |
몇 차례 쉬어가기를 반복하며 한 30여 분 오르다보면 경사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매점이 보인다. 이곳이 수종사 입구다. 여느 절과 비교해보면 이곳에 일주문이 있을 법한데 이곳에는 우거진 송림사이에 통나무로 지어진 매점만이 있을 뿐이다. 기어이 이곳까지 차를 가지고 온 사람은 여기에 차를 세우면 된다.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쉬어가기를 한 후 단숨에 수종사로 향한다. 한 100여 미터를 오르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편으로 난 길은 운길산으로 향하는 등산로, 오른편 길은 절로 가는 길이다. 등산로를 뒤로하고 오른쪽 길로 향하면 이내 나타나는 돌계단에 끝이 바로 수종사다. 이 돌계단 위에 작은 일주문이 올해 3월 중순 전까지 있었다고 한다. |
이곳 돌계단에 올라서면서 바로 보이는 것이 선불장, 그 뒤로 약사전과 산신각 그리고 응진전이 차례로 보인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무언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절 안쪽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이내 대웅보전과 마주해 있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널찍한 마당을 둘러싼 나지막한 기와 담장 너머엔 시원하게 뻗은 산줄기와 그 뒤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서거정이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격찬해 마지않은 곳이다. 연신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주욱 돌리면 종각이 보이고 다시 대웅보전이 눈에 들어온다. 종각 자체는 여느 절과 비교해 다를 것이 없지만, 아니 조금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뒤로 펼쳐지는 절경을 등에 업은 종각의 모습이 기품있어 보인다. |
대웅보전 옆으로는 석조부도와 삼층석탑, 팔각오층석탑(경기도유형문화재 제22호)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부도는 1493(세종 21) 태종태후의 발원에 의해 조성된, 정의옹주(세종의 2녀)의 부도로 8각원당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중량감과 부드러움이 감돈다. 1939년 이 부도를 중수할 때 발견된 고려시대 청자항아리와 그 안에 있던 금동제 구층탑, 은제도금 육각감은 보물 제259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대웅보전의 앞마당을 지나 몇 걸음 옮기면 허름한 불이문이 나오는데, 그 안으로 고개 숙여 들어가면 세조가 중창 기념으로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높이 40여m에 둘레는 7m가 족히 넘을 것 같은 이 나무는 전설 속의 나이로 라면 550년을 훌쩍 넘은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 된다. 다시 발길을 돌려 전망대로 나오면 그 오른편에는 삼정헌이라 불리는 다실이 있다. 한쪽 벽면을 통유리로 만들어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조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토굴은 사라졌지만 그 토굴에서 흐르던 샘물은 여전해 그 물로 만든 차를 이곳 삼정헌에서 즐길 수 있다. 이곳을 들른 이들 모두에게 무료이며, 단 12시 이후부터 개방을 한다. 수종사의 입장료와 주차료는 없다. 수종사 : (031)576-1792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수종사로 가려면 양평으로 향하는 6번 국도를 이용하거나 경춘국도인 46번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구리 도농삼거리(검문소 삼거리)에서 우측 양평 방면 길을 택하면 6번 국도로 접어들고, 좌측 춘천 방면 길을 택하면 46번 경춘국도이다. 양쪽 어느 길을 택하거나 모두 수종사와 서울종합촬영소로 갈 수 있으며, 거리나 시간도 엇비슷하다. 6번 국도는 올림픽도로(강남 강변도로) 끝 미사리에서 팔당대교를 건너면서 우측으로 내려가도 만나게 된다. 6번 국도를 이용하는 경우 팔당대교를 지나 네 개의 연이은 터널을 지나면 양수대교를 만나게 되는데, 양수대교를 건너기 전에 우회전하여 45번 국도로 내려가야 한다. 이 길을 이용해 청평, 양평 방향으로 가면 양수교 앞에서 진중삼거리(검문소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청평 쪽으로 들어가다가 조안보건지소와 함께 수종사 입간판이 보이면 다시 좌회전하여 진중리마을로 들어간다. 자칫하면 수종사 입간판을 놓칠 수 있으므로 서행 운전은 필수. 1km 정도 더 들어가면 마을 빈터에 수종사 입간판이 다시 나오는데, 이곳에 차를 대고 걸어 올라 가는 것이 좋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서울 청량리역에서 일반버스 166-2번, 8번 또는 강변역 우성아파트에서 양수리행 2000번 좌석버스를 탄다. 상봉터미널에서도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 양수리행 버스가 있는데, 어느 쪽에서 버스를 타건 양수대교를 건너지 말고 진중삼거리(검문소 삼거리) 앞에서 하차한다. 그 다음 수종사 방면으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조안보건지소 앞에서 내려서 걸어들어 간다. 그리고 택시를 이용할 경우 진중삼거리에서 약 10,000원 정도면 충분하다. |
Comment | |
수종사의 백미는 단연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뛰어난 절경이지만 수종사로 오르는 2km 남짓 되는 진입로도 그에 못지 않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절 입구에 다다랐을 때의 기쁨은 매연을 뿌리며 승용차로 올라간 사람이 맛볼 수 없는 기쁨이다. 더구나 힘들게 올라 절 입구의 매점에서 먹는 라면 맛은 일품이다. |
신륵사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남한강변에 자리한 신륵사(神勒寺)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그러나 다른 고찰(古刹)들과는 달리 도로에 인접해 있고 또 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고찰로서의 고풍스러움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
이 사찰은 고려시대 한때 대찰의 위용을 갖추었었다고 전해지나 그후 쇠락의 길을 걷다 세종대왕릉이 이곳 여주로 천장해오며 세종대왕릉인 영릉의 원찰이 되어 유명한 사찰이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며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리고 현재의 건물들은 현종 12년(1671년)부터 다시 건립된 것이라 한다. 신륵사(神勒寺)라는 절 이름의 유래는 고려 고종 때 남한강 건너 마을에서 거칠고 사나운 용마(勇馬)가 자주 나타났는데 이곳 신륵사의 큰 스님이 신력으로 사나운 말에게 굴레를 씌웠다고 한다. 신륵사의 늑(勒)자가 바로 말을 통제하고 다스린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용마가 나타났다는 강 건너편은 마암(馬巖)이라 불리는 바위 언덕으로 현재 영월루가 자리잡고 있다. |
신륵사는 또 보물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조사당(보물 제180호), 보제존자 석종부도(보물 제228호),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호),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보물 제231호),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 다층전탑(보물 제226호)등의 보물이 있고 극락보전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중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다층석탑과 다층전탑이다. 대웅전 격인 극락보전 앞에 서 있는 다층석탑은 어른 키 정도의 그리 높지 않은 대리석탑으로 탑신의 세부조각이 사실적이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변 정자 뒤로 서 있는 다층전탑은 말 그대로 벽돌을 쌓아 만든 탑이다. 벽돌을 쌓아 만든 전탑(塼塔)이 쉽게 볼 수 없는 형태이기 때문인지 실제 일반인들은 이 다층전탑 앞에 더 많이 모인다. 벽돌을 쌓아 만든 탑이니 이렇다할 조각이나 문양은 없다. 다층전탑 아래로 신륵사 사진이 실릴 때면 빠지지 않고 실리는 커다란 암반 위에 세워진 강변 정자가 있고, 수령이 수백년 된 은행나무도 유명하다. |
신륵사 바로 앞이 현재 관광지로 개발중에 있다. 잔디밭에는 퍼팅장이 들어서고,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강변에는 여러 체육시설과 야영시설이 들어섰고, 보트장까지 가세해 사찰 분위기가 많이 퇴색했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중고생 1,600원, 어린이 1,100원이고, 주차료가 소형은 1,500원, 중대형은 3,000원이다. 주차시설은 넓게 잘 되어 있다.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신륵사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영동고속도로 여주 나들목을 나오자마자 만나는 37번 국도에서 여주 시내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5분쯤 달리면 버스터미널사거리를 만난다. 이 사거리에서 양평, 문막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계속 직진하면 여주대교를 건너면 여주일성콘도가 있는 사거리를 만난다. 이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신륵사 입구이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정동 톨게이트에서 약 1시간 거리이다. 상가 앞 주차장에서 신륵사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이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먼저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여주까지 가야 한다. 서울에서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상봉터미널 등에 버스가 있다. 버스터미널에서 신륵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 |
Comment | |
여주를 들를 때 가볼 만한 곳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신륵사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사찰 앞을 관광지로 개발할 때는 좀더 신중했으면 싶다. |
와우정사 |
경기도 용인시 해곡동, 연화산 자락에 위치한 와우정사는 실향민 출신인 해덕법사가 1970년 창건한 사찰로, 세계불교문화교류협회 본부이다. 이런 특징으로 다른 고찰(古刹)과는 달리 세계 각국의 불상들을 볼 수 있으며, 와불, 석탑 등에도 해외 불교의 체취가 배어 있는 곳이다. |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본관 건물인 세계 만불전을 바라보면 만불전 앞으로 커다란 부처의 머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불두(佛頭)이다. 부처의 머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그 높이가 무려 8m에 이른다. 이 불두를 만들기 위해서만 황동 5만근을 들여 1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부처의 몸까지 만들면 높이가 100m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불두를 지나 몇 걸음 옮기면 세계 만불전이다. 이 만불전에는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불상 3천여 개가 모셔져 있다. |
만불전 옆으로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가면, 길 왼쪽으로 다양한 형태의 석탑들이 일렬로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이 "통일의 탑"들은 세계 각국의 불교도들이 자국에서 가져온 돌로 쌓은 것이라 한다. |
길 오른쪽으로 경사길을 조금 오르면 대웅전 자리가 나온다. 아직 대웅전이 건립되지는 않았고 그 자리에 황동 5존불이 앉아 있으며, 그 옆으로 통일을 기원하며 만든 "통일의 종"이 있다. 이 통일의 종은 통일신라 시대의 황룡사 종과 같은 크기라 한다. 대웅전 자리와 "통일의 종"을 둘러보고 다시 "통일의 탑"으로 내려와 몇 발짝 오르면 왼쪽으로 열반전에 오르는 나무터널을 만난다. 이 터널을 10m쯤 오르면 석굴법당인 열반전에 닿는데, 이곳에 유명한 와불이 있다. 높이 3m, 길이 12m에 이르는 누워있는 부처, 와불은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향나무를 통째로 깎아 만든 것이라 한다. 규모만으로는 세계 최대인 와불이라 한다. 열반전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르면 와우정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각전을 만난다. 이 대각전에는 석가의 고행상이 있고, 대각전 앞에는 진안 마이산 탑사를 닮은 돌탑들이 서 있다.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다시 "통일의 탑"을 지나는 길과 이어진다. 사찰 전체를 둘러보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입장료나 문화재관리비는 없다. 와우정사 : (031)332-2472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와우정사로 가려면 대개 용인시내를 지나게 된다. 영동고속도로 용인 나들목을 나와 고가도로로 올라가지 말고 바로 우회전하여 5분쯤 직진하여 달리면 용인시내이다. 시내로 들어서면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42번 국도이다)한 뒤 바로 만나게 되는 사거리에서 57번 지방도로로 우회전한다. 시내 첫 번째 사거리를 놓치면 다음 사거리(고가도로가 가로질러 가는 사거리이다)에서 좌회전한 뒤 다시 57번 국도로 우회전해도 된다. 이 57번 국도를 따라 백암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면 곱돌고개를 만나게 되고 이 곱돌고개를 잠깐 오르다보면 와우정사 이정표가 나온다. 와우정사는 길 왼쪽으로 20m 가량 들어가면 된다. 주차시설은 넉넉한 편이다. 용인시내를 빠져나와 57번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면 정감어린 시골 풍경을 즐길 수 있어, 주변 풍광도 괜찮은 편이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버스 용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와우정사행 버스를 타야 한다. 와우정사로 가려면 운학리행 버스를 타거나 원삼, 백암행 버스를 타면 된다. 운학리행 버스는 와우정사 주차장이 종점이라 내리기 쉽다. 용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오전 9시 40분, 오후 12시 50분, 1시 40분, 2시 45분 출발. 원삼, 백암행 버스는 노선이 두 가지이므로 와우정사행인지 물어보고 타야 한다. 용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0시 50분, 11시 30분 출발. 버스기사에게 와우정사 앞에서 하차를 부탁해야 한다. 어느 버스를 타든 시간은 15분 정도 소요된다. |
Comment | |
와우정사는 오래된 고찰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고찰들은 대부분 깊은 계곡이나 산중턱에 자리해 자연미나 시원한 전망을 제공해 주는데, 와우정사에서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는 없다. 아직 창건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분위기가 산만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찰에서 느낄 수 없는 이국적인 느낌과 아기자기한 사찰의 배치는 와우정사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용인으로 방향을 잡는 가족여행이나 데이트 시에 한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다. |
용문사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산 중턱에 자리한 용문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아, 649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대찰의 위용을 갖추기도 했다고 하나 현재는 그리 규모가 큰 절은 아니다. 사찰 내의 건물들도 여러번 화재를 당했고 최근에는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버려, 현재의 건물들은 모두 그후 새로 지은 것들이라 예전 용문사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
용문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단연 용문사 은행나무이다. 절 안에 엄청나게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수령이 무려 10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의 지팡이라고도 한다. 이 나무는 국가에 환란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 운다는 전설까지 있다. 실제로 이 은행나무를 보면 누구나 그 크기에 놀라는데, 너무 크고 전지가 되지 않아서인지 언뜻 보기에 은행나무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이 은행나무가 노란색으로 변하면 가히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
또 용문사로 오르는 길은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로, 주변에 소나무를 비롯해 여러 수목이 울창하여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쾌함을 준다. 용문 산 입구 매표소를지나 광장 끝 새로 만든 일주문을 지나며 길과 계곡을 따라간다. 다리를 두어 번 건너며 구 일주문을 지나면 용문사가 나오는데, 여기까지 계곡이 이어져 중간에 잠깐 계곡에 발을 담그고 쉬어 가기에 좋다. 계곡의 수량은 용문산의 규모에 비해서는 좀 적은 편이다. 용문사에는 보물 제531호로 지정된 정지국사부도가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전통찻집이 있고 그 위로 부도밭이 있는데, 부도밭 위에 정지국사 부도로 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따라 산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정지국사 부도를 볼 수 있다. 산 속에 있어서인지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
현재 용문사에는 대웅전과 관음전, 지장전 , 삼성각, 범종각 등의 건물이 있다. 주차장 위 매표소에서 용문사까지는 도보로 15~20 정도의 거리이다. 용문사 입구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용문산랜드라는 작은 놀이공원이 있고 놀이공원 뒤로는 작지만 야영장도 있다. 입장료는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700원이고 주차료가 소형 2000원, 대형 4000원이다. 용문산 관리사무소 : (031)773-0088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용문사로 가려면 양평을 거쳐야 한다. 강남 지역에서는 올림픽도로를 타고 잠실 방향으로 끝까지 달려 팔당대교를 넘어 우회전하면 되고, 강북 지역에서는 망우리 고개를 넘어 구리, 도농삼거리, 덕소를 지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양평으로 향하는 6번 국도를 타게 되는데, 길이 시원하게 잘 뚫려 있다. 이 6번 국도를 타고 양수대교를 건너 옥천을 지나 양평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홍천 방향으로 좌회전하는 길이 있다. 이 길이 새로 뚫린 길이다. 거의 자동차 전용도로나 다름없는 이 길을 달리다보면 용문산이라는 이정표가 나오고 이 이정표를 보고 내려가서 좌회전하면 용문산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되는데, 용문산민속건강원 간판이 크게 있는 덕촌교를 건너서 직진하는 것만 주의하면 된다. 이 덕천교를 건너 우회전하면 중원계곡이 있는 중원산 입구로 들어서게 된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대중교통을 이용해 용문사로 가려면 양평이나 용문을 거쳐야 한다. 양평이나 용문까지는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이용하거나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 양평이나 용문에서 용문사 입구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
Comment | |
서울에서 하루 나들이 코스로 적당하다. 가족여행으로도 좋고 데이트코스로도 좋다. |
용주사 |
용주사(龍珠寺)는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송산리 화산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사도세자의 능인 융능(隆陵)의 원찰로 지어진 절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세운 갈양사(葛陽寺)라는 절이 있었다. 그후 조선 말기 22대 정조가 1790년 아버지인 사도사자의 능(현재의 융건릉)을 인근의 화산으로 이장하면서 이 절을 크게 중수하여 용주사라 이름을 바꾸고 융릉의 원찰로 삼았다.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로 바꾸게 된 것은, 절의 낙성식 날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현재의 용주사는 이때 정조에 의해 지어진 사찰로 조선 후기 왕실 원찰의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용주사는 다른 유명 사찰과는 좀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우선 도로변 평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일주문 주위로 담장이 있고, 천왕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삼문각이란 문이 있다. 또 대웅전 앞이 아니라 천보루(天保樓)라는 누각 앞에 석탑이 있으며, 천보루 역시 다른 사찰에서는 찾기 힘든 회랑이 양쪽에 연결되어 있다. 또 은중경탑과 효성전이 있는 점도 다른 사찰과는 다르다. 이런 차이는 모두 정조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추모하기 위해 절을 짓고 이 절에 자주 왕래했음을 반증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큰 편은 아니다. |
용주사는 평지 도로변에 위치한 사찰임에도 큰 고목들이 많아 산중의 아늑함과 평안함을 지니고 있다. 도로변의 일주문과 매표소를 차례로 지나면 길게 휘어진 멋진 길이 삼문각까 지 이어지는데, 흡사 일주문을 경계로 다른 세상에 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삼문각을 지나면 천보루(天保樓)라는 당당한 모습의 누각을 만난다. 천보루 양쪽으로 회랑이 이어진 것이 특이한데, 아마 정조가 들렀을 때 일행이 묵었던 곳인 듯싶다. 천보루 앞으로는 제법 넓은 터가 있는데, 용주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봄, 여름이면 단정한 싱그러움이 있고, 가을과 겨울이면 절제된 쓸쓸함이 베어나는 곳이다. |
천보루 좌측으로는 불음각(佛音閣)이라는 누각이 있고, 오른쪽 회랑 옆으로는 수각이라는 작은 건물이 있다. 이 수각은 긴 돌을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이 아주 특이하다. 지금은 수각 위에 있는 요사체인 동별당의 창고쯤으로 쓰이고 있다. 천보루를 지나면 대웅보전이 나온다. 건물 자체는 눈에 띄는 점은 없고, 대웅보전 안의 후 불탱화는 정조 당시 이름을 떨치던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이라 한다. 또 대웅보전 앞에 가느다란 회양나무 한 그루(천연기념물 제264호)가 있는데, 이 절을 중수하면서 정조가 직접 심었다는 회양나무로 수령 200년이 넘었지만 그리 큰 편은 아니고 곁가지도 별로 없어, 개혁에 실패한 정조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
대웅보전 왼쪽으로는 범종각(梵鐘閣)과 천불전(千佛殿), 십방칠등각(十方七燈閣)이 있고, 왼쪽으로는 법고각(法鼓閣), 은중경탑(恩重經塔)과 효성각(孝誠閣), 지장전(地藏殿)이 있다. 이중 범종각 안의 범종이 국보 제120호로, 신라시대의 범종으로 알려진(고려시대의 종이라는 설도 있다) 제법 큰 동종이다. 그러나 워낙 범종각의 창살이 촘촘해 자세히 보기는 힘들다. 대웅전 뒤로는 소나무숲이 있고 숲 가운데, 강설당으로 쓰이는 듯한 건물이 운치있게 자리잡고 있다. |
경내의 문화재로는 용주사 동종(국보 제120호), 회양나무(천연기념물 제264호), 금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청동향로(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호), 용주사 상량문(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호), 대웅전후불탱화(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호), 불설부모은중경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호) 등이 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중고생 800원, 초등학생 500원이며, 별도의 주차료는 없다. 용주사 : (031)234-0040 홈페이지 : http://www.yongjusa.com/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용주사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찾기 쉽다. 경부고속도로 기흥 나들목을 나와 바로 만나는 도로에서 우회전한 뒤 다시 만나게 되는 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고속도로 밑을 지나, 또 만나게 되는 사거리에서 직진한다. 이 길을 잠시 달리면 화성군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화성군으로 들어가자마자 만나게 되는 당골 삼거리에서 수원 방향으로 또 우회전한 뒤, 다시 바로 만나는 343번(또는 84번) 지방도로로 좌회전한다. 이 343번 지방도로를 달리다보면 1번 국도와 교차하는 병점사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직진하여 송산리에서 용주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용주사 앞에 닿게 된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1시간 정도 거리이다. 1번 국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병점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가면 된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대중교통을 이용해 용주사로 가려면 일단 수원역까지 가야 한다. 수원역까지는 버스나 1호선 전철을 이용해 가면 된다. 수원역 앞에서 시내버스 24, 24-1, 46, 46-1를 타면 용주사까지 간다. 수원역에서 약 30~40분 소요. |
Comment | |
용주사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융건릉과 함께 둘러볼 만한 곳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서울에서는 하루 나들이 코스로 적당하다. |
원효사 |
의정부시 호원동 원효사는 신라 선덕왕(632~649)때 원효대사가 한동안 이 곳에 안거하면서 수도장으로 삼았다하며, 이러한 연유로 이곳에 원효대사의 동상을 모시고 절의 이름도 원효사라 하였다. 1954년 주지 우일니가 재창할 당시 사지에서 불기, 수저, 기와, 구들, 동전 등의 유물이 나온 것을 볼 때 전혀 근거없는 낭설은 아닌 것 같으나 사적기록이 없어 언제 개창하였으며 그후 무슨 연고로 멸실되었는지 알 수 없다. 1956년 10월 복원사업을 시작 요사를 짖고 1960년 대웅전과 석가모니불, 문수보살불, 지장보살불 등 3존불을 봉안하고, 그후 미륵전, 관음전, 원효동상과 미륵불상을 봉안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자인사 |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 산정리에 있는 자인사는 산정호수에서 철원 방면으로 1km 가다 보면 나타난다. 명성산을 특별히 좋아했었다는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왕을 치기 위해 산제를 지내고 지었다는 곳으로, 자인사 건축에 각별히 신경썼다고 한다. 하지만 명성산의 아름다운 산세를 뒤로 하고 있는 자인사는 건축미보다는 10m가 넘는 키 큰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는 진입로가 일품이다. 특히 수목원길을 걷는 만큼이나 소나무 그늘이 우거져 있어 연인과 함께 걷기에 제격이다. |
그런 자인사는 산안마을로 가는 도로에서 자인사 이정표가 있는 오른쪽을 100m를 걸어 들어가면 나타난다. 깎아놓은 듯한 부도밭을 지나, 사찰입구로 들어서면 자인사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대웅전이 나타나고, 그 뒤에 최근 개보수해 외관이 화려한 극락보전이 있다. 사천왕상 대신 벼락맞은 나무를 깎아 세워 두었다는 독특한 형태의 장승들이 볼 만하며, 극락보전 앞에 있는 약수터가 유명하다. 이 지역의 "물이 좋다"라는 소문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맑고 시원한 물맛 때문에 산정호수를 찾았던 관광객들이 자인사에 들러 꼭 이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간다고 한다.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서울에서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가다 의정부역 앞에서 43번 국도를 타면 된다. 송우리~포천~양문~성동 삼거리를 지나 문암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다시 4.3km 정도를 더 들어가면 산정호수에 닿게 되고, 구리·퇴계원에서는 47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한화콘도가 있는 하동에 차를 두고 산정호수변을 따라 산책해도 되고, 상동 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가 세워두고, 하동 쪽(구름다리)으로 길을 잡아 산정호수변을 산책해도 된다. 자인사는 산정호수에서 철원 방향으로 1km 가다보면 오른쪽에 이정표가 보인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서울 상봉터미널(02-435-2122, 첫차 05:20, 막차 19:40)이나 수유역 터미널(02-495-5696)에서 운천행 버스를 타고 운천에서 다시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산정호수행 노선버스(15~20분 소요, 첫차 06:00, 막차 20:00)를 타면 된다. 또 의정부 터미널에서 산정호수로 가는 138-6번 버스를 타도 된다. 하루 5회(07:50, 11:20, 13:10, 18:30, 22:15) 운행되는 이 버스는 산정호수 상동 버스정류장까지 바로 가 중간에 갈아타는 불편함이 없어 좋다. 의정부에서 산정호수까지는 1시간 30분(평일) 정도가 걸리며,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산정호수까지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산정호수에서 의정부로 돌아오는 버스는 06:20, 09:55, 13:40, 17:00, 20:05에 있고, 의정부역에서 의정부 터미널까지는 도보로 15~20여 분이 걸린다. 또한 상봉터미널에서 포천 터미널까지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8시 35분까지 20분 간격으로 시외버스가 운행되며, 포천 터미널에서 산정호수까지는 오전 6시 40분부터 오후 9시 50분까지 10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산정호수에서 자인사까지는 도보로 20~30여 분이 걸린다. |
Comment | |
산정호수 여행시 빼놓지 않고 들러볼 만한 곳으로, 대웅전 뒤에 있는 약수터의 물맛이 뛰어나다는 소문이다. 또 자인사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소나무숲도 일품이다. |
칠장사 |
칠장사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현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이 칠현산(칠장산이라 부르기도 함)은 해발 500m 정도의 나트막한 산으로 가벼운 산행에 적당한 산이라 한다. |
칠장사는 그리 큰 사찰은 아니지만, 신라 진덕여왕 시절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역사가 깊은 사찰이다. 단청이 바래 고풍스러움이 깊게 느껴지는 대웅전 건물이 칠장사의 오랜 역사를 느끼게 해준다. 또 대웅전 뒤 언덕을 오르면 오백나한전이 있는데, 이곳까지 오르는 길이 짧지만 아름다운 편이다. |
이 칠장사는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중건되었는데 중건에 얽힌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당시 이 일대에 일곱 명의 도둑이 있었는데, 혜소국사가 이 일곱 명의 도둑들에게 설법을 전파해 모두 현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 일로 산 이름이 칠현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절을 지으며 도둑들을 내쫓거나 감화시켰다는, 이와 비슷한 설화가 너무 많아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역사가 오랜 절인 만큼 국보급 문화재를 지니고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칠장사로 가려면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만나는 호법분기점에서 남쪽으로 달리면 바로 일죽 나들목이 나온다. 이 일죽 나들목을 나서 바로 만나게 되는 38번 국도에서 우회전하여 안성 방향으로 간다. 조금 달리면 17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계속 38번 국도를 타고 직진한다. 조금 더 가면 다시 17번 국도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진천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17번 국도를 달린다. 17번 국도를 5분쯤 달리면 길 오른쪽으로 칠장사 이정표가 있고 이 길을 따라 5~10분쯤 들어가면 칠장사 바로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닿는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1시간 30분~2시간 정도 거리이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대중교통을 이용해 칠장사로 가려면 먼저 죽산까지 가야 한다. 서울에서는 진천행 버스를 타면 죽산에서 내릴 수 있다. 죽산에서 칠장사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
Comment | |
가까이에 이렇다할 명소도 없고, 멀리서 굳이 이곳을 목적지로 삼아 여행을 떠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일대를 지날 때 시간이 되면 들러볼 만하다. |
현등사 |
경기도 가평군 하면에 위치한 현등사는 절경으로 유명한 운악산 동쪽 중턱에 자리잡은 천년 고찰이다. 신라 법흥왕 27년(540년)에 인도에서 불법을 전하기 위해 마라가미라는 스님이 신라를 찾았는데 왕이 그 스님의 불심에 감복해 그를 위해 지어준 사찰이라 한다. 그러나 그후 수백년간이나 폐허로 변해 내려오다 고려 21대 희종(熙宗) 당시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석등(石燈)을 발견하고, 재건하였으나 또다시 폐사 직전에 놓였던 것을 조선 순조29년 (1829년)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등사는 양주 봉선사(奉先寺)의 말사(末寺)로 극낙전(極樂殿), 보광전(普光殿)이 있다. 이 극락전의 아미타물은 조선 영조 35년(1759년)에 주조된 것으로 높이가 3자 6치의 좌물상(坐佛像)이다. 또한 관세음보살 후불탱화는 1759년에 제작된 기록이 있고, 동종(銅鍾)은 임진왜란 후인 1619년(광해 12년)에 주조된 것으로 조선시대 범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밖에도 현등사 경내에는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 제63호)이 있는데 이 탑은 고려시대의 부도탑으로 조계종의 개조(開祖)인 보조국사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고, 그밖에도 지진탑(地鎭塔), 함허대사부도탑(涵虛大師浮屠塔), 화담당경화탑(華潭堂敬和塔), 북악부도(北岳浮屠) 등이 있다. |
현등사는 하면 하판리에서 4㎞ 거리인 운악산(雲岳山)에 있어서 마치 숲속에 묻인 사찰의 그윽한 풍경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충분하다. 해발 936m에 달하는 운악(雲岳)의 정기가 서린 봉우리 아래 커다란 가람(伽藍)을 이루어 건물의 웅장함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움, 또한 물과 들의 묘미 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울창함 숲속에서 우짖는 새소리 사이로 들려 오는 노승(老僧)의 염불소리는 유아무상(唯我無常)의 경지로 빠져들게 한다. 무우폭포는 현등사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20m, 폭 2m로 45도의 바위 위로 흐르는 물은 주위의 울창한 숲 속에서 지줄대는 새소리와 그사이로 들려오는 노승의 염불소리가 절묘한 조화를 들려준다. "인영환" 이란 글씨를 새긴 "민명환 바위"가 있는 폭포로서 그외 미륵바위, 눈썹바위, 치마바위 등 숨겨진 비경들을 둘러볼만 하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이며 단체일 경우 20%가 할인된다. 현등사 전화자동 안내 : (02)134-5611~3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47번 국도를 타고 내현을 지나 화현 못미쳐 우회하여 362번 지방국도를 이용해 현리까지 간 다음 상판 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현등사행 직행버스 하루 8회 운행. |
회룡사 |
의정부시 호원도에 위치한 회룡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2)에 의상스님이 창건했다고 하니 의정부지방에서는 망월사 다음으로 오래된 절이다. 그 후 경순왕 4년(930) 동진국사가 재창한데 이어 고려 문종 24년(1070)에는 혜거국사가, 고려 우왕 10년(1384)에는 무학대사가 개축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해 오다가 6.25 동란 때에는 완전히 불타 없어져 대웅전, 약사전, 선실, 요사를 차례로 복원했으며, 1971년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큰법당을 신축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회룡사의 귀중품은 의상대사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5층 석탑과 식수저장용으로 쓰이는 석조가 있고, 신장상을 조각한 노주가 있다. 이 절의 원래 이름은 법성사 였는데 회룡사로 고쳐 부르게 됐다는 전설은 구구하다. |
회룡사 내에 위치한 회룡사 5층석탑은 1986년에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 1호로 지정되었다. 6. 25때 심한 파손을 입어 옥개는 거의 완전한 것이 없고, 원래의 옥신과 상륜부 또한 없어졌다. 현재의 모습은 1979년에 깨어지고 없어진 것을 새로 복원한 것으로 2, 3, 4층의 탑신과 1, 3, 5층의 옥개는 새로 영조한 것이며, 다른 층의 것들도 일부 보수되었다. 1매의 지대석 위에 괴임대를 높직하게 하고 기단을 받쳤는데, 이 괴임대는 5구의 안상이 5칸 내에 음각되었다. 그 위에 부도에서 흔히 보는 상 . 중. 하대로 이루어진 기단부가 있는데 하대는 1면을 4칸으로 나뉘어 각 칸에 안상을 1구씩 음각했다. 상면은 복련으로 덮었으며, 중석은 각 면을 3칸으로 구획했다. 옥신은 모두 각 면을 3칸으로 구획하여 조각했다. 탑의 석재는 화강암이고 높이는 3.3m이다. |
흥국사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노고산 아래에 있는 흥국사의 본래 이름은 흥서암(興瑞庵)으로 문무왕 1년(661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그후 영조 46년(1770년)에 왕이 친히 행차하여 잠시 머물렀을때 산 이름을 노고산에서 한미산으로 바꾸고 절 이름도 흥국사로 바꾸었다. 약사전(藥師殿)은 이 절의 본전(本殿)이다. 전 안에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불상 뒤에 정조 16년(1792년)에 제작된 약사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특히 흥국사 경내 미타전에 있는 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는 1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19세기의 불화의 양식적인 특징을 감안할 때 그 화법은 대단히 뛰어나며 흔치 않은 불화라는 점과 수준 높은 화풍을 구사한 점, 일반 산수 회화 연구의 보조자료로서의 가치, 그리고 화사(畵師)들의 사보(師譜) 연구에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1번 통일로 타고 가다 구파발 삼거리가 나오면 고양시 쪽으로 가는 길과 장흥 쪽으로 가는 직진 길, 그리고 의정부 쪽으로 가는 우회전 길이 나온다. 이중 의정부 방면 우회전 길을 택해 북한산 길을 달리다가 절골로 들어가는 길을 만나면 좌회전 해서 흥국사까지 들어간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구파발에서 북한산성행 버스를 타고 절골 입구에서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