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 -
바람
바람이 부니, 그리 갈 뿐이다
눈보라 내리치는 한겨울에도
눈물 같은 비가 쏟아졌던 여름에도
헐벗은 몸뚱어리로 걸었다.
바람이 부니 그리 갔을 뿐이다
나도 모르는 안타까움의 긴 한숨과
내면의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이겨내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가슴을 내어주며 걷는다
* 이인규 : 소설가, Singer And Song Writter. 2006년 제9회 공무원 문예 대전 장려상 수상,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18년 한국문학예술 작사 부문 신인상 수상.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2018, ’비와 그대’ 등 창작곡 8곡 수록)’
눈이 마치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Mama, just killed a man’
영국의 록 보컬리스트, 록 그룹 퀸(Queen)의 멤버로 프로그레시브 록, 글램 록, 하드 록, 헤비메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던 프레디 머큐리는 이 노래에 어머니 혹은 연인이던 메리 오스틴에게 그가 자신의 남성상을 죽였다고 이런 가사를 삽입했다. 어떤 평론가는 모든 면에서 대립하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저항을 표시했다고 하며, 또 다른 이는 당시 프레디가 동성애에 빠져있어 커밍아웃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나의 해석은 달랐다. 그는 나처럼 사랑의 고통에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자신, 즉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눈 것이다.
그녀의 장례식을 다녀온 후 나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펜션 입구에 ‘영업 안 함’이란 표지판을 세워두었기에 겨울이면 해마다 눈을 보러 들르는 단골손님은 맥빠진 얼굴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고 안내실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가 그곳으로 떠나버렸기에 나는 더 살고 싶은 마음도, 삶의 의미도 없었다. 그녀가 떠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나는 마치 그처럼 나를 죽이기로 했다. 아니, 은밀히 말하자면 그녀, 유희에게 가기 위한 여행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은은히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 그의 높은 옥타브로 질러대는 성악적 음색 그리고 오페라 같은 몽환적 분위기의 노래는 날 죽음으로 몰고 가기 충분했다. 나는 와인 한 잔을 내 앞에, 그리고 나머지 한 잔은 그녀 의 사진 앞에 두었다. 그녀는 날 바라보는 대신 처연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만든 여덟 곡의 노래, 오로지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만을 위한 노래가 담긴 USB와 악보를 앞에 두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어둠이 내린 산골의 창밖에는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바람 소리, 고즈넉한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펜션 안내실에서 나는 사진 속의 그녀와 잔을 부딪쳤다. 붉은 와인이 혀끝에 닿자, 짙은 향이 온몸에 퍼지면서 내 눈에는 눈물이 조금씩 흘렀다. 유서는 쓰지 않았다. 그녀가 보고 있으므로 죽는 시간까지 나는 감상적이고 퇴폐적인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경계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그녀가 있는 곳으로 떠나면 끝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만을 위해 쓴 노래, 여덟 곡의 악보를 그녀의 사진 앞에 펼쳤다.
「비와 그대」, 「사랑은 할수록 외로운가요」, 「오선지에 감춰진 슬픔」, 「숱한 상념은 고독 되어」, 「생일 축하해요」, 「빨간 우산과 소녀」, 「그대에게」…….
맨 앞에 붉은 글씨로 아래와 같이 썼다.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 사랑하는 유희에게’
와인 한 잔을 다 비운 나는 이태 전, 사냥을 위해 샀던 엽총을 장전했다. 사진 속의 그녀는 웃고 있었다. 현세에서 이루지 못할 사랑을 저 너머에 시작하려는지 그녀의 얼굴엔 알 수 없는 웃음이 돌았다. 이제 모든 게 끝이었다. 나의 치열했던 삶도, 사랑도, 음악도…….
‘철컥!’
‘아저씨. 당신 때문에 정말 행복했어요. 고통 없는 곳에서 우리 꼭 만나요.’
그녀는 끝내 웃음을 보였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유희! 그대만이 나의 진정한 사랑이었소. 미안하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사진 속의 그녀를 바라보다, 끝내 나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눴다.
*
눈을 떠보니 천장을 비롯한 벽면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어찌 된 일인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제대로 보려 했으나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켰지만 똑같았다. 나의 양손과 양발은 침대에 묶여있었다.
직감적으로 나는 죽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녀는 어떻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 순간에도 나는 바보같이 그녀가 나와 함께 동반 자살을 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죽었음을 깨달은 나는 힘없이 손과 발을 널어뜨렸다. 그러다 너무 화가 나서, 있는 힘을 다해 간호사를 불렀다.
하지만 내 고함 소리에 달려온 사람은 간호사가 아닌, 201호였다. 그는 고통에 일그러진 내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살아서 다행이야.”
“…….”
“민수도 가고, 너마저 간다싶어 마음 졸였어.”
“어떻게 된 거야?”
“그날따라 예감이 좋지 않았어. 마침 눈이 많이 내려 일을 쉬고 있던 차에, 이상하다 싶어 곧바로 펜션으로 왔지. 안내실에 불을 켜져 있는데, 인기척이 없어 들어가 보니. 불행 중 다행이야. 총알이 목 언저리를 스쳤어.”
“…….”
“운명이라 생각해. 하늘나라에 있는 그녀도 그대가 지리산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거야. 그러다 때가 되면 가는 거지. 그때 만나도 늦지 않아.”
나는 그의 말에 한참을 울었다. 그런 나를 그는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자! 이것.”
그는 불쑥, 액자를 하나 내밀었다. 액자에는 그녀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유리가 깨어졌길래, 읍내에서 갈아 끼워 넣었어. 참! 아까 경찰이 다녀갔어. 괜찮아. 내가 다 잘 말 해두었어. 사냥을 준비하느라 약실을 청소하는 중에 오발 사고가 났다 했으니 별 일은 없을 거야.”
“병원엔 언제까지?”
“별일 없으면 한 달이라는데, 의사 말로는 삼 주 후엔 퇴원해도 된다 하네. 그동안 내가 그때처럼 네 옆에 있어 줄 테니 몸조리나 잘 해.”
그는 영원한 내 친구였다.
삼 주가 채 안 되어 병원에서 퇴원 후, 그의 권유대로 나는 겨울 손님을 받기로 했다. 아무 일도 않고 안내실에만 있으면 폐인이 된다는 그의 주장을 일리가 있었다. 그는 여전히 201호에 짐을 풀고 나는 간간이 단골손님을 받으면서 장작을 패기도 하고 손님들을 위해 마당에 불을 피우며 최소한의 생존에 들어갔다.
하지만 역시 밤이 문제였다. 나는 그녀에 대한 추억으로 여전히 밤만 되면 지독한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겨우겨우 수면제로 버텼지만, 새벽에 홀로 깨어나는 시간이 점점 심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과 어둠을 헤치고 그녀와 함께 갔던 개울에 갔다. 그는 나의 이런 몽유병 같은 새벽 산책을 몹시 걱정했다. 그래서 되도록 내가 낮에 잠을 잘 수 없도록 감시하는 한편,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 위해 산에 가서 토끼를 잡아 보신을 해 주는 등, 내게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있었다. 미안한 나는 그가 시키는대로 낮에는 육체적인 일을 하고 토끼뿐만 아니라, 개울에서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는 개구리도 먹어야 했다.
그 덕분에 몸과 마음이 서서히 회복될 때였다. 안내실에서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얼마 전부터 이 번호로 전화가 왔지만, 나는 모르는 번호라 애써 무시한 터였다.
“여보세요?”
“잘 계셨어요? 저…… 서울, 장례식장에서 뵈었던 유희 언니, 동생이에요.”
나는 목소리를 듣자 숨이 턱하고 막혔다.
“아! 네. 기억납니다만.”
“다름이 아니라, 언니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시인님과 관련된 게 있어서 아무래도 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내일 내려갈까 하는데 펜션에 계신가요?”
“유품?”
“네. 그것도 전해드리고, 어떤 일 때문에 전화로는 말하기 곤란해서 직접 만나 뵙고 상의할까 해요.”
옆에서 밥을 먹던 201호는 내 표정이 굳어가자 무슨 일인가 싶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죠. 내일 언제쯤?”
“오후 2시경에 가도록 할게요. 그럼.”
나는 전화를 끊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녀는 정확하게 오후 2시에 펜션으로 왔다. 다행히 한동안 내리던 눈은 오전 무렵에 그쳐있었다. 시간에 맞추어 미리 마당에 나가있던 나는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 먼저 인사했다. 멀리서 봐도 그녀는 유희와 외모가 비슷해 나는 순간적으로 착각을 할 뻔하였다.
“안으로 들어갈까요?”
“아뇨. 햇살도 좋은데 저기, 마당.”
그녀는 마당에 있는 간이 탁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201호는 커피를 끓이기 위해 안내실로 달려갔다.
“불쑥 찾아와서 정말 죄송해요. 저도 많이 고민하다, 아무래도 이 일은 시인님을 만나 뵙고 직접 말씀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유희와 관련된 일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갔다.
“그렇군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러자 그녀는 핸드백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
“이것.”
어제 그녀가 말한 유희의 유품이었다. 나는 얼른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놀랍게도 나와 유희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 풀 반지가 들어있었다. 나는 그녀가 아직도 이걸 보관했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했다.
“언니가 그러더군요. 자신이 받은 선물 중에 이게 가장 소중하고 값지다는 말을 제게 수시로 했어요.”
나는 하마터면 울 뻔 하였다.
“이곳 개울 근처에서 만들어 준 풀 반지였지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망설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언니와 저는 비밀이 없었어요. 거친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우리 둘뿐이라 그런지, 언니는 제게 시인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빼지 않고 다 해주었답니다. 처음에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랑했으며, 또 어떻게 헤어졌는지 본의 아니게 전 다 들었어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어떤 일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언니가 죽은 뒤, 장례식장에 코빼기도 안 비추었던 전 남편이 한날 절 찾아왔어요. 언니 방 컴퓨터에 저장된 유서가 있었다면서요. 그 유서에 언니의 딸, 소희에 관한 게 있었어요.”
기억이 났다. 그녀를 빼어 닮은 예쁜 여자아이,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날 지리산에 사는 시인이라고 말한 아이, 내가 오열할 때 날 안아주었던 그녀의 딸이었다.
“소희가 왜?”
“언니는 유서에 소희가 전 남편의 아이가 아니란 것을 분명히 적어두었답니다. 그래서 언니는 이혼 하더라도 소희만 데려가고 싶다고 한 거구요. 언니는 전 남편에게 그 아이를 친아빠에게 데려주라는 마지막 부탁을 했나 봐요. 그걸 보고 전 남편이 생각이 바뀌었는지 제게 그 아이를 데려왔답니다.”
나는 정신이 아득했다. 멀리 섬광이 번뜩이는 것 같기도 했고 머리 속이 하얗게 변했다가 돌아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소희는?”
나는 불현듯 그녀를 찾아간 서울, 신촌의 모텔, 마지막 밤이 떠올랐다.
“언니와 최 시인님의 딸입니다.”
그때 커피를 가져오던 201호가 그녀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무슨 말을 하려 해도 자꾸 헛기침만 나왔다.
“소희를 맡아 길러줬으면 해요. 언니의 마지막 부탁이기도 하구요.”
“아이는 지금?”
“차에서 자고 있어요. 아! 마침 지금 오네요.”
‘세상에 이럴 수가!’
나는 충격으로 머리가 뒤죽박죽되었다.
유희와 나의 딸인 소희가 막 눈을 비비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걷는 모습이나 눈을 살짝 찡그리는 표정이 그녀와 똑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여동생이 아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인사드려야지.”
소희는 날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자세히 보니 유희뿐만 아니라 내 얼굴과도 닮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인사하는 소희에게 한 발자국 다가섰다.
“이모! 그러면 이 시인 아저씨가 내 친아빠란 말이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희는 예쁜 얼굴로 날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감동과 환희에 젖어 두 팔로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나는 마치 그녀를 안고 있다는 생각으로 소희를 안아 빙글빙글 돌았다.
그제야 마당에는 소담스러운 눈이 내리면서, 언덕 너머 절에서 들리는 오후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