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2006. 봄)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는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통영행 버스 편을 5분 정도 남겨두고 정신없이 차에 몸을 맡기는 순간, 버스 기사님은 나를 기다려 주었다는 듯이 곧바로 출발했다.
앞쪽 자리에 착석하고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동안 남편을 설득해 기다려 온 이 시간은 나를 얼마나 설레게 했던가! 충무라는 지명이 통영으로 바뀐 지 꽤 되었건만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는 쉽사리 충무라는 지명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광주에서 통영으로 가는 교통편이 너무 불편했었는데, 이번에 새로 도로망이 뚫린 이후로는 한결 수월해졌다. 버스가 직행으로 하루에 세 번이나 다닌 뒤로 처음 차를 탄 것이다. 사상 유래없는 광주에서 통영 간 고속버스가 생기고 보니 통영에 살고 있는 초등 친구를 자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동안 그리워도 전화로만 안부를 물으면서 지내오던 차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실천으로 옮겼다.
광주에서부터 통영까지 12개의 터널을 지났다. 소원했던 친구와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니 터널을 지날 때마다 마음은 더 빨리 친구에게도 달려가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다리미로 쭉 다려 놓은 듯이 매끈하여 기분마저도 상쾌했다. 도로 사정이 눈부시게 발전되고 있는 현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통영 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바로 시내가 연결되어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통영에 가려면 사천 비행장을 끼고 3시간이나 걸렸는데, 새로 생긴 도로 덕분에 30분이나 단축이 되어 금방 달려 온 것 같았다.
통영은 예전부터 한국의 '제2의 나폴리'라는 명칭을 얻을 만큼 푸른 비취색의 앞바다와 주변의 150여 개의 섬이 어우러져 수려한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또 그뿐이겠는가 굽이굽이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유명하다. 아침에 크고 맑은 해가 바다 위로 떠오르고, 저녁에 붉은 노을로 물들이며 지는 황홀한 광경을 볼 수 있다니, 이처럼 아름다운 곳을 두고 굳이 거금을 들여 외국 관광이 필요하겠는가?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통영의 유명 인물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문학의 대모인 '토지'의 작가 박경리와, 청마 유치환 시인님과의 러브스토리로 유명한 시조 시인 이영도 님의 비롯하여 이국땅에서 죽는 날까지 통영 앞바다를 그리워했다는 비운의 음악가 윤이상, 작가인 유치진·유치환 형제,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 수많은 예술가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청마의 시 한 구절 속에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 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그의 시를 떠올리며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시 속의 배경인 청마거리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통영 우체국 건너편 이층집은 이영도가 살았고, 사모하는 여인의 집이 바라보이는 우체국 앞에서 편지를 쓰는 청마의 마음은 얼마나 그리움으로 쌓였을까?
통영 생각에 심취하여 묵독하고 나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통영대교와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친구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오고 있는 친구들은 한 시간 남짓 기다려야 해서 아이쇼핑으로 통영의 자랑인 누비천 제품들이 있는 가게 <고운 누비>에 들렀다.
통제영 시절에 12 공방으로 더욱 빛을 낼 수 있었던 나전칠기, 통영 장석, 통영 누비, 통영갓은 그 솜씨가 전국에 이름나 있다. 그중에서도 나의 관심은 두 겹 천으로 누빈 소품들이었다. 누비만 전문으로 30여 년의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언제인가 동창 모임 때 친구가 통영의 누빈 손가방을 들고 왔던 모습이 여성스럽게 느껴져 멋있었다. 그 후로 누비 가방이 마음에서 지워지질 않아서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
진열대에 오색찬란한 누비로 만든 핸드백과 버선, 앞치마 그리고 단아한 색상으로 우아함을 더해주는 누비 카펫은 왕실을 연상케 했다. 보기만 해도 조심스러웠다. 사전에 얘기해 놓은 친구의 넉살에 여러 가지 소품들을 꺼내주는 주인의 친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6시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데, 오래전부터 누비에 대해 구경할 목적을 우선에 두었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편안하게 누비에 대한 상식도 함께 배려하는 주인의 마음이 더없이 고마웠다. 이것저것 몇 가지를 고르고 나니 어느새 서울 친구들이 도착할 시간이 되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곳을 나왔다.
두 친구를 맞이하고 통영 친구네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짐을 풀었다. 친구는 딸을 네 명 두었는데 큰딸을 결혼시키고 나머지 딸들은 대학을 서울로 보내고 널찍한 공간에서 신혼처럼 살고 있었다.
친구 남편의 후덕한 인심에 부담 없는 하룻밤을 보냈다. 일상생활의 굴레를 벗어나서 새로운 자유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고마움이 더해지는 시간이었다.
영순이는 학창 시절에 카리스마가 넘쳤는데, 두 손주를 키우느라 시달리는 굴레를 잠시 벗어버리는 자유의 시간, 정숙이는 홀 시어머님을 모시고 세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버거웠던 짐들을 잠시 밀어놓는 시간이었다. 짧은 외출이 여왕 부럽지 않다는 모습들 속에서 나 또한 행복함이 더해지는 기분이다. 어찌 되었거나 50대를 넘은 넉넉한 마음이 우리를 평안한 외출로 자리매김하여지지 않았는가! 네 명의 여인들은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우고 다음 일정을 위해 집을 나섰다.
친구 남편은 우리에게 해안도로의 경관을 보여주기 위해 서행하며 배려해 주었다. 이미 차 안에서는 봄의 소리가 한창이었다. 봄은 남녘에서부터 온다고 했던가, 그곳은 벌써 청매화가 군데군데 향기를 뿜어내며 행락객을 유혹했다.
해마다 가는 곳이지만 이번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초대해 준 친구의 덕이었고, 어릴적 친구들이 모두 중년의 여인들이 된 덕이리라. 일행은 통영 해안도로를 타다가 전망 좋은 곳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꽃과 향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시간은 봄눈처럼 사르르 지나가고 우린 아쉬움만 가득 채우고 헤어져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