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이 준 선물
2015년도 막바지 여름이었다. 막내딸 유하가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큰엄마, 우리 여름 여행 갈까요?”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런 제안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순간 놀라웠다. 어린 꼬마가 어느새 훌쩍 커서 대학을 졸업하고 안전한 직장인이 되었다는 게 가슴이 뿌듯했다. 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망설임도 없이 승낙했고 여행의 목적지인 홍콩으로 가기 위해 곧바로 3박 4일 동안 필요한 짐을 꾸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진해 공항을 향하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안개 낀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딸과 눈웃음으로 마주하며 성호경을 그었다. 오랜만에 집안일을 남편에게 맡기고 나오니 조금은 미안했다. 남편의 따뜻한 배려가 편안한 여행이 될거라고 생각하며 딸과 나는 어린아이처럼 기뻤다.
김해 공항에서 홍콩 비행기를 타고 3시간 걸려 공항에 도착했다. 서울에 사시는 언니 부부와 함께하기 위해 홍콩 공항에서 만나자는 사전 약속이 되었던 터라 시간에 맞춰 만나니 반가웠다. 자유여행으로 계획을 세웠던 딸은 그 나라의 언어가 가능하다고 해서였다.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것을 딸에게 맡기고 열심히 움직였다. 버스를 타는 것부터 유창하게 말을 하는 딸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내심 대견 했다. 첫날이라서 게스트 하우스(미라도 맨션)에서 해결할 식단을 짜며 마트에 들렀다. 마트 안은 어찌나 규모가 크던지 미로 같았다. 나는 신기하기만 한 대형 마트에서 메뉴를 골랐고 딸은 계산대에서 유창한 언어로 마무리하고 나오는데 ‘자유 여행의 기분이 이런 것인가’라고 생각 했다. 저녁을 마치고 다시 홍콩의 야경을 보기 위해 숙소에서 나와서 빅토리아 피크로 갔다. 피크트램을 타려고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드디어 피크트램에 승차했다. 스카이라운지까지 타는 시간은 약 7분 소요되었지만 트램이 급경사로 오르는 과정에서 양쪽 아파트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어 무너질 듯 아찔하게 세워져 스릴을 맛보았다.
스카이라운지에 도착하니 캄캄한 밤, 홍콩 시내의 건물들이 온통 네온사인으로 감싸진 듯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안개가 자주 끼어서 화려한 야경을 보려고 신경을 써야만 했고 잠시 안개가 걷힐 때면 야경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법석들이었다. 늦은 밤에 숙소에 들어가서 내일에 마카오의 성지순례를 위해 얘기를 나며 첫날밤을 보냈다.
마카오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세나도 광장으로 이동해서 택시를 타고 까모에스 광장으로 갔다. 마카오는 동서양의 역사 중심지를 대표하는 나라다. 마카오 구시가지에 보물처럼 자리하고 있다. 딸은 내 마음을 읽은 듯이 이곳으로 이끌었다. 여름은 사계절 중 기후가 우기이란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우산을 지붕 삼아 지도를 펴고 열심히 순례했다. 그곳에는 성 안토니오 성당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날은 사람이 없어서 성당이 조용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제대 앞에 무릎 꿇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후덥지근한 기온에 비까지 계속 내리니 이정표 찾기가 힘들었다. 다리가 아팠지만, 꼭 찾아갈 곳은 까모에스 공원 깊숙한 곳에 세워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동상이었다.
김대건 신부님이 마카오에서 공부하시던 곳이다. 1985년 10월 4일에 등신대 입상으로 건립한 뜻은 성인에 대한 존경심을 높이고 한국의 신앙심과 그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리려는 것이었다. 이정표 글씨가 너무 작아서 알아보기 어려웠다. 녹음이 우거진 곳에 세워진 동상에는 새들의 배설물로 뒤덮여 있어 마음이 울컥했다. 한참을 맴돌고는 묵주기도를 바치고 착잡한 마음으로 떠나왔다. 오랜만에 단둘이 여행인지라 마카오의 유명한 거리 곳곳을 도보하며 쇼핑하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냈다. 다시 홍콩에 숙소로 와서 심천을 가기 위해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심천으로 가기 위해서 언니 부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중국인 모녀가 합승했다. 고층에서 타고 내려오는 동안 딸하고 무슨 말을 건네는 중에 그 모녀가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표시를 했다. 딸이 웃으면서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주고받는 모습이 궁금했고, 나중에 물어보니 두 모녀가 주고받는 얘기인즉슨 그 엄마가 “저 사람들 뚱뚱하다.”라고 하니까, 그의 딸이 “엄마, 말 알아들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라고 물으니, 엄마는 “우리말 못 알아들을 거다”라고 했단다. “알아들어요!”라는 딸의 말에 깜짝 놀라며 사과했다는 것이다. 딸은 웃으면서 괜찮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 일을 겪고 보니 영어에 중국어까지 독학으로 마스터한 딸의 외국어 실력이 검증되어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여행 중에 잊지 못할 에피소드 중 하나다.
심천으로 가려면 국경을 넘어야 했다. 홍콩에서 지하철로 약 1시간 정도 걸려 심천에 도착했다. 딸은 심천의 무역센터에서 대학 전공 관련해 2년 동안 공부하며 일했다. 그래서인지 지리를 동네처럼 잘 알았다. 명품 백화점에서 언니랑 같이 진주 목걸이를 상상도 못할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비록 짝퉁이지만,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건 순간에는 귀부인이 부럽지 않았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솜씨였다. 시장을 구경하며 그 나라의 음식도 맛보았다. 매콤한 면 종류의 사천요리를 먹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먹던 음식과 비슷했다. 뚱먼 번화가를 도보로 구경했다. 마지막으로 딸이 준비한 깜짝 선물은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한 마사지였다. 마지막까지 세심하게 배려해 준 딸의 마음을 생각하며 행복한 여행을 마무리 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홍콩 국제공항으로 와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다시 추억하지만, 청춘의 휴가를 반납하고 나와의 여행을 함께 했던 딸의 귀한 마음에 두고 두고 고마움이 남았다. 집안 건사를 뒤로 미루고 딸의 제안에 용단으로 떠났던 오붓한 여행은 두고두고 보물처럼 꺼내볼 추억이다.(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