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묵상 3. 거룩한 간구자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9-10)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8)
복을 준다는 것은 은총을 베푼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기쁨을 주고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야베스처럼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저 사람들은 제발 복을 주지 말아주세요'라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 대신 '주님, 당신이 무엇을 하시든 제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저께 우리는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복 주기 원하시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어제는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그분의 풍성한 은혜는 언제든 우리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필요한 게 있는데 바로 '간구'다. 간구만이 하나님의 은혜의 창고를 열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도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드렸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네'라고 대답한 사람은 백 명 중에 한 명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가 먹을 음식에 복 주시길 기도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에게 복을 달라고는 기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복 주시길 간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런 간구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구원받은 순간 모든 영적인 복은 이미 우리 것 아니던가요? 그런데 무얼 더 간구해야 한다는 거죠?'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어떤 복은 구원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오기도 한다. 신학적으로 볼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늘에서는 서른 개도 넘는 일이 일어난다. 무엇보다 우리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들여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 이 외에도 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우리가 구원받는 시점에 완성하신다. 그것은 사실이다.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엡1:3) 복 받았다고 말했을때, 그가 언급하고자 했던 복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 복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반은 이 땅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그 나머지 반은 잠재된 복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복을 갈망하기 바라신다. 우리쪽에서 먼저 복 주시길 졸라댈 정도로 말이다. 요구하지 않으면 복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 버리고 말 것이다. 이것은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원리다. 하나님은 그분이 예비하신 최선의 것을 우리 앞에 놓으시고는, 그것을 가질지 말지 선택하라고 말씀하신다. 야고보는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요' 라고 꾸짖는다. 예수님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진정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간구해야만 한다. 나는 당신이 삶을 변화시키는 이 자각을 하루 속히 하기 바란다.
나는 이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는데,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기대와 흥분과 안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새롭게 사는게 가능할 뿐 아니라 정말 그런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슬픔과 후회로 얼룩진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헛되이 지나가 버린 세월을 돌아보며, 자기가 사기 당했고 길 안내를 잘못 받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무지와 나태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향해 갖고 계신 커다란 계획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언저리에서만 겉돌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당신은 전자에 속하는가, 후자에 속하는가? 당신도 당신의 것으로 마련되어 있는 것을 놓쳐버리고 살지는 않는가? 당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아왔는지 알고 싶다면, 다음 질문을 던져보면 된다.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하나님께 나에게 복 주시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구체적으로 몇 번이나 했는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보면,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놓친 부분이 얼마이고 얻은 부분이 얼마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간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응답을 놓쳐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응답은 간구할 때만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간구함으로써 삶이 변화되는 경험을 해보라. 하나님은 오늘도 거룩하게 간구하는 자녀를 찾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샅샅이 살피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더 큰 운명을 허락하기 원하신다. 당신의 가슴에 상처로 인한 구멍들이 있다면 그것도 채워주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복을 필요에 따라 복을 주어, 당신이 어느 특별한 영역에서 복 받고 싶다고 하면 그 요구까지도 들어주실 정도로 당신을 간구를 기다리시고사랑하신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신을 강요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으신다. 당신이라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을 좋아하겠는가? 그분은 은혜로 충만하시다. 그리고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 바라신다. 간구할 때만 평범한 삶이 '보다 존귀한' 삶으로 변할수 있다. 지금도 하나님은 기쁨과 기대가 섞인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실 것이다. 야베스를 그러한 눈으로 보셨다면, 분명 우리도 그러한 눈으로 보실 것이기 때문이다. 간구하는 것, 그것만이 기적의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 나의 야베스 기도 일기
내가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간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지금 당신에게 10가지 간구하는 기도를 즉시 응답하시겠다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구하겠는가? 나라와 교회를 위한 기도 제목 5가지와 나와 가정을 위한 기도제목 5가지를 적고 간구해보라
야베스의 기도묵상 4.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9-10)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6-28).
예수님은 삶에 빈 자리가 있어 누군가 채워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에게 많이 끌리셨다. 그 가운데는 패배자들과 고독한 자들, 병든 자들과 장애자들, 약한 자들과 굶주린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셨으며 그들의 필요를 열심히 채워주셨다. 예수님이 제자로 택한 사람들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야베스는 성경에 기록될 만큼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 게 훨씬 좋을 뻔한 사람이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데다 그 역시 가난했으며, 내세울 만한 사회적 지위도 없었고, 특별한 재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래가 전도유망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유대 역사의 맨 뒤 페이지에,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천하게 살다간 사람들 가운데 한 명으로나 언급되면 딱 적당할 인물이었다. 에셀, 고즈. 아눕 등 역대상에 스쳐 지나가듯 언급되고 있는 다른 친척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그는 중요한 사람, 존귀한 사람, 성취한 사람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삶을 살았다.
야베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야베스같이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야베스의 삶에 담겨 있는 진리다. 혹시 아그네스 브약스히야(Agnes Bojaxhiu)라는 여인에 대해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대학교육도 못 받았으며 좋은 남자와 결혼해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지도 못했고 부유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오히려 캘커타라는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며, 굶주리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누가 물으면 자신의 소명은 사회사업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지금 그녀는 아그네스 브약스히야라는 본명보다는 노벨 평화상을 받고 자선 단체를 설립한 테레사 수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주름투성이지만 기쁨이 스며 나오는 얼굴과 구부정하게 구부러졌지만 당당한 그녀의 모습은 20세기 전체를 통틀어, 신앙을 행동으재 옮긴 인물에 대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녀가 설립한 수도회는 현제 연간 50만이 넘는 가정에 양식을 공급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9만 명에 달하는 한센씨병(문둥병) 환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죽기 몇 해 전에 한 기자로부터 '수녀님, 수녀님이 마냥 저희들과 함께 있을 수는 없을텐데요. 수녀님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지금 하시는 일들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그녀는 '하나님이 저보다 더 쓸모없고 더 무익한 사람을 발견해 그를 통해 제가 한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을 하시겠지요'라고 대답했다.
혹 당신은 겉으로는 강한 척, 그런대로 괜찮은 척 가장하겠지만 이 세상에서 당신만큼 복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이 너무 상처받기 쉽고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절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가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주제 넘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 혼란을 내가 한번 정리해 보겠다. 우선 당신이 ‘나는 복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질문부터 답하자면, 내 대답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이다. 이것은 당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너무 보잘것없고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진리를 당신의 것으로 붙들어라. '나처럼 쓸모없고 보잘것없는 사람도 없을 거야'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이 예수님을 필요로 할 때 그분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관대함 없이는 아무것도 될 수 없고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분을 찾을 때 기뻐 뛰며 즐거워하시는 것이다.
혹 당신은 자신의 무능함만을 너무 크게 본 나머지, 예수님이 주시는 복된 삶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단언컨데, 그것은 교만이다. 그러므로 그런 교만한 덫일랑 한쪽으로 치워두고 이제부터라도 변화되도록 하자. 당신은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그 사실이 하나님 입장에서는 당신을 사용하기 딱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세상이 생겨나지도 않았을 때부터 하나님은 당신을 아셨고 사랑하셨다. 그분은 당신이 모든 것을 다 잘 해내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두 손 활짝 펴고 그분께 나아오기를 기다리실 뿐이다.
* 나의 야베스 기도 일기
나를 위해서도 큰 계획을 갖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당신의 특별한 은총을 오늘 저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제 삶 가운데 특별히 복을 주시고자 하는 '작은 것들'이 있다면, 이 시간 생각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