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피로을 덜기 위해 원본에 없는 행 띄위를 하였습니다.
러브호텔
권 예 자
오늘은 같이 다니던 이 선생에게 중요한 일이 생겨서 나 혼자 기차를 타게 되었다. 싹싹하고 상냥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사이에 영등포에 도착하고는 했는데, 조금 지루할 것 같아서 문정희 시인과 동행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그의 시를 별로 읽은 적이 없다. 다만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를 읽고 느낀 점이 많아서 오늘 동행을 하기로 했을 뿐. 그녀가 말을 걸었다.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다
나는 그 호텔에 자주 드나든다
상대를 묻지 말기를 바란다
수시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참 매력적이다. 어쩜 이렇게 편하고 솔직하게 시를 쓸 수 있는 건지. 시내를 벗어나면서 기차는 아카시아 꽃길 속을 달린다. 하얀 꽃들이 보이는 곳마다 가득하다. 향기는 숨이 차서 우릴 따라오지 못하고, 둥글게 팔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여 안부만 전하고 있다. 갑자기 내려서 그 속을 걸으며 향기를 탐하고 싶어진다. 아카시아 꽃길 끝에 십자가가 지나간다. 한 개, 또 한 개, 그리고 세 개, 참 많기도 하다. 시인은 계속 말한다.
내 몸 안에 교회가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들어가 기도한다
가끔 울 때도 있다
나는 문 시인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여 공감한다. 우리나라엔 나 같은 형식적인 종교인이 정말 많다. 처음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기독교 국가의 외국인들이 밤에 시내 구경을 하다가 수많은 붉은 십자가를 보고 여기가 곧 천국이구나 하고 놀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 바로 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고, 살인하고 도둑질을 한다. 교회 안에서 눈물을 떨어뜨리며 참회하고, 거금의 헌금을 하던 그 사람과는 아주 다른 사람인 것처럼, 근사하게 하느님을 속여버리고 낄낄거리며 살아간다. 그녀는 계속 말을 잇는다.
내 몸 안에 시인이 있다
늘 시를 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주 드물다
나도 글을 쓴다. 그러나 글다운 글을 써서 흡족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아직 없다. 그러면서도 뒤늦게 택한 길을 버리지 못하고 주춤주춤 선배들의 그림자를 따라가고 있다. 언제쯤 내 마음에 꼭 드는 멋진 글을 쓸 수 있을지 나 자신도 알 수는 없다. 이건 어쩌면 내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분수 넘친 길을 선택한 무지의 탓일 수도 있으리라.
오늘, 강연에서 한 유명 교수가 말했다
최근 이 나라에 가장 많은 것 세 가지가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라고
나는 온몸이 후들거렸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많은 곳은
바로 내 몸 안이었으니까
조치원을 지난 것 같다. 노란 주유소가 지나가고, 멀리 메타세쿼이아의 가로수가 흐르듯 지나간다. 산기슭으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그림 같은 마을엔 사랑이 가득가득 담겨 흐르는 듯하다. 기찻길 옆의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작은 벼들이 까치발을 올리고 빠르게 스쳐 가는 기차를 바라본다. 아직은 손짓하는 것은 배우지 못한 듯, 초록빛 눈망울만 귀엽게 반짝이고 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해서 천천히 마시며 다시 시인을 만난다.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교회와 시인들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는 것은
교회가 많고, 시인이 많은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며
나는 오늘도 러브호텔로 들어간다
시인은 자기의 말을 여기서 끝냈다. 나는 시집을 덮고 잠깐 생각에 잠긴다. 시인의 표현은 솔직하다. 어렵지 않은 쉬운 말로, 나를 잘 설득시키고 반성하게 만든다. 요즘의 시들은 자꾸 어려워져서, 다른 행성의 말인 듯 알 수 없는 때가 많은데 이분은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자기의 마음을 조용히 얘기하고 있다.
오늘은 참 좋은 분과 동행하였다. 그의 시 한 편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길을 다시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시인은 자기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지만, 읽는 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써준 것 같은 착각에 잠기게 한다. 내가 가진 엉큼한 생각, 내가 쓰는 눈으로만 읽기 좋은 수필들, 내가 필요한 때만 찾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다니…….
말끔히 닦여진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고 싶다. 안 보이는 마음속 어두운 구석구석, 겸손치 못한 오만하고 냉정한 말투, 그리고 긍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불평불만까지 모조리 끌어내어 진실의 거울 앞에 드러내놓고 깔끔하게 손질하고 싶다. 그리하여 시 「러브호텔」처럼 맛깔스러운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첫댓글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문시인님이 오히려 부러운 까닭은 넓고 깊은 선생님과 함께 있기때문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이고, 회장님.
일일이 댓글 안주셔도 되어요.
지난 모임에 자주 들르겠다던 약속 지키려고 종종 들러 글를 올려 놓으려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미숙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에도 공감하고 선생님의 수필에도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모처럼 카페에 들어왔다 함께 기차여행 하는 듯했습니다.
세상에 ...
한달 지나서 댓글을 보네요.
따뜻한 댓글에 감사, 부지런 하도록 노력햘께요.
문정희 선생님과 권예자 선생님과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면서 조금은 개운하고 조금은 씁쓸하고 그렇습니다.
이 봄날, 평안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