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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월 하순(11수)
하루시조 021
01 21
까마귀 급히 날고
까마귀 급히 날고 토끼 좇아 빨리 가니
한거(閑居)한 이 내 몸이 너 따르려 다니다가
빈 변에 못 보던 서리는 못 금할까 하노라
빈(鬂) - 살쩍,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
변(邊) - 가
서리 – 희게 센 나룻. 성숙한 남자의 입 주변이나 턱 또는 뺨에 나는 털.
세상사에 골몰하다가 문득 자신의 늙음을 돌아본다는 내용입니다.
이 시조 속에 들어 있는 숨은 그림(동영상)을 찾는다면 용치요
초장에서 보이지는 않으나 매사냥을 하고 있는 사냥꾼의 분주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매에 쫓긴 까마귀가 급히 날고, 매에게 잡힌 토끼를 좇아서 시적화자 곧 사냥꾼이 급히 달려가는 풍경입니다. 너가 곧 매입니다
중장에서는 자신이 즐기는 매사냥은 한거한 생활을 누리려는 수단이었거늘 오히려 따르려니 말이지, 종장에서처럼 귀밑털이 히끗희끗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 자못 반성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노는 일도 너무 탐닉하게 되면 구렛나룻이 세어진다.
정초에 새겨둘 만한 충고입니다.
하루시조 022
01 22
내 가슴 두충복판 되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내 가슴 두충복판(杜沖腹板) 되고 님의 가슴 화류등(樺榴橙) 되어
인연 진 부레풀로 시운(時運)지게 붙였으니
아무리 석 달 장마인들 떨어질 줄 있으랴
두충(杜沖) - 두충나무
화류(樺榴) - 자단(紫檀)
부레풀 - 민어의 부레를 끓여서 만든 풀. 교착력이 강하여 목기(木器)를 붙이는 데 많이 쓴다.
요즘도 부레풀을 쓰겠지요. 아닌가, 언제 애 터지게 부레 긁어모아 불 지피고 끓이고 다려. 그런가요, 하기야 수공예 공방으로서의 목공장이 눈에 띠게 줄어들었습니다.
남녀간의 연정을 다소 육감적(肉感的)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초장에 남녀가 널판자처럼 잘 붙을 조건을 구비하고서, 중장에 인연지고 시운지게 붙었다고 했습니다.
종장에서는 인생 어려움이 온대도 이별은 없을 거라는 다짐입니다. 장구한 결합에 대한 소망입니다.
작품 속에 두충이니 화류니 하여 전문용어가 등장한 것을 보면 소목장의 끈적한 사랑이 질감 좋게 다가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인연지고 시운지게.
삶의 통찰이 들어 있습니다.
남녀의 결합에는 인연 먼저 시운 더하기 라고 풀어집니다.
하루시조 023
01 23
남훈전 밝은 달은
무명씨(無名氏) 지음
남훈전(南薰殿) 밝은 달은 근정전(勤政殿)에 비치었다
영대하(靈臺下)에 놀던 학(鶴)이 경회루(慶會樓)로 날아든다
아마도 조선제일명당(朝鮮第一明堂)은 경복궁(景福宮)인가
남훈전(南薰殿) - 순(舜)임금의 궁궐.
영대(靈臺) - 주(周) 문왕(文王)이 지었다고 함.
경복궁을 찬양하는 송축(頌祝)의 노래입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경복궁을 중건하고 나서 지어진 작품으로 보입니다. 사용된 단어로만 보더라도 괜찮은 양반 나으리가 지었음직한데 이름을 잃어버렸군요,
임진왜란 때 의주로 내뺐던 임금이 미워서였을까요, 침략군 왜군들의 노략질 탓이었을까요. 경복궁은 전소되었고, 중건되기까지 300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당백전(當百錢)까지 발행해가며 무리하게 진행된 중건은 결국 또 일본 강점기에 박람회를 빌미로 뜯겨져 나가 훼손되었고, 오늘날은 조금씩 복원되고 있는 중입니다.
작품에 나오는 근정전과 경회루는 지붕 위의 잡상(雜像) 개수로는 가장 많은 11개의 위엄을 갖춘 명 건축물입니다.
종장 끝 구 세 글자는 창법(唱法)에 따른 생략으로 ‘하노라’ 정도가 되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024
01 24
그대 고향으로부터 오니
무명씨(無名氏) 지음
그대 고향(故鄕)으로부터 오니 고향(故鄕)일을 응당(應當) 알리로다
오던 날 기창(綺窓) 앞에 한매(寒梅) 피었더냐 아니 피었더냐
피기는 피었더라마는 임자 그려 하더라
기창(綺窓) - 비단으로 바른 창.
한매(寒梅) - 추위 속에 피는 매화.
초중장에서는 어떤 왕래자에게 고향 소식을 물어보는 내용인데, 소식을 알 수 있는 내자에게 묻는 이는 절실하게 매화의 안부를 궁금해 합니다. 종장은 그 사람의 대답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소식의 중심인 매화를 의인화(擬人化)하여 묻는 이와 서로 그리워하는 사이로 설정하였습니다.
‘피기는 피었더라마는’ 뒤에 부정적인 표현이 따라올 줄 알았거늘 ‘임자를 그리워하더라’고 묻는 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붙여 주는군요.
이제 한매가 피는 시기가 오고 있습니다. 분(盆)에 담아 실내에서 보는 매화는 벌써 피었을 것이고, 노지의 매화도 지역적으로 피기 시작할 것입니다. 따뜻한 해류의 힘을 받아 거제도 구조라초등학교 터에 피는 춘당매가 뭍에서는 일등 핍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025
01 25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한들
무명씨(無名氏) 지음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한들 중놈마다 성불(成佛)하며
공자왈(孔子曰) 맹자왈(孟子曰)한들 사람마다 득도(得道)하랴
아마도 득도성불(得道成佛)은 도양난(都兩難)인가 하노라
도양난(都兩難) - 둘 다 어렵기가 으뜸이라.
불교든 유교든 기존의 가르침을 불신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감추었기에 용감해진 터이리라 짐작해 봅니다. 불경의 염불 구절을 옮겨오다 보니 음수율 잣수 정도는 염두에 없는 듯하고요. 그냥 ‘중’ 정도로 말해도 될 일인데 굳이 ‘놈’자를 붙였는데, 당시에는 국가적으로 억불(億佛)에 천대(賤待)하던 분위기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기야 유교 경전을 들먹이는 풍조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자왈(子曰)’을 공맹(孔孟)을 끌어다 붙여 리듬을 태운 것도 찾아집니다.
종장에서는 ‘어렵다’는 탄식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어디 유교와 불도가 아니었던들 우리네 서민들의 불쌍한 삶이 위로받을 수나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양비(兩非)라도 하여 내지르듯 넘어갔던 것이겠지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026
01 26
나 탄 말은 청총마요
무명씨(無名氏) 지음
나 탄 말은 청총마(靑驄馬)요 님 탄 말은 오추마(烏騅馬)라
내 앞에 청삽살개요 님의 팔에 보라매라
저 개야 공산(空山)에 깊이 든 꿩을 자로 뒤져 튀겨라 매 띄워 보게
청총마(靑驄馬) - 갈기와 꼬리가 파르스름한 백마.
오추마(烏騅馬) - 검은 털에 흰 털이 섞인 말.
매사냥을 나가는 사람의 우쭐거림을 노래했습니다. 내가 탄 말은 백마(白馬)요, 님이 탄 말은 흑마(黑馬)로 흑백이 대비를 이루었습니다. 사냥 주역인 매는 님의 팔에 얹혀 있고, 사냥개는 내 명령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꿩이 개가 뒤지면 억지로 날아오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을 ‘튀긴다’라고 전문용어가 등장했군요. 삽살개도 앞에 푸를 청(靑)자가 붙었고,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송골매 중에 잘 길들여진 보라매라고 한껏 고급지게 가져다 놓았습니다.
나와 님, 부부나 연인 동지일 수도 있겠다 싶어 더욱 은근합니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은 매사냥이 차츰 줄어들 때 생겨난 것이라더군요. 떡국 고명은 일반 가정에서도 꿩고기로 올렸다고, 한반도에 가득 꿩이 서식했다는 말을 수안보 꿩농장주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몽골과 함께 우리나라의 매사냥 풍습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만큼 귀한 삶의 현장이라 하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027
01 27
나 있는 요적촌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나 있는 요적촌(寥寂村)에 뉘 나를 찾으리오
사미승 아니시면 찾을 이 없을로다
행여나 날 볼 손 오시거든 뒷 뫼로 찾아라
요적촌(寥寂村) - 고요하고 적막한 마을
사미승 – 십계(十戒)를 받고 구족계(具足戒)를 받기 위하여 수행하고 있는 어린 남자 승려. 여기에서 뜬금없이 승려가 나오는 것은 적당하지 않으므로 삼희성(三喜聲) 곧 다듬이 소리, 글 읽는 소리, 아기의 울음소리 등 세 가지 기쁨의 소리를 말한다는 풀이가 있습니다.
숨어 사는 사람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면 ‘뒷산에 있다’고 안내하거라. 마치 동네 아이나 젊은이에게 부탁하듯 하는 말입니다. 요적촌의 요적을 거꾸로 하면 적료(寂廖)가 되고, 요즘도 쓰는 단어입니다. 다만 ‘적요’라고 굳어졌지요. 적적하고 고요함.
사실 별로 할 일도 없어진 나 많아진 사람들이 자연 풍광을 찾아 귀촌할 만도 한데, 거의 대부분이 이 적요를 견디지 못할 것같아 주저한답니다. 도시의 적당한 소음과 자신과는 무관해도 배경화면처럼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주변의 이야기들로부터 어떤 위로를 받는다는군요. 더하여 도시인 서로가 익명(匿名)의 그늘 속에 안주(安住)하는 셈입니다. 적요촌에 들어 뒷산으로 물러난 작자가 새삼 크게 보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028
01 28
나의 미평한 뜻을
무명씨(無名氏) 지음
나의 미평(未平)한 뜻을 일월(日月)께 묻잡나니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에 무슨 일 배앗바서
주색(酒色)에 못 슬믠 이 몸을 수이 늙게 하는고
미평(미평)한 - 평정을 잃은. 평안하지 못한.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 - 아득히 먼 하늘
배앗바서 – 바빠서.
못 슬믠 – 미련이 남은
수이 – 쉬. 빨리.
늙음에 대한 원망을 노래했습니다. 세월을 재촉하는 탓이 하늘에 뜬 해와 달에게 있노라 한탄하는 것입니다. 일월성신(日月星辰)으로 조물주를 대유(代喩)했으니 요즘의 ‘하느님’으로 여겨도 되겠습니다. 글쎄요, 내 늙은 탓이 조물주님 탓이니 물어내쇼 내 청춘. 이리 해석하면 미평한 작가의 뜻이 짚어지는 것일까요.
그래도 종장에서 주와 색이 나오고, 아직껏 미련이 남았노라 고백하는 작자의 현재는 아직 덜 늙은 듯합니다.
“먹을 수 있을 때 맘껏 먹어라.” 올해 구순(九旬)이 된 제 어머니가 몇 년 전에 술에 맞아 풀어진 저를 나무라듯 하시던 말씀입니다. 불과 몇 년이 지나니 스스로 절주(節酒)를 하게 됐으니까요.
누군들 피해 갈 수 있나요. 주색에 미련 버리고 조금이라도 강단지게 살면서 친구들 만나고 해야지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오늘 컷사진은 서예가 지우 김정자 님의 입춘방 입니다.
하루시조 029
01 29
나 보기 좋다하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나 보기 좋다하고 남의 님을 매양 보랴
한 열흘 두 닷새와 여드레만 보고지고
한 달도 서른 날이니 또 이틀만 보고지고
자기 님이 아닌 남의 님을 한 달 내내 보고 또 본다는 정말 무지막지한 욕심꾸러기의 노래입니다. 한 달이 서른 날인데, 한 열흘 더하기 두 닷새 더하기 여드레 하면 스무 여드레인데, 또 이틀만 보고지고 하다니 딱 서른 날 아니겠습니까. 말이라는 게 하기에 따라 달렸다고, 이렇게 늘어 놓으니까 더하기가 갑자기 안 되지 뭡니까.
초장 첫 구에서만 해도 흔히 말하는 황금율 “나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라든지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먼저 대접하라‘ 정도의 품위 있는 말씀이 나오려나 했습니다만.
초장 둘째 구에서도 ‘매양 보잘 수 있겠냐’하며 어설픈 양심이라도 있겠거니 헸습니다만.
하기야 남녀간의 애정이라는 게 나의 님이든 남의 님이든 한 번 불붙으면 정신을 못 차린다고들 하지요.
‘나’와 ‘남’ 두 글자가 분명히 다르거늘 오늘의 작자는 받침을 빼고 똑같이 읽어지는 모양입니다. 이름이 없는 작가라서 그런가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030
01 30
천지는 유의하여
무명씨(無名氏) 지음
천지(天地)는 유의(有意)하여 장부(丈夫)를 잊었는데
일월(日月)은 무정(無情)하여 백발(白髮)을 재촉하니
아마도 누세홍은(累世洪恩)을 못 갚을까 하노라
유의(有意) - 뜻이 있음. 뜻한 바가 있음.
일월(日月) - 해와 달. 시간의 흐름을 대유하는 바 흐르는 세월로 읽습니다.
무정(無情) - 정이 없음. 원칙대로 행할 뿐이니,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누세홍은(累世洪恩) - 세대를 겹쳐 크게 입은 은혜.
초장은 장부가 할 일을 하도록 잊고 놓아 두었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초장과 중장은 서로 대(對)를 이루었군요. 천지와 일월이 장부를 대하는 태도가 상반됩니다. 결론은 종장의 말을 빌어 뜻을 못 이루고 세상을 뜨지 싶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인생 황혼에 일모도원(日暮途遠)의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진솔합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031
01 31
정변에 심은 매화
무명씨(無名氏) 지음
정변(井邊)에 심은 매화(梅花) 설중(雪中)에 피었어라
소영은 횡사(橫死)하고 암향(暗香)은 부동(浮動)이라
두어라 농두춘색(籠頭春色)이니 절일지(折一枝)인가 하노라
정변(井邊) - 샘 가.
설중(雪中) - 눈 내리는 가운데.
소영(疏影) - 성근 그림자. 얼핏얼핏 비치는 그림자.
횡사(橫死) - 뜻밖의 재앙으로 죽음. 변사(變死).
암향(暗香) - 그윽이 풍기는 향기.
부동(浮動) - 떠서 움직임.
농두춘색(籠頭春色) - 대그릇에 내민 봄기운.
절일지(折一枝) - 한 가지를 꺾다.
칠언절구의 한 소절씩을 풀어서 시조 잣수를 메꾼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눈은 내리고, 샘 가에 매화가 피었습니다. 사라진 듯 사라질 듯 그림자는 어슴프레 한데, 고혹적인 향기만은 숨어서 제 존재를 숨바꼭질 하고 있고요. 보는 눈보다는 맡는 코가 우선합니다. 종장의 판단(判斷)이 압권입니다. ‘아마도 겨울을 이겨내는 봄빛이니 누가 한 가지 꺾었겠지 뭐.’ 이런 여유 한 번 가지면서 겨울나기 하고 싶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운사 금동수
횡사(橫死) --> 횡사(橫斜)로 보입니다. 성근 그림자가 비명에 횡사하는건 문맥상 부조화하고, 성근 그림자가 가로로 비꼍다로 봄이 어떨까요?
농두춘색(籠頭春色) --> 농두춘색(攏頭春色) 으로 봄이 어떠하오?
대바구니 언저리에 봄 빛이 완연하다....
처녀의 곱게 빗은 머리에 춘색이 환연하다.....
매화가지를 하나 꺽어서 머리에 꽂는게 어떨지.....
옛시조 특히 무명씨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맥락이 부조화인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필사본으로 전해지다보니
필사자의 식견부족 또는 실수가 없지 았았을 것입니다
우선은 전해진 자료에 충실사게 접근하고
운사 선생님 처럼 탁견들은 따로 모으고 있습니다
톡으로 하루 조금씩 해나가는 글쓰기는 중지를 모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첫댓글 시조가 좋아 등 단톡방에서 교환된 의견들도 본문 말미에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