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필(王弼, 226년~249년, 24살)은, 위魏 문제 황초 7년에 역학으로 유명한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며, 그의 가족은 동한東漢 말 유명한 철학자인 유표가 외할아버지이며, 유표는 왕필의 조상인 왕창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조상 대대로 학문적인 자양을 충분히 공급받은 셈이다.
왕필은 어려서부터 비범함을 드러내 10살 정도부터 이미 노자를 좋아하고 논변을 잘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추론에 의하면 왕필이『노자주老子註』를 지은 것은 18세 때였고,『주역주』를 지은 것도 22~24세 경이라고 하니, 왕필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천재였던 것이다.
당시 권세가이자 뛰어난 사상가인 하안何晏에게 재주를 인정받아 대장군인 조상에게 천거되었고, 처음 독대할 때에 도道에 대한 이야기로 몇 시간을 보내자, 조상이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하안은 왕필의 천재성을 인정해 주고 중용하려 했으며, 왕필이 지은『노자주』를 보고 나서는 극찬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라고, 이것은 결국 왕필의 생명력을 짧게 하였다. 즉, 249년 사마의司馬懿가 정변을 일으키고,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조상과 하안을 살해하고, 관직에 있던 왕필도 같은 파당이라는 이유로 면직되고, 이어 그해 가을에 병사하고 만다. 역사적인 천재가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고 만 셈이었다.
『노자주老子註』는 어떤 책인가?
왕필의『노자주老子註』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해석이 분분하다. 젊은 왕필이 노자를 해석했고, 후세 사람들은『노자』를 해석한 왕필의 의도를 재해석하려고 한 셈이다. 그만큼 심오한 『노자』의 생각을 약관 20세도 되지 않은 젊은 청년이 해석한 내용 역시 심오하였기 때문이었다. 철학적인 깊은 사고는 결코 나이와 학식의 깊이에 관계없이 타고난 천재성과 오성悟性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왕필의『노자주』는 노자의『도덕경』81장에 대해서 매 장마다 노자의 원문 아래 자신의 해석을 달아놓았으며, 어떤 장은 가볍게, 어떤 장은 상세하게 자신의 생각을 덧붙혀 놓았으며, 아울러『노자지략老子指略』이라는 글을 통해, 노자의 핵심 사상을 간략하게 본인의 생각에 맞게 요약하였다.
왕필이 바라본『노자』의 핵심사상은 무엇인가?
『노자주』에서 바라본 그의 사상은『도덕경』의 아주 간단한 도식인 유有와 무無의 구조로 체계화 시켜서 설명했다는 점이다.
『도덕경』의 유有는 대상화됨으로써 의식에 드러난 모든 것이고, 무無는 유를 드러나게 하는 상대적인 이면이라는 것이다. 곧 선善이 대상화되어 유有로써 의식에 드러나게 되면, 그것을 드러나게 하는 그 상대적 이면인 악惡이 무無가 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리의 지성에 의해 체계화된 어떤 주의나 주장도 모두 상대적인 것을 체계적으로 가공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으로, 유교에서 강조하는 인의仁義도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악한 것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됨으로써 체계화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가의 인의가 상대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지나치게 상대적으로 대상화된 것을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주장하게 되고, 이것을 본받아 제각기 나름대로 무엇을 대상화하여서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게 되고, 세상은 이로 인해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자가 인을 주장하자, 묵자가 겸애를 주장하는 등과 같은 제자백가 논쟁은, 바로 상대적으로 대상화된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체계화 시켰기 때문에 발생된 것이다.
그럼, 이런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론적인 방법이야『도덕경』에 잘 나와있지만, 왕필의 해석에 따른 구체적인 것은『노자주』의 요약본인『노자지략老子指略』에 잘 나와 있다.
왕필은 노자의『도덕경』의 실천 방안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숭본식말崇本息末’ 즉 ‘문제를 근본적으로 예방해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무슨 말인가? 부연 설명을 인용해서 들어보자.
“일마다 제각기 의도를 둔다면 분별할지라도 더욱 미혹된다. 즉 사악함이 생겨나는 것이 어찌 사악한 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며, 난잡함이 일어나는 것이 난잡한 자가 만드는 것이겠는가? 사악한 짓을 막는 것은 진실함을 보존하는데 달려있지 잘 감시하는 데 있지 않으며, 난잡한 짓을 종식시키는 것은 화려함을 제거하는데 달려있지 법령을 증가시키는 데 있지 않으며, 도둑질을 없애 버리는 것은 욕심을 제거하는 데 달려 있지 형벌을 엄격히 하는데 있지 않으며, 송사를 그치게 하는 것은 재화를 숭상하지 않는 것에 있지 재판을 잘 처리하는 데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행위 하는 것을 다스리지 않고,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무심해지도록 하는 것이며, 백성들의 욕심을 방해하지 않으니, 그들이 욕심에 대해서 무심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성스러운 지혜를 다 부리고 교묘한 속임수를 써서 다스리는 것보다, 소박한 상태를 드러내어 백성들의 욕심을 고요하게 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총명을 드러내지 않으며, 부지런히 나가는 것을 없애고, 실속 없는 명예를 제거하고, 교묘한 쓰임을 버리고, 사욕을 제거해서 교묘함과 이로움을 버리게 하는 것만이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예방해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崇本息末)’의 첩경이며, 모든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성이 높으면 성을 부수는 전차가 생겨나고, 이익이 흥성하면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진실로 조금도 욕심내지 않는 마음(無欲)을 보존하면, 비록 상을 줄지라도 도둑질을 하지 않고, 개인적인 욕심을 구차하게 부리면 교묘함과 이로움으로 더욱 혼미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교묘한 마음을 끊고 이익을 버려서 욕심을 적게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면, 도적이 없게 되어도 그다지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다.
다스림이 있으면 이에 어지럽게 되고, 편안함을 보전하면 이에 위태롭게 된다. 자신을 뒤로했는데도 자신이 앞서게 되는 것은 자신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며, 자신이 보존됨은 자신을 보존하여서 이뤄진 일이 아니고 반드시 일이 되는 근본을 취해야 한다. 이것이 노자의 책 속에 ‘그 자식을 알고 난 후에 반드시 그 어미를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이치를 잘 탐구하면 세상 살아가는데 어디 간들 통하지 않겠는가!”
천재 사상가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는가?
왕필은 불과 24살에 요절한 천재 사상가라고 한다. 그의 관리 경력도 아주 일천하다. 하지만, 생각의 깊이는 범인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과연 그는 살아생전에 본인의 주장과 생각대로 ‘무위자연’을 실천하면서 세상을 살아온 것일까? 사실 역사의 흔적에는 ‘놀기 좋아하고, 가볍고 세상 물정 몰랐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죽고 거의 20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왕필의 노자 해석>에 심취해 있다. 사람들이 무릉도원과 유토피아를 그리워하는 것은 쉽게 그곳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노자와 왕필이 꿈꾸는 세상은 바로 그런 곳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세상과는 다른 멋진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나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