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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서론序論
1. 서설序說
天符는, 無上大道이며, 또는 宇宙大光明, 無限能力의 의미다.
『天符經』은, 東西古今에 제일 간단하고 함축성있게 無上大道를 밝힌 根本經典이다.
세계정신문화사상 다시 주목할만한 가장 소중한 經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 漢民族의 開國聖祖이신 檀帝 한아버님은 우주대광명으로써 세상을 다스리고(光明理世). 인간에게 무한능력개발의 큰 이익을 주는(弘益人間) 天符思想으로써 세계최초의 가장 위대한 나라를 세우셨다.
우리 옛날 혈맥속에 즐기차게 흘렀던 무궁무진한 天符正道는, 우리 한민족의 고유한 주체사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행하게도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설상가상으로 강대국들의 침략을 당하여 千死萬難을 겪었다.
그러나, 그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경전인 『天符經』을 지금까지 전하게 된 것은, 참으로 불행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예부터 經名을 『檀君 天符經』이라 하는데, 나는 檀君의 ‘君’字를 ‘帝’字로 바꾸어,
『檀帝 天符經』으로 고쳐야 옳다고 본다.
檀帝라고 고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옛날에 가장 위대한 임금의 호칭을 皇이나 帝, 또는 皇帝라 하고, 그 다음으로 王, 또는 主라고 하며, 제일 낮게 君이라고 했다.
또한 쫓겨난 임금을 君이라 했으니, 燕山君, 光海君이 그 좋은 예이다.
正宮의 王子를 大君, 後宮의 완자를 君이라 하고, 傍系王族 중에서 大統을 이은 임금의 아버지를 大院君이라 했듯이, 통례적으로 볼 때, ‘君’자는 격이 낮추어진 호칭이다.
우리나라에서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13세기중엽 一然禪師가 지은 『三國遺事』에 나오는데, 중국의 史書인 『위서魏書』에서 인용한 것이다.
“魏書云乃往二千載 有檀君王儉 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 與堯同時”
“위서에 말하기를, 지나간 2천년전에 단군왕검이 있었는데, 아사달에 도음을 세우고 개국하여 조선이라 이름하였다. 요임금과 같은 때였다.”
그 『魏書』는 별도의 옛날에 있었던 『魏書』인지 未詳하나, 현재의 『魏書』는 중국 北齊의 위수魏收가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北魏의 史書이다.
『魏書』는 위수가 歷史史實을 주관적으로 왜곡하여 기술한 穢史라는 비난을 받은 책이다.
중국의 역사인 북위의 正史를 주관적인 왜곡을 범한 위수가 그 당시 변방의 약소국으로 전락한 우리나라의 위대한 古朝鮮의 역사를 왜곡하여 개국시조를 격하된 호칭으로 단군이라고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開國聖祖를 별로 거부감없이 격이 낮추어진 단군으로 호칭하는 것은, 自尊他卑를 일삼는 外勢가 지어준 이름을 비판없이 받아들인 사대주의적 사고가 범한 自己卑下이다.
『魏書』에는 檀君으로 쓰고 있는데, 神壇을 의미하여 ‘檀’字를 쓰기도 하고, 단목(檀木, 박달나무)을 의미하여, ‘檀’자를 쓰기도 한다.
단이라는 두 발음이 같으므로 상관할 게 없지만, ‘君’자를 붙여 쓰는 것은, 민족주체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사대근성에 젖었던 사대주의의 기록대로 옮겨 쓸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위대한 민족주체사상인 『천부경』을 되새기고 다시 인식하는 마당에서 개국시조의 이름부터 ‘단제檀帝’로 바꾸어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皇’자나 ‘帝’자, 두 글자 중에 한 자를 써서 ‘檀皇’이나 ‘檀帝’라고 이름을 고칠 수 밖에 없다.
古代에 三皇五帝라고 할 경우, ‘帝’가 격이 좀 낮은 것 같지만, 불교에서 帝釋天王을 釋帝라고 쓰기 때문에, 皇이나 帝는 같은 비중의 글자이므로, 檀帝라고 이름을 고쳐보았다.
檀帝가 중국의 五帝 중에 당요(唐堯, 聖王 堯임금)와 3동시대라 하고 있으므로, 오천년은 못되고 4천 몇백년이 된다.
우리나라 上古時代 역사를 기술한 문헌에는 檀帝가 古朝鮮의 개국시조라는 정도의 기록만 있어 애매한 점이 적지 않다.
근래, 고고학의 발달로 새로 발굴된 유적이나 유물과 考證 자료에 의하면, 단제 이전의 우리나라 역사를 알 수 있는데, 고조선을 단제가 건국하기 이전 수만년, 수십만년 이전에 벌써 나라를 세우고 다스린 君主가 잇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잦은 침략으로 역사자료를 약탈당하고, 燒失당했다. 강대국인 중국이 자기위주로 역사를 엮다보니까. 事實을 위조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약소국 역사를 인멸湮滅하고 왜곡하여 서술하고 약소민족을 오랑캐로 취급했다.
그래서 韓民族만은 중국인이 東夷族으로 불렀는데, ‘이夷’자를 破字해보면, 대궁大弓이다, 즉 큰 활을 잘 쏘고, 손재주가 뛰어나 무시할 수 없는 동쪽에 사는 민족이라는 뜻으로, 다른 남만南蠻 북적北狄 서융西戎이라는 오랑캐보다는 그 위대함을 인정하여 훨씬 나은 표현을 썼지만, 역시 오랑캐취급을 했다.
여하튼, 어ᄄᅠᇂ게 보았든지간에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얕잡아보고 격하시켜서 역사를 왜곡되게 기록한 것이 비일비재하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기술하는데,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이나 북한은 자국의 이해와 이념을 앞세운 史觀을 위주로 하여 바르고 진정한 正統性있는 기록을 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현재 보고 있지 않는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어 36년간 야만행위를 恣行한 엄연한 사실임에도 눈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한국사람은 잘못하고, 일본이 한국을 위해서 떳떳하게 잘할 일이라고 30여회나 妄言을 일삼고 꽈서에까지 그런 식으로 쓰고 있다.
또한 북한은, 김일성주체사상과 唯物史觀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위조하고 있는데, 6.25전쟁은 북한이 남침한 사실임을 전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남한이 北侵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역사를 모두 자기나라에 우리하도록 마음대로 날조하며, 다른 나라에 그를 믿도록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우리나라가 國力을 신장해서 올림픽이나 각종 세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오는 것도 좋겠지만, 세계만방에 우리 역사의 진실과 정신문화의 위대함을 바르게 널리 인식시켜주는 홍보활동이 중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檀君은 檀帝로 고친 것이다.
중국춘추전국시대에 공자의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께서 정치를 하게 된다면,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라고 했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반드시 名分을 바르게 해야 한다(必也正名乎)”라고 했다. 이 말은 공자의 『논어』에 나온다.
정치를 할 때, 먹고 사는 것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국방을 튼튼히 하고(足兵)
백성들을 도의로 선도하여 믿게 하는 것도(民信)
필요하지만, 반드시 먼저 大義名分을 바로 잡아야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를 아버지로 불러야 디지, 아들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아버지를 아들로 부른다고 하여 아버지가 변해서 아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관념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명분이 바뀐 것이다.
또한 부모한테 존대말을 써야 공경하는 표시가 되는데, 부모를 마음속으로 존경할망정 반말을 쓴다면, 공경하는 표시가 안 되므로 명분에 어긋난다.
그러니까, 공자의 말과 같이 반드시 대의명분을 바로잡아야 역사가 바르게되고, 사상의 핵심과 정치의 이념이 바르게 설 수 있다.
개국시조를 단군이라고 하면, 그냥 괜찮은 것 같지만, ‘皇’이나 ‘帝’자를 놓아두고, 옛날에 제일 격이 낮은 ‘君’자를 왜 쓰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외세에 의하여 몰락을 당하고, 설움을 받은 약소국민의 한심한 의식상태이다.
그래서, 『檀君天符經』 이라 해도 되지만, 『檀皇天符經』이라고 하였다.
『三國遺事』에서 『魏書』를 인용하여,
“단제가 아사달에 도음을 정하고 고조선을 새웠다”라고 기술하고 이어서
『古記』를 인용한 古朝鮮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古記云昔有桓因(謂帝釋也) 庶子檀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고기에 말하기를, 옛날에 환인(제석을 말함)의 서자 완웅이 있어, 여러번 천하 다스릴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탐내어 구하였다”
『삼국유사』의 ‘原文 注’에서 환인을 제석이라고 했는데, 환인이나 제석은 불교술어이다.
帝釋은 梵語로 Śakkra Devānāmindra라고 하며
音譯하여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석가제바인다라, 라 한다.
석가제바를 줄여 제환提桓, 因陀羅를 因으로 音略하여, 釋提桓因으로 약칭한다.
범어 因陀羅를 ‘帝’로 번역하고, 釋迦를 ‘釋’으로 音略하여, 범어와 한문의 倂稱으로 ‘帝釋’이라 한다.
桓因은, 帝釋, 帝釋天王, 釋提桓因, 釋帝, 釋提로 쓰기도 한다.
『화엄경』 『법화경』등 여러 경전에 많이 나온다.
帝釋天은, 三界(욕계, 색계, 무색계)의 하나인 욕계의 도리천(忉利天, 33천으로 번역, 욕계육천 중 제2천에 해당함)을 말하며, 須彌山 정상에 있는 하늘이다.
수미산(범어 Sumeru parvata. 妙高, 妙光, 安明, 善積이라 번역)은,
인간세계가 있는 사주(四洲 수미사주라고도 함.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東洲, 南洲, 西洲, 北洲)의 중앙인 香水海 위에 우뚝 솟은 높은 산으로, 정상은 제석천(도리천 33천) 이 있고, 중턱은 사천왕의 주처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세계는 4주 가운데 남주인 南贍部洲에 속한다.
桓因은, 제석천왕(제석천의 임금, 혹은 天主)으로 제석천의 善見城에 있으면서, 사천왕과 사방의 7天씩을 합한 32天을 통솔하면서 佛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며, 욱도의 하나인 아수라(싸움을 일삼는 투쟁적인 악신, 아수라에서 수라장이라는 말이 생겼음)의 군대를 정벌한다.
육도는, 중생이 邪執, 번뇌, 有漏善, 악업 등으로 죽어서 머무르는 삼악도와 아수라, 인간, 천상 등의 三善途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古記』를 인용한다.
“‘고기’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날에 환인(제석을 말함)의 庶子 桓雄이 있어 여러번 천하를 다스릴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탐내어 구하므로, 그의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아시고, 삼위(三危, 중국의 山名), 太伯(한국 山名)을 내려다 보시고 인간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있겠다 하여, 이에 天符印 세걔를 환웅에게 주어 거기에 가서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3천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太白山 꼭대기(지금의 妙香山) 밑에 내려왔는데, 그곳을 神市라 이르고, 이 분을 桓雄天王이라고 말한다.
그는, 風伯, 雨師 , 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신웅(神雄, 桓雄)에게 빌어 사람이 되어지기를 원했다.
그때 神雄이 trlsfud한 약쑥 한 묶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안보면 곧 사람의 몸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 먹고 삼칠일동안 지키는데,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으나, 범은 잘 지키지 못하여,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熊女는 혼인하여 같이 살 사람이 없으므로 날마다 檀樹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기원했다.
환웅이 이에 잠깐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 檀君王儉이라 이름하였다.”
고려 때, 스님 一然 禪師가 『三國史記』에 빠진 사실들을 모아 적은 것이 『三國遺事』로서 古代史 연구에 부족하나마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유리 上古史에 관한 기록이 없다시피 되었지만, 檀帝의 開國 역사를 『魏書』아 『古記』에서 인용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의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잘못되었다고 보이는 記述이 없지는 않다.
단제의 아버지는 帝釋天主
桓因의 아들인 桓雄天王은 天子(하늘의 아들)이면서, 嫡子도 아닌 庶子로 격하하고, 어머니는 곰으로 만들어진 神話는 뭔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三危, 太伯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太伯은 지금의 妙香山이라고 注를 달았지만, 三危는 언급이 없다.
중국의 서북쪽에 있는 甘肅省 돈황 방향으로 가면 三危山이 있다.
桓因(桓仁이라고도 씀)과 桓雄의 직계손인 환족桓族은 활 잘 쏘고, 용감하고, 굳세며, 날래고 씩씩하여 중앙아시아 마필고우너을 ㅈㅇ심으로 천산산맥 저쪽 몽고와 만주까지가 우리의 故土인데, 그러한 광대한 지역을 주름잡은 가장 위대한 민족이었다는 점이다.
桓族은, 쫓김을 거듭하면서 韓半島로 옮겨왔다. 환족의 ‘桓’자가 나중에 바뀌어 졌는데, 발음이 비슷한 桓이나 韓은 뜻이 같다.
桓은, 밝다, 씩씩하다, 굳세다, 위엄스럽다 등의 뜻이며,
韓이나 檀이나 배달도 밝다는 뜻이다.
우리 上古史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의 발견된 문헌과 자료에 의하면, 멀고 먼 옛날에 黃, 白, 赤, 黑, 藍 등 오색인종이 세계인류의 母體인 黃色系의 桓族에서 갈라져나왔는데, 오랜 새월과 다른 기후풍토 때문에, 피부색, 신체적생김새, 언어, 민족성이 달라졌다고 한다.
檀帝 이전의 알 수 없는 아주 먼 옛날에 우리 환족이 나라를 새우고 다스리는 理念으로 전해온 사상이 바로 無上大道롯거, 간단명료하게 집약된 『檀帝天符經』이다.
그러므로, 우리 韓民族이 세계에 자랑할 제일 가는 大寶가 『天符經』이다.
佛經은, 인도에서 오고, 四書三經은 중국에서 오고, 신구약성서는 이스라엘에서 왔지만, 『천부경』은 우리나라에서 전해진 것으로서 가장 오래되고 핵심적인 고유사상이다.
환인과 환웅 시대가 5천 년전이 아니라, 5만년 전이 될지 50만년 전이 더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세계치대강국으로 군림했던 환웅과 단제 왕검의 시간 간격이 몇만년이 되는지 알 수 없는데도, 『삼국유사』에는 환인을 祖父, 환웅을 아버지로 하여 환인과 왕검이 祖孫間으로 기록되고, 환웅을 환인의 庶子라 하며, 환웅이 熊女와 혼인해서 왕검을 낳았다는 등등 잘못되었다고 보이는 것이 여러 가지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비판없이 긍정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上古史 연구를 여러 방면으로 활발하게 한다면, 단제의 역사에 대한 나의 견해가 異說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여하튼, 앞으로 발견되는 문헌이나 발굴되는 유적, 유물 등 여러 고증자료를 연구하여 『삼국유사』의 왜곡된 『魏書』 『古記』를 그대로만 기록한 오류도 바로잡아 역사를 다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천부경』의 존재는, 환인, 환웅, 왕검, 3분 중에 누가 만들었는가가 문제가 될 수 없다. 『천부경』이 만들어진 때도 애매하며 만든 사람을 밝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신라말(9세기말)에 孤雲 崔致遠이 太白山(지금의 妙香山)에서 단제시대에 글자를 만들어 가르치는 임무를 맡은 仙官의 神誌가 『檀帝天符經』을 ‘古篆文’으로 새긴 비석을 발견하였다.
옛날 전문篆文이 길굴난독佶倔亂讀(난삽하여 읽기 어렵다)이므로, 최치원이 지금의 한문으로 옮겨 묘향산 암벽에 새겼다고 한다.
佶倔은, 길굴오아佶倔聱牙의 약어인데, 알기 어렵고, 읽기 힘든 들을 형용한 말이다.
佶倔은, 난삽하다라는 뜻이고,
聱牙의, 聱는 못들은 체 할 오, 牙는 아금니 아로,
말이 귀에 잘 안들어가고, 이가 잘 안들어간다는 말인데,
語句나 文句 따위가 까다로워 이해가 어렵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檀帝天符經』은, 최치원이 古篆文으로 된 것을 지금의 한문으로 옮긴 것인데, 81자로 되어 있다.
81은 九九法에서 최고양수인 9를 9곱해서 나온 가장 큰 수이다.
『周易』에서 陽物인 용의 비늘(龍鱗)이 81개이고, 東洋姓名學에서 91수를 최고로 보는데, 공교롭게도 『천부경』이 81자로 되어 있다.
『천부경』이 81자이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一始無一始 用變不動本, 本, 心本, 太陽昂明, 一終無終一’ 등 ‘22자’이고,
그 외 중간의 말들은 전개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내가 보기에는, 81자도 사실상 많고, 간추리면 22자로도 충분하다.
이상 序論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