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시조 07/75 – 산중신곡 07/18
조무요(朝霧謠)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월출산(月出山)이 높더니마는 메운 것이 안개로다
천왕(天王) 제일봉(第一峰)을 일시(一時)에 가리와라
두어라 해 퍼진 후면 안개 아니 걷으랴
월출산(月出山)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에 있는 산. 국립 공원의 하나이다. 높이는 809미터.
메운 것이 안개로다 – 안개로 꽉 채웠구나.
천왕(天王) 제일봉(第一峰) - 제일 높은 천왕봉. 현재는 천황봉(天皇峯)으로 부른다.
일시(一時)에 – 한꺼번에.
가리와라 – 가리는구나.
해 퍼진 후 – 햇살이 퍼진 다음.
안개 아니 걷으랴 – 안개는 걷히지 않겠느냐. 당연히 걷히리라.
산천경개 유람할 제, 월출산을 보렸더니, 아침 안개에 가려 전혀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자연의 이치를 아는지라 햇살이 퍼지기를 기다리겠다는군요. 문학의 감상은 이런 당연하고 보통의 정서를 적은 것에서 나아가 그 깊이를 더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침 안개는 예사로 끼는 것이고, 안개에 가리면 절경은 드러나지 않지요. 고산이 처한 환경이 조무(朝霧) 속이라면 금방 자연을 빌어다 자신의 속내를 적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배(流配)의 시기를, 해배되기를 ‘기다린다’고 풀어 마땅한 작품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월출산(月出山)이 높더니마는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왕제일봉(天王第一峯)을 일시에 가렸구나
두어라 햇빛 퍼지면 안개 걷히지 않겠느냐
고산시조 08/75 – 산중신곡 08/18
하우요(夏雨謠) 1/2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비 오는데 들에 가랴 사립 닫고 소 먹여라
맣이 매양(每樣)이랴 장기 연장 다스려라
쉬다가 개는 날 보아 사래 긴 밭 갈리라
사립 – 농가의 출입문.
소 먹여라 – 소에게 여물을 주며 보살펴라. 소는 농가의 큰 재산으로 농군 중 상농군으로 대접했다.
맣이 – 장마가.
매양(每樣)이랴 – 계속되랴. 똑같겠느냐.
장기 – 밭을 가는 농기구. 쟁기.
연장 – 여러 농기구의 총칭. 장인들은 각종 기구들을 오늘날도 연장이라 부른다.
다스려라 – 손을 보아 사용하기에 맞춤하도록 준비해라.
사래 긴 밭 – 이랑이 긴 넓은 밭.
여름날, 비가 옵니다. 농사라는 것이 때를 놓치면 망치는 것이겠으나, 눈비를 무릅쓰고 대들어야 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때를 맞추는 중에 하늘이 쉬라 하면 마땅히 쉬어야지요. 열흘 장마 중에도 볕이 나는 날이 있습니다. 땅에 물기 가시기를 기다려 밭 갈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일. 비단 농군들의 지혜만이겠습니까. 현직에서 내쳐진 신세, 자신의 처지를 장마 중의 농군으로 비유한 유배문학의 수작(秀作)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비 오는데 들에 가겠느냐 사립문 닫고 소 먹이거라
장마가 계속되겠느냐 쟁기며 연장 손질하거라
쉬다가 날 갤 때 봐서 사래 긴 밭 갈거라
고산시조 09/75 – 산중신곡 09/18
하우요(夏雨謠) 2/2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심심은 하다마는 일 없을손 맣이로다
답답은 하다마는 한가(閑暇)할손 밤이로다
아희야 일찍 자다가 동트거든 일거라
심심하다 -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없을손 – 없는 것은. ‘~ㄹ손’ 은‘~ㄹ 것’의 옛 말씨.
맣이로다 – 장마로다.
답답하다 - 숨이 막힐 듯이 갑갑하다. 애가 타고 갑갑하다. 융통성이 없이 고지식하다. 공간 따위가 비좁아 마음에 여유가 없다.
한가(閑暇)할손 – 한가한 것은.
동트다(東트다) - 동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 오다.
일거라 – 일어나거라.
지금은 장마철. 낮에는 심심하고 밤이 되니 답답하다. 심심은 하다마는, 답답은 하다마는. 시조의 노랫말에 가락이 붙었습니다. 잠을 자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네요. 살면서 이런 시기가 오면 참 견디기 어렵겠습니다. 농군을 빗대고 아이를 불러와 지신의 처지를 노래했습니다. 심심하고 답답하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심심하긴 하다만 일 없기로는 장마로다
답답하긴 하다만 한가하기로는 밤이로다
아이야 일찍 잤다가 동 트거든 일어나거라
고산시조 10/75 – 산중신곡 10/18
일모요(日暮謠)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석양(夕陽) 넘은 후(後)에 산기(山氣)는 좋다마는
황혼(黃昏)이 가까우니 물색(物色)이 어둡는다
아해야 범 무서운데 나다니지 말아라
산기(山氣) - 산속 특유의 찬 공기나 산에 끼는 아지랑이. 씩씩하고 뛰어난 산의 기세.
물색(物色) - 물건의 빛깔. 어떤 기준으로 거기에 알맞은 사람이나 물건, 장소를 고르는 일. 어떤 일의 까닭이나 형편. 자연의 경치.
예전에는 호랑이가 제법 많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호환(虎患)이 심심찮게 일어났다지요. 이 작품에서 석양 황혼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이동이 종장의 아해 단속으로 귀결됩니다. 결국 호환에 대한 경고로군요. 저런 호랑이가 물어갈 놈. 욕 중에서 큰 욕이었다지요. 일반 배성들의 삶을 가르치는 훈민(訓民)이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아해라 친다면 스스로에게 깨우치는 노래도 됩니다. 작가는 지금 밤을 지나고 있고, 호랑이가 호시탐탐 인명을 노리고 있는 어두운 밤이기도 합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석양 진 후에 산기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까우니 물색(物色)이 어두워진다
아이야 범 무서우니 나다니지 말거라
고산시조 11/75 – 산중신곡 11/18
야심요(夜深謠)
바람 분다 지게 닫아라 밤 들거다 불 앗아라
베개에 히즈려 슬카지 쉬어 보자
아해야 새어 오거든 내 잠 와 깨와스라
지게 – 지게문. 호(戶). 외짝으로 된 방문 따위. 문(門)은 양쪽으로 된 문.
들거다 – 들었다. 깊어졌다.
앗아라 – 꺼라. ‘앗다’는 ‘뺏다’의 옛말.
히즈려 – 의지하여. 누워서.
슬카지 – 슬카장. 싫컷.
새어 오거든 – 날이 새겨들랑. 동이 터오면.
깨와스라 – 깨우거라. 깨워주렴.
‘밤이 깊은 노래’입니다. 밤에는 잠을 잡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함을 풀어내는 잠, 베개는 좋은 친구입니다. 히즈리다, 다시 살려 씀직한 옛말이군요. 지게 닫고, 불 앗고. 옛사람이나 요즘 우리들이나 잠들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똑같습니다.
작가는 아해에게 아침에 ‘혹여' 내가 자고 있더라도 깨워 달라’고 말합니다. 내일은 또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지요.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바람 분다 지게문 닫아라 밤 되었다 불 끄거라
베개에 드러누워 실컷 쉬어 보자
아이야 날 새어 오거든 나의 잠을 깨워다오
고산시조 12/75 – 산중신곡 12/18
기세가(饑歲歌)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환자(還子) 타 산다 하고 그를사 그르다 하니
이제(夷齊)의 높은 뜻을 이렁굴어 알란지고
어즈버 사람이야 외랴 해 운(運)의 탓이로다
환자(還子) - 조선 시대에, 곡식을 사창(社倉)에 저장하였다가 백성들에게 봄에 꾸어 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거두던 일. 또는 그 곡식. 고종 32년(1895)에 사환으로 고쳤다. 환곡.
그를사 그르다 하니 – 그런 일을 그르다고 하니.
이제(夷齊) - 백이(白夷)와 숙제(叔齊). 정치에 무관하게 깨끗한 몸가짐의 칭송을 받았다.
이렁굴어 – 이러구러의 옛말. 이렇게 저렇게 굴어. 이리하여.
알란지고 – 알 것이로다.
어즈버 – 아! 감탄사.
외랴 – 그르랴?
해 운(運) - 그 해의 운수.
기세가(饑歲歌)란 굶주린 시절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고산이 직접 당했는지, 아니면 당시 백성들의 일반적인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환자를 타서 먹고 사는 일을 사람들은 그른 일, 곧 잘못된 일이라고 손가락질 하는데 백이 숙제 따라하는 일이 어찌 잘못된 일이겠는가. 모두 시운(時運)을 잘못 타서 겪는 일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불우(不遇)가 문제이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다만 작가가 스스로 이제를 따라 사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 모습은 좀 남사스럽습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환자(還子) 타 먹고 산다고 그것을 그르다 하니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고명함을 이럭저럭 알겠구나
아아 사람이 그른 것이겠는가 세운(世運)의 탓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