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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8월 24일 토요일 맑음. 30℃,➁
이제 발레타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지낸 플로리아나 지역은 항구를 비롯해 발레타 외곽지역을 말한다. 시티 게이트를 지나면 발레타 지역이다. 보라색 선명한 꽃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기둥만 세워진 유적을 지난다.
중심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니 작은 광장에 발레타(Jean de Valette 1495~1568)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칼 찬 모습이 당당하다. 몰타 기사단의 제49대 총장이다.
프랑스 남서부 케르시(Quercy)의 발레트(Valette) 가문에서 태어났다. 발레트 가문은 프랑스의 귀족 가문 가운데 하나로서 십자군 원정에 동행한 인물들이 많았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1523년 오스만 제국의 로도스섬 공격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몰타 기사단의 총장을 역임하고 있던 릴라담(L'Isle-Adam)과 동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65년에 일어난 몰타 공방전에서는 몰타 기사단이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566년에는 신도시 발레타의 건설을 명령했으며 발레타의 첫 돌을 직접 옮기기도 했다.
발레타가 완성되기 이전에 사망했으며 그의 시신은 발레타 요새 안쪽에 위치한 성 요한 성당에 위치한 묘역에 안치되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이지역 이름이 발레타로 명명된 것 같다.
이 주변에는 오래된 건물에 성과 관공서와 박물관, 교회들이 모여있다. 사이 공간에는 여러명의 동상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발레타의 카스티유 광장에있는 폴 보파 (Paul Boffa) 동상, 1976 년 빈센트 아파 (Vincent Apap)가 조각 한 동상이다.
폴 보파(Paul Boffa 1890 - 1962)는 제 2 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영국 식민지 당국에 의해 자치가 복원 된 후 5대 총리를 역임 한 몰타의 정치인이자 의사였다.
동 민토프(Dom Mintoff,1916~2012) 몰타의 8대 총리를 역임한 건축가이자 정치가이다. 몰타 총리를 두 번이나 역임한 조지 보그 올리비에(1911~1980) 동상도 있다.
이 광장을 카스티유 광장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카스티유 궁전이 자리잡고 있다. 총리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이 궁전 입구에는 대포 두 개를 갖고 있다.
예쁜 게이트를 지나 어퍼 공원(Upper Barracca Gardens)으로 간다. 얘쁜 마차 한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어퍼 바라카 가든은 무려 1661년에 지어진 엄청난 역사를 간직한 공원이다. 몰타 발레타의 공공 정원이다.
같은 도시의 Lower Barrakka Gardens와 함께 그랜드 하버의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한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가 정말 압권이다. 정원에는 분수와 쉼터 그리고 커다란 수목과 작은 카페도 있어 쉬기 좋는 곳이다.
정원은 1560 년대에 지어진 성 베드로와 바울 요새의 상층에 있다. 요새의 아래쪽 층에는 경례 포대가 있다. 정원의 계단식 아치는 1661년 이탈리아 기사 발비아니(Balbiani)에 의해 지어졌다.
테라스 공간, 정원은 원래 세인트 존 교단의 이탈리아 랑그 기사들에게 레크리에이션을 제공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1800 년 프랑스의 몰타 점령이 끝난 후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공원에는 제럴드 스트릭랜드 (Gerald Strickland), 토마스 메이틀랜드 경 (Sir Thomas Maitland), 윈스턴 처칠 (Sir Winston Churchill)을 비롯한 여러 저명한 사람들을 기리는 여러 기념물과 기념관이 있다.
몰타 조각가 안토니오 시오르티노(Antonio Sciortino)의 동상 레 가브로슈(Les Gavroches), street urchins, 거리의 아이들, 거리에서 살거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 때로는 좀도둑이나 소매치기를 의미한다.
복제품도 정원에 있다. 처칠 흉상은 올리브 나무 울창한 가지에 가려 찾기가 쉽지않다. 건너편의 성채가 보인다.
전망대에 서면 발레타 최고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비구르(Vittoriosa), 생글레아(Senglea), 코스피쿠아(Cospicua) 3개 도시로 이루어진 쓰리 시티즈(Three Cities)의 성벽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비르구 Birgu 는 '승리의 도시'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몰타 남동부 지역의 그랜드 하버 남쪽에 있는 오래된 요새화 된 도시다.
이 도시는 세인트 안젤로 요새 (Fort Saint Angelo)와 코스 피 쿠아 (Cospicua)시를 기슭으로 하는 곶을 차지하고 있다.
Birgu는 안전한 정박을 위한 이상적인 위치에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양, 상업 및 군사 활동으로 매우 오랜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Birgu는 중세 시대에 기원을 둔 매우 오래된 지역이다. 발레타가 몰타의 수도이자 주요 도시로 설립되기 전에 몰타 섬을 통치하려는 군사 세력은 그랜드 하버의 중요한 위치로 인해 비르구를 통제해야 했다.
사실, 그것은 1530 년부터 1571 년까지 성 요한 교단의 근거지이자 몰타의 사실상의 수도였다. Birgu는 1565 년 몰타 대 포위 공격에서 중요한 역할로 잘 알려져 있다.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이 많다. 우리가 내일 타야할 고조섬 행 선착장도 찾아본다. 관광객들이 엄청 많다. 10여개의 대포가 바다를 향하고 있다. 군인들이 정비를 하고 있다. 예포식 행사는 매일 정오와 오후 4시에 진행된다.
아인쉬타인(1879~1955) 기념비도 붙어있다.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다시 나와 발레타 동상과 사진을 찍는다. 예쁜 테라스를 갖고 있는 큰 건물이 있는 중심 도로로 나왔다.
엄청난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다. 주로 유럽인들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보인다. 너무 더워서 좀 쉴 겸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시원했다. 얼음 카페라테 한 잔(3.65유로,5475원)을 시켜서 자리에 앉아 쉰다.
좀 살 것 같다. 커피 집에도 사람이 많다. 사람 구경도 재미있는 것 같다. 휴가를 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이 찾는 곳이다. 다시 중심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 있는 약국 전광판에는 현재 기온 30℃를 반짝 거린다.
고고학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rchaeology)을 지난다. 박물관은 별로 흥미가 없다. 몰타에서 가장 흥미있다는 성 요한 성당에 도착했다. 종탑에는 둥근 시계가 3개나 만들어져 있다.
들어가려고 보니 방문객이 나오는 정문이다. 층계에 앉아서 잠시 광장을 살펴본다. 두 개의 커다란 카페에 관중석 같이 식탁들이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 흉상이 하나 보인다.
1950년에 몰타의 총리를 지낸 엔리코 미치(Enrico Mizzi, 1885 – 1950)다. 우리도 성 요한 성당(St. John’s Co-Cathedral)을 들어가려고 입구를 찾아 오른쪽으로 돌았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에 들어가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우 장식적인 바로크 양식의 내부를 갖춘 대성당이다. 11세기 후반에 설립된 종교 기사단인 성 요한 구호 기사단의 교회이다.
이 기사단은 1530년에 몰타 섬에 이주해 왔다. 기사단의 수장인 장 드 라 카시에르 기사단장이 1573년 이 성당을 짓게 했다.
몰타의 군사 건축가 제롤라모 카사르가 성당을 설계했으며, 외부 파사드는 1565년 몰타 섬 대(大)포위 공격 이후에 지어졌는데 상당히 엄격한, 거의 군사적인 분위기가 나는 구조이다.
이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된 바로크 양식 내부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데, 내부 디자인은 대부분 17세기 이탈리아 예술가 마티아 프레티의 작품이다.
조각이 새겨진 돌벽과 그림이 그려진 천장, 그리고 측면 제단에는 성인 세례 요한의 일생이 그려져 있다. 성당 안에는 여덟 개의 예배당이 있는데, 각각 구호 기사단을 이루는 여덟 개 지역의 수호성인들에게 바쳐졌다.
대성당의 중앙제단 홀 바닥은 기사단 400인의 무덤이 바둑판 처럼 대리석판 아래 안장되어 있다. 크기와 모양은 같지만, 석판마다 묘비명 디자인과 문구는 다르다.
라틴어로 쓰여진 이 묘비명은 '나를 짓밟는 너도 곧 짓밟힐 것이다.' 라는 뜻. 유머러스하면서도, 인생의 유한함을 깨우치게 한다. 무심한 관광객들은 무덤을 짓밟고 지나간다.
더 중요한 인물의 묘비일수록 성당 앞쪽에 가까이 놓여 있다. 성 요한 대성당에는 수많은 예술 작품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작품은 지금까지도 원래 제작되었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세례 요한의 참수>(1608)이다.
이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최초를 장식한 뛰어난 예술가 카라바조가 남긴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서명을 남긴 유일한 작품이며 빛과 그림자를 사용하는 그의 대담하고 화려한 기법을 보여 주는 훌륭한 예이다.
이 그림은 여전히 성당의 기도실에 걸려 있다. 카라바조의 또 다른 작품인 <성 제롬 2> 역시 이 성당에 있다. 성 제롬은 희랍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초대 교부이다.
성 요한 대성당은 또한 유럽의 종교 기사단 중 가장 오래되고 명성이 높은 기사단과 거기에 속한 영웅적이고 뛰어난 기사들에게 바치는 기념관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서고 있다. 입구는 작은 광장을 품고 있다.
카라바조의 그림이 있는 성 요한 공동대성당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레타의 번화가인 공화국 거리(Republic st)로 접어든다.
발레타의 성문(Gate)부터 바다로 향해 돌출한 반도의 끝 성 엘모(St Elmo) 요새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1km 정도 거리의 보행자 전용 길이다. 애초의 이름은 왕의 거리였으나 근대 이후 공화국 거리로 바뀌었다.
공화국 거리를 따라 발레타의 주요 건물과 상업 시설이 밀집해 있으니, 발레타의 중심거리라 할 만하다. 성 요한 대성당과도 붙어있다.
공화국 거리와 대성당의 측면 벽에 있는 작은 광장에 1565년 오스만 튀르크의 몰타 포위 공방전을 기념하는 그레이트 시즈 기념비(Great Siege Monument)가이 있다.
그것은 화강암 기초 위에 서있는 믿음, 불굴의 의지 (또는 용맹), 문명을 상징하는 3 개의 청동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념비는 조각가 안토니오 시오티노 (Antonio Sciortino)의 작품이다.
이 세 인물은 신앙, 불굴의 의지(또는 용맹), 문명의 우화적 표현이라고 한다. 중앙의 남성 인물은 불굴의 의지 또는 용맹으로 묘사되며, 그는 벌거 벗은 가슴에 세 개의 뾰족한 왕관과 갑옷을 입고 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양쪽에 여성 인물이 있으며 왼쪽에는 Faith, 오른쪽에는 Civilization이 있다. 신앙은 교황의 모자를 들고 있고, 문명은 로마의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가면을 들고 있다.
2017년 10월부터 이 기념비는 언론인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Daphne Caruana Galizia)의 가족과 반정부 시위대에 의해 임시 추모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한동안 공무원들에 의해 매일 공물이 제거되었다.
2020년 법원 판결은 당시 법무부 장관 오웬 보니치(Owen Bonnici)가 추모비를 반복적으로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시위대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조형물 뒤로 몰타의 또 다른 정체성의 근원이자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인 성 요한 대성당이 있다. 구석에는 몰타를 소중하게 여긴, 몰타의 수호성인인 비오 5세 교황(San PijuⅤPapa)의 흉상이 있다.
공화국 거리 건너편 조형물 맞은편에는 몰타의 법원(Courts of Justice)이 있다. 다프네의 사진이 놓여있는 몰타 공방전 기념 조형물 하단의 정의라는 문구가 몰타의 정의를 몰타의 법원에 촉구한다는 의미를 띄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거리의 이름도 공화국 거리다. 권력형 부패는 ‘공화정의 적’이다. 귀도 데 마르코(Guido de Marco1931~2010)의 기념비도 있다. 변호사이자 교수로 또 정치인으로 6대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광장 카페 외부 파라솔 밑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거리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이 있는 광장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바로크 스타일 국립도서관을 만난다.
공화국 거리를 따라 조금 걸으면 바로크 스타일의 외관이 아름다운 몰타 국립도서관이 나온다. 1776년 요한 기사단의 단장이 세운 도서관이다. 도서관 맞은편에는 1837년에 개업한 카페 코르디나(Caffe Cordina)가 있다.
요한 기사단 단장의 궁.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 중이다 도서관을 지나면 몰타의 지배자였던 성 요한 기사단 단장(Grand Master)의 궁이 나온다.
몰타의 수도인 발레타라는 이름은 초대 기사단장의 이름 발레트(Valette)에서 유래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몰타 의회로 사용되었다가 2015년 이후엔 몰타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몰타는 의원 내각제라 대통령을 의회에서 선출한다.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 중이지만, 기사단장의 궁은 관광객에게도 개방한다. 골목길이 사방으로 이어진다. 바둑판 모양이다. 발레타의 명소 이정표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