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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 (Les étapes de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1912)
브륑슈비크(Léon Brunschvicg, 1869-1944), Alcan(PUF), 1912, [1947판] P.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 Arithmétique. 03
제2장 이집트 계산법 Le calcul égypties 26.
1절 아메스 문제 Un problème d’Ahmès 26
§ 16. [차이 대 비례 – 이집트 파피루스 린드 ]
오늘날 발견했었던 바빌론 기원 또는 이집트 기원의 문헌자료가 우리를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할지라도, 그 문헌들은 [우리의] 진실한 과학의 시대에, 충만한 문화의 가운데로 우리를 자리하게 한다. 문헌들의 실천적 척도들을 위하여, 문헌들의 천문학적 조합들을 위하여, 바빌론인들은 계산의 점토판들을 구성했었다. 이 점토판들은 수나열의 10진법조합과 60진법의 조합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점토판은 기원전 24세기에, 곱하기, 나누기, 승수의 2승과 3승의 규정작업을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곱셈의 점토판의 용법을 위한 연습들은 힐프레이트(Hilprecht, 1859-1925)의 표현을 따라 현상적인 점에까지 밀로 나갔다. (26)
그러나 우리 인식의 현실적 상태에서, 이런 고대 시대의 가장 의미있는 특징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이집트인이다. 우리가 파피루스 린드(Le papyrus Rhind) 즉 아메스 교본(Mannuel d’Ahmès)에서 빌려온 예를 다루어보자. 이 예를 아이젠로르(August Eisenlohr, 1832-1902)는 1877년에 원문과 번역하여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기원전 약 [16세기]17세기의 것이었다.
[이 파피루스에서] 40번 문제는 이런 항들로 진술되었다. “5인분의 빵100[개, 그램]. [그리고] 첫 세 사람들의 1/7[양], 이것은 나머지 두 사람의 몫이다. 그러면 어떤 차이가 인가?”
이것은 이런 단어들에 의해 해결되었다. “다음과 같이 차이(différence)가 나도록 실행하라.
5ㆍ1/2 — 23, 17ㆍ1/2, 12, 6ㆍ1/2, 1.
[100분율로서] 1과2/3를 증가해 보라: 그러면 이제 이러한 것을 얻을 것이다.
23 38과1/3
17과1/2 29와1/6
12 20
6과1/2 10과2/3과 1/6
1 1과2/3
___ ___
합계 60 합계 100” (27)
우리는, 진술과 해결을 연결할 수 있게 하는 사유 운동의 관념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동등한 차이들을 규칙적으로 증가하게 하면서, 빵을 다섯 몫들로 나누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약한[적은] 사람의 두 몫의 합계가 보다 강한[많은] 사람의 세 몫의 합계의 일곱째(le septième)가 된다는 것이다. (27)
우리는 나누어야할 빵들의 수를 한 찰나에 옆으로 밀쳐놓자. 가장 약한 자의 몫을 단위로 삼아보고, 무매개적으로 상위의 몫을 형성하기 위해 거기에 덧보태진 양을, 그리고 이어지는 두 몫들 사이에 변함없이 남아있는 양을, 차이(différence)라고 부르자. 첫째 몫이 단위를 갖는다. 둘째 몫도 차이를 더한[보탠] 단위를 갖는다. 셋째 몫, 넷째 몫, 다섯째 몫도 각각 둘, 셋, 넷의 차이들을 더한 몫을 갖는다. 반면에 두 첫째의 것[몫]들은 하나의 차이(une différence)를 더한 두 단위들을 갖고, 나머지 셋[몫]들은 새로운 차이들(neuf différence)을 갖는다. 그 문제의 조건들에 따르면 새로운 차이들을 더한 세 단위들은 하나의 차이를 더한 두 단위들을 일곱 배한[일곱 번 보탠] 가치를 갖는다: 말하자면 일곱 차이를 더한 14단위를 갖는다. 따라서 이 균형맞춤(compensation, 보정 補整)은 두 합계들 사이에 확립된다: 한 합계는 2 차이들 이상이고 그리고 11 단위들 이하이다. 다른 합계는 11단위들 이상이고 2 차이들 이하이다. 말하자면 2 차이들은 11 단위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차이는 아메스(Ahmès, 기원전 1540년경)가 지적한 대로, 5와1/2이이다. (27)
이때에 단위로부터 출발하여, 사람들은 다섯 수들의 연속은 산술적 진행과정을 형성한다:
1, 61/2, 12, 171/2, 23, [ 5와1/2씩 증가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진술에 의해 지적된 분배 양식에 만족하면서: (1 + 6과1/2)는 합계(12 + 17과1/2 + 13) 즉 52과1/2 의 일곱째이다. (28)
다섯 가지 수들의 합(la somme)은 60이다. 우리는 나누어야할 빵 100개를 갖고 있다. 여기서 차이-수(nombre-différence)인 5½ 이후에, 다른 곳에서 어떠한 설명도 없이, 비례-수(le nombre-rapport)가 개입하는 것을 본다. 그런데 60부터 100까지, 연결로서 계속하는 어떤 숫적 관계가 있다. - 분배의 양태[비례의 차이]는 변함없이[일정하게] 그대로 있으면서 – [연결의 관계에서] 빵 100개의 분배에서 몫들의 할당량(quotité)과 60의 분배에서 몫들의 할당량 사이에 일정한 비례를 그대로 유지한다. 이런 관계는 마치 “100의 표현이 60에 들어는” 것처럼, 지칭된다. 그런데 100, 그것은 60에다가 60의 2/3 더하기이다. 따라서 여기서, 1과1/3[비례수]은, 계속적인 몫들에 적용되는 곱셈의 효율(coefficient, 계수 係數)이 된다. 또는 오히려 그 곱셈 효율은 그 자체로 단위의 자리에서 출발점으로 다루어지질 수 있을 효율이 되고, 5½은 ⅔[만큼] 증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5½에 더하기 5½의 ⅔을 보태야 한다. 5½에 [비례 100의] 각각 ⅔를 더한 다는 것은, 3 + 2/3을 얻은 5/3 + 1/6의 덧셈에 의해 얻게 된다. 그러면 합계는 8 + 1/2 + 2/3, 즉 9와1/6(9⅙)이다. (28)
따라서 몫들의 한정적 가치는, 가장 약한 몫인 1⅔에다가 9⅙의 차이의 계속적인 더하기에 의해서 얻어진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된다:
1⅔, 10⅔+⅙[10⅚], 20, 29⅙, 38⅓ (28)
- [그런데 이런 차이를 파피루스에 문제로 남긴 이유가 있지 않을까? 사람은 다섯인데, 분배에서 두 사람의 몫이 세 사람 몫의 1/7이라는 계산에서 7이라는 배수의 역할을 문제 삼았을까? - 차이의 수와 비례의 수라는 구별이 기원전 1540년경에 있었다니 놀랍지 않는가. (59LLB)]
§17 [다른 문헌자료(아메스, 그리스 자료, 인도 자료), 선대수학이 있었다. .]
이러한 것이 아메스 해법에 포함되어 있는 계산작업[계산법]의 최소(le minimum)이다. 어떻게 이런 계산법들이 [당대의] 대가들에 의해 생각되었을까? 그 대가들 중의 하나인 아메스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정당화의 방법으로 얻었는지 간에, 교육을 행했을 것이다. 후대에 발견되었고, 또한 매우 흥미진진한 문제들의 해법이 포함된 고대 파피루스의 조각들도 있다, 그리고 바이예(Jules Baillet, 1864-1924)가 1892년에 출판하였으며, 그리스어로 되어 있으면서 린드 파피루스 이후에 2천년이 지나 이집트 산술학의 결정체로 된 형식들을 재생산한 수학 파피루스도 있다. 이것들의 어느 것도 이집트 사유의 근본적 개념작업을 밝혀주는데 우리에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소유한 매우 드문 문헌자료에서, 아마도 최상의 성질[특성]이 아닐지라도 어떤 추정(une présomption)을 감히 끌어낸다면, 이집트 수학의 특성이라고 할 만한 것은 이론적 고찰이 없다는 것이다. (29) - [그리스 수학에 비해 이론적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천문(책력)과 토지측량의 체계는 있었음이 틀림없다. 책력에서 매해 오차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책력의 생산과 반포는 인민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 중세에 책력에서 사도들과 성자들과 날을 기념하기 위한 책력의 오차가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반포된 책력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였다. - 중국의 책력을 얻어오는(몇 년마다 얻어오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외교도 마찬가지이다. ]
이렇게 린드 파피루스의 첫 부분은 긴 차례[목록]들를 포함하고 있다. 이 목록들은, 분수들(les fractions)에 동등한 가치를 갖는 표현의 도움에 의해서, 홀수[짝수가 아닌 수]를 2의 분할(division, 나누기)의 결과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분수들의 분자(le numérateur 분자수)는 항상 단위이다. 예를 들어, 29에 의한 2의 분할은 다음 분수들의 합계의 결과로서 나온다. (30)
1/24, 1/58, 1/174, 1/232. - [왜 1/24, 24등분을 기준들 중의 하나로 삼았을까?]
아메스는, 능수능란하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안전하게, 분수를 다룰 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 사람들은, 그가 완전한 그의 일반성에서 분수의 수들에 대한 계산을 생각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단위를 분자로 삼는 분수 계산들만이(이 단위들에 2/3를 합쳐야 하는데, 거기에서 사람들은 무매개적으로 1/3 +1/3 깨닫고 있다) 수적 표현들이고 계산의 보조물들이다. 반대로 2/29와 같은 다른 분수들은, 알려지지 않은[x] 양들에 닮은 문제들의 발언들이다. 그리고 분수에 의해 제기된 문제의 해결은 동등한 합[각각의 동등한 몫]을 얻는데 있다. 그런데 그 합의 요소들은 분자 1(un)로(한 번 더 2/3를 제외하고) 된 분수들만큼이나, 그리고 보다 쉬운 배가하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짝수의 분모(dénominateur)로 가능한 만큼이나, 분수[나누기 계산]들이다. 다른 한편 이 목록표들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그 어떤 분수표현의 등가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7/29에서 이렇게 제기할 수 있다.
7= 1 + 2 + 2 + 2
그리고 사람들은 합을 다룰 수 있을 것이고,
다.
1/29 + 2/29 + 2/29 + 2/29 또는 잇다.
마치 사람들이 2/29를 이미 다루었던 것처럼, 분수계산의 변형작업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것은, 덧셈으로 곱셉의 해법이 이집트 산술학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곱셈은 직접적 계산 작업처럼 아직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13에 의해 하나의 생산물[생산물의 양]을 실현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단순한 수를, 그리고 계속해서 그것의 2배(double), 4배(quadruple), 8배(octpule)를 다룬다. 그래서 단순한 수[단위], 4배 수(le quadruple 4배 양), 8배 수(l’octpule, 8배양)을 보태가면서, 사람들은 찾고자하는 생산물을 얻는다. (30)
따라서 우리는 엄격한 판단을 이해하는데 나간다. - 엄격함은 배은망덕으로부터 면책되지 않는다. - 그리스인들의 사변적 이성[이법]은 이집트 문화 위에서 세워졌다. 그리스인들의 가장천재적인 발견들은 기술적인 제조법과 유용한 처방방식 상태로 남아있다. 발견물들은 “논리계산”(la logistique)의 기술(l’art)과 연관이 있었다. 그것들은 소위 말하는 과학, 즉 산술학에 도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집트인들이 생각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은 것을 가정하기에, 수가 그 자체로 표상[재현]의 대상이 되었고, 규칙적인 증명 체계의 토대로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산술학의 운수(le sort)가 퓌타고라스의 실재론과 연결되어 있는 역사적 찰라[순간]를 지나가버린다면, 이집트인들의 실천은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날[세기]에 나타날 것이다. 거기서 수는 대상-수(un nombre-objet)의 직관보다 훨씬 더 멀리 가는 과학적 역할을 갖는다. (31)
사람들은 나누기 수들의 해석이 19세기 동안에 일으켰던 난점들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의 과감함에 찬탄할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35⅓/1060과 같은 나누는 분자에 분수를 유지한 것이다. 특히 사람들은 선대수학(la préalgèbre)라 불리기 알맞은 것을 떠올린다. 선대수학에서 산술학의 어려운 문제들을 위한 풀이[해법]들은, 아메스의 절차들에 나타난 실천적 절차들에 의해서, 논리적 질서의 어떠한 정당성 없이도 얻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즉 어떻게 이런 절차들로부터 대수학이, 즉 보다 정확게는 보편 산술학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상기한다. 보편 산술학에서, 뉴턴의 유명한 주석에 따르면, “수는 여러 단위들의 모음이라기보다, 사람들이 단위로서 간주하는 동일한 종류의 다른 양과 연관하여 어떤 양의 추상적 비례이다.” 이때 사람들은 린드 파피루스가 제시한 관심에 대해 고려하게 된다. 차이 5와1/2, 또한 1과2/3는 아메스의 문제 해법 속에 개입되어 있다. 이것들은 어떠한 차원을 갖는 것이 아니며, 사물들이 아니다. 이것들은 사변에게 어떠한 파악[장악]도 제공하지 안흔다. 즉 침투와 연결의 도구들일 뿐이다. 이집트 계산의 실용적 겉모습은 말하자면 수학적 사유의 지적인 동기들을 발가벗겨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겉보기는, 일종의 깊은 무의식과 더불어, 수들의 과학들이 앞으로 제시할 아주 풍성함을 표출한다. (32)
(6:09, 59L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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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디오판토스(Diophante d'Alexandrie, Διόφαντος ὁ Ἀλεξανδρεύς, 2-3세기 활동), 알렉산드리아 활동하는 그리스 수학자. Les Arithmétiques (Arithmetica): ἀριθμητική)(3세기경) δυναμοκυβον <-δυναμόω(동사): 강화하다, 다지다. + κύβος(κύβον) 정사각형 - κυβοκυβον;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구화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 보편 산술학(Arithmetica universalis, 1707)(여러 수학적 개념들의 표기법들),
17?? 보듀(Noël Beaudeux, s.d.) 1802년에 뉴펀의 보편산술학(Arithmétique universelle)을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한 사람
1829 칸토어(Moritz Benedikt Cantor, 1829–1920), 만하임 출생 하이델베르크에서 별세, 독일에서 첫 수학사 교수. 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e der Mathematik. 4 Bände. Leipzig: B. G. Teubner, 1880–1908: t. I, 3e édit, 1907, Leibzig (que nous désigneraons par Cantor I3), p. 11. (chap. 1, die Babylonier, p. 19 et suiv.) /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셍페테스부르그 태생 할레에서 별세. 독일 수학자, 집합론 탄생에 큰 역할. “실수들(les nombres réels)은 자연수 전체보다 더 많다.” 기수와 서수를 정의하였다. /
1832 아이젠로르(August Eisenlohr, 1832-1902), 독일 이집트 학자. Ein mathematisches Handbuch der alten Aegypter (Papyrus Rhind des British Museum) übersetzt und erklärt. 2 Bände (Band 1: Commentar. Band 2: Tafeln.). Hinrichs, Leipzig 1877.
1839 조이텐(Hieronymus Georg Zeuthen, 1839–1920), 덴마크 수학자. 코펜하겐 대학 교수. 열거 기하학(the enumerative geometry of conic sections, algebraic surfaces, and history of mathematics.)
- Sur l’Arithmétique géométrique des Grecs et des Indiens, Bibliotheca Mathematica, sér. III, t. V, 1904, p. 110. Cf. Rodet, art.cité, p. 405 et suiv.
- “"Théorème de Pythagore", origine de la géométrie scientifique”, Hieronymus Georg Zeuthen; Publisher, Kundig ed.; Original from, the University of Michigan. (1905) (in Congrès International de Philosophie)
1844 시몬(Maximilian Simon, 1844-1918) 독일 수학사가, 수학자. Geschichte der Mathematik im Altertum. In Verbindung mit antiker Kulturgeschichte. Cassirer, Berlin 1909.
1849 보비닌(Wiktor Wiktorowitsch Bobynin, Victor Bobynin; 1849-1919), 러시아 수학사가, 수학자. 고대 이집트 연구. 수학 논문이 많다.
- Bobynin, les procédés des premieres découvertes mathématiques
- Bobynin V. [1890] [Programme du cours d'histoire des Mathématiques professé en 1888-1889 et 1889-1890 à l'Université de Moscou par V.-V. Bobynin, professeur ...]
- (cf. (Bobynin V, Moscou), Méthode expérimentale dans la science des nombres et principaux résultats obtenus, L’Enseignement mathématique, 15 mai 1906, p. 178. - 이 러시아어 원문인 논문을 빠쁠리에(M. E. Papelier, Orleans)의 번역으로 되어 있다.(pp. 177-189). [L’Enseignement mathématique,지(誌)는 1899년부터 수학교육을 위한 국제 학술지이다. 파리에서 2달에 한번 출간한 것이다(년 6회 발간을, 년도 별로 재발간). D.A. Laisant과 H. Fehr이 지도하였다.]
1850 로데(Léon Rodet, 1850–1895), 프랑스 수학자, 고고학자, 문헌학자, 동방학자, 산스크리트 학자.
- “Sur un manuel du calculateur découvert dans un papyrus égyptien”. Rodet, L. Bulletin de la Société Mathématique de France, Tome 6 (1878), pp. 139-149.
- “Les prétendus problèmes d’algèbre du Manuel du Calculateur égyptien”, Journal Aisatique, 1881, t. XVIII, p. 214.
1852 샥-샥켄부르크(Hans Graf von Schack-Schackenburg, 1852-1905), 덴마크 독일, 귀족출신, 이집트 학자. 1900과 1902에 베를린 파피루스 6619(der Berliner Papyrus 6619) 출판.
- Der Berliner Papyrus 6619. In Zeitschrift für ägyptische Sprache und Altertumskunde. Band 38, 1900, S. 135–140.
- Bemerkungen zu Prof. Dr. Eisenlohr's Ausgabe des mathematischen Papyrus Rhind, 1882, S. 152–154 [아이젠로러에 관한 논문이다.]
1859 힐프레이트(Hermann Vollrat/Volrath Hilprecht, 1859-1925), 독일계 미국인 아시리아학자, 고고학자. 그는 메소포타미아의 니푸르 지역 발굴에 참여했다. Die Ausgrabungen der Universität von Pennsylvania im Bêl-Tempel zu Nippur, Leipzig, 1903, p. 60. Babylonien-Assyrien, p. 89, et suiv.
- The Excavations in Assyria and Babylonia (Babylonian Expeditions, Series D, Vol. I), Holman, Philadelphia 1904; 독일어판(deutsch): Die Ausgrabungen in Assyrien und Babylonien, 1. Teil: Bis zum Auftreten de Sarzecs.
1864 바이예(Jules Baillet, 1864-1924). 프랑스 이집트학 학자. Le papyrus mathématique d'Akhmîm, 1892, P.147. [아크밈(Akhmim), 나일강 중부 이집트 소도시(gr. Χέμμις) - 기원전 5세기 경 아크밈 파피루스는 Le Codex de Berlin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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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 린드(Le papyrus Rhind ou Mannuel d’Ahmès) 고대 이집트 언어(상형문자)로 된 기원전 1500년대(16세기)의 수학적 자료들. 60여 문제의 해법이 있다고 한다.
- 아메스 (파피루스 서판)(Ahmès (Jˁḥ-ms(w), « né du (dieu-)lune » ou « la lune est née », 기원전 1540년경 이집트 서판, 제15왕조 아포피스 1세(Apophis Ier: Deuxième Période intermédiaire) 시기의 파피루스 서판.
(8:06, 59LLC) (7:21, 59LM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