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의 공동 화장실>
화장실 문화
문화라는 것은 그릇에 담아 놓은 물처럼 차면 넘치게 되어 있어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퍼져나가기 마련이고 전통문화라는 것은 한 나라나 그 민족이 오랜 세월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굳어져버린 생활방편의 하나이다.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는 항상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또 발전과 더불어 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선진국일수록 문화가 발전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선진국 문화가 우월하고 후진국 문화가 열등하다고 말을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문화는 선진국이 될수록 문제를 일으키고 부작용이 일어나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화장실문화만큼은 우리나라는 자랑스럽게 내세울 것이 못되었다. 농경사회일 때는 뒤처리 한 것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통풍도 잘되어 별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만 엄동설한에 볼일을 보고 나면은 엉덩이가 얼얼한 정도는 참았어야 했다. 그런데 산업화로 사회가 급속히 발전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도시로 한꺼번에 몰려들기 시작을 하고 밀집된 공간에 공동변소라는 것이 생겨났다.
출근을 하기 전에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려고 일시에 몰리니까 긴 줄도 생겨나고 관리도 제대로 안 되어서 근처에만 가도 역겨운 냄새가 났는데 비오는 날에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하루 잠깐 볼일을 보는 화장실에까지 돈을 투자할 정도로 생활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공중변소는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면 으레 생겨나는 공공의 건물이었다. 장소도 협소하고 볕도 들지 않는데다가 공기의 소통까지 잘되지 않아서 구더기와 파리가 들끓는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장소 하면 화장실이 먼저 떠오른 정도였다.
지금은 아주 오지의 산골이 아니라면 시골이라고 해도 재래식 화장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전국곳곳에 아파트도 많이 들어서고 한옥이라고 해도 집의 내부구조를 바꾸어 부엌과 함께 화장실이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편리하게 사용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십 몇 년 전만 해도 명절이나 다른 일이 있어 시골에 내려갈 때면 제일 고역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재래식화장실이었다. 어릴 때부터 사용을 해 왔고 경험을 해 봤던 어른들은 그런 대로 볼일을 보는데 애들이 문제였다.
드럼통에다 나무다리 두 개가 덩그렇게 놓여있는 재래식화장실은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거나 몇 번 사용해보지 않은 향기롭지 못한 이 공간에서 생리적인 것을 해소하라고 하니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전에 기겁을 하고는 되돌아 나온다. 뒤를 닦은 종이들이 널부러져 있고 거미줄에다 구더기가 기어다니고 퀴퀴한 냄새가 후각과 시각을 자극하는 재래식화장실은 태어나면서부터 방같이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해온 아이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공간이었다. 우리 집에서도 특히 큰애가 비위가 약해서 들어가자마자 구역질을 하고 나오는 바람에 아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시골에 더 있고 싶어도 화장실을 못 가는 애들 때문에 있지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일찍 귀경을 하는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네 푸세식 화장실이 서구 유럽에 화장실에 비해서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다 사는 환경에서 나온 결과물 때문인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던 우리 민족은 들판의 문화였고 상대적으로 전쟁이 잦았던 유럽은 성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우리네 들판 문화에서 배변의 찌꺼기는 농작물의 좋은 거름이 되었기에 굳이 화장실을 집안으로 모시고 들어올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유럽은 전쟁을 대비한 방어와 경계의 효율과 안전을 위해 좁은 성안에 많은 인구가 갇혀 살다보니 공간이 협소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생겨난 것이 지상으로 올라가는 아파트형 주택이다. 다니엘 푸러가 지은 '화장실의 작은 역사' 라는 책에서 보면 배변 처리를 위해 적지 않는 돈을 지불했어야 했고 집배지 또한 거리가 멀어 고층에 살았던 가난한 사람들은 요강에 든 오물을 창문 밖으로 쏟아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골목마다 넘쳐나는 오물 때문에 귀부인들은 마차에서 내려 이 오물을 밟지 않으려고 하인들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굽이 높은 신발도 생겨났다고 한다.
추위와 바람 햇볕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모자를 쓰기 시작한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화가들의 상징이기도 한 모자는 유화의 물감이 머리에 튀어 머리카락이 엉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럽사람들이 모자를 즐겨 쓰고 다니는 것은 패션으로서 모자의 효시가 아니라 베란다에서 무자비하게 던지는 오물을 머리에 뒤집어쓰지 않으려고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한번 생각을 해보라. 길을 가다가 위에서 느닷없없이 쏟아지는 오물세례를 받는다면 얼마나 불쾌하였겠는가. 당시 사람들이 겪은 불편을 미루어 짐작을 해볼 수가 있다. 공동화장을 이용하려고 고충을 오르내리는 힘듦과 전염병 예방과 위생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면서 유럽의 화장실은 집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변기의 개량이 이뤄져 요즘의 화장실이 탄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 중에는 큰 돈을 벌려고 하는 약삭빠른 장사꾼들의 노력이 현대식 변기 발전에 큰 몫을 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티브에서 미수다들이 우리나라의 부러워하는 것 중에 하나로 깨끗한 화장실을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화장실은 외국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고속도로 화장실뿐 아니라 공원 어디를 가도 깨끗한 화장실에 휴지가 걸려 있고 손을 말릴 수 있는 손건조기가 설치돼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한때 우리의 푸세식 화장실이 외국인의 눈에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였듯이 인도의 화장실문화에도 특이한 풍습의 전통화장실 문화가 있다고 하는데 그 것은 볼일을 보고 뒤처리를 손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장실의 수도꼭지 옆에는 주전자와 비슷한 컵이 항상 배치되어 있고 볼일을 다 마친 다음에는 컵에다 물을 부어 항문부위를 왼손으로 깨끗이 씻는다고 한다. 오른손으로 씻지 않고 왼손으로 씻는 것은 힌두교의 종교적인 영향 때문인데 힌두교는 오른손을 신성시하고 왼손은 천시하여 귀한 일을 할 때는 오른손을 사용하고 천하고 낮은 일을 할 때에는 왼손을 쓴다고 한다.
브라만 계급이나 크샤트리야 같은 귀족 계급층들은 일반 민중에 비해 다른 것이 있다면 좀 더 커다랗고 고급스러운 아름다운 주전자를 들고 들어가 처리를 한다고 한다. 전에 행정 수도권 이전 문제를 두고 헌제에서 관습법으로 볼때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리자 성문헌법으로 설립된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을 적용시켰다고 해서 법학자들까지도 이론이 분분한데 우리의 관습적인 눈으로 볼 때는 작은 주전자든 빛이 나는 큰 주전자든 손으로 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이 인도의 가정집에 초대를 받아 갔다고 한다. 한창 요리를 하다 말고 화장실을 갔는데 볼일을 보고 나온 다음에 그 손으로 바로 요리를 만드는 것을 보고는 안 먹을 수도 없고 적지 않게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그때 갑자기 우리네 침 문화가 생각이 나더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침 문화도 외국사람의 식문화의 관점으로 보면은 불결해 보이기 때문이다.
채소 하나 소스 하나라도 앞접시로 조금씩 덜어서 먹는 그들의 식문화로서는 추운 날 찌개하나를 시켜 놓고 여러 사람이 한 냄비에 빙 둘러않아 숟가락을 들락날락하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침 섞는 문화가 위생적인 문제로 놓고 보면은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큰 양푼에다 이 것 저 것 나물 종류를 섞어 넣어 쓱쓱 비벼서 너도나도 한 입씩 떠먹는 그 맛을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음식의 비빔문화가 농경사회의 물자 부족과 그릇 하나라도 덜 씻는 수고로움을 덜고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힘을 비축하는 시대의 산물이라고는 하지만 가족과 마을 공동체 문화의 인정이 흐르는 한국인 정서를 모르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문화에 있어서 없어서 안될 물건이 바로 휴지다. 우리 나라에 지금처럼 보드랍고 야들야들한 휴지가 나온 것은 60년대 초라고 한다. 그 전에야 직접 손을 대지 않았다 뿐이지 결코 깨끗하게 처리를 하지는 못했다. 조선시대 임금님 같이 지존인 분들은 그 것을 매화라고 부르며 뒤처리도 비단으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민중들이야 짚이 아니면 까실까실한 호박잎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세대는 아니었고 다 쓴 공책이나 지나간 교과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달력 대신 벽에 걸려 있던 습자지로 만든 일력이 종이보다 부드러워 재래식 화장실 한켠의 못에 걸려서 인기를 누리는 때도 잠시 있었다
외생적인 면으로 본다면 손으로 지저분한 것을 만지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네 습성 때문에 다른 물건으로 대용을 했지만 물로서 깨끗이 세척을 한다는 의미에서 보면은 인도의 화장실문화가 더 위생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화장실문화는 시대의 변화와 아파트형 주거형태에 따라 자연히 바뀌어 왔고 이제는 감촉 좋고 보드라운 휴지시대를 넘어 손을 대지도 않고 스위치만 누르면 알아서 씻어주는 비데기까지 집집마다 보급이 되어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의 화장실문화는 관습까지 인식의 변화를 가져 왔지만 이렇게 뒷마무리를 하든 저렇게 뒤처리를 하든 그 것은 어디까지나 그 나라 문화의 한 관습이고 전통적인 풍습일 뿐이다. 그것이 비위생적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 나라의 전통문화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은 인도의 화장실문화나 우리의 옛 화장실 문화도 그냥 생활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화장실의 문화일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