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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연구소와 군선교사역을 후원했던 지인이 대학교수직을 은퇴하고 1년 남짓 한국에 머물다가 자녀들이 결혼해서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살던 아파트를 팔고 떠날 준비를 해서 함께 만났습니다.
홍대근처에서 부부동반으로 만났는데 저희 부부도 오랜만에 홍대거리를 산보했습니다. 젊은이들의 거리로,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거리로 알려진 곳이어서 호기심을 갖고 이곳저곳을 다녀보았습니다. 수십 년 만에 홍대캠퍼스도 구경했습니다. 젊은 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도 많았습니다. 음악공연하는 곳이 여러 곳이었고 다양한 쇼핑센터와 음식 맛집들과 커피숍이 즐비했습니다.
한 순간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변에는 내 또래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노년기의 여유와 자유함은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오늘날 한국사회는 그렇게 녹녹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경쟁구도에 시달리면서 불안과 염려로 보내는 젊은이들이 참 많습니다.
친구부부를 만나서 식사하고 옛날 경의선 철도길을 도심산책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곳을 함께 걸었습니다. 친구교수는 고둥학교시절 1학년 때에 같은 반이었는데 상당히 출중했습니다. 공부를 잘했고 늘 도서관에서 열심히 독서를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미국유학을 다녀와서 컴퓨터공학과교수로 정녀퇴직을 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 교회의 장로로 섬겼습니다. 교수사역을 하면서 연구와 강의에 집중하다가 한쪽 시력이 많이 약해져서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산보 후에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대화를 하면서 친구부부는 알짬 크리스천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신앙과 삶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쪽지 글에 정치에 편향된 것으로 오해받을 글을 적었을 때는 부드러운 권면도 해주었습니다. 신앙이 삶으로 아름답게 승화되는 모습은 참 좋습니다. 말하기는 쉬워도 살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친구의 새로운 미국생활을 축복합니다.
“보라 형제가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133편1절)
마을회관
이곳 상주로 귀촌한 지 만 7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회관에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이곳을 드나들던 네 분 정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화장실이 외부에 있어서 불편했는데 이제는 화장실을 실내에 만들어서 참 편리합니다. 이곳에서 담소하고 화투치고 음식을 만들어서 교제하고 휴식을 했던 분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혼자지만 열심히 드나들었던 남자 어르신도 진폐증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으로 장기요양을 떠났습니다.
여성분들도 네 분 정도가 떠났습니다. 세 분은 세상을 떠났고 한 분은 요양원에 입소해서 생애 마지막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 동안에 이 마을에는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없습니다. 이것은 농촌의 실상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인구절벽이라는 현실은 농촌현실만은 아닙니다. 도시에 있는 아파트지역에 가더라도 저녁 시간 무렵에 20, 30대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시장에 가던지 산보를 하던 모습은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흔치 않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노인회 총무일을 보면서 종종 회관에 들려서 불편한 곳이 없는 가를 체크합니다.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도록 배려하기도 합니다. 이곳 어른들과 종종 함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바쁜 농사일 핑계로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이 번 겨울에는 이곳 어르신들과 조금이라도 함께 보내고자 합니다.
행복한 노년이 무엇일까를 종종 생각해봅니다. 폴 투르니에는 노년기는 문화적인 일을 하는 세대라고 했습니다. 중장년 시절까지는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다가 노년기에는 문화적인 일에 집중하는 것이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30여 년 전에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뉴저지 주에 있는 한 타운 도서관에서 책을 싸놓고 읽고 있는 노인 분들을 보면서 행복한 노년기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에맄 에릭슨은 노년기는 영적인 세대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는 지난 세월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면서 오늘을 긍정하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세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웃교회에 다니는 권사님 90세 정도가 되었는데 성경을 필사하면서 소일을 합니다. 주님과 가까이 지내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국가에서 마을 회관 관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난방비와 여름철에는 냉방비를 지원합니다. 마을회관 유지와 관리를 위해서 다양한 보조금을 보내줍니다. 혼자 집에서 보내면 난방비도 많이 들어서 춥게 지내는데 이곳에 와서 함께 보내면서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음식도 집에서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함께 나누면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언16장31)
선진농업견학
내가 소속된 중화농협공선회에서 선진농업견학을 실시했습니다. 샤인 마스켓 포도수확철이라 바빠서 참여인원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이곳 상주시를 출발해서 천안에 있는 샤인 마스켓 포도 수출농장을 견학하고 점심식사하고 속리산에 들려서 단풍산행을 한 후에 저녁식사하고 귀가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분주한 시기이지만 여행의 묘미도 있을 것 같아서 참여했습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나들이는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차를 타고 오가면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청주상주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면서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산야를 바라보았습니다. 단풍이 절정입니다. 여행을 할 때 산림녹화가 잘 이루어진 울창한 숲과 잘 정비된 도로와 주변시설을 볼 때 선진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어린 시절 비포장도로에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다녔던 신작로길에 대한 추억이 삼삼합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 때도 재미있고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천안에 있는 포도수출시범 농가는 샤인 마스켓 중국수출 1호라고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농장주는 자기나름대로의 포도재배 노하우를 강의했습니다. 돌아보면 다양한 포도재배의 기술이 있고 자기 나름대로 최고라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기술을 본인의 농장에 적용하는 것은 농장주의 또 다른 선택입니다. 농업재배기술이라는 것은 토질과 기후, 품종, 햇빛, 물관리, 비료, 퇴비, 농약 등의 다양한 조합이 이루어지는 종합 예술같은 것입니다. 최고의 농산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느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의 종합결정체입니다.
이 분의 강조점은 토질이었습니다. 비료를 너무 많이 시비하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습니다. 물도 많이 주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귀리를 심어서 부엽토를 만들어 활용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열렬농부들의 질문이 많아서 강의시간이 예상보다 길었습니다. 점심식사는 근처에 횟집으로 갔는데 오랜만에 대하는 성찬이었습니다. 충분한 점심식사를 나눴고 이곳에서 통성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사귐을 가졌습니다. 참 좋은 교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농산물을 재배해서 적절한 값에 판매하는 것은 농민들의 소중한 바람입니다. 동행들과 대화하면서 샤인 마스켓 포도를 재배해서 상품을 다양하게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행중에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는 길에 속리산을 들렸습니다. 속리산입구에서 법주사까지 걸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속리산을 갔다가 하산하는 길이었습니다. 법주사가는 길을 산책하면서 가을의 정취 속에 단풍으로 아름다운 길을 걷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시계추를 과거로 돌렸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 처음에 속리산법주사 여행을 하면서 감격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 여관집에서 싸준 도시락을 먹었던 어린 초등학교시절의 수확여행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보았던 전등, 찐빵과 다른 종류의 빵을 처음으로 보면서 신기했던 추억이 남아있습니다. 그 시절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겨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장 11절)
뜻밖의 소출
지난해는 샤인 마스켓 두 번째 수확이었습니다. 800평에 4900송이에 봉지를 씌웠는데 송이도 작고 포도알 크기도 작아서 상품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렇지만 당도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수확인 올 해는 송이도 크고 포도알 크기도 많이 컸습니다. 당도도 적장했습니다. 상품성이 좋았습니다. 상품이 아주 좋은 것은 수출용으로 입고됩니다. 그 다음으로 내수판매를 하는데 좋은 상품은 내수 A급으로 판매합니다. 품질이 좀 떨어지는 것은 내수B급으로 판매합니다. 평범한 것은 공판장으로 판매합니다. 대부분의 상품이 내수 A급 판매 되었습니다. 물론 상당한 양은 공판장에서 경매를 통해서 판매했습니다. 공판장에서 판매하는 상품도 대체적으로 값이 적당해서 만족했습니다. 포도송이가 포도알 유실이 많은 경우에는 알포도로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는 제품을 출하하면서도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어떤 농가의 경우에는 출하작업을 하면서 포도 무름병으로 상한 포도가 많아서 상당 부분이 쓰레기로 버려야 해서 작업이 힘들기도 했는데 그런 면에서 저희 농가의 올해 샤인 마스켓 포도수확은 만족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원인을 진단해보면 해마다 충분한양의 퇴비를 살포했던 것이 포도나무를 건실하게 키운 것 같습니다. 적절한 물주기도 좋았고 햇빛도 적절했고 토양도 좋았던 같았습니다. 주변에 포도농사를 짓는 동료들에게도 나름대로 몇 가지 권면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여전히 초보입니다.
농사를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혼자서 일을 할 때는 말씀과 찬송을 가까이 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은혜의 시간입니다. 농부도 은혜받는 시간이고 농작물도 함께 은혜를 받는 시간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15장5절)
언어 바꾸기와 생각 바꾸기
삼성의 故이건희 회장이 삼성계열사간부들에게 마누라와 자식들 외에는 모두 바꾸라고 권면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기업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언어는 상대방과의 소통할 때 사용됩니다. 농사일도 농부와 농작물의 관계이지만 주변 농부들과 소통할 때도 많고 물건을 사고 팔아야 하고 가게나 은행도 거래해야 합니다. 언어에는 불평의 언어도 있고 감사의 언어도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나 관계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낼 때도 많습니다. 농촌사회라는 것이, 지역사회라는 것이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짜증난다고 큰소리를 친 적도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작업에 대해서 과도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용을 청구한 사람때문에 관계가 좀 어려워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내가 조금 더 손해를 보았더라면, 내가 좀 더 인내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농사일도 업적지향적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관계지향적으로 결론을 내야 합니다. 물론 업적도 관계도 모두 중요하지만 삶의 진정한 가치는 관계지향적인 삶입니다.
눈앞의 이익도 소중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지 않으면 낙심도 됩니다. 그러나 생각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꾸어보면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 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농촌에서 생산물의 소출이나 판매 부진에 낙심이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이해는 됩니다. 과도하게 은행빛으로 사업을 해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부채에 시달리고 극심한 고통때문에 목숨을 마감합니다.
결론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받아들이면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결국 내가 세운 마스터 플랜에 달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달려있습니다. 그 결과도 소중하지만 그 결과에 초연할 수 있는 것도 영성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돌아보면 짧은 농사기간이지만 원하는 만큼의 기대치가 채워지지 않아 잠못 이루는 불면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내 자신을 원망하기도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인생은 결국은 과정입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방향으로 우리 삶을 만들어가는 진행형입니다. 지난해인 2022년 10월 31일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 후의 나의 삶은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19:13)
첫댓글 샬롬! 농부 목사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위의 글을 읽었습니다.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