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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 2023.12.24
말씀: 사도행전7:54-60
제목: 스데반의 죽음- 죽도록 충성하라
날자: 2023.12.24 주일 낮 예배
말씀: 행7:52~60
제목:스데반의 죽음 - 죽도록 충성하라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성경봉독
성경본문: 사도행전 7:5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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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성가
계양중앙감리교회 (444) 계양중앙감리교회 2023.12.24 주일 1부 예배 (실시간 온라인) - YouTube
행7:52-60
말씀봉독 -> 요절 7:55-56
52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59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 주님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
2023년 주님 오신날을 감사드리며 축하합니다. 주님의 탄생을 모두 함께 기쁜마음으로 할렐루야~~~
사실 오늘 오신 것은 아니고 로마의 당시 축일에 많은 디아스초라 형제들이 고향으로 내려오니까 모두 모여
주님의 탄생일을 오늘로 정한 것입니다. 정확한 날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세상으로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성자 예수그리스도의 첫번째 강림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오늘 드리는 말씀은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스데반 집사의 증언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에게 무슨 멧시지를 주시는가에 중점을 두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아멘
https://www.youtube.com/watch?v=7xiwbui9G0k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이 순교하는 장면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집사는 주님의 운동을 하는 헬라파 유대인이라는 것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크게 두 부류의 무리들로 섞여 있었습니다. 즉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이란 팔레스타인지방에 살며 히브리말을 사용하는 유대인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이고, 헬라파 유대인이란 유대인이기는 하지만 헬라어를 사용하는 팔레스타인 밖의 지방의 출신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가 왜 열두 사도 외에 집사들을 필요로 했는지는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 교인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과부들에게 행하는 구제에서 헬라파의 과부들이 누락되곤 하자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에 대해서 원망을 하게 된 것입니다(행6:1). 그런 원망이 일자 사도들은 헬라파의 과부들이 구제식탁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자꾸 늘어나고 헬라파의 과부들의 식사접대를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아지자 열두 사도가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십시오. 이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겠습니다" 했던 것입니다(행6:2-4). 그래서 교회의 온 무리가 집사로 뽑은 일곱 사람 중 첫 인물이 스데반인 것입니다. 이렇게 스데반은 구제하는 일을 공평하고 아무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게 잘 처리할 사람이라고 온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행6:3)이었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행6:5)이었습니다.
또 행6:8에 따르면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다"고 합니다. 스데반이 한 일들을 가리키며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사역이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의 사역과 대등한 것이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다"(행6:8)고 했는데, 여기서 "큰 기사와 표적"이란 주로 병든 사람, 아픈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귀신들린 사람들을 낫게 해주는 일을 가리킵니다. 즉 스데반의 사역이 단지 구제물을 불평없이 공정하게 나누어주는 일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폭넓은 치유사역이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행6:9-10은 우리에게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이것은 그의 지식과 논리적 언변이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가르침과 설교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제7장은 그 끝부분에 있는 오늘 본문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스데반이 공회에 잡혀가서 대제사장을 위시한 지도자들 앞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그 설교는 그가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임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줍니다.
그는 또한 깊은 영성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말로 스데반을 이길 수 없음을 안 적대자들이 매수와 선동과 거짓증언으로 스데반을 잡아다 유대인의 최고법정인 공회에 세웠을 때에 그는 두려워하거나 겁에 질려 사색이 되지도 않았고, 억울함과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지지도 않았습니다. 행6:15에 보면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했습니다. 이것은 깊은 영성을 지닌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구제하는 일, 병 고치는 일, 가르치고 설교하는 일 등의 사역을 광범위하게 행한 스데반은 초대 집사의 한 사람이었지만 사도들과 다름없이 큰일을 행한 교회의 사람이요 주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 무엇보다도 교회의 첫 순교자로 역사 속에 남게 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첫 순교자가 되는 영광을 누린 사람입니다. 스데반이라는 이름의 말뜻은 "왕관"입니다. 그는 순교자의 죽음을 죽음으로써 실제로 주님으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쓴 사람이 된 것입니다.
1. 스데반의 예수님 증거
스데반을 미워하고 모함으로 고발한 사람들의 주장은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행6:11)하며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행6:13)는 것이었습니다. 공회에서 대제사장이 "이것이 사실이냐"고 묻자(행7:1) 스데반은 자신의 신앙이 다른 유대인들의 전통적 신앙과 그 뿌리를 같이하고 있음을 명쾌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를 고발하는 자들의 주장이 거짓됨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행7:2-50). 그러나 그 공회에 모였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마음으로 경청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을 느낀 스데반은 갑자기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그의 설교를 마쳤습니다. 오늘 본문 직전에 있는 51-53절의 말씀입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행7:51-53)
그러자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리면서도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고(54), 그 때 스데반은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오늘 본문은 전합니다(55). 스데반이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과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은 환상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위기의 때에 스데반에게 믿음을 지키며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힘을 주시기 위하여 하늘의 영광의 놀라운 광경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고 했지만 그 하늘은 보통 사람들이 보는 그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때 공회당 안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본 하늘이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찬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것일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 죽음의 위험을 직감한 그 순간에 머리를 들고 위를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즉시 그에게 하나님과 그 우편에 서계신 예수님을 보여주시며 그 하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열어주심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죽음 앞에서도 평화와 승리를 얻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것이 아니라 서계셨던 것은 스데반이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을 지킴에 대해 친히 증인이 되시고, 스데반을 그의 품으로 반겨 맞으심을 보여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공회에 모인 자들에게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6) 말하자 그들은 스데반이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큰 소리를 지르며 자신들의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잡아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57-58) 그러나 스데반은 돌을 맞으며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59) 했고 또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는 말을 하고는 잠들고 말았습니다(60).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는 말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말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늘의 영광 속에 하나님의 우편에 사계신 예수님을 본 스데반은 그 예수님처럼 죽음을 맞으신 것입니다. 본문의 기록자는 스데반의 죽음을 평화롭게 잠든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순교 중에서도 최고의 순교였습니다. 그의 순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이들의 교회에서의 첫 순교답게 순교자가 보일 수 있는 믿음과 충성과 용기와 사랑과 용서와 평화를 다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순교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순교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사도행전 6장과 7장에 기록된 그에 관한 언급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됩니다. 사도들이 교인들에게 집사 일곱을 택하라고 하며 주문한 것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이었습니다(6:3). 그 말을 듣고 무리가 택한 스데반을 비롯한 일곱 사람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6:5). 그렇게 피택된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였다"(6:8) 했으며. 사람들과 논쟁할 때에는 "지혜와 성령으로 말했다"(6:10) 했습니다. 공회에 잡혀갔을 때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6:15) 했습니다. 공회원들이 그를 향하여 이를 갈 때에(7:54)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7:55)고 했습니다. 스데반에 관한 이러한 언급들 가운데 늘 반복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지혜를 주신 이도 성령이셨고, 그에게 믿음을 주신 이도 성령이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게 해주신 이도 성령이셨고,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게 하신 이도 성령이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하늘의 영광 속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는 영의 눈을 열어주신 이도 성령이셨고, 그를 돌로 치는 이들을 위하여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신 이도 성령이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그 고통스럽고 참혹한 죽음을 평화롭게 맞으며 잠들 수 있게 해주신 이도 성령이십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는 사실 인간의 힘으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고 힘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2. 스데반집사의 핍박
순교의 피는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의 사역은 사도 바울의 사역의 서곡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 사도 바울은 스데반의 죽음으로 중단된 사역을 대신 담당한 것입니다. 비록 그는 스데반이 죽을 때 그를 돌로 치는 자들의 옷을 맡아보고 있었고 그 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극렬한 박해자로 나섰지마는, 훗날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가장 뜨거운 복음전파자로 돌아섰을 때 그는 그가 목도했던 스데반의 순교를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돌을 맞아 죽어가며 그를 돌로 치는 이들을 위해 드린 스데반의 그 기도는 바울의 뇌리 속에, 그의 심장에 대못처럼 박혀서 잊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r 때문에 그는 그가 저지른 박해의 죄과를 돌아보며 그가 협력한 스데반의 처형으로 말미암은 복음사역의 손실을 자신의 헌신으로 메워야 하겠다는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교회의 큰 스승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스데반이 기도하지 않았다면 교회는 바울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순교자를 만드는 사람들 즉 박해자들은 의례 거짓되고 적반하장이며 악랄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자들도 그랬습니다. 행6:11-13에 보면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했다고 전합니다. 또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리자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았다고 했으며(7:54)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7:57-58). 그들은 정상적인 심의도 공식적인 판결도 없이 스데반을 집단 린치를 가하며 돌로 쳐죽였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불법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순교는 이러한 거짓되고 악랄한 비방과 모함과 박해를 견디는 것이며, 박해자를 원망하거나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순교는 우리의 믿음을 가장 아름답게 완성하고 표현하는 기회입니다. 교회는 순교의 피 위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교회는 특별히 위대한 순교자들을 갖고 있지만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크고 작은 의미에서 순교적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입니다. 스데반이 당한 그런 거짓비방과 악랄하고 불법적인 모함과 박해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기고 사랑과 용서로 이겨야 합니다. 그 승리의 힘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첫 순교자를 보기 전에 교회는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는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성령은 순교적 능력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수시로 요구되는 크고 작은 순교를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항상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3. 죽도록 충성하는 스데반집사
오늘 본문은 스데반 집사가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고 순교하는 장면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듣던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려 이를 갈면서 급기야 돌을 들어 던지기 시작합니다.
죽이라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돌이 이곳저곳에서 날아와 스데반을 맞힙니다.
돌에 맞은 스데반의 머리와 얼굴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하더니 온 몸이 피로 적십니다.
참을 수 없는 아픔으로 스데반의 신음소리는 점점 더 커집니다.
돌에 맞아 쓰러지기를 수없이 반복하였지만 나라오는 돌은 언제 끝날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스데반의 신음소리에 섞여 놀라운 기도소리가 나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스데반은 끝까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였고 주님처럼 자기를 죽이는 원수들을 향하여 용서의 기도를 드리는 숭고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죽기까지 충성하라, 끝까지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한두 번 충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이 있고 죽음의 위협이 있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충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은 어렵고 힘들고 고난이 있을지라도 끝가지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끝까지 죽도록 충성하지 못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잘 하다가 중간에 어렵고 힘든 고난의 길이 닥치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고 끝까지 충성하지 못하고 완주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죽도록 충성하는 것, 끝까지 충성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 길에 환난이 있고 십자가가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참고 끝까지 충성하고 끝까지 신앙의 길을 완주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징글벨소리가 도처에 들리는 이 때, 주님을 증거하는 스데반 집사를 생각하면서 주님을 증거하는 우리 만나인이 되시기를 죽기로 맹세하는 이 시간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의 길을 가리라’는 복음성가https://www.youtube.com/watch?v=rIHC4OUFyWc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험한 파도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모진 바람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 길 이 길은 승리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나는 가리가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신앙생활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 길에 비바람이 있고 눈보라가 있고 험한 파도가 있고 모진 바람이 있어 우리의 가는 길을 막는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 계시록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잠 8:34 내 말을 듣고 날마다 내 문에서 지키며 내 문설주에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금년 일 년도 우리 만나인은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처럼 스데반집사가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증거하였듯이 우리 만나인도 주님을 증거하는 귀한 형제자매되시기를 기원하면서 말씀을 모두 마칩니다.
여러분의 나아가는 앞길에 어떤 어려움과 방해가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 발자취 따라 끝가지 완주하는 우리 만나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더 2023년도 주님 오신 날을 감사하고 경배드리면서....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주신 말씀은 살전 5:16-18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