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김영길
앵두나무 우물가에
식이 할배 구순생신(아흔 살 생일) 날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 호텔에서 생신 축하 잔치를 마쳤습니다. 가까이 사는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은 할아버지 집에서 자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식이 할아버지는 연세에 비해 건강한 편이라는 것과 온가족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거실과 큰 방에는 잔치 뒤풀이 행사로 왁자지껄 합니다. 작은 방에는 할아버지와 증손자가 함께 자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팔을 베고 누운 초등학교 3학년인 철이가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며 무언가 물어보고 싶다는 눈치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두 손을 잡고서
“철이가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구나. 그렇지?”
“와아, 할아버지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으시나 봐요. 어떻게 제 마음을 알았어요?”
“응, 할아버지니까 손자 마음을 아는 거야. 그래, 뭔데 말 해 보아라.”
“예, 할아버지. ‘앵두나무 우물가’가 뭐 예요?”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못 참는 손자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외의 질문에 당황하시면서
“뭐라고, ‘앵두나무 우물가’ 라고 했나?”
“예, 할아버지. 우리 집 이웃에 사는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계시는 데 동네를 걸어 다니시면서 ‘앵두나무 우물가에---.’라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응, 그랬구나. 그래 잘 됐다. 오늘 밤은 ‘우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네 궁금증도 풀고 하자구나.”
“예, 좋아요 할아버지.”
“우물은 ‘샘’이라고도 하지. 요즘은 먹는 물을 수도꼭지만 틀면 펑펑 쏟아져 나오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옛날 할아버지들 어린 시절에는 먹는 물을 수도가 아닌 ‘우물’에서 길러다가 먹었단다.”
“예에, 그랬어요.”
철이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열심히 듣습니다. 할아버지를 빤히 처다 보면서
“할아버지, 우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 주세요.”
“그래, 그렇게 하자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먹고 살 양식이 있어야 하고, 살 집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먹을 물이 꼭 있어야하지. 그래서 사람 사는 마을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었지. 어쩌면 우물이 있는 곳에 마을이 생겼다고 해도 좋을 거야.”
“그건 그렇지요. 먹을 물이 없으면 당연히 사람이 살 수 없지요”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라난 마을도 스무집 정도가 사는 작은 농촌 마을 이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우물이 딱 하나 있었단다,”
“우물 하나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을 먹고 살았다고요?”
“그래, 맞아. 마을 아래쪽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향나무와 앵두나무가 심겨져 있고, 사철 지하수가 펑펑 솟아 나오는 우물이 있었단다. 물의 양이 많아서 마을 사람들이 먹고도 남는 물이 넘쳐 흘러서 우물이 논농사를 짓는데도 쓰였단다.”
“우물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금해요?”
“우물은 물의 깊이에 따라 바가지로 직접 물을 퍼서 쓰는 우물과 물이 깊어서 두래박이라고 하는 긴 끈을 달아서 물을 퍼 올리는 우물이 있고, ‘옹달샘’이라고 하는 작은 우물 등이 있단다. 집집마다 부엌에는 우물물을 퍼 와서 담아두고 쓰는 ‘물두멍’이라고 부르는 큰 물통이 있고, 물을 퍼서 나르는 데 쓰는 ‘물동이’가 있었단다. 물은 대개 여자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퍼 오지만 부잣집에서는 ‘물지개’로 남자 머슴들이 퍼 오는 경우도 있었단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우물을 썼으니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겠어요.”
“맞아. 우물가에는 물을 길러 온 어머니나 누나 등 여자들이 항상 모여 들었고, 자연스럽게 이집 저집 소식에다 온갖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곳이기도 하였단다. 이웃 동네 갑돌이와 갑순이가 집을 나가 서울로 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등 온갖 소문이 우물가에서 퍼졌단다. ‘앵두나무 우물가’라는 노래도말도 이렇게 해서 생겨났단다. 새마을 운동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는 일이 늘어나면서 이 노래가 인기 있는 가요가 되어 온 국민이 사랑하는 노래가 되였단다.”
철이도 조금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꺼덕입니다.
“할아버지가 ‘앵두나무~’ 노래 한번 불러 볼까?”
“할아버지도 그 노래 아시나요?”
“알고 말고, 할아버지 모르는 게 있나. 한번 불러 볼게.”
할아버지는 손자 엉덩이를 반주삼아 살살 두드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도망갔다네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맞아요, 이 노래. 할아버지 노래도 참 잘 부르신다.”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인터넷, 손전화 등을 통해 새로운 소식을 쉽게 전해 듣곤 하지만 옛날에는 이런 것 들이 없었으니 남자들은 사랑방에서, 여자들은 우물가나 빨래터에서 소식을 주고 받았단다.
이렇게 우물이 사람 살아가는데 중요한 곳이였으니 우물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단다.
정월 보름날(음력 1월 15일)은 겨울이 지나가고 새로이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명절이기도 한데 이날 ‘우물물을 제일 먼저 길러오는 집에는 행운이 온다’는 전설이 있어서 온 동네 아낙네들이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새벽 첯 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가서 먼저 우물물을 퍼 오려고 경쟁을 하는 풍습이 있었단다.
삼진날(3월 3일)은 강남 갔던 재비가 돌아온다는 날이라고 하는데 이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남자들은 우물물을 모두 퍼 내고 우물 대청소를 하고, 동네 길을 정비하며 대청소를 하는 가 하면 여자들은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며 춤추고 노래하는 등으로 동네잔치를 했단다.
집안의 큰 일이 있을 때는 행운을 빌고, 나쁜 일이 있을 때는 액운을 물리치기 위해 저녁에 우물에 가서 촟불을 켜 놓고 기도하거나, 깨끗한 물을 집 장독대에 떠 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등 우물을 신성하게 여기는 풍습 들이 있었단다.
우물물을 집에 퍼 오기가 힘이 들었으니까 자연스레 물물을 아껴 쓰는 풍습들도 있었단다. 그 때는 식구들이 많았어. 집집마다 4~5명의 아이들이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3대가 함께 사니까 세숫물 한 바가지로 아이들 몇 명이 세수를 하고, 세수하고 남은 물도 그냥 버리지 않고 구정물통이라고 하는 쓰고 남은 물을 모으는 통에 모아서 쇠죽(소먹이)을 끓이는 데 썼단다.
농촌에서 우물을 대신해서 수돗물을 쓰기 시작 한 것은 50 여년 전인 1970년대 후반부터였단다.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면서 농어촌 잘 살기운동으로 마을에 상수도 시설을 하기 시작했단다. 동네 우물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물탱크에 모우고, 수도시설을 통해 집안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펑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 단다.
“그럼 그 옛 날 우물 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 때 우물들은 수돗물로 쓰는 우물 외에는 펌프 시설을 하여 흐드렛물로 쓰거나 아예 없애버리거나 하였단다.”
“할아버지, ‘앵두나무 우물가’에 대한 의문을 깨끗이 풀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세대들의 어린 시절 풍습까지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 우리 손자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라. 할아버지가 해결 해 줄 터이니까.”
“예,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손자는 할아버지 품속으로 파고들어 안깁니다.
“이제 그만 잘까?”
“예에,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손자는 행복한 꿈나라로 들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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