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가만히 귀 대어보면 나처럼 울고 있다
닿으려면 멀어지는 저 물결 파장波長 따라
징-지징 무쇠 소리로 아버지가 울고 있다
밤무대 여가수처럼 목이 쉰 어머니가
밤마다 부두에 나와 노래를 하시는지
버텨 온 아랫도리가 흠뻑 다 젖었다
등대섬을 찾아서
가야 할 길이라면 함께 가자 하신 그날
등대를 찾았다며 하얀 춤을 추신 엄마
내 생의 등대가 되어
지금껏 반짝인다
단 한 번 간 곳인데 기억은 선명해져
이역의 깊은 물질 소득 없는 날 많아도
그날 그 파도 소리 때문에
나는 나를 울지 못한다
2009년 쯤 여름 갑자기 등대를 촬영하겠다며 그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미국 메인주의 스코히건회화조각학교에 입주작가로 있을 때 작가 몇 명과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화를 소개해 주었다. 이른 새벽 등대 근처를 지나게 되었는데 등대가 소리를 내면서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가만히 귀를 대어 보았다고 한다. 소리에 의한 떨림이 애절하게 전해져 와 어쩌면 그 소리가 부모님이 계시는 한국의 바닷가까지 연결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그녀와 함께 남해안 일대의 등대를 찾아 나섰다. 제일 먼저 찾아 간 곳이 경남 통영에 있는 소매물도 등대였다. 통영시에서 한 시간쯤 배를 타고 들어간 섬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청정지역이었다. 민박을 하면서 물때를 기다렸다. 물때에 맞춰 등대로 건너가 남편과 나는 하얀 등대 아래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그녀는 랜즈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열심히 촬영을 하였다.
소매물도에서 촬영한 등대를 이리저리 편집을 해 보던 그녀는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른 등대를 찾아보자고 했다. 다시 여러 장소를 물색하던 중 우리가 살고 있는 경남 창원시 진해 바다에 마음에 드는 등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안골포의 빨간 등대 밑에서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구성지게 부르며 춤을 추었다. 1절과 2절 가사를 음미하며 첫 발령을 받아 섬 아이들을 가르쳤던 그때의 모습으로 흥얼흥얼 오래오래 춤을 추었다. 우리는 다시 수도를 찾아 하얀 등대를 발견하였다. 남편은 하얀 등대 밑에서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를 느릿느릿
목청껏 불렀다. 누구를 그리워 하는지 손짓을 해 가며 노래하는 모습이 애절하기까지 했다. 파란 옷이 하얀 등대와 참 잘 어울렸다. 커다란 화물선의 갑판 위에서 아버지와 등대를 촬영하던 그녀의 눈과 손이 잠시 흔들렸다.
집채 만한 화물선이 지나가자 바다는 크게 출렁였다. 작은 낚싯배가 잠겼다가 다시 살아 나고 잽싸게 스피드 보트도 지나갔다. 갈매기가 여유롭게 노니는 하늘 아래 커다란 크루즈선도 떠 있다. 카메라의 렌즈 속은 두 남녀의 그리움은 물론 만휘군상이 함께 하고 있는 커다란 우주였다.
그녀의 ‘Lighthouse(등대)’ 비디오 작품은 2011년 가버너스아일랜드(Governors island)에서 열리는 특별전에 초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