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과 문자 (신명기 4:12~14)
음성통화/문자 어느것 많이함? 일상대화는 통화. 주소,금액은 문자가 편함. 정확성을 기할 때는 문자화.
12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 처음엔 음성으로 말씀
13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 말씀도 하시고 기록으로도
하나님 살아계심 원하시는 시간에 말씀 가능.
사람은 항상 말할 수 없다. 문서화. 음성은 휘발성. 그래서 문서를 좋아한다. 그러나 기록된 문자로 하나님 만날 수 있음?
애굽적 환경에 둘러싸기 위해 문자를 주심
항상 말씀할 수 있는 분이 기록된 문자만 주시고 침묵.
유대인 모세오경 시편 외움. 역사 가운데 늘 책이 있었다. 문자를 읽고 듣고 암송한 사람들이 예수 죽임 - 음성이 더 힘이 있다
문자 letter 우리를 죽인다. 아심에도 돌판에 새겨주심. 히브리어? 모세가 기록했다는 창세기.. 히브리어 띄어쓰기 없음 혜화동 교회- ㅎㅎㄷㄱㅎ 기록된 문자도 해독하기 힘들다.
사람들은 확실한 것 좋아한다. 말로 떠벌리고 사라짐- 일시적.
기록된 문자대로 사는 것 기뻐하신다고 생각. 그러나 하나님 목적은 지키라는 것 아님
1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가 거기로 건너가 받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듣고 지키라고 한 것이 확실.
죄인 만들기 위해 주신 것. 이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기 때문.
애굽의 환경으로 우리를 끌고가신다.
창경궁. 임금 뒤 다섯 개 그림. 왕이 있다는 표시.
성도가 있는 곳은 항상 애굽이라는 배경을 설치. 왜냐하면 그 애굽이라는 데서 이스라엘이 노비. 하나님이 구원.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증명하시기 위해 항상 애굽이라는 배경이 깔린다.
전철 잡상인. 매일 잉크가 묻어야.
성도는 항상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져야 한다.
이 말씀을 대하고 나오는 가장 큰 오해 이제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이제부터 정결하게 살아야 한다.
잉크 묻은 셔츠 희게 되었다면 -셔츠가 이 흰 것을 유지해야겠다 생각하면 그 다음 전철칸에서 세제를 팔 수 없다. 그런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순결성을 보존하기 위함 아니다.
정결함을 위해서다 - 성화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어린양의 속죄 능력 증거 도구로 선발된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 성도.
따라서 우리 성도는 나의 정결함과 깨끗함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 아니다 우리는 속편하게 더러워질 수 있다. 어떤 법도를 어겨도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이 입혀지기 때문에 그 피를 믿는 믿음 안에서 마음껏 망가질 수 있다. 예능 배우.
나이를 50먹고 60 먹어도 사람 성격 안바뀐다. 예수 믿고 목사 되었으면... 65세 먹은 목사님들 엄청나게 싸운다. 목사님들끼리의 정교한 논리 싸움, 증거 남기려고 녹화, 서로 고발, 법정 변호... 서로 사랑합시다 말씀하고 나서.
어떠한 죄성을 펼친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피는 당신들의 모든 죄를 덮고야 만다. 그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통해 예수의 피를 증거하면 감사한데 돌아가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본인은 싸우면서.
사람들은 기록된 문자를 갖고 오해한다. 이 문자대로 살라고 하시는구나 낼름 취한다. 갖고 갔더니 그 문자가 자기들을 죽이는 것. 가지고 간 그 문자대로 살지 못하니까 죽어 마땅하다. 자기들의 죽음을 선포하는 문자였다는 것을 뒤늦게 아는 사람들.. 못듣는 사람들은 죽을때까지 문자와 상대. 영원히 하나님 음성을 못듣는다. 문자 자체가 음성으로 바뀌는 역사가 있어야 - 문자의 세계에서 건져내시는 것. 그렇지 못하면 내가 주체가 돼서 문자를 뽑아낸다. qt 내가 주체고 문자는 나침반에 불과.
평생 문자에 매여 상당한 위치 어느날 다메섹에서 하늘에서 음성 들렸다. 사울아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처음으로 사도바울은 문자 세계에 충성한 삶이 사실은 음성세계에 살아서 말씀하시는 그 분을 박해 핍박하는 삶임을 알게 된다.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 우리 모두를 애굽적 환경에. 바울- 기록된 모든 문자의 세계는 우리에게 애굽의 세계를 덮어씌우는 것이다. 갈3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애굽에서 우리는 종. 우리는 기록된 말씀으로 보자면 다 죄인. 누구든지 너의 오른뺨 치거든 왼뺨 돌려대라. 네 눈이 범죄하거든 네 눈을 뽑으라. 그렇게 자르고 뽑다보면 살아남는 사람 아무도 없다. 간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법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 세상은 전부 눈 뽑히고 이빠진 사람들 뿐일 것. 하나님의 법은 우리 모두가 죄 아래 갇혀진 죄의 노비라는 사실로 우리를 가두기 위해 성경이 문자적으로 주어진 것. 그대로 적용하다보면 우리 모두가 죄에 갇힌 자들임을 알게 된다.
프랑스 혁명 지도자 수많은 사람을 단두대로 보냈다. 나중에 그 사람도 단두대로 감.
문자는 죽이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죄의 종, 애굽적 환경을 덮어씌우는 것. 이스라엘 백성 망하는 이유 이스라엘 광야에서 애굽적 배경 속에 있었다. 기억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 들어간 이후에도 애굽적 종의 상태에서 구원받았음을 잊지 말라고 계명 주신 것.
출20 1~2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원래 십계명은 숫자 없음. 카톨릭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말씀하신 이유.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그 사실을 계속해서 그들에게 나타내기 위해 십계명이 주어진 것. 애굽적 배경 제공해주는 토대. 애굽이라는 땅은 나왔지만 종이라는 본질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항상 계명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죄에 갇힌 자임을 알게 된다. 늘 잉크가 묻는 더러운 와이셔츠처럼 성도는 평생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것을 보게 된다.
성도를 더럽히는 것은 애굽에 대한 기억 뿐 아니라 양심. 화를 내고나서 스스로 부끄러움. 대범하다는 기준을 세워놓고 자기를 책망. 이스라엘도 마찬가지. 항상 애굽에 대한 기억과 율법 규칙이 주는 정죄를 받는다. 흰 셔츠에 잉크 묻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화낼 때 그 자체가 더러워지는 셔츠로 생각. 즉각적으로 더러운 셔츠를 닦아주러 오는 어린양의 피를 바라보자. 문자는 우리를 죽이고 더럽게 한다. 문자대로 적혀진 모든 말씀들은 우리를 죄 아래 갇힌 자라는 걸 알게 한다.
대한민국 70% 범법자. 경범죄에 다 걸린다. 기록된 문자의 법은 항상 우리를 죄인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전략. 우리 모두를 죄에 가둔 상태에서 모든 죄를 예수의 피로 구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위대함을 증거하기 위해 택함받은. 전철 세제파는 아저씨 손에 들린 셔츠. 독자적으로 의로워야겠다 그 생각 갖지 말자. 어떤 죄를 지어도 끝없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 인생 통해 예수 은혜 나타낸다.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 삶의 기반을 바꿔준다. 예전 우리 삶의 기반은 내 의로움이 주가 되는 삶. 내 의로움으로 내가 받은 구원 은총 지켜나가는 삶. 은혜를 쏟지 마라. 집에 가다가 버스 안오면 은혜 쏟고. 가자마자 남편이 바가지.. 은혜 다 엎어짐. 엎어진 것? 그럴지라도 다시 우리에게 예수 피 채우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 은혜. 그 예수의 은혜가 우리를 따라온다. 그 은혜의 위대함을 증거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이 성도, 이스라엘. 독자적 거룩함 추구하는 이스라엘은 망함... 우리가 은혜를 쏟든 말든 상관없다. 주님은 또다시 새로운 은혜를 채우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
우리가 항상 주 음성 듣기 원합니다. 문자 소유 적당한 성 쌓고 숨어지내기 원하지만 우리 주님은 음성으로 찾아오셔서 우리가 쌓은 문자 세계 허무시고 그리스도 홀로 완성하신 넉넉한 세계에 살게 하시는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