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화답하는 자유를 향한 외침
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독특한 한문체의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라는 기미독립선언문의 첫 문장을 만났을 때, 그것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함성이었고, 어린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마그나 카르타나 대헌장과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인류 민주주의의 이정표라지만, 우리에게 이 기미 독립선언서는 그보다 더 찬란한 '생명을 가진 거룩한 인간의 절규'이자 '도덕적 완성'의 고백이었다.
최근 제11대 집행부와 함께 떠난 문학기행은 그 시절 줄줄 외웠던 '공약삼장'의 정신이 지금 우리 삶의 토양 어디쯤에 뿌리 내리고 있는지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독립선언서의 현장인 아우네 장터에 서서 다시금 그 문장들을 곱씹어본다. 필자가 그토록 반했던 그 문장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비겁하지 않은 당당함'에 있다. 선언서는 일본의 무신(無信)을 탓하거나 과거의 원한에 매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의 건설"에 집중하며, 우리 스스로가 만물의 영장으로서 누려야 할 천부인권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타인을 파괴함으로써 얻는 승리가 아니라, 스스로를 바로 세움으로써 얻는 자주(自主).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가장 격조 높은 대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선언서의 한 대목처럼, 당시 이천만 민중은 저마다 '방촌(方寸)의 칼날'을 품었다. 그 칼은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흉기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양심을 깨우고, 굴종의 사슬을 끊어내며, 인간다운 존엄을 지켜내겠다는 서슬 퍼런 '의지'였다. 문학기행 내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러한 칼날이 있는가를 물으면서 혼자 걸었다.
“도대체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말은 어떤 삶을 두고 하는 말일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거기에 더하여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하여 세계처처에서 무참한 살육이 자행되고 있는 이 시대의 기운은 또 무엇으로 설명되는지?”를 고민 하면서 걸었다. 작가로서 일상의 안일함에 무뎌지지 않고, 정의와 인도(人道)라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나 자신을 끊임없이 벼려내고 있는지 되물으면서 유관순 기념관을 걸었다.
선열들이 남긴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위력의 시대'를 '도의의 시대'로 바꾸어내는 일이다. 타인을 억누르고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삶이 아니라, 각 개인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달시키고 서로의 생존과 존엄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언서가 꿈꾸었던 '신천지(新天地)'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신세계를 만드는 일은 총칼을 들고 일어나는 일로서는 불가능하다. “검으로 일어난 자는 검으로 망한다.” 이건 불멸의 진리다. 나는 인류평화를 위하는 지름길이 전 국민이 수필가가 되는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어설픈 자기 주장을 목청 높이며 외칠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사색하고 더 깊이 사유하고 더 깊이 고민하면서 전 인류가 수필쓰기에 골몰할 때 지구촌에 평화가 온다고 믿는다. 힘을 쥐면 힘이 없는 것을 때려잡고 싶어진다. 생각은 사람의 목을 베고, 사람을 감옥에 가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 내가 내 운명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 그 어떤 이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고 싶다는 생각, 그 어떤 기아나 공포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충족시켜 주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남은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선언서의 마지막 구절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신춘(新春)이 세계에 와서 만물의 회생을 재촉하는도다."
100여 년 전의 그 봄이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봄으로 다가와서 속삭인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광명정대한 길로 나아가라고.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평화와 자유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향해서 칼날 같은 양심을 벼리고 벼렸던 선열들의 뜨거운 숨결이 모여 이룬 기적의 정신이 삼일운동의 정신인 것이다.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오늘을 성실히 일궈가며, 이웃을 더 사랑하는 것. 할 수만 있다면 더 아름다운 글을 써내는 그것이야말로 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화답이자 우리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수필은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글쓰기이기에 타인을 향한 칼날을 거두게 한다. 봄은 만물이 손에 손마다 태극기를 들고 자주 독립을 외치는 계절이다. 독립 기념관을 떠나오며 만세 운동이 혹한 겨울이 아니고 만물이 소생하는 3월 1일에 일어 난 것에 더더욱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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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범몽. <<꼴찌로 달리기>>, <<생각 속에 갇힌 인간>>. 대구수필가협회 제5대 사무국장(역), 제10대 회장(역)
첫댓글 이번 문학 기행에서 '유관순 기념관'과 '독립 기념관'을
돌아보며 3.1운동 정신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언서의 마지막 구절을 저도 되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