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삼국지 [3]
주몽, 고구려를 건국하다 ③
소서노는 아름다웠으며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주몽 일행은 계속 남하해서 수일 만에 졸본의 모둔곡(毛屯谷)에 도착했다.
사냥이 한창인지 몰이꾼의 외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일행은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덤불 속에서 사슴 세 마리가 뛰어나왔다. 주몽은 활을 들어 연거푸 세 대의 화살을 날렸다.
날아간 화살은 정확하게 사슴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주몽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신기(神技)였다.
한 무리의 사람이 당도하더니 쓰러진 사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사슴마다 심장에 화살이 박혀 있는 걸 보고 놀라서 혀를 내둘렀다.
무리 중 삼베옷을 입은 자가 나서더니 주몽 일행에게 공손히 물었다.
“귀인들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보아하니 범인(凡人)은 아닌 듯싶습니다만….”오이가 나섰다. “동부여에서 왔습니다. 이분은 주몽 왕자십니다.”
모둔곡 사람들은 동부여의 왕자라는 얘기를 듣고 모두 그 자리에 엎드렸다.
삼베옷이 주몽에게 아뢰었다. “소인은 이곳의 족장인 재사(再思)라 합니다.
무슨 일로 졸본에 오셨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쉬었다 가심이 어떨는지요.”
주몽 일행은 이레 동안이나 변변히 먹지 못해서 사람도 말도 몹시 지쳐 있었다.
주몽은 흔쾌히 재사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재사의 집은 야트막한 산 아래 있었다.
넓은 마당이 둘러싼 본채와 별채는 장정 수십 명이 침식해도 충분할 정도로 컸다. 미리 전갈을 받은 집안 식솔들은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뜨거운 물로 목욕을 마친 주몽 일행은 재사가 내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음식상 앞에 앉았다. 상석에는 주몽과 수하들이 앉고, 맞은편에는 재사와 족인(族人)이 자리 잡았다.
재사가 주몽에게 공손히 술을 따랐다.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집채만 한 태양이 우리 집 마당에 떨어졌습니다.
아마도 왕자님께서 우리 집에 왕림하시리라는 하늘의 계시였나 봅니다.”
주몽은 조용히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족장 옆에 앉은 사내들을 살폈다.
“옆에 계신 분들도 범상치 않으시구려.”“여기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무골(武骨)이라 하옵고, 초록 옷은 묵거(默居)라 합니다. 이웃 마을의 족장들인데, 왕자님께서 납시셨다는 얘기를 듣고 이리 몰려왔습니다.”
주몽은 족장들에게 술을 한 잔씩 따라주며 반가움을 표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재사가 운을 띄운다. “졸본에는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때가 되면 북쪽에서 활을 잘 쏘는 귀인이 내려와 이곳을 도읍으로 삼고, 새로이 나라를 세워 천지 사방에 그 위엄을 떨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왕자님을 뵙고 보니, 그 귀인을 이제야 만난 듯하옵니다.” 무골도 옆에서 거들었다.
“이곳은 비류수(沸流水)를 끼고 있어 토지가 비옥하고 백성이 선량하므로 능히 큰 뜻을 펼칠 만합니다. 왕자님께서 뜻한 바가 있으시다면 저희가 미력하나마 돕겠습니다.”
주몽에게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내 하늘의 명을 받아 새로이 나라의 터전을 닦으려 하는데, 마침 세 사람의 현인(賢人)을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소.” 주몽은 이들을 거두는 의미로 성(姓)을 하사했다.
재사에게는 극(克), 무골에게는 중실(仲室), 묵거에게는 소실(小室)이 주어졌다.
이로써 이들은 한 마을의 족장이 아닌 천손 주몽의 가신(家臣)으로 거듭났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술잔을 기울이며 앞날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
이튿날 아침, 주몽은 세 족장을 불렀다. “졸본왕은 어떤 분이시오?” 주몽의 물음에 재사가 대답했다.
“그분은 동부여 출신으로 젊을 때 갈사수(曷思水) 일대를 다니면서 소금을 팔아 수만금을 벌었다 합니다.
졸본 최고의 세력가인 소노가(召奴家)의 딸과 결혼하여, 그 힘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슬하에 아들 없이 딸만 셋을 두었기 때문에, 늘 후사를 걱정하고 있다 합니다. 지금 다른 딸들은 모두 출가했고, 남편을 잃은 둘째만 궁에 머물고 있습니다.”“졸본 주변의 형세는 어떠하오?”
“이곳에서 비류수를 따라 몇백 리를 가면 송양(松讓)이 다스리는 비류국(沸流國)이 있습니다.
그는 야심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비류국이 졸본의 속국이었는데, 그가 갖은 꾀로 땅을 넓히고 백성을 끌어모아 이제는 졸본을 넘볼 정도로 기세가 대단합니다.
” 협보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무릎을 쳤다. “연타발왕이 동족(同族)인 데다 후사가 없다는 것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입니다.
지금 당장 졸본성으로 가서 왕을 뵙는 게 좋겠습니다.” 주몽은 잠시 생각하더니 재사에게 부탁했다.
“족장께서 수고 좀 해 주시구려. 졸본왕께 가서 동부여 금와왕의 아들인 주몽이 찾아뵙고 싶어 한다고 전해 주시오.”
이튿날, 재사는 기쁜 마음으로 졸본왕을 찾아갔다.
주몽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연타발왕은 내심 반가웠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는 알현을 허락하고, 재사가 떠나자 궁인들에게 주몽을 맞이할 준비를 시켰다. 주몽이 수하들을 거느리고 정전(正殿)에 들어섰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 쏠렸다.
당당하고 위엄 있는 풍모가 사람들을 고개 숙이게 했다. 연타발이 주몽을 유심히 뜯어보며 말했다.
“그대는 자신이 동부여의 왕자라고 하지만, 그 말을 어찌 믿겠소. 그걸 증명할 신표라도 가지고 있소?”
주몽이 오이에게 눈짓을 했다. 오이는 등짐에서 옥채찍을 꺼냈다.
시종을 통해 이를 받은 연타발은 한참 동안 살폈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주몽에게 큰절을 했다. 주위에 시립한 신하들은 왕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크게 놀랐다.
연타발은 주위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는 동부여 왕실의 신물이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은인의 자손을 뵈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과인이 북부여에 있을 때 왕자의 조부와 부친께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연타발왕은 벅차오르는 감회를 주체하지 못했다. 주몽은 국왕의 열렬한 반응에 얼떨떨했다.
“좌하(座下)께서 이 몸을 이토록 환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연타발은 좌우에 명해서 연회를 마련하게 했다. 모두가 연회장에 좌정하자 악공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연타발은 주몽 일행에게 연신 술과 음식을 권했다.
그들도 사양하지 않고 흔쾌히 먹고 마셨다. 흥취가 돋자 연타발은 둘째 딸 소서노(召西奴)를 불러 주몽에게 술을 따르게 했다. 그녀는 아름다웠으며,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연타발은 술을 쭉 들이켠 후, 주몽과 소서노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과인에게는 딸만 셋이 있습니다. 모두 출가시켰는데, 이 아이는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는 바람에 돌아와 있소이다.” 주몽이 화답한다.
“따님이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겉치레 인사가 아니었다. 주몽의 눈은 소서노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둘 사이의 분위기를 살피던 왕이 물었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지요?”“스물하나입니다.” 연타발은 적이 당황했다. 왕자의 나이가 생각보다 너무 어려서였다.
그는 주몽을 처음 보는 순간 남다른 기품에 반했다.
신분까지 고려하면 자신의 후계자로 손색이 없었다. 다만, 그를 왕좌에 앉히려면 소노씨 집안의 반발을 무마시켜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소서노와 혼인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둘을 맺어 주기에는 소서노의 나이가 많았다. 그녀는 왕자보다 여덟 살이나 위인 스물아홉이었다.
연타발이 머뭇거리자, 그의 내심을 눈치챈 재사가 슬쩍 끼어들었다.
“나이가 무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다 하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연타발은 두 남녀를 번갈아 살폈다. 소서노는 말없이 술을 따랐고, 주몽 역시 술을 받아 마실 뿐이었다.
이때, 재사가 연타발에게 다가가 나직이 꾀를 일러 주었다.
“오늘 왕자께서 따르는 술을 마다치 않으시니 분명 크게 취하실 겁니다. 술에 취해 쓰러지면 침실로 옮기십시오. 그리고 둘째 공주님을 은밀히 왕자의 침실로 들여보내십시오.
그러면 만사가 형통할 겁니다.” 연타발은 재사의 계책을 듣고 속으로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