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캔디 캔디’에 속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최근까지 ‘캔디 캔디’가 캔디와 안소니, 그리고 캔디와 테리우스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 그러면서 여인으로 성장해 가는 의지의 여인 캔디…뭐 그런 이야기들로 기억해 왔었다. 그러나 오래 씹어야 맛이 나는 딱딱한 마른안주처럼 캔디의 이야기는 나이 상당히 먹어 버린 지금에서야 다시금 그 이야기를 근접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이야기냐면은 ‘캔디 캔디’는 위에 열거한 저 사랑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캔디와 알버트의 사랑 이야기’라고 보는 게 맞다는 소리이다 실제 주변 지인들과 캔디 이야기를 해보면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것을 캔디와 테리우스의 사랑이야기로 많이들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이 왜 잘못된 인식이냐는 차근차근 풀어 내어 보겠다 기본적으로 캔디의 이야기는 ‘키다리 아저씨’에 근거한다고 나는 본다 가난한 고아 소녀가 익명의 서포터로부터 따스한 지원을 받으며 훌륭하고 자라나고 또 결국은 그 정체모를 따스한 손길의 주인공 키다리 아저씨 ‘저비스 캔덜튼’과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바로 ‘키다리 아저씨’이다 그렇다면 캔디의 이야기를 보자 가난한 고아 소녀 캔디는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씩씩한 소녀 살아 가면서 무수한 장애가 있지만 그때마다 용기를 주는 존재, 동산위의 왕자님, 그리고 안드레이가의 큰할아버지, 그리고 캔디의 주변에 항상 머물면서 그녀를 늘 지켜주던 알버트 아저씨. 이 모두는 동일인물인 것이다. 캔디가 첫사랑 안소니를 만났을 때 연상했던 것은 동산위의 왕자님이었으며 테리우스를 만났을 때는 안소니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연상과 기억들의 원류는 동산 위의 왕자님, 즉 알버트 아저씨였다는 것이다 안소니를 잃었을 때도 가장 가까이서 캔디를 위로해 주었던 인물은 알버트였으며 테리우스와 눈물조차 짓지 못하는 이별을 했을 때도 알버트는 캔디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토닥여 주었다(당시에는 알버트와 캔디가 동거 아닌 동거를 할 즈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포니의 집으로 돌아 간 캔디를 넓은 가슴으로 안아 주었던 캔디의 ‘진짜 동산 위의 왕자님’은 역시 ‘알버트’였다. 그리고는 기억하는가 ‘캔디 캔디’는 막을 내렸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캔디의 이야기는 캔디와 알버트의 이야기라고 익히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기억하고픈 것만 기억한다고 했던가 대부분의 우리들은(캔디를 본) 기억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계단에서의 캔디와 테리우스의 이별 장면을 연상함과 동시에 이별의 아픔을 겪은 캔디, 3류 극장에서 술에 만취한 체 슬픈 연기를 하던 테리우스, 그 것을 바라보며 멀리서 눈물 삼키던 캔디. 이렇게 캔디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애써들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기억의 왜곡’인 것이다 그러나 기실 그 왜곡이란 것은 자기자신을 향한, 혹은 위한 왜곡이었음을...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캔디 캔디’의 역사를 살펴 보자 ‘캔디 캔디’를 단순히 순정만화란 장르로만 이해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란 생각부터 우선 하게 된다. 그것은 그 시대에 최초 캔디를 보고 자라난 세대뿐 아니라 수차례 재방영 된 캔디를 보고 자라난 세대 마찬가지, 캔디는 그야말로 하나의 사회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는 1977년 MBC TV에서 '들장미 소녀 캔디'란 제목으로 방영되기 시작하여 2년이 넘는 방영 기간 동안 인기를 누렸다. 캔디의 인기는 이어지는 80년대에 순정 만화가 부흥하게 되는 데에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 시대엔 가히 순정만화의 홍수라고해도 좋을만큼 다작이 융성했으며 인기 또한 하늘을 찔렀다. 예를 들면 ‘베르사이유의 장미’, ‘올훼스의 창’, ‘내사랑 마리벨’, 약간 다른 장르지만 ‘유리가면’등등… 작품들의 프러시저를 잘 모른다해도 이 모든 것이 나는 캔디의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군사정권의 어두웠던 시절, 모든 것이 투명하지 못하고 제약이 그렇게 많은 그 시절에 어떻게 이 정도의 개방적인 이야기가 안방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영화로 나올 수 있었나 하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보지 않기 어렵다. 캔디의 이야기는 우리 나이로 불과 중학생 수준의 15세 전후에 시작되어 18세정도에 끝나는 러브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지금에 한다 하더라도 그리 시대에 뒤처지는 세대 수준은 아닌 것이다 이것도 우민화의 하나였을까...? 각설하고 원작인 만화 ‘캔디 캔디’와 애니로 만들어진 '들장미 소녀 캔디'는 다소 다른 경향을 보이는데 그림을 보노라면 그 특징을 한번에 알 수 있다 ‘크린’이라는 너구리를 매개로 애니 캔디는 좀 더 어린 세대들을 위한 명랑한 배경을 만들기에 힘 쏟은 반면 만화 ‘캔디 캔디’는 보다 높은 연령층, 10대나 혹은 그 이상의 팬들을 위한 성숙한 감성을 위주로 진행 됨을 알 수가 있다. 허나 그 기본 틀이 달라진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 캐랙터를 보노라면 그 같은 특징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 이것이 애니 '들장미 소녀 캔디'에서 테리우스와의 첫만남. 동글동글하게 생긴 두사람이다
*이것이 만화 '캔디 캔디'에서의 첫만남
캔디 속에는 무척 많은 캐랙터들이 등장한다 당시에 소녀들에게 무수히 화자 되었던 이름들을 꼽으라면
* 안소니와의 첫만남
안소니 솜사탕 같은 느낌을 주는 귀공자 캔디의 첫사랑이자 캔디가 동산 위의 왕자님이라고 착각했던 소년 캔디를 만나고 햄버거란 걸 처음 먹어볼 정도로 귀하게 자란 아드레이가의 귀족소년이다 불의의 낙마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후 캔디는 말을 탄다는 자체에 컴플렉스를 갖게 된다
* 불량소년 테리우스, 그는 캔디를 기억하고 있었다
테리우스 불량기 다분한 소년 영국인인 권위적인 아버지와 미국인인 배우 어머니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반항아 약관의 나이로 학교밖 패싸움에 자주 가담하고 짝다리 좀 짚는, 한마디로 좀 치는 클래스의 소년 캔디의 매력을 알고 나서 진정한 남자로 자라기 시작한다 긴머리 나풀대며 선창에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여직껏 많은 소녀들에게 테리우스 신드롬을 안겨 주고 있다
* 캔디의 키다리 아저씨 알버트
알버트 15세 되던 해에 포니의 집 동산 위에서 백파이프를 불다가 7세가 된 캔디를 처음 만난다 휘장을 하나 남기고 떠난 그는, 이후로 캔디에겐 동산 위의 왕자님으로 불리게 된다 캔디를 아드레이가로 입양하는 것도 그녀가 곳곳에서 눈믈 지을때 항상 돌봐 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재력과 지력 모든 걸 겸비한 그가 캔디와 채 10살 차이가 안 난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결혼 적령기의 젊은 커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 너무도 쾌활한, 안소니의 사촌형인 스테아
스테아 이 인물을 언급 안 할수가 없다 최초 캔디를 좋아했으나 결국 캔디의 친구 패티와 연인이 되는 현실 적응형의 캐랙터 그러나 항상 캔디의 든든한 스폰서가 되기를 주저 하지 않는 유쾌한 엉터리 발명가 소년 그의 비행기가 지중해로 추락할 때 많은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가슴도 내려 앉았다
* 깔끔쟁이 아치, 늘 캔디를 뒤에서만 흠모하는 소년
아치 표현을 잘 안하고 사는 스테아의 친동생 캔디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지만 테리우스로 인해 쓴잔을 마시고 그와는 항상 연적 관계로서의 경쟁심을 느낀다 애니와 연인이 되고 나서도 좀체 캔디를 향한 마음을 거두지 못한다
* 스잔나...테리우스를 떠나게 만드는 여인, 그러나 그녀 또한 비운의 여자다
스잔나 캔디와 테리우스를 갈라 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캔디의 연적 불구가 되는 비운의 사건을 겪은 후 테리우스를 멀리하려 하지만 테리우스는 그녀를 떠나지 못한다
그외에도 항상 울지 않는다며 늘 질질 짜던 소녀 캔디의 이야기 속엔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포니의 집 인물들 아드레이가의 인물들 그중에서 니일과 이라이자 특히 니일은 종장에는 캔디를 사랑하게 되는 기묘한 상황을 연출하는데 그가 철들기 전까지는 사사건건 캔디를 온갖 유치한 방법으로 괴롭혔기에 더욱 재미가 있는 부분이다 또한 학교에서의 인물들 병원에서의 인물들
캔디는 미국에서 영국, 다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여행기이기도 하다 요즘 같으면 부모의 동행 없이 가능할 거 같지는 않은 장면이다
고아로 자라난 캔디는 씩씩한 심성을 가진 소녀 우연히 동산 위의 왕자님을 만나고 영원히 그를 잊지 못할 휘장 하나를 줍는다
*소년 알버트와 꼬마 캔디의 첫 조우
단짝인 애니가 부잣집에 양녀로 들어 가면서 인생의 첫시련을 맞고 머잖아 명문 아드레이가의 하녀로 들어 가는데 우여곡절 끝에 그 집안의 양녀로 입적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알버트의 힘이다 그 곳에서 만난 안소니와 사랑을 하게 되고 안소니는 낙마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 아름다운 소년 안소니의 죽음
이것이 캔디의 두번째 시련이다 그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 나지 못한 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그 뱃전에서 운명의 남자 테리우스와 조우를 한다
* 운명의 남자 테리우스를 만나다
그와의 사랑이 여물기도 전에 이라이자의 음모로 캔디는 퇴학 위기를 맞게 되고 테리우스는 그 모두를 뒤집어 쓰고 자퇴서를 낸 후 도미를 감행한다. 어머니의 나라로... 테리우스가 떠난 학교를 캔디도 미련없이 나와 버리고 간호학교로 들어 간다 왈가닥이지만 항상 사랑을 받는 캔디는 어느 덧 간호사의 티가 배어 가고 테리우스는 촉망 받는 젊은 연기인으로 성장해 유명 극단에서 공연을 가지기도 한다 이 둘이 다시 만나게 되는 그 기찻길을 기억하는가 기차는 떠나가고 멀리서 달려 오는 캔디 이를 바라보는 테리우스 테리우스의 독백 "그래 역시 하얀 간호복이 생각처럼 아주 잘 어울려..타잔 주근깨 아가씨..." 엎어져 버린 캔디의 시야 밖으로 기차는 사라지고 그들의 재회는 그렇게 대화 없는 것이 되었는데 그들의 재회를 염원하던 수많은 소년 소녀들의 바램은 그 이후로도 영영 가망 없는 것이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왠지 슬픔같은 것이 느껴진다
* 그 이후로도 그들은 예전의 미소로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이후 스잔나의 사고 그리고 테리우스를 찾은 캔디 계단 위에서 눈물로 맞는 작별 아마도 테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미안해..." 돌아오는 기찻간에서 캔디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캔디는 그렇게 세번째 시련을 맞는다
* 그렇게 차라리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했다
그리고 스테아의 죽음... 스테아가 죽은 것이다 그 순수하고 맑았던 청년, 모든 젊은 이들이 피흘리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자신만 열외인인 듯한 느낌이 싫어 자원입대한 청년 그리고는 지중해에 비행기 파편으로 사라지다 이것은 캔디의 네번째 시련이다 그렇게 더할 바 없이 슬픈 즈음에 진심으로 캔디를 간호해 주는 그 사람 알.버.트. 그리고는 많이들 기억하겠지만 포니의 집으로 돌아간 캔디 그리고 동산 위에서 백파이프를 불던 알버트 그렇게 십여년이 지난 시간에 동산 위의 왕자님과 울보 소녀의 재회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동안 나 자신에 속아왔던 것이며 캔디는 알버트에 안착하였다 다행한 일이다
* 안소니와의 왈츠 * 테리우스와의 왈츠 * 테리우스와의 첫 키스 * 창공에 사라져 간 청년 스테아의 죽음 * 마침내 정체를 드러낸 아드레이 큰아버지, 알버트
'캔디 캔디'가 가지는 의미는 참으로 심장하고 다양하다 당시 만화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거니와 아름다운 소년 소녀의 왈츠신, 그리고 키스신 그리고 운치 있는 풍경들,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은 어느 하이틴 로맨스에도 볼 수 없었던 이국적이고 색다르고 충격적인 이야기였기에 누구나 할 것없이 '캔디캔디'란 이야기와 캔디를 사랑했던 것이다 이제 제법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애니나 만화들은 좀 더 염세적이고 우울한 미래를 이야기 하며 인간이 가진 본성을 캐내는 데는 다소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가공의 로보트나 무협지는 근처도 못 갈 환타지들이 판을 치고 어떨 때는 그야말로 상상력이라고 부르기에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기도 한다
* 소년 알버트와 꼬마 캔디의 첫 만남, 항상 잊지 않고 품고 살았던 그 이름 동산위의 왕자님, 이게 캔디의 진짜 운명이었다
이런 시기에 나는 캔디가 그리워진다 보석같이 맑고 건강하던 소년 소녀의 이야기들이 그리워진다 채팅과 이메일이 없던 시절 소중히 한장의 편지를 밤새워 써가던 그런 시절 그 감성을 때때로 오늘의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을때 나는 캔디를 같이 보는 게 어떠냐고 혹은 보라고 권해 보기라도 하는 게 어떠냐고 말해 주고 싶다 백파이프 소리가 스코틀랜드 민속 악기가 아닌 마치 꿈속의 하프나 신화에 나오는 어떤 소리인 줄 상상했던 한때는 소년이었던 중년남자의 잡담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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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 젊은 날의 초상 원문보기 글쓴이: WishB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