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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대전.충남 최 장수 시 전문 동인지 『새여울』
-50년의 발자취와 그 얼굴들
1. 새여울 출발기 /제1기(1971-1981)
대전 충남지역에서 시문학 동인회의 참여하여 활동하였던 문인은 매우 많다. 현재까지도 어느 동인회에 한 두 개씩 소속되어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는 문인 또한 여러 명이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이 지역에서 현존하는 최장수 시전문지가 새여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직. 간접 시작 활동을 하여온 시인들이 다수임을 알고 있는 문인은 그리 많지 않다. 50년이 넘게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참여하여온 동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끼며 그 발자취를 밟아 거슬러 가보고 직.간접으로 새여울과 인연을 맺었던 얼굴들과 현재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여 앞으로의 새여울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데 일조를 하고자 한다. 물론 연륜을 전혀 무시 할 수는 없지만 이만 내세우려는 고답적인 태도는 아니다.
1960년대에서 1970년으로 들어서면서 산업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고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각종의 문학지 창간이 봇물 터지듯이 일어나지만 대전 충남지역에서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1969년부터 이러한 문화적인 갈증을 어떻게 목 축여 볼까를 사석에서 항시 논의하던 공주교육대학 석초동인 출신 윤석산 김명수 전 민 안홍렬 등은 1970년 8월 여름방학을 틈내어 공주 갑사에서 문학세미나를 열기로 한다. 이의 주선은 尹石山(현재 제주대 교수)시인이 도맡아 하였다. 윤석산 시인의 본가였던 계룡면 중장리와 갑사를 오가며 자작시도 발표하고 작품에 대한 의견도 나누었다 이때 모임에 함께 참여하였던 문인들은 이제 고인이 되신 한성기 박용래 시인 강금종 소설가와 조치원을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장시종 이대영 시인 등이 있었다. 낮에는 갑사 느티나무 그늘 아래 모여 문학을 논의 하였고 밤에는 자작시 발표회와 합평회 짬을 내 횃불을 높이 들고 시냇가에 모두 나아가 민물 새우, 붕어, 쏘가리 ,가재를 양동이에 가득 잡아 막걸리 안주로 삼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모임에서의 틈실한 결실은 시동인지 발간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충분히 오고 갔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후에도 김명수 전 민 안홍렬(삼총사라고 다른 사람들은 일컬음) 은 선배인 윤석산 시인과 수시로 만나 동인지 창간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던 중에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대숲아래서』로 당선한 나태주 시인을 영입하여 함께 문학동인지를 창간하기로 결정하고 나 시인의 허락을 받아 활기찬 첫 출발이 시작하게 된다.
드디어 날씨도 매섭기만 하던 1971년 12월 25일 새여울 창간호가 비매품으로 공주의 한일인쇄소에서 태어났다. 지금 보면 보잘 것 없는 76 쪽의 옾셋판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내놓은 동인 모두 작은 가슴들의 만남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창립동인으로는 윤석산 ,나태주, 이장희, 이관묵, 김설아(김정임),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조한수, 김현기 ,전 민 까지 모두 열 한 명(하나가 겹쳐 둘이 되고 이를 펼쳐서 열하나 라는데 의미를 두었음) 이었고 초대시로 한성기의 『햇살』을 첫머리에 실었다.
햇 살
한 성 기
햇살은 절 가까히
솔밭에까지 와 있다.
지어 입은 누더기
손에 든 念珠의
알알...........
스님은 웃고 있다.
흡사 절 가까히 와 있는
햇살같이
스스로 內部를 도는
피빛 나이테 때문에
웃고 있는
소나무같이
스님은 웃고 있다.
그의 內部에 가득 차 있는
햇살
그것을 나도 가질 수는
없을까.
동인지 명칭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동인의 여러 의견을 개진하다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성기 시인의 제안으로 동인지의 명칭을 『새여울』로 하기로 합의를 하였고 표지화와 장정은 동양화가인 姜信哲 교수가 자진하여 맡아주기로 하였다. 새여울 창간호 머리글로 이제 우리는 여기 『새여울』을 통하여 「가슴에서 치솟아 머리에 살아남는」자세로 얼굴을 닦고 永遠을 향한 거울이 되고자 한다. 우리는 결코 커다란 理念이나 어쩔 수 없는 緣 때문에 출발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뚜렷한 몸짓으로 예쁘게 남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펴낸다.고 하였다. 동인 수록 작품으로는 李璋熙 의 〈겨울국화〉, 金雪娥 의 〈故鄕〉등 동인 모두의 작품 각 3~4편 씩과 산문으로 나의 詩的 所信 / 羅泰柱의 〈가장 非詩的인 가장 詩的인〉, 尹石山의 〈끝없는 摸索〉을 말미에 실었다.
공주문화원에서 열린 새여울 창간 출판기념회에는 서울 대전 공주 등에서 문단의 황제로 불리던 趙演鉉 박사를 비롯하여 金潤成 文德守 林憲道 崔相圭 韓相珏 李昌燮 元鍾隣 趙在勳 등 기라성 같은 선배문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뒷풀이가 공주시내의 이학 식당에서 성대하게 열리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趙演鉉 박사의 골상 봐주기로 흥이 무루익었다. 연장자이신 林憲道 박사부터 나이가 가장 어린 축에 속했던 필자까지 골상 강의를 복채 없이 받았으니. 새여울의 물줄기는 이렇게 뜻 있는 여러 선배문인들의 관심 속에서 세차게 트여나가기 시작하였다.
1972년 9월에 새여울 제2집이 값 300원의 정가를 매겨 서울의 現代詩學社 제작 藝文館 발행으로 출간된다. 제2집부터 姜蘭順 전영관 權善沃이 참여한다. 초대시로는 金潤成의 哀歌 Ⅵ〉와 韓相珏 의〈江邊素描〉를 싣고 동인작품으로는 李寬黙의〈花甁〉金明洙의〈거미줄 틈새로 바깥세상을 보니까〉등 동인마다 5-8 편을 실었다.
제2집 권두언에 우리는 지난 1집과 2집을 통하여 傳統的인 抒情을 노렸고 앞으로는 결코 요란스런 시험을 표방치 않을 작정이나 方法論에서 自由를 얻는데 신경을 쓸 계획이다라고 하였다,
1973년 9월에 나온 3집에는 金菊史(현 김동현 변호사) 尹月老 劉準浩 金墉鉉이 참가하여 동인수는 16명이 된다. 초대시는 文德守의 〈기다리다가〉 朴龍來의 〈나부끼네〉가 실렸다.
기다리다가
文 德 守
어떤 이는
내게 가까이 오면
새까만 벽만 세워 놓고 그 뒤로 숨는다.
어떤 이는
계단 같기도 하고 사다리 같기도 한 것을
내 여윈 어깨에 비스듬히 걸쳐놓고
그 밑에서 한 계단씩 기어오르려고 한다.
어떤 이는
내게 가까이 와서는
날 넓은 강물 저쪽으로 세워 놓고서는
나룻배를 저어 건너오려고 하거나
혼자서 외나무다리 같은 것을 놓으려고 한다.
어떤 이는
내게 손을 내밀다간
사라진 그 자리엔 꽃만 한송이 피어
가을바람에 흔들거리고만 있다.
이러나 나는 언제나 혼자서
기다리다 기다리다 돌이나 되는 것이다.
나부끼네
朴 龍 來
검불연기 / 고즈넉 / 감도는 / 금강 / 상류의 / 갈밭 /노낙 각씨/
소꺼 천리/ 외우며 외우다/ 모기 달라 /붙는 눈썹으로 /나부끼네 /
귀소 /서두는 /제비 /뱃전을/치고 / 노낙 각씨 /소꺼 천리.
尹石山은 《새여울의 方向 摸索을 爲한 試論》에서 새여울 동인을 작품경향에 따라 세 구룹으로 나누었는데 첫째 그룹은 일상적인 시어를 사용하여 傳統的인 한국의 情恨을 주제로 추구하며 멀어져 가는 자연과 희미해져 가는 人事를 주로 다루는 나태주 구재기 권선옥 김국사 가 있고 두 번째 그룹으로 윤석산 이관묵 김명수 안홍렬 등은 전통적인 주제에 접근하면서도 표현 기교면에서 집중과 확산이 반복되며 빤짝빤짝 빛나는 시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며 세 번째 그룹으로는 현대인의 고뇌를 가슴으로 느끼며 아픔을 노래하려는 경향의 시를 쓰는 이장희 전 민 윤월로 등을 들었다. 3집이 발간되면서 동인간 서로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단점을 수정. 보완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시작에 임하게 된다. 동인 하나하나의 개성을 충실히 신장시켜가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려는 바람직한 방향모색이 이루어진다.
1976년 9월 발간 된 제 4집은 3집이 나오고 난 후 3년간의 휴식을 갖은 뒤에서야 이관묵의 편집으로 발간된다. 이 시기가 새여울의 진통기라 볼 수 있다. 이 때에는 呂寅順 申鍾甲이 잠시 동인으로 참가하였고 초대시로 全鳳健의〈山莊〉과 任剛彬의 〈빗속에〉가 실렸다.
山 莊
全 鳳 健
저만치
저수지의
물들은
맨살에
햇살을 받고 있었다.
과일나무 밭에서는
소년이 삽질을 하면서
과일나무 뿌리에
햇살을 묻어주고 있었다.
뜰의
햇살을
헤치고
나타난
삽살개는
새끼를 배고 있었다.
빗속에
任 剛 彬
빗속에 있게 해다오.
갈라진 논바닥에
퍼붓는 비.
풀잎이
우우 소리를 낸다.
긴 가뭄
내 意識의 마당에
푸석이는 먼지
억수로 퍼부어 다오.
우선은
헐렁한 내 옷가지
흠뻑 젹셔다오.
맞을수록 아프지 않은
빗속에
나를 있게 해다오.
1978년 7월 새여울 5집이 4집이 발간되고 2년 후에 김명수의 편집으로 간행된다.
새여울의 주축이었던 윤석산과 이관묵이 불참하게 되어 긴 늪에 빠지는 위기를 맞는다. 윤석산은 서울로 가면서 「응시」 동인회에, 이장희 이관묵마저「 백지」 동인회로 옮겨 활동을 하게된다. 새로운 동인으로 洪承寬 과 崔柱晟이 참여한다. 대부분의 동인지들이 4, 5집을 넘기지 못하고 종간을 맞는 경우가 허다하듯이 새여울도 4, 5 집이 나올 때까지 몇 고비를 넘기게 되고 이 진통은 6집이 복간되어 나오는 1982년까지 위기가 거듭된다.
2. 새여울 충전기/제2기(1981-1991)
새여울을 복간하여야 한다는 부흥운동이 김명수, 안홍렬, 전 민 등이 주축이 되어 활발히 일어나고 여기에 나태주 구재기 권선옥이 가세하여 제자와 장정도 새롭게 바꾸고 새여울 제2기를 맞이하게 된다. 동인회의 명칭부터 새롭게 바꿔야한다는 구재기 동인과 명칭은 그대로 이어나가야 한다는 김명수 안홍렬 전 민 의 의견이 팽팽이 대립되다가 나태주 권선옥의 의견이 후자에 기울어지고 구재기도 뜻을 같이하게된다. 제호 글씨도 새로운 모습으로 서울의 金榮泰 시인에 부탁하여 바꾸고 미술을 전공한 안홍렬 동인이 맡아 현대감각이 나게 편집을 한다. 창간 10주년 기념 복간호인 6집이 1982년 2월에 발간되게된다. 동인도 나태주 구재기 권선옥 김명수 안홍렬 전 민 과 홍일점인 김정임으로 굳어진다.
1982년 8월 15일 7집이 광복절을 기하여 전 민의 편집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와 시문학지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새롭게 등단한 梁愛卿 시인을 영입하여 6집이 나온 반년만에 다시 발간되는 쾌거를 보인다. 8명의 동인작품에 崔元圭 시인(충남대 교수)의 詩論도 함께 실린다. 소낙비가 훝어 간 땅엔 묵은 찌꺼기가 씻겨나가고 땅은 한층 굳어질 수 있듯이 이 때부터는 작품 발표회 겸 시낭송회도 종종 갖는 등 동인 각자가 의욕적인 시작활동을 하게된다.
1983년 9월 구재기의 편집으로 8집이 발간되는데 이때부터 김정임 동인이 빠진다.
동인의 작품 각 10편씩과 김명수 동인 特輯으로 〈갑천에서〉등 20편을 게재하고 양애경의 해설〈작은 것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사랑 -金明洙의 詩〉이 실린다.
1984년 12월 권선옥의 편집으로 간행되는 9집부터는 〈새여울〉이란 제호대신 부제로 〈시인은 죽어서도 외롭지 않다.〉를 달고 간행된다. 故 朴龍來 시비제막에 즈음하여 「추모특집 詩人 朴龍來」를 꾸민다. 任剛彬 崔元圭 金東恒 羅泰柱 丘在期가 박용래의 시세계와 박용래의 인정과 체취를 그려나간다. 오로지 부와 명예도 아닌 시와 함께 이 풍진세상을 살아가다가 이승을 떠난 고인의 업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매우 의의 있는 기획이었다고 생각된다.
1985년 10월 나태주의 편집으로 제 10집이 〈충청도여〉란 부제를 달고 서울의 〈오상사〉에서 상업출판을 시도하게된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출판비도 보조받게 되어 동인들의 경제적 부담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대전의 선배시인인 任剛彬 崔元圭 孫基燮 시인이 초대동인으로 참가하게 되고 7집부터 함께하던 梁愛卿이 빠진다. 시집 첫 장에 펜꽃 시-- 언어의 꽃이며 펜대의 꽃, 향기롭다!》써있다.
겨울나무 뒤에 숨은 박용래
崔 元 圭
그는 늘 울고 있었다
캡을 눌러쓰고 목도리를 두른 채
소주나 한잔 들이켜고
창자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소나무
安 洪 烈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할아버지는 고집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집안은 고집으로 망했다
고집이란 무엇인가
망한 집을 떠나지 않고 버티고 선
저 대들보의 찬물 같은 고집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도 고집으로 망하고 싶으냐.
1986년 12월 새여울 11집이「청하」에서〈충청도여 시인이여〉란 제명으로 간행된다 편집은 김명수가 맡았다. 문학평론가 장석주 시인은 다음과 같이 새여울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삶과 시대의 영역을 높여가고 있는 그들은 이 시집을 통해 동시대인 특히 소박한 이웃들에 대한 애정,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 등을 깊이 있게 드러내고 있다. 많은 시집과 동인지가 출간되고 있는 요즈음 우리가 특히 〈새여울〉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들이 지닌 시와 삶에 대한 성실한 태도와 함께 그들이 지니고 있는 다양함이 빚어내는 조화의 아름다움 때문이리라.동인 개개인에 대한 평에서도 안홍렬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성찰, 인간탐구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을 보여주고 ,김명수 전 민 의 경우 밝은 이상세계에 대한 希願을 절실한 언어로 드러내고 있으며 밝음에 대한 두 시인의 希願은 현실이 어둡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을 섣불리 비관주의적 인식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은 이상세계에 대한 願望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의지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라고 평하였으며 권선옥의 경우 희원과 원망이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함께 〈울고 싶다〉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임강빈 최원규 손기섭 나태주의 경우 여백이 넉넉한 동양적 세계관에 기초한 순수 감정의 시세계를 갖고 있는데 최원규의 경우 근원적인 정신의 문제를 손기섭의 경우 일상적인 소재를 평이한 언어로 드러내는 이들의 삶에 대한 관조적 태도를 , 구재기는 농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현실 인식을 서정으로 육화 ,흔히는 현실인식과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한 시가 가질 수 있는 거친 느낌을 주지 않는 성공의 예라고 할 수 있다.고 책 겉표지에 써 놓았다.
제 1부에서 동인 작품과 제2부에서는 동인 시집 평이 실렸다. 『삶의 섭섭함과 시의 넉넉함/ 任剛彬 시집 《등나무 아래에서》를 洪禧杓 시인이』,『허무와 사랑의 균형감각/崔元圭 시집 《어둠은 가고 밝음만 있게 하소서》를 李崇源 문학평론가가』,『삶의 공간을 채우는 투명한 언어들/孫基燮 시집 《고개 위에서》를 權善玉 시인이』,『선한 마음의 승리/羅泰柱 시집《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를 梁愛卿 시인이』, 『은근한 저항과 끈질긴 삶의 점액들/權善玉 시집 《풀꽃사랑》을 金明洙시인이』 ,『精神的 冒險을 위하여 /丘在期 시집 《농업시편》을 金昭影 시인 』이 쓰는 업적을 남겼다.
제 12집부터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김명수 동인에게 편집간사를 고정하기로 하고 12집이 1987년 12월에 『충청도 사람』 이란 제명을 달고 나온다 동인시 이외에 백지동인의 김순일 , 조치원 백수문학 동인 강신용과 신인 안용산 시인의 작품이 실렸다.
섬
김 순 일
하늘이/파아란 하늘이/마무리/치마꼬리를 흔들어도/나는/날개를 접고
/풀섶에 내려 앉아/둥지를 틀고/알을 낳고 살아야 할/작은 새
石橋里 戀歌 41
-겨울 江
강 신 용
칼날 같은 바람이 살아 있었어
原形의 이름 위
차운 햇살은 더부룩이 쌓이고
기다림의 눈발만 흩날리고 있었어
몇 날 밤
지새던 꿈길 사라지고
정지된 물결 위
날개 잃은 물새들만
수군대고 있었어.
망초꽃
안 용 산
욕심을 버렸을 때/욕심이라는 생각마저 버렸을 때
떠오르는 풀들의 이름/코딱지풀/꽃다지/지칭개/씀바귀
이른 아침 세상은 /이렇게 넉넉한데/넉넉하면 넉넉할수록
망초 망초 망초꽃은 /말이 없네/이 자리 보려/긴긴 세월 모아
생울움 참는 깊은 산 아침에/떼지어 날아왔는가
가도 가도 가아도/ 망초 망초 망초꽃.
1988년 하늘 끝까지 치솟던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조금씩 식어 가는 12월 「안개주의보」란 제명을 달고 새여울 제 13집이 발간된다. 겉 표지에 시를 쓴다고 세상이 한꺼번에 달라진다고 하더냐 시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 또한 뒤로 물러난다 하더냐 그저 가끔은 넉넉해지고 싶고 우리 스스로에겐 더욱 채찍질해서 좀더 겸허한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라고 써있다. 여기서부터는 임강빈 최원규 손기섭 세 초대동인의 작품이 빠지고 대신 속초의 이성선, 경북의 김성춘 시인의 작품이 초대되어 실렸다.
귀
이 성 선
내 귀를 비우고 싶네.
거리의 소리가 너무 높아서
진실도 거짓도 알기 어려워
내 귀는 쉬고 싶네.
내 귀를 이젠 바다를 향한
보석함으로 두고 싶네.
사람의 파장을 뛰어넘어서
다른 떨림의 울림 속에 들어가 살고 싶네.
풀잎 사이에 내려놓고
풀잎들의 맑은 목소리나 듣고 싶네.
나무들의 숲으로 가서
짐승과 별과 달과 바람이 얼굴 비비며
속삭이는 나라의 소리를 듣고 싶네.
내 귀를 이젠 비우고 비워서
떨리는 사랑의 소리나 가려 듣고 싶네.
나 무
김 성 춘
나무는 서서도 걷는다
하늘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꾸밈도 없고 위선도 없이
하루 속에 뿌리를 내린다.
나무는
자기가 걸어온 연륜만큼
그만큼의 자기의 그늘을 만든다.
우물보다 깊은, 무성한 잎속에
슬픔도, 새도
벌레의 고통도 모두 쉬게 한다.
나무는 결코
많은 꽃, 많은 열매를 갖기 위해
쫓기지 않는다.
묵묵히, 하늘을 향해
바람이 불면 바람과 놀 줄도 알고
눈이 오면
눈을 불러 함께 마음을 적실 줄도 안다.
가을이면 스스로 빈 몸이 되어
온갖 세상의 바람소리 혼자 견디며
기다릴 줄도 안다.
오, 기다리며 사는 나무는 아름답다.
묵묵히 하늘을 향해
빈 몸으로 서서 걷는 나무는
더 아름답다!
1989년 12월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이란 제명을 달고 새여울 14집이 동인작품과 임강빈 최원규 손기섭 김영배 김명배 홍희표 시인의 작품도 함께 실었다.
말나라1. 속다속닥
홍 희 표
1949년 6월 26일/경고장 2층 서재에서/백범 김구 선생을/권총으로 살해하고
한 집안에서 두 어른/섬길 수 없기에/존경해 마지않던/백범을 죽였다!
속닥속닥 속다속닥/어어얼 시구시구/두 어른이 없어도/아, 지금도 그 사람
건재 건재하니/1공 비리 특위라도 /구성하여 재조사/한 번 해보시지요
앵앵 울어라/너의 아버지 죽어서/부고가 왔다/앵앵 울어라.
1990년 12월 「새장 속의 새와 새장 밖의 새」란 명제를 달고 새여울 제 15집이
나태주 구재기 권선옥 김명수 전 민 안홍렬 동인의 작품만으로 간행된다.
1971년 〈새여울〉의 물줄기는 얕으면서 좁지만 흐르기 시작하였다. 세월은 강의 깊이도 넓이도 불려놓았다. 멀리서 가까이서 강물을 바라보는 분들도 꽤 늘어났다.이제는 물줄기의 위치와 방향도 점검하고 둑의 높이도 다져가야 할 때인가보다.
강물은 역류되지 않는다. 깊어진 깊이만큼. 넓어진 너비만큼, 흘러온 길이만큼, 높여진 강둑만큼, 우리들은 나이 많은 것만을 자랑하는 철부지는 안 될 것이다.
3. 새여울 부흥기/제3기(1991-2001)
1991년은 새여울 창간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80년대는 시의시대라 할만큼 각종 무크지와 동인지가 발간되어 양과 질적인 면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와 성과를 보여주었다. 충청. 대전지역의 대표적인 시동인지 새여울 또한 창간 20주년을 맞을 정도로 뿌리를 튼튼히 뻗어 내렸다. 이렇게 지역의 동인지 문학이 튼튼하게 성장하여 소위 말하는 중앙문학과 상보적인 발전을 거듭해 나갈 때 한국문학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991년 2월 9일 대전의 라이프호텔에서는 서울과 대전의 시인들이 대거 참석하여 새여울 창간 20주년 문학심포지움이 『문학활성화를 위한 동인지의 역할』이란 주제로 성대하게 열렸다. 발제 강연으로 【시동인 운동의 의의】 /오세영 시인(서울대 교수), 【우리 文學의 반성과 展望】/김재홍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대전. 충남 시문학의 전망과 과제】/손종호 시인(충남대 교수) ,【새여울 20년의 발자취와 현주소】/전 민 시인(새여울 동인) 등이 맡아 하였다.
오세영 교수는《 60년대 대표적인 시동인지로는〈60년대 사화집〉〈현대시〉 〈신춘시〉 등이 있는데 70년대 들어오면서 〈새여울〉〉 〈반시〉 〈자유시〉 〈원탁〉 〈목마〉 등이 발간 되었고 〈새여울〉은 서정시적 경향을 탐구했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손종호 교수는 《 대전. 충남지역의 시전문 동인지의 효시는 〈과수원〉 〈시혼〉이 있어 1977년까지 네 번을 발간하였고 「가슴에서 치솟아 머리에 살아남는 자세로 얼굴을 닦고 영원을 향한 〈새여울〉이 되자」 는 취지 아래 나태주, 윤석산, 이장희, 이관묵,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전 민 등에 의해 창간된 〈새여울〉은 현존하는 시전문 동인지 중 최 장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새여울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대전. 충남지역의 현존 최장수 시전문 동인지로 알찬 자리 매김을 하며 부흥기로 들어간다. 「흑백사진 한 장이」라는 제명을 달고 1991년 12월 새여울 16집이 동인작품과 문학심포지움 발표 원고를 게재하여 간행되었다. 1992년 12월 새여울 17집이 「그와 친구하고 싶다」 의 제명으로 나태주 구재기 안홍렬 김명수 전 민 다섯 동인의 작품으로만 간행된다.
풀밭길을 걷자
나 태 주
풀밭 길을 걷자
풀벌레 울음소리 속을 가자
풀밭 길에
풀벌레 울음소리 속에
푸른 산 있고
맑은 강물 흐르고
흰 구름도 알몸으로 스쳐 가누나
풀밭 길을 걷자
풀벌레 울음소리 속을 가자
풀밭 길에
풀벌레 울음소리 속에
때까치 들까치 우짖으며 오르내리는
미루나무 길 있고
고추를 달랑거리며 노는 꼬맹이들
모래밭 있고
햇빛이 밝으니 오려나
바람이 드세니 오려나
들창문 열어놓고
외지에서 살림 차린 자식들 기다리는
어머님 있다
무말랭이 호박고지로 늙으신 어머님
바라보는 동구밭
느티나무 있다
풀밭 길을 걷자 이슬 찬
풀벌레 울음소리 속을 가자 달빛
흐드러진.
늦가을 저물녘
ㅡ남새밭
구 재 기
늦가을 저물녘 /노인은 여전히 뜨락을 거닌다.
먼 산을 끼고 돌아 긴 강물이 흐르듯
가랑잎 하나를 돌아서 거닌다.
그러나, 돌아보아 남을 것도
없고 또한 남겨질 것도 없다
천년이고 만년이고
자구만 돌아돌아 흐르면서 보이는
눈물은 차라리 사치한 보석
남아야 할 햇살에 자꾸만 빛나서
노인은 멀리로 돌고 돌아 뜨락을 거닌다.
가을 便紙
김 명 수
이 가을엔 편지를 쓴다
내 속살 같은 은행잎 하나
우표처럼 붙이고
바람이 그네 되어
흔들리는 갈대 숲에서
타오르는 그리움을 보낸다
긴긴 여름날의 뙤약볕을 지나
해맑은 하늘을 기다리듯
불타는 산기슭을 돌아오는
나의 지친 그림자
이제는 잊혀져 가는
추억의 강물 속에 손을 흔든다
젖은 손을 흔든다.
1993년 대전엑스포가 열린 뒤 12월 「겨울 山頂에서」의 제명으로 18집이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전 민 네 명만의 참여로 발간되었다.
1994년 12월 「땅끝마을에 와서」의 제명으로 19집이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전 민 네 명만의 참여로 발간되었다.
벚 꽃
안홍렬
해마다 봄
해마다 벚곷
해마다 겪는 아픔
때가 되면 제 스스로 피고
때가 되면 제 스스로 지는 꽃이야
무슨 죄가 있을까.
1995년 12월 「풀잎에게」 제명으로 20집이 역시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전 민 네 명만의 참여로 발간되었다. 머릿글에 한 지역에서 묵묵히 문학의 한 부분을 지켜간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린 현실을 직시하며 꾸준히 갈 것이다. 문학은 삶의 한 부분이다. 때문에 우리 동인은 조금 느슨할지라도 변하지 않고 갈 것이다. 그리하여 나름대로의 탄탄한 성을 쌓도록 노력할 것이다. 물론 그 성의 가치는 훗날에 맡기도록 할 것이다. 1996년 내년에는 새여울 스물다섯 해 ,사반세기를 맞는다.고 써놓았다.
1996년 12월 「겨울숲이 」라는 제명으로 21집이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전 민 네 명만의 참여로 발간되었다. 머리 글에새여울이 이 땅을 지켜온 것이 어언 사반세기가 되었다. 25년이란 세월이란 그렇게 긴 것이 아니지만 그렇게 짧은 것도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땅의 천박한 문학풍토에서 굳건히 견뎌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 반성한다. 과연 우리들은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하여 얼마나 뼈를 깎는 아픔을 겪었던가, 그리하여 정말로 진솔한 작품을 잉태했던가, 그러나 비록 그 질문에 흡족히 답을 못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는 것이며 앞으로도 우리는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라고 지난날의 반성과 앞으로 다짐의 말을 써 놓았다.
任剛彬
전 민
「冬木」의 큰 그늘/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는
지나던 바람도 발을 멈춰/귓속말을 건네주고 갑니다.
「당신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을 때
우리는 환자가 되어/ 詩의 동굴로 실려왔지요
「등나무 아래에서」/다시 당신을 만났습니다.
보름달로 높히 떠/높고 낮은 산/질고 마른 들
한 색깔로 「매듭을 풀며」/ 그윽한 향내음을/쎈 빛으로 뿜어내고 있는
오늘은/「조금 쓸쓸하고 싶다」/ 내일도 조금 쓸쓸하고 싶다.
註 :「 」부분은 任剛彬 시인의 시집 이름임
1997년 12월 「그리움이 햇살로 떨어지는 시의나라에」 라는 제명으로 22집이 심상으로 등단한 宋桂憲 여류시인을 동인으로 맞아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전 민 다섯 명의 참여로 발간되었다.
꽃의 그늘
송 계 헌
그들 세상에 한걸음 다가서고 싶다
투명한 햇살 노을로 떨어지는
꽃의 그늘 앞에 앉아서
그들 봉오리 틈사이 웃음을 지어내는
순금빛 제단에 잠시 화답하며
나 꼭꼭 숨겨두었던 마음마져
다 들켜 버리고 싶어진다.
이브처럼 그들만의 비밀스런 갈비뼈를 하나씩 심어주고
여린 목 꺾이지 않도록
등어리에 편안한 버팀목을 세워주어
그들 뇌리에 엉기는 슬픔이나 고뇌
그리운 향기로 서게 하고 싶다.
원하지 않아도 그들 나라에 들어가
꽃술 깊숙히 삼키는 눈물다발로 화관을 빚어
그들 빛나는 정수리에 얹어주고 싶다.
1998년 12월 「아득한 것에 대하여」 라는 제명으로 23집이 22집부터 함께한 宋桂憲 동인과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전 민 다섯 명의 참여로 굳어진다. 머리글에 시는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지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힘든 사람에겐 용기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에겐 희망을 어두운 사람에겐 빛을 춥고 쓸쓸한 사람들에겐 따스함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작은 그릇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작업은 또 쉬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여 백 .4
김 명 수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작은 여백 하나 남겨두고 싶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함께 소주 한 잔 마실 수 있는
일을 하다 싫증이 나면
함께 산책 할 수 있는
좋은 사람 만나면
함께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그리고
그리운 사람을 위해
한 줄의 詩를 쓸 수 있는
1999년 11월 「이제 작은 물방울로 내려와」라는 제명으로 24집이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전 민 宋桂憲 동인의 신시작품 10여 편씩을 게재하여 발간하였다. 머리말에 「아름다운 삶을 위한 또 하나의 작업」이란 제목으로 시가 먼저인가 삶이 먼저인가를 묻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그것은 어떤 것이 먼저라는 정답은 여기서 말하고 싶지 않다. 사람마다 보는 위치에서 생각의 차이에서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는 우리들의 삶에 있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일에 앞에 서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라 써 있다.
이제 작은 물방울로 내려와
송 계 헌
그 때 수직을 가르며
지붕으로 나부끼는 빗줄기였을 때
어느 깊은 사막 구르는 맑은 모래알이었을 때
한 줄 끈으로 꿰어지지 못하고
배수구 검은 물로 콸콸 내몰리는 헌 구두 짝이었을 때
콘크리트 사이 젖은 풀잎들 마른 등을 적시는
가벼운 목숨 언저리, 스산한 첫 안개울음 들려오네
정작 길은 어둠 속에서도 늘 점화되어 있었고
먼 완성을 향해 구부정한 그들 등뼈 성긴 들풀로 지나갔었네
수없이 많은 이탈의 유혹을 꿈꾸며
문명과 내통하며 세월 속에 직립하고 있었네
길과 사막, 수많은 인연의 풀씨를 뒤로하고
나 이제 작은 물방울로 내려와 별나지 않은 生으로 구르려하네
강으로 살지 못하는 진실은 아껴두려 하네
내가 빗방울이었을 때
적막 산봉우리 적시는 붉은 구름이었을 때
외투처럼 잠깐 희망을 포로로 뒤집어쓰고 있을 때
후욱 내 발등을 찍는 폭우, 폭우 속에 스미는
그리움의 질량
내 깊은 망막 속 한 점 환유로 갇히는.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왔다. 30년 전 1971년 공주의 어느 여인숙에서 머리를 맞대고 긴 밤을 지새우며 새여울의 출발을 약속했던 얼굴들. 그들은 하나같이 총각, 처녀에다 紅顔의 겁 없는 이십대 초반이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참 많이도 변했다. 김명수 동인은 장녀 방울이를 시집 보냈고 구재기 동인은 시집을 일곱 번 째 상재 했고 안홍렬 동인은 교감 승진을 , 송계헌 동인은 삼십여 년간 몸담았던 교직에서 명퇴를 하였고, 전 민도 시집을 네 번째 내놓았다. 흰머리하며 얼굴에는 주름살도 자꾸만 늘어가고...
2000년 새 천년이 되어 세상을 바로 서서 바라보면 금방 좋은 일들만 내 차지로 들어서 줄 것만 같이 고무풍선처럼 가슴이 부풀어 있던 해를 아쉬워하며 보내야 했던 12월「거꾸로 선다는 것은」라는 제명으로 25집이 구재기 김명수 안홍렬 전 민 宋桂憲 다섯 명으로 굳어진 채 신시작품 10여 편씩을 게재하여 발간하였다.
고달픈 집
안 홍 렬
고달픈 집은
불빛 도한 고달프다.
늦도록 흐릿한 불빛
창문이 고달프고
늦은 귀가를 기다리는
등 굽은 용마루
그 우두건한 허리가 고달프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피곤한 발걸음이 쌓이는 밤
외로운 집은
불빛 또한 외롭다.
가난한 집은
불빛 또한 가난하다.
거꾸로 선다는 것은
구 재 기
강물 속에 거꾸로 선다는 것은
머언 원시적 사람들이
숨소리로 다가온다는 것
뭉게뭉게
강물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하자
소나무는 하늘을 닮아버렸습니다
비로소 어느 바다에 닿은 것입니다.
제 스스로 물낯에
햇살이 여물어 갔습니다
찰랑찰랑
제 빛을 찰랑이기 시작하자
이제 파도를 맞을 때입니다.
새여울 창간 30주년이 되는 의의 있는 해이다. 우리는 새롭게 출발하여야 한다는 동인의 의견이 일치되어 다시 공주 마곡사에서 1차적인 만남의 기회를 갖는다.
2001 12월 새여울 26집이 「길 위에서 길을 잃다」는 제명으로 새여울 창간부터 함께 하고 열성껏 활동하다가 잠시 비껴서 있던 나태주 김정임 시인이 새출발을 위하여 합류하였고 심상으로 등단한 후 대전일보신춘문예에 당선하여 실력을 인정받은 참신하고 유능한 신예 전주호 여류시인이 새 식구가 되었다.
새로운 길
나 태 주
나는 신문을 한 일년쯤
묵혔다 읽는다
어떤 때는 2,3년, 더한 때는
10년이 지난 신문을 읽을 때도 있다.
그렇게 읽어도 새로운 소식을
담은 신문이 내게는 정말로
신문이 될 수 있기 때문
나는 남들이 새로운 길이라고 소리치며
달려가는 길은 가지 아니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왁자지껄 그길을
걸어서 멀리 사라진 뒤
그 길이 사람들한테 잊혀질 만큼 되었을 때
그 길을 찾아가 본다
그런 뒤에도 그 길이 나에게
새로운 길일 수 있다면 정말로
새로운 길일 수 있기 때문
나에게 새로운 길은 언제나
누군가에게서 버림받은
풀덤불에 묻힌 낡은 길이다.
딤 채
김 정 임
우리 혀를 위해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파출부는 얼마나
정성스러운가 프레온 가스를 넣어
딤채를 만드는 기술자는 얼마나
지혜로운가 돈을 벌어 딤채를 사주시는
사장님은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딤채에 달래를 넣어
신선하게 저장하는 사모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사모님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도둑님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숙성된 딤채 안에서
지혜롭게 썩어가는 우리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이 시대의 혀는
겨울과 봄의 눈금 위에 서서
전 주 호
보이지 않는 숲을 헤치며 산에 올랐다.
아직 채 눈뜨지 못한 봄눈의 나른함이
어둠 속에서 쓱~ 목탄처럼 묻어난다.
다가갈수록 맨살로 다가가는 숲을 지나
우리는
조그마한 천체 관측소에서
망원경이 담아낸
한없이 넓게 펼쳐진 우주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은하계에서부터
별의 탄생과 소멸이 이루어진다는 외계은하까지
차갑게 눈을 찌르는 별들
몇 걸음 위엔
사랑했던 여인 아르테미스에게 죽음의 화살을
맞아야만 했던 오리온과
쌍둥이 자리의 카스토르와 풀록스 형제
아름다운 히아데스 ,플레이야데스 성단도 아직은
겨울의 눈금 위에 떠 있었다.
구부러진 산길을 내려오며 우리는
매연 속에 지워진 별들을 이야기했다.
잊혀져 가는 동화 속의 주인공에 대하여
꿈과 삶에 대하여
가까운 듯 먼 별에 대하여
기우뚱 새벽으로 기우는 3월의 밤
차가운 듯 맨몸으로 서있는 나뭇가지마다
황홀한 별들이 매달려 있었다.
알아버렸다.
겨울과 봄의 눈금 위에 서서
별들은 밤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이른 새벽 맑은 이슬로 잠시 반짝인다는 것을
친구의 동공 속에
희미한 별들이 새벽처럼 차오르기 사작할 즈음.
4. 새여울 잠복, 충전기/제4기 (2002- )
우후죽순처럼 지역의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동인지와 각종 문예지들 발표지면도 넓어졌고 동인들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오면서 동인지에 대한 매력이 식어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새여울 동인 모두의 화합과 정진을 위한 워크숍이 공주 마곡사에 이어 홍성 남당리 바닷가에서 2차적인 만남을 구재기 동인의 주선으로 갖는다. 김정임 구재기 권선옥 김명수 안홍렬 송계헌 전주호 전 민이 자리를 함께하여 새여울의 내일을 모색하는 자리를 갖고 다지는 기회를 2002년 7월 13일부터 14일 까지 이틀간 가졌다.
그 후로
2002년 12월 「낙타의 등은 어지럽다」라는 제명으로 27집이 나태주 구재기 권선옥 김정인 김명수 안홍렬 전주호 전 민 동인 모두가 참여하여 발간되어 나온다
유 혹
권 선 옥
나무가 정작 보이고 싶었던 것은
초봄의 신록이나 가을 단풍이 아니었다
신록에 넋을 잃게 하고
녹음으로 사람을 불러들이지만
단풍 때문에 사람들은 나무 곁으로 간다
가까이 가까이 사람들이 다가왔을 때
어느날 문득, 사르르 옷을 벗어
황홀한 알몸을 드러내는 나무
나무는 알몸을 보여주기 위해
봄부터 그렿게 사람들을 유혹했었다
긴 겨울 동안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도
옷을 입지 않는 걸 보라
얼마나 알몸을 보이고 싶어했는지
늦바람
안 홍 렬
세월이 깊을수록 / 낙엽이 되고 싶다
낙엽보다 늦은 나이에 / 낙엽보다 불그렇고
더 고운 가을이 되고 싶다
낙엽보다 더 철없이 / 낯선 거리를
이리저리 뒹굴고 싶다
가을보다 진하고
가을보다 풍만한 분위기
야한 풍경에 젖고 싶다
세월과 상관없이/ 나이와 상관없이
그 부끄러운 눈빛에 젖고 싶다
낙엽보다 더 푹신한 잠자리에 누워
요염한 가을과 만나고 싶다
가을바람은 늦바람/ 세월이 깊을수록
낙엽이 절실하다
2003년 11월「새여울」라는 본래의 제명으로 28집이 구재기 동인의 편집으로 발간되었다 27집과 같이 8명의 동인 모두가 작품을 실렸고 시작품 외에도 <나의 데뷔시절>이란 공동주제로 나태주의 <시여, 요절하지 못한 시여>, 구재기의 <울 일이 없어 참 슬ㅍ다> 전주호의 <시를 품고 산다는 것은> 산문을 게재 하였다
시 인
나 태 주
나는 하늘나라에서/ 심부름 온 아이
그러나 정작 해야 할/심부름은 모조리 까먹고
이쁜 꽃 옆에서 꽃이나 보면서/ 웃고 있는 아이
한눈 팔리기로 /구름도 보고
푸른 산도 건너다보고 /나뭇잎 사이 바람의
손을 보며 기독거리기도 하다가
언제든 때가 되면/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늘나라로 돌아갈 일이지.
빛바랜 흑백 사진첩 속에는
전 민
그 때는 한 대낮에도 / 꼬리가 열두 개 달린
불여우가 살짝 내려와 /장닭을 물고 달아나던
유년의 추억, 내 고향
흙벽돌로 쌓아올린/담머리엔 하얀 박꽃과
숭숭 엮은 싸리나무 사립/반쯤은 허물어내린 굴뚝이
보름달 빛에 더욱 정겹고
아침마다 나가보면/저녁마다 알알이 알밤이
새벽별들과 함께 소복이 쏟아내려 고여있던
달빛 가득 담긴 장독대
떡갈잎 댓돌 위에 펼쳐/ 찰흙으로 빚은 송편 놓고
깨어진 사금파리는 숟갈/시나대 꺾어 젓가락 놓고
나는 신랑, 순이는 내 각시
한 가족에 끼지도 못한/지금쯤은 손자 손녀도
서넛쯤은 족히 보았을/코흘리개내 친구 석구는
밥상을 발로 차버리며/ 심술을 자주 부려댔었지
2004 년 12월 새여울 29집「매화 한 잎 띄워놓고」가 김명수 동인의 편집으로 발간되었다.
네가 없어도
구 재 기
네가 없어도 지구는 돈다
꼭 있어야 할 사람/네가 없어도
강물은 또 그렇게 흐른다
햇살 소소히 떨어지고 있는
일요일 오후, 창 밖으로는
쭈욱 뻗어나간 기찻길
네가 없어도/텅 빈 대합실에는
소리 없이 진 눈물 몇 방울
그 흐미한 자죽
그리고, 네가 없어도
더욱 더다가서는
내 가슴 속, 뭉클
뜨거움 하나
가을이 오면
김 명 수
시리도록 푸른 하늘 한쪽에서
늘 어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그렇게 가을이 오면
어머니는 가까이 다가오고
어린시절 친구들까지 몰려온다
가을이 오면 또
소리없이 다가오는 친구가 있다
슬쓸한 강가나 바다
때로는 빈 들판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친구
얼굴도 몸도 목소리도 없으면서
순간순간 내 속에 들어왔다 다시
저 만치 사라지는 고독이란 친구
어느때는
하염없은 눈물을 가져다주고
그리움도 가져다주는 친구
겨울의 입구에 서 있는 오늘도
그가 가슴 들고 나는 것을 안다
새여울이 1971년 12월 창간된 후 2022년인 금년이 51주년이 되는 의의 있는 해다. 강산이 변했어도 다섯 번은 변했을 50년, 반 백년. 처음 만나 동인회를 조직하고 창간호 동인지를 발간하던 그 때가 엊그제 갖고 마음만도 그 때 그 기분인데 동인들도 이제 오는 세월을 비켜가지 못하고 누구 하나 어김없이 많이도 늙었다 그러나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동인간의 가족애는 처음처럼 아직도 큰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우리 새여울 동인 모두는 연륜만을 깃발처럼 내세우며 구태의연한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 시대의 요구에 걸맞게, 새롭게 단장하여 출발하여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 하며 새여울 현재의 동인이나 잠시나마라도 함께 참여 했던 이산가족들의 애정도 새롭게 피어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