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고향은 진흙탕 세상에
뿌리내려 자라왔을망정
파란 하늘이나
흐르는 개울물
통 굵은 넝쿨이나 가지도
넘나보지 않고
너무 화려하지도
아주 촌스럽지도 않게
텅 비워둔 속내
올 곧은 양심의 줄기
잎을 흔들어 대는
솔바람 결 따라
수줍어 붉게 물든 볼.
민들레꽃
맨발로 짖밟아 다오
차라리 뿌리 채
뽑히고 싶어라
나는 앉은뱅이꽃.
이제사
두고 온 하늘 그리며
눈물 짜 어쩌잔 말이냐
외옴드레, 민들레야
햇살 터 이슬 마를 때
정성껏 피워 보이고
짙은 어둠 덮어 올 때
곱게 접어 숨으며
날 좋아 받은 날
하얀 속살 빼내
네 혼(魂) 쒸워
오월 하늘 찾고 싶은.
국화
내 너를 좋아하는 연유는...
사라지는 계절의 뜨락에서
삶 자체가 표현이기 때문
눈물겨운 가식과의 전쟁이
그대만의 색깔과 향기만이
마음밭 풀숲의 한 모퉁이에
의미다운 꽃으로 피기 때문.
화려한 보상을 꿈꾸지도
풍성한 열매가 목표이기도
짭은 세상 살아가는 것이
세속적인 잔치도 아닌 것이
마음과 가슴의 텅 빈자리에
고집스런 삶의 향기론 의미로
꽃답게 다가와 피어주기 때문.
빌려온 나이
-新 이솝우화
동물 중에서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워낙이나 욕심이 많아
애시당초 30여년에 불과하던 수명을 신에게 애걸복걸, 구걸하여
빌려다가 맘껏 쓰고 있지. 동물들에서 차용해 쓰고 있는 40여년.
제우신이 강제로 뺏다시피 빌려다 메꿔 준 당나귀에서 18년에다
개에서 꿔온 12년 ,원숭이로부터 10년, 소나 돼지에서, 심지어는
닭이나 오리로부터 구차하게 차용해 온 목숨인 것을 알고 있나?
결혼하기 전, 30여 년은 책임과 의무의 줄을 잠시 풀어 놓았다가
가정을 이룬 후 노력과 고생으로 쫄라대는 , 나귀의 18년은 사회
개의 12년은 가족을 위해 땀나게 눈치보다 원숭이 10년을 덤으로.
부부 .1
낡은 신랑은 회갑이 막 지났고
늙은 각시는 곧 코에 닥쳤다
그럭저럭 결혼해 부부생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사십여 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아직도 신혼초라 속고 있는
우리 중년 부부에겐 서로를 부르는
마땅한 호칭도 아직 없다
사랑한다는 그 흔한 싸구려 말이나
여봉- 하는 코맹맹이 소리로
닭살을 돋게해본 적이 별로 없다
상대가 보이는 인근 거리에서는
눈길이나 몸짓만 살펴도 답이 나오고
사람 속에서 콕 찝어내기 어렵거나
설혹 가시광선 안에 들지 못한다해도
나는 큰 딸 이름 ?새해야 ?하고
아내는 아들 이름 ?가람아? 하면
바보 컴퓨터처럼 인식해 불이 들어온다.
부부 .2
내가 아내를 자꾸 닮아 가는데도
사람들은 아내를 대면할 때마다
신랑을 조금씩 닮아간다고 하는데
내심, 싫을 이유는 전혀 없다
서로가 다른 길로 예까지 와서
부부로 세월을 함께 엮어 가다보니
걸음의 보폭을 서로에 맞추며
삶의 방식들도 조금씩 섞이고
눈높이를 같이하기 시작하며
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얼굴 모습이나, 생각하는 것
조금씩 덧칠로 그려가는 인생.
하늘과 땅의 경계선을 명확히 모르듯
부부 사이엔 굵은 실선이 없다
두 몸과 마음을 하나로 섞어
나와 절반은 닮은 새끼도 얻어
하나의 가족으로, 점선 안에서
숙명의 울타리를 쳐주기도 하고
투자한 원금이나 세월속 이자도
결코 따지며 수판 놓으려 하지 않고
없으면 안 되는, 갈증나지 않게
찬 공기나 맹물과도 같은 존재
부부로 일생을 함께 살아가는 일은
세월로 빈 그릇을 채워가는 작업이다.
미친 세상에서는
돌아버린 사회에서 맹정신을 가진 사람은 어쨌든 간에 미치광이 노릇을 해야만 정상인으로 취급받을 수 있지 암.수 돌쩌기가 하나같이 제 정신이 아닌 듯 돌아갈 때 저 혼자만 정신 똑바로 차리며 하늘처럼 높게 살려면 왕자도 왕따가 되어야만 하고 외톨이의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나사뭉치는 톱니틀을 오늘에 맞추며 미친세상에 물들어 미치광이 노릇을 해야만 살 수 있지.
아주 먼 옛날 하늘신이 천둥과 벼락에 부탁하기를 저 하늘 아래 인간 세상에서 제일 탐욕스럽고 흉악무도한 딱 한 사람만을 본때로 골라 쳐죽여 규범을 보이라 명하였는데 요놈의 세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왕따 한 사람만 빼놓고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날벼락을 맞아야 할 판이라서 시절같은 한 사람만을 솎아내 벼락을 쳐 죽인 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거야.
내 고향 금국리(錦菊里)
중년으로 접어든
초등학교 친구들
몇 명만이 남아서
반 백년 추억을 지키며
곧은 뿌리를 내려온 곳
마을 이장이 된 친구
교회 집사이신 어머니
노인회장이신 아버지의
하루하루 삶이 땀으로 배어
곳곳에 스며 흐르고 있는 곳
올망졸망 논두렁길 지나
눈을 감고도 건널 수 있는
동네 앞 실개천하며
솔숲 향기 그윽한 학교 길
동네 안쪽 아름드리 느티나무
사이다병에는 산 메뚜기
양은 다라 가득 미꾸라지
송아지 냇둑에 풀어놓고
풀밭에 누워 바라보던 하늘
별빛처럼 빛나는 유년의 추억
다시 고향에 와봐도
낯익은 얼굴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이 날 쳐다보고
오솔길을 가로질러 제비처럼
날아가는 새로 난 서해고속도로
시간은 잠시 멈춰 오십 년 전으로
간월호의 철새
겨우내
지친 날개를 풀고
잠시 쉬어 가는
철새들의 천국
간월호의 모래섬
갈대밭엔
매와 말똥가리의
비정한 공습에서
벗어날 수 있서서
예전엔 참 좋았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천적
인간들이 찾아온 후
쉼터를 조금씩 빼앗긴
물오리와 기러기 떼들은
찾아온 고향
간월호의 모래섬을
어부가 갯벌을 떠나
도회 불빛 따라 몰려가듯
하나 둘 씩 떠나고 있다.
용봉산(龍鳳山)에 올라
눈 감고 그릴 땐
월출산이다
바로 금강산이다
눈 뜨고 내려보니
龍의 등이고
올려보면 봉황의 날개다
돌산 고스락마다
공룡들이 나와 울부짖고
칼바위, 송곳바위, 말등바위, 5형제바위
마리 맞댄 채 무슨 회의라도 하나
온종일 하늘 아래 그대로고
흰눈 덮힌
옛성터를 따라
龍鳳寺 사잇길로 내려오니
少年최영이 팔을 끼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하긴 이 많은 기암괴석이
모두 황금덩이였더라면
또 무슨 욕심 품을까마는...........
고향산책(故鄕散策)
송충목 베다 팔아
읍내 장터 건 고등어
지겟다리 따라
춤추며 삼십 리 길
진눈깨비가 쌔릴수록
활활 타주던 아궁이 안
살얼음 깨며 마시던
고향 맛, 동침이국
침쟁이 할아범은
순사가 붙잡아 갔고
산림간수에 쫓기다
숨이 차 돌아가신 할머니
어제가 오늘로 남을 수 없고
추억이 현실로 머물 수 없고
기제사나 챙기며 지킨다던
조카놈마저 기차를 탔다.
광천(廣川) 장날
어김없이 찾아와
닷새마다 성항을 이루던
삼십년 전 우리 집 바같마당
지금은 하루에 꼭 한 번 씩
크락숀을 크게 울리며
돈 먼지를 내품고 지나치는
의원님, 의원님, 통대의원님
김 서방네 양조장 술 차 뿐
이십 구년 전 추억은
달력에도 지워지고
기억에도 삭아가고.
쫓아가보면 신바람이 나고
가지 못하면 안달하다가
돌뱅이병이 더치어
넘어가는 서녘에 붙잡고
눈물 홀짝이던 하루
읍내 장터 까지는 이십리 길
지나던 장꾼들
냉견물에 목 축이고
등멱하고 밤나무 밑에 다리 풀며
울할머니는 때 맞춰
찐 고구마와 보리개떡도 내오셨고
물바가지는 성할 날 없었지
묵은 상여집 고랑에서
도깨비불 켜 있는 것도 보고
으스스한 소리도 들었다는
샛바위 근처에서
큰 짐승 눈에 불 켜고
으르렁거리며 지나치는 것
똑똑히 두 눈으로 보았다며
그 발자국은 어른 손바닥만 하다는
지금은 그렁그렁한 이야기
숨죽여 주워들으면서
쇠장수 발끝 밟고
샛길로 가야 이십리 길
미군부대 제기산 넘어
오소산 아득히 보이고
그 아래 첫눈에 들어오는
석탄 먹는 증기기관차
화통은 입김 풀어 먹구름 일고
표호하는 기적소리
조양 성냥 공장하며
자유당 말기 먹고 보자
김의원님 사기그릇 공장 굴뚝하며
장터목에 다다르면
상지다리 그 아래
능정이 활개치는 갯벌
물 빠진 갈대숲이
배 꺼진 참 먹을 때
새우젓 하면 마포, 광천 독배
원산도 처녀, 안면도 총각
부푼 가슴 푸는
부산항보다, 인천항보다
이태리의 나포리보다 더.
피보리 두서 말에다
콩 되나 팥 되나 묶어
어깨 끈 꼭 붙잡고
정신 차려 지나가면
억지 큰 사람이 이기는
질거리 장사꾼들
빛바랜 지전 몇 닙
땡그랑 돈 몇 냥
땀 젖어 배게 쥐고
이 골목 저 골목 기웃
결국에는 쇠전 옆
쇠똥 썩는 냄새마저
때 맞춰 입맛 돋구는
뚱보네 막걸리 집
쫓아온 아이들은
길다란 널판 의자에 앉아
이 빠진 대접에다
먹음직한 국수말이
돼지고기 몇 첨도
아깝지 않게 덥썩 넣어 주었고
허리끈 풀어 놓고
오랜만에 맞아보는 포식
대체사람 부럽지 않게
등에 달싹 붙은 배를
있는 힘껏 쑥 내밀면
나는 사장님
요원한 게트림도
자주 해댔지.
구경 구경치고는 약장사
떠돌이 약장수 독판치는
싸전 골목 확성기 아래
병에 들은 것, 봉지에 싼 것
약 판 위에 쭉 벌여놓고
약장수는 입담으로
부인은 서투른 춤으로
아이들 몇은 약을 돌리고
구경꾼들 도끼 썩는 줄 모르며
어깨 너머 자리를 지켜주다가
먹어도 마셔도 허한 속
나른 나른한 삭신에다
기어들어가는 정력
한 번 탁 털어 넣으면
백두산까지 나를 듯
한라산 안개 걷힐 듯
속바지 깊은 호랑 뒤집어
몇 삼년 접어 모셔두었던
꼬기꼬기 지전 하나
만지작, 설레이다가
장영자 돈 풀리 듯
누구처럼 중대 결심하여
마구 푼다, 마구 푼다.
배꼽을 거머쥐고 듣던
떠돌이 약장수의 재담도
입으로는 불을 품고
새끼손가락으로 제무시를 끌고
깨진 소주병 위에서
맨발로 진주라 천리 길
차력사의 위용도
엄청난 눈요기였지만
곡마단이 들어온다는 말에
며칠씩 잠을 설치며
눈이 석자는 빠젔었지
긴 냇둑 건너 공터에다
군데군데 말뚝을 박고
새끼줄도 늘려놓고
채일 몇 개 높게 처놓고
문 앞에는 난쟁이랑
살 다섯 가마에 팔려 간
서 서방 딸 큰 애기
닷가마는 투전판의 아침거리로
아배는 둘째 딸 크기만 기다리며
칼을 갈고 있다고.
돈 없는 아이들은
어른 가리쟁이 사이로 들어가다
표 받는 문지기의 험한 인상에
기겁해 도망을 치다가
영락없이 붙잡혀 나오고
새끼줄 너머에서 까치발하고 서
남쪽의 이산가족 북녘 하늘 바라보듯
찢어진 채일 틈새로
여름밤 이브의 방 넘보듯
엿봐도 봐봐도
시간은 남아 흘렀지
닷새장 구경 나왔다가
약장수 말씀 강의 듣다가
곡마단에 들어갔다가
총각, 처녀 눈쌈 일어나고
앵두나무집 순이는
호미자루 내던젔고
김과부댁의 소복소복
불러온 배가 우물가 화제
돌팔이 의사 최서방은
속병 난 이생원 둘째 며느리
배를 쓸다가 배꼽을 쓸고
그 아래를 지나서
물오른 버들강아지
속가지를 건드리고
장날이면 남 몰래
꽃도 꺾는다는 귓속이야기
꺾인 꽃송이는
꽃병에서 피어
비로소 꽃이 되고
양잿물 지푸락지에 묶어
한 손에 치켜들고
간 배인 고등어 몇 마리
회푸대종이에 싸서 옆에 끼고
배부르게 먹은 것
신나게 좋은 것
뾰족한 수 별로 없어도
남부럽지 않게 흐뭇하던 닷새장
신발장수, 옷장수들의 쉰 목소리
삶의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
기미독립만세 소리보다
더 절실한 삶의 소리.
석양을 등에 지고
가던 길 되 걸어오는 이십리 길
샛길은 빠져 밭이 되고
갇힌 것은 삼십년 전 추억뿐
우리 집 바깥마당은
가운데로 길이 뚫려
도회지로 나가 돈 푼깨나 번
자가용 족 대체바람 일며
먼지나 뽀얗게 일구며
여름밤 별똥 지나치듯
먼지는 쌓여도 흙이 못되고
바람은 찾아도 얼굴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