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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농공단지~대니산(재니산)~석문산~
~진동산~도동나루(종착지)
어제까지 짓궂게 내리던 비가 모처럼 멎고 파란 하늘과 푸른 들 그리고 흑록의 먼 산이
막 목욕을 끝내고 성적(成赤)까지 마친 새색씨처럼 곱기만한 날씨다.숲의 그늘은 시원
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하고 그늘을 벗어나 볕으로 나서면 햇살은 따끈따끈하며 눈
부시다.하늘의 변덕에 따라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렇게 요동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인간은 매우 허약하기만 존재에 불과하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다.그리고 인생은 매순간 우리
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하며 고통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무(無)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
을 지니는 것을 의미하는 거다.
먼젓 번의 날머리인 구지농공단지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30분무렵이다.공단의 격자무늬
도로를 따라 북쪽 방면으로 멀리 조망이 되는 흑록의 멧덩이 대니산을 타깃으로 꼬리를
잇고있는 나지막한 산줄기를 사다리 놀이 즐기듯이 발걸음을 옮긴다.구지농공단지 관리
사무소 입구를 지나고 차도 사거리 차도를 곧장 건너가면 곧바로 차도 좌측의 나지막한
숲으로 들어선다.풋내와 훈김이 진동을 하는 무성하게 기승을 부리는 잡초를 헤치고
발길을 옮기면 여러 기의 봉분이 잡초더미나 다름없는 행색으로 자리하고 있는 공동묘역을
가로지르게 된다.
공단 건너 편으로 보이는 대니산 전경(팔각정에서)
공동묘역을 빠져 나오면 산길은 수렛길처럼 널찍하고 부드럽다.사거리 갈림길이 나 있는
사거리에서 팔각정을 가리키는 맞은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이내 팔각정에 이르게 된다.
팔각정 주변은 널찍한 마당으로 꾸며져 있는데 운동기구들도 너넛 보이고 그 둘레에는
목책으로 둘러쳐 경계를 삼았다.찾는 사람들이 없었는지 팔각정 주변의 공터에는 잡초
들만 무성하다.목책너머 북쪽방면으로는 광범위한 공단이 조성되고 있는 벌판이다.아
직은 텅비어 있는 공단에는 전신주만 격자무늬의 공단의 도로망을 따라 꺾꽂이 한 묘목
처럼 멀뚱거리고 있으며 빈 터에는 잡초들만 무성하다.덤프트럭들이 어디서 실고 왔는지
흙과 자갈들을 쏟아부으며 터를 다지고 있다.
지맥의 산꾼들은 공단의 도로망을 가로지르고 공단의 빈 터를 횡단한다.공단에 공장들이
모두 입주를 하였다면 지맥의 산꾼들은 공단의 도로를 따라 사다리 놀이 하듯이 지맥의
줄기를 좇았을 게다.공단부지를 넘어서 맞은 편 논밭 사이로 난 양회임도를 따른다.
임도 우측으로는 가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가림막 울타리에는 '대구국가단지건설'따위를
알리는 간판이 울타리에 걸려있다.나지막한 멧덩이의 완만한 산자락 비탈에 일궈놓은
자드락의 밭둑을 따라 구불거리며 숲으로 기어든다.쑥대밭으로 변한 묵정밭을 가로
지르고 잡초더미 같은 묘지의 곁도 잇따라 지나게 된다.
논틀밭틀을 지나서...
막상 그런 뒤에 숲 속으로 들어서니 산길은 의외로 들머리보다는 이동으로 인한 거추장
스러움은 사라진 느낌이다.부드럽고 완만한 산줄기가 꼬리를 잇는다.대개의 나지막하고
넙되되한 근교의 야산에서의 지맥 타기에는 어느 정도 알바의 구렁이 기다리곤 한다.
그런 근교의 산에서는 진출입 등산길이 여러 곳으로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한두 차례
그러한 시행착오를 범하기도 하였지만 대수로울 정도는 아니다.멧덩이가 나지막하고
넙되되하다보니 정수리의 행색도 찐빵모양에 온통 참나무 식솔들만이 가득하다.그러한
행색의 무명봉을 뒤로하면 포산곽가의 묘지도 지나고 밀양박가의 묘역도 묘지순례나
하는 것처럼 지나가게 된다.
그런 뒤의 산길은 수렛길이나 다름없는 내리받잇길이다.이 내리받이 수렛길은 지맥을
뭉턱 잘라내고 뭉개서 공단을 조성중인 건설현장으로 꼬리를 잇게 된다.절개지를 따라
우측 편으로 이동을 하여 공단 조성현장의 차도로 내려선다.차도를 따라 우측으로 이동
을 해서 곧바로 만나게 되는 사거리에서 좌측의 차도를 따라야 한다.좌측은 세현초등
학교 쪽이며,직진 방면은 현풍 IC 방향이다.좌측 편의 차도는 왕복8차선이나 되는 꽤
널찍한 차도다.이 차도를 건너서 인도를 따라 좌측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긴다.
한동안 인도를 따르면 우측 논밭 건너 편 산자락에 자리한 대리(大里)의 범안골 마을이
눈에 들어 오는데 그 마을로 접어들어야 한다.범안골을 겨냥하여 걸음을 재촉하면
마을에 닿기 전에 나지막한 숲의 멧덩이가 하나 더 나타나는데, 그 멧덩이를 넘어서
범안골로 내려서려는 수순을 밟으려는 지맥의 산꾼들의 의도는 너무 아금받다고 할 수
있겠다.컨테이너 반토막짜리 농막을 지나면 거뭇한 물때가 잔뜩 낀 임도가 길 좌측으로
보인다.그 임도를 따르면 충주석가의 묘지를 비롯한 여럿의 봉분들이 잡풀더미처럼
산비탈에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대리 범안골 마을
손등처럼 밋밋한 외양의 멧부리는 거기도 잡풀더미나 다름없는 행색의 게으른 농부의
고구마밭이다.그곳을 뒤로하면 지맥을 가로지르는 2차선 차도가 기다린다.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조금 이동을 하면 차도 우측으로 마을 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길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길 어귀 우측으로는 '짜글이 메기탕'이라고 써 있는 입간판이 덩그렇게
서 있는 지점이다.그 길을 곧장 따르다보면 삼거리 갈랫길을 만나게 되는데 우측은 마을
한복판으로 향하는 길이고 좌측의 양회임도는 마을 뒷쪽으로 보이는 숲 쪽으로의 임도가
된다. 그 어귀의 농가 앞마당에서 개 두마리가 번갈아가면서 귀가 따갑게 악다구니처럼
짖어댄다.
산길은 이내 숲 속으로 이어지고 완만한 치받이 오르막을 내놓는다.잡풀더미 같은 봉분
의 묵묘를 지나고 시나브로 고도를 높여나가는 산길은 울멍줄멍한 크고 작은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좀 더 가파르게 전개가 된다.주변으로 석축을 쌓아 터를 다진 다음
봉분을 꾸민 묘지가 있는가 하면 금방이라도 빗물에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맨 땅의
허섭한 묘지도 눈에 띤다.꺽다리 소나무들이 줄을 잇는 오르막이 꼬리를 잇는다.오늘
산행을 시작하고부터 첫대바기로 맞닥드리게 되는 긴 오르막 산길이다.헐떡거리며
애면글면 비탈을 올려치니 재니산의 정수리는 저만치에서 좀 더 다가오시라 손짓한다.
꺽다리 소나무 두어 그루가 허리가 부러진 채 지키고 있는 멧부리를 넘어서 5분여의
발품을 보태면 오르게 되는 해발408m의 대니산 정상,등받이 없는 쉼터용의 긴 의자
두엇이 지친 산객들을 기다린다.
대니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단연 낙동강 일대의 경관이다.영남의 젖줄 낙동강의 유연하고
유장한 사행의 곡선이 아름다우며, 달성군 논공읍의 시가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낙동강을 건너가는 중부내륙고속국도 상의 낙동대교도 장난감처럼 부감이 된다.
대니산 정상을 뒤로하면 TBC구지TV중계소의 부속건물과 시설물 그리고 중계철탑 등이
자리한 둥긋한 봉우리로 이어지는데,지맥의 줄기는 그러한 중계소의 건축물 앞까지 닦여
있는 진출입 양회임도를 따르면 된다.
양회임도를 따라 비탈길을 내려가면 '대성글로벌네트웍(주)'의 대니산기지국의 붉은 벽돌
건물 앞을 지나가게 되며 뒤이어 낡은 통나무 계단을 따라 비탈을 올라서면 헬기장 행색의
활공장으로 들어서게 된다.대개의 활공장이 그렇듯이 활공장에서의 망망무제의 조망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시원스럽고 화려하다.대니산 정상에서의 조망보다 더 넓은 시야가
확보가 되어있기 때문일 터이다.활공장을 내려서면 거뭇한 물때가 잔뜩 낀 양회임도가
기다린다.대니산 정상을 뒤로한지 1.3km된 지점에 몇 종류의 간단한 운동기구와 등받이
없는 쉼터용 긴의자가 마련이 되어있는 해발277m의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우측으로 나
있는 산길은 도동서원(6.8km)으로의 등하행 산길이다.지맥의 방향은 산행안내를 맡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수리2리 쪽이 된다.
낙동강 조망(대니산에서)
임도를 줄곧 따르더라도 지맥의 방향을 잇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그렇다고 터덜터덜
임도만 고집할 수는 없지 않은가.임도만을 줄창 따르는 일은 무료하고 지루하고 따분
하기도 하고 더군다나 따가운 햇살을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기 때문이다.그러한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지맥을 아금받게 잇겠다는 고집도 간과
할 수 없겠다.그런 까닭으로 임도를 한동안 따르다가 임도를 버리고 임도 주변의 나지막
한 해발 200여 m 안팎의 봉우리를 넘어섰다가는 임도로 다시 내려선다.그리고 내려섰
다가 임도를 좀 더 잇는가 하면 또다시 임도 주변의 멧부리를 넘어서고 내려서는 행태를
두어 차례정도 거듭한다.
양회임도는 지루하고 따분하게 이어진다.나무 그늘이 드리운 곳은 가을 날씨를 실감할
정도로 시원한데 햇살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양회임도에서의 산행은 팥죽땀의
흐름을 감수해야만 한다.산돼지들의 황토목욕탕이 눈에 띠고 그들이 가려운 곳을 비벼
대느라 거죽이 홀랑 벗겨진 노송도 거푸 지나친다.오설리(좌측의 임도2.4km)와 도동서원
(5.6km)으로의 갈림길이 나 있는 삼거리에서 지맥의 방향은 도동서원 쪽이 된다.
대니산 정상을 2.9km쯤 지난 해발185m의 지점이다.삼거리 갈림길을 100여 미터쯤 지나서
다시 좌측의 산줄기로 기어 오른다.임도를 줄곧 따르면 좀 더 긴 우회로를 따르게 되니
아예 지맥을 곱게 따른다는 명분도 있고, 긴 우회로를 따르며 느끼는 지루함과 따분함을
느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그러나 기력은 점점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갈증도 시시각각 잦아지기 시작한다.
도동서원 삼거리 쉼터(목을 축여야지...)
헐떡거리며 가파른 비탈을 올려치고 밋밋한 지맥의 주능선을 한동안 따르면 산길은
또다시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따가운 햇살이 꺼뭇하게 물때가 낀 양회임도로 흔전하게
쏟아져 내린다.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습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후텁지근하지는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겠다.한동안 양회임도만을 따를 것 같더니 다시 숲 속으로 접어드는
수단을 택한다.묘비도 거창한 서흥김가의 묘지를 가로지르면 산길은 이전의 산길보다
뚜렷하고 번듯하다.그러나 그러한 산길도 이내 다시 임도로 내려서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다람재(양회임도에서 우측0.9km)로의 등하행 산길이 나 있는 삼거리를 지나면
양회임도는 머지않아 비포장의 수렛길로 행색이 바뀐다.
행색이 비포장으로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설리(수렛길에서 좌측0.9km)로의 등하행
산길이 하나 더 나 있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도동서원을 2.7km쯤 남겨둔 곳이고, 대니산
정상을 5.3km쯤 지난 지점이다.그리고 오설리 갈림길을 지나서 100여 미터가량 이동을
하면 석문산(수렛길 좌측에서 0.3km)으로의 등하행 산길이 나 있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석문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얼마 전에 작은 중장비 정도가 드나들었는지 그러한 장비가
오고 간 흔적이 마치 수렛길처럼 꼬리를 잇는다.길은 완만하고 부드럽게 이어지더니
접시를 엎어 놓은듯한 붕긋한 멧부리로 산객을 안내한다.해발 248m의 석문산 정상이다.
석문산 정상을 차지한 묘지
밋밋한 외양의 정수리 한복판에는 봉분없는 두 기의 묘지가 세로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아무런 글씨가 써 있지 않은 대리석 상석까지 마련이 되어있다.석문산성의 터가
남아있다 하여 관심을 가졌었는데, 눈에 띠는 흔적이라고는 주변에 다 허물어져 흩어져
있는 빛바랜 돌조각이나 잡목의 그늘아래 잔해로 어림이 되는 거뭇거뭇하고 자그마한
석축정도이다.조금은 실망을 안고 잰걸음으로 조금 전의 석문산 삼거리로 되돌아 나온다.
그리고 내처 수렛길을 따른다.수렛길을 1km쯤 따르면 임도 우측으로 숲으로 오르는 산길
이 보이는데, 진동산을 오르는 길목이다.
완만한 오르막 산길로 들어서자마자 통정대부를 지낸 여양진가의 묘지가 맥없이 기다
린다.그런 뒤에 오르게 되는 둥긋한 멧부리,이곳에서 진동산의 정상은 좌측으로 100m쯤
더 발품을 들여야 한다.그런 뒤에 오르게 되는 해발283.8m의 진동산 정상,정상 한복판
에는 월성손가의 묘가 천연덕스럽게 자리하고 있으며, 1981년에 재설된 삼각점(창녕308)
은 봉분 옆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왕령지맥을 마무리하는 봉우리가 해발 283.8m의
진동산이 되는 셈이다.지맥의 마지막 끄트머리로 내려서는 지맥의 산길은 직전의 둥긋한
멧부리로 다시 되돌아가서 좌측의 가파른 내리받잇길을 따라야 한다.
가파르게 시작이 되는 내리막을 허겁지겁 내려서면 꺼뭇한 나지막한 돌담을 두른 묘지를
가로지르게 된다.그런데 막상 두 기의 봉분은 맨 땅이 벌겋게 드러난 채 비가 오면 곧바로
곤죽이 되어 사라져 없어질 처지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그곳을 지나가면 산길은 또다시
수렛길을 닮은 임도와 함께하게 된다.수렛길은 이내 양회임도로 행색이 바뀌더니 머지않아
그 양회임도마저 걷어차고 지맥의 산꾼들은 좌측의 숲 길로 슬그머니 접어든다.
숲 길은 의외로 번듯하고 뚜렷하다.완만한 오르막을 오르자니 산길 좌측으로 커다란
묘비가 하나 우뚝 서 있는데 깨알 같은 한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진사벼슬을 역임한
서흥김가의 묘지인 거다.
그곳을 지나면 하늘 빛을 가득 머금고 있는, 부드러운 몸매와 유장한 흐름의 낙동강을
지척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두부모 같은 전망바위에 이르게 된다.전망바위에서 눈의 호사
를 만끽한 뒤 가파른 비탈을 짓쳐 내려서면 수렛길이 기다린다.수렛길은 이내 산자락에
일궈놓은 자드락밭 사이로 이어지고 낡은 창고와 묵정밭도 군데군데 을씨년스럽게
보인다.강변을 따라 닦여있는 2차선 차도로 내려선다.이곳에서 우측으로 차도를 따라
200~300m쯤 이동을 하면 도동서원이 자리하고 있는 도동마을이다. 왕령지맥의 산길은
이곳에서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다(15시).
낙동강
낙동강의 수면은 하늘 빛깔 고대로이고 강물의 가슴을 울렁이게 할만한 바람도 한줌
불어오지 않는다.윤복희의 부친 윤부길이 글을 쓰고 가수 한복남이 곡을 붙인 노래
'처녀 뱃사공'같은 처자는 더더구나 보이지 않는다.치마폭을 적시며 군인 간 오라버니를
손꼽아 기다리는 어서 시집가고픈 아리따운 처녀가 요즘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겠는가.
다만 차도 옆의 한 농가에서 누렁이 한 마리만이 낯선 산객들을 향하여 짖어대는 소리
만이 공허하게 강변 주위로 울려퍼질 뿐이다.
-도동서원은 도동마을 동편의 산자락에 비스듬히 자리하고 있다."이 서원은 조선 조의
5현(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황, 이언적)중 수현(首賢)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처음에는 1568년에 비슬산 산기슭에 세워 쌍계서원이라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1604년에 지금의 자리에 재건하고 당시 동명을 따 보로동서원이라
부르다가 1610년에 도동서원으로 사액되어 지금까지 불려오고 있다."(안내문 참조)
도동서원
도동서원 앞에는 수백 년의 나이를 먹었음직한 은행나무가 좌우로 자리하고 있다.
한 쪽의 것은 구새 먹은 흔적을 메운 흔적이 이곳저곳에 보이기도 한다.은행나무 뒤쪽으
로는 사적비와 신도비 두 개도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으며, 그 뒤로는 도동서원의 정문격인
누각형태의 수월루(水月樓)가 자리하고 있는데 정면으로는 3칸이고 측면은 2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꾸민 건물이다.수월루를 넘어서면 도동서원의 심장부인 중정당
이라고 하는,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는,다섯 칸짜리 맞배지붕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다섯 칸에서 좌우의 앞 칸은 온돌방이라고 하고 가운데 세 칸은
대청이다.그리고 도동서원의 수장격인 한훤당 김굉필의 위패와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
를 함께 모신 제향공간인 사당은 중정당 뒤쪽 도동서원의 맨 윗쪽에 자리하고 있다.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난분분하는 도동서원을 한바퀴 수박 겉 핥듯이 둘러보고
도동서원을 뒤로한다.우리들의 이동수단인 버스가 도동서원에서 서쪽으로 400m쯤
떨어진 주차장에서 우리들을 기다린단다.오후의 햇살이라고 따끈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가을 수확을 앞두고 있는 농작물들이 충실하게 익으려면 따사로운 볕이 좀 더
필요하다.가을 볕은 농부들의 주름살을 펴게한다.그러나 가을은 여느 계절보다 짧은
편이다.그러므로 가을의 볕은 더욱 아쉬운 거다. 여름의 끝자락을 아쉬워 하는가?
찢어지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귓전을 울려댄다. (2017,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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