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 미술가”
◇ 설치미술의 정의
사전: 설치미술 [設置美術, installation art]:회화나 조각을 전시할 분식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메시지 전달을 위해 색다른 진열방식으로 보여주는 미술.
일반적으로 회화·조각을 전시할 때 작품을 신주 모시듯 하여 전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설치미술은 개성적인 진열방식을 도입하여 작품의 메시지를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소재가 다양하고 주제도 파격적이며 시각·청각·후각·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총동원한다
◇ 설치미술의 개념
설치미술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회화, 조각, 건축처럼 어떤 일관성 있는 매체적 기능의 틀을 가진 장르 개념이 아니다. 또 설치가 입체파, 추상, 표현주의, 팝 아트 등에 초점을 맞춘 양식 개념이라고 볼 수 없다. 설치미술은 다양한 장르, 인접 분야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개별장르에 도전한다. 추상적이고 가상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시간과 공간을 작업의 재료로 예술을 삶과 만나게 하려는 욕망과 관계한다
설치미술은 2차원적 평면에 매달렸던 모더니스트들의 한계를 넘어선 4차원적 공간의 담론이다. 설치 작가들이 문제 삼는 공간은 오브제가 놓이는 3차원의 공간을 넘어서 사회, 문화, 역사, 정치적인 영역으로 확대된 인식론의 공간이며, 전통적인 시각미술이 도외시했던 시간의 축까지 관여 하는 다차원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설치미술은 사이트, 미디어, 그리고 담화이다.
첫째 사이트의 개념은 단순히 환경(땅)만이 아니라 문화 역사적인 맥락으로 확대 적용될 수 있다. 그 공간의 의미를 새로이 활성화 했다는 점에서 갤러리나 미술관, 공공건물, 혹은 거리의 동상 자체도 사이트가 될 수 있다.
둘째로 미디어이다. 이는 인간의 신체가 척도였던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규모, 인간의 생체 리듬과 운동속도에 근거했던 시간 개념이 말과 글로 전달되던 정보의 의미 등이 다 깨어져 버린 현재는 전자 미디어가 이 모든 것을 재조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담화에 대한 관심이다. 과거처럼 작가가 관람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서 관객 자신도 개입하여 참여하길 요구한다. 따라서 주제가 추상적이라기 보다는 설명적으로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설치미술이 이론과 배경에서 앞서고 인테리어적인 공간적 점유와 전시 후 이벤트적인 쇼는 작품을 상업적인 필요와 공급의 요소로 전락되고,작품이 관리되지 않는 무책임은 작가와 현실의 무지로 산업 쓰레기만 늘어가고있다.(현실적으로 비용이다)
“한국 근대 미술가 ”
•선구적 서양화가(1910): 고희동, 김관호,나혜석
•초기의 서양화가 (1920): 나혜석, 김인승 ,이마동
•추상미술의 선구(1920~):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주경
•초기 모더니스트들(1940~):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박고석,김영주
•앵포르멜 (서정추상): 남관, 박서보, 김창렬, 권옥연,이세득,유경채, 정점식,윤명로,김형대,
김봉태,정창섭,조용익, 이봉열,정영열,정상화
•60년대 말~70년대 초(기하학적 추상 오브제 미술, 하이퍼 리얼리즘): 이승조, 이강소, 한묵,
하동철, 이건용, 강국진, 김구림
•모노크롬 회화 (1970~):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권영우, 윤형근, 정창섭, 이상화, 김기림,
김창렬
•민중미술: 임옥상, 신학철 오윤 ,노원희 민정기, 김정헌
•90년대의 작가: 백남준, 조덕현, 고영훈, 이불, 전수천, 윤동구 고낙범
•여성: 최욱경 ,이수재, 이성자, 방혜자, 천경자, 김정숙, 윤석남
•기 타-·박생광·이응노, 김흥수, 한기석, 설원기, 박이소,
◇ 작가 선정 – 설치 미술가
< 13대 텔레비전 -사상 초유의 비디오전 >
“설치 미술가”
1.작가선정 : 백남준
백남준 포스트모더니즘 -13대 텔레비전 최초의 개인전, 사상 초유의 비디오전
콜라주 기법이 유화의 기법을 대신하였던 20세기 초의 캔버스 표면에 대해 백남준은 장차 브라운관
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라고 하였다. 즉, TV 모니터는 화가의 캔버스와 같고, 화가들이 물감을 붓에
묻혀 캔버스에 표현하는 작업은 신시사이저가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TV 모니터로 만들어진 캔버스에 대해 백남준은, "정확하고,자유분방하며,호화로운 색채로
심원하게, 야생적으로, 그리고 리드미컬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1,003개의 TV 모니터로 구성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로, 1003은 10월 3일 개천절을 의미한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은 많을수록 좋다는 고사에서 연유된 명칭이지만 여기서 많다는 것은 어떤
물건이 많다는 것이 아니고, 수신(受信)의 절대 수를 뜻한다. 이것은 오늘날 매스커뮤니케이션의
구성원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다다익선》의 TV 모니터는 그들이 가진 요소를 시간으로 분해하여 색채들로 재구성된 현대 회화인
셈이다. 그것은 시간의 공간적 대립과 시각적 균형의 상세도와 같이 긴 줄거리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는 상업적인 요소까지도 자신의 작품으로 포옹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2.작품분석:
• 거북이<TURTLE>
• 1993
• 150 X 600 X 1000cm
TECHNIK / MATERIAL
166모니터, 3파트의 영상이미지
-166개의 TV모니터를 사용한 가로 10미터/세로 6미터의 초대형 전자 <거북>, 1993년 독일에서 제작된 이래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이다. 거북은 토끼와 함께 백남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 모티프이다. 토끼가 유라시안 기마 민족의 역동성과 생존력을 상징한다면 거북은 한국인에게 장수, 불사, 다산을 표상하는 전설적 동물로 민족적 함의를 갖는다. 거북을 비디오아트로 재현한 이 작품에서 자연과 기술, 동양정신과 서양문물의 결합이라는 미학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이미 세상을 떠난 지금 그가 남긴 실험적 요소에서 기술적 완성도까지 시대 흐름을 앞선 생각과 실천이 그를 기억 하게 한다.
< 삶의 파노라마를 >
“설치 미술가”
1.작가선정 : 강익중
작품은 3×3인치의 작은 캔버스, 나무틀 등에 속의 각양 각색의 그림과 글, 기호, 만화적 이미지,
캔버스에 콜라주한 오브제 등을 표현하여 다 인종· 다 문화의 결합으로 동.서양의 정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선함과 악함, 얻음과 잃음 기쁨과 슬픔 등이 평등하게 통합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후 그의 작품은 더 강렬해진 어조로 세계의 평화와 한국의 통일을 이야기 한다.
그는 미국의 젊은 기대주들을 선발해 전시하는 <라우더>전에 초대되었고 1994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 다이얼로그〉전을 열었다. 199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2001년 UN본부에서 ‘AmazedWorld’ 전시를 가졌고 2005년 알리센터에 ‘희망과 꿈’을 설치하였다.
강익중의 `아름다운 강산`은 3×3인치짜리 회화 7500개를 300×25줄로 벽화처럼 부착시킨 설치작품이다. 이렇게 작은 그림은 그가 뉴욕생활의 초기에 하루 반나절의 잡역 중 쪽 시간을 이용한 작업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작품을 `비빔밥`에 비유하며 작은 그림들은 개별적인 속성보다는 전체라는 종합 속의 한 요소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각 화면에 담겨 있는 수많은 이미지(인간과 자연)와 한글 한문 영어 등의 문자들은 큰 그릇에 담겨진 맛이 다른 나물들처럼 각기 다른 향을 내지만 뒤섞어서 먹는 순간 느껴지는 묘한 맛처럼 융화돼 삶의 드라마를 이야기한다.
모아놓으며 작품이요 흩어지면 낙서일 것 같은 그의 작품은 시간의 자국이다.
2.작품분석:
수 천 개 그림 모여 `삶의 파노라마` 연출
광화문은 전통과 문화의 거리다. 건물의 용도나 공간을 고려하지 않고 벽돌을 주문해서 쌓아 올린 듯 한 공공미술 작품들과는 달리 외벽의 마감재나 색깔보다 먼저 작품 눈에 들어 오는 건물이 있다. 광화문 씨네큐브 건물이다. 마치 작품들 사이에 건물을 세운 것처럼 다양한 작품이 많은 곳이다. 실내의 폐쇠감과 번잡한 싸인의 광고판 같은 곳을 미술 작품으로 인해 작품을 위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 벽에는 손바닥만한 캔버스가 셀 수도 없이 많이 걸려 있다.
작은 조각들은 하나하나가 따로 또 같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며 수천개의 화면들은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시간과 열정의 조각을 디테일하게 펼쳐놓았다. 대량생산된 획일적 타일이 아닌 그의 시간은 누구라도 감탄할 것이다.